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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7권 (41)

카지모도 2025. 1.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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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 형상은 어떻고?"

목이 잠겨 쉰 숨소리가 갈라진다.

"전에, 조선 임금 정조 때 진하사로 청나라에 갔었던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압록강 국경을 넘어서 만주땅에 막 들어서면서, 그 광활하고 황량한 대륙의 지

평선에 그만 목이 메어, 아아, 한 번 울만 하도다. 참으로 한 번 울만 하도다, 라

고 했다는 곳 아닙니까, 만주가, 만주는 황원이지요."

아아, 한 번 울만 하도다.

참으로 한 번 울만 하도다.

"그 만주의 봉천 시칸방에 강태가 살고 강모는 서탑거리에 살고, 종항간에 같

이 지내는 거나 다름없이 가까이 살고 있었어요."

"시칸방?"

"예. 이 봉천이란 도시가 묘해요. 둥그런 채반에다 지형을 비유한다면. 봉천역

에서부터 성내라는 곳까지 채반 한가운데를 좌악 그은 것같이 길이 나 있는데,

그것이 신작로요. 그 신작로를 중심으로 볼 때, 반쪽은 신시가라고 해서, 잣대로

잰 것 못잖허게 반듯반듯 건물도 짓고 양회로 이층 삼층 올려서 저희 왜놈들만

사는 도시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일본인 거주 지역은 아주 화려하지요. 사는 데 아무 제한이 없는 신천지를 구

가하고, 전쟁이다, 징병이다. 그런 불안 공포가 전혀 없이, 계획적으로 세운 도시

라서, 만모 백화점 같은 것은 지상 십일 층짜리 호화 건물로 명물 소리를 듣습

니다."

십일 층 소리에 방안이 수런거렸다.

"봉천 인구가 총 얼마나 되는데?"

"욱십만 정도 되지요."

"그럼 조선 사람은 어디 살고?"

"그 채반의 나머지 반절을 구시가라고 하지요. 바로 이 구시가에 중국인, 조선

인들이 살어요. 그 중에서도 남시장 일부, 북시장, 성내에는 중국 사람만 살고,

서탑 시칸방에는 조선 사람들만 살고요."

"뭐? 동네 이름들이 어떻다고?"

이기채가 묻는다.

"봉천역에서 성내로 길이 뚫렸는데요. 봉천역 다음이 서탑, 그 다음이 시칸방,

그 다음이 남시장, 그 다음이 북시장, 그 다음이 성내, 그렇지요."

"어찌 그렇게 구획이 되어? 국경마냥으로. 누가 시키는가? 안 그러면 자발적

으로 편의따라 모여 사는 것인가."

"신시가는 원래 처음부터 왜놈들 살게 할려고 계획을 세운 곳이라서 일본인

아니면 들어가 살 수가 없고요, 중국인 조선인 동네는 그럴 수밖에 없다 합니

다."

"왜?"

"저는 잠시 갔다 온 사람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생활 습관이 서로 많이 달라서

그런 것 같았어요."

"이국땅에서 생활 습관이라는 것이 다 서로 다르기 마련인데, 내 나라 떠난 사

람들이 거기 살고 있는 저희 나라 사람들하고 척이 지게 등을 돌리면 쓰는가."

"등을 돌린다기보다 도저히 섞여 살 형편이 못되는 모양입니다."

"연유가 있을 것인데?"

"냄새 때문에."

"냄새?"

"도무지 씻는다는 법이 없어서 그 사람들은 일생에 단 한 번 장가갈 때 빼고

는 목간이라는 것을 모른다 합니다. 머리도 쩍쩍 들러붙어 기름이 옻칠같이 묻

어나게 하고 다니고, 옷도 도대체 빤다는 법이 없어서 한 번 꿰면 죽을 때 벗는

다나요? 그런데 그곳이 여기하고는 달라서, 그 인근에 유명한 탄광이 있어요. 무

순 안광 탄광에서 어떻게나 석탄가루가 날아오고, 또 온 하늘에 석탄 가스가 꽉

쩔어 찼는지, 그 독한 기운에 검은 공기를 직접 안 가 보고 말로만 듣고는 실감

하기 어려운 지경이지요. 아침에 세수하려고 세숫물을 떠다 놓으면 그 물이 금

방 시꺼매지니까요."

"허어. 무슨 그런 지경에 사람이 산단 말이냐."

"그런데 이 중국인들이 그 석탄가루 켜켜이 앉은 옷을, 앉은 게 뭔가요 속속들

이 배어든 옷을 빨지도 않고 입고 자고 뒹굴고 또 나다니고 그러니, 그 사람들

이 스쳐가기만 해도 조선 사람 옷이 견디지를 못한답니다. 진솔옷 무명저고리

아니라 명주저고리라도 그 먹검뎅이 한 번 휙 지나가면 시커매져 버리거든요."

"무순 탄광 석탄가루가 중국인데 남시장 북시장 성내에만 날아가는 것이 아닐

진대, 서탑 시칸방도 마찬가지로 그처럼 시커멓단 말인가."

이번에는 기표가 눈을 찡기며 물었다.

"하늘과 공기야 어쩔 수 없겠지만, 그쪽 하층민들 사는 양상이 그런것이니까

조선 사람들은 그보단 좀 낫지요. 그쪽 사람들 중에도 잘 사는 사람은 몇 만 석

씩 농사짓고, 제후 군황이 부럽잖게 울리고 부리며 사는데, 어디 가나 존재하기

마련인 빈자의 살풍경이 그만하다는 예 하나 아니겠습니까?"

"대관절 그런 곳에서 이놈들은 무얼 한다는 게야?"

"봉천이 이상한 도시예요. 그런 중국인 동네가 있는가 하면, 참 죄송스러운

말씀입니다만, 조선인 쪽 동네에는 '빠'들이 그렇게 휘황찬란하고 화려 다양할

수가 없습니다. 서탑에서부터 시칸방까지 길 양쪽에 즐비하게 늘어선 것이 모두

다 크고 작은 빠예요."

"빠? 빠가 뭐인고?"

"여자가 있는 술집이지요. 양풍의."

"갈수록 태산이구만. 그래 그런 화류계 족속들 바글바글 들끓는 바구니 속에서

이놈들은 대체 무얼 하고 있느냐니까아."

이기채가 억누른 언성을 높인다.

빠의 이야기와 술집 풍물에 대해서 듣는 순간, 그는 번개같이 머리를 후려치

는 '화냥년' 오유끼를 생각했던 것이다.

"그 계집도 데리고 갔더냐?"

고 묻는 싶은 충동적 심정이 목을 꿰ㄸ고 올라왔지만, 이기채는 울대를 짓이기

어 누르며 참는다.

그놈의 하는 일 국량이 여기서 하던 짓을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가. 빠라니...

빠? 그럼, 하던 짓이 있으니 계집은 빠에 나가고 사내놈은 펀들펀들 놀면서 기

생 장구에 한량춤이나 추고 지낸단 말이냐? 그토록 손바닥 빨간 중국인을 이웃

에 두고서야 보고 배울 것인들 무엇 하나 있을 것이며, 조선인들 사는 동네 길

거리 양 옆으로 주렴같이 늘어선 것이 화류 풍물 빠라면, 거기서는 또 무엇 하

나 건질 것이 있으리요.

이기채는 지레 짐작으로 양분이 받쳐 바튼숨을 끊는다.

이헌의도 이기채의 중정을 짚을 수 있는지라 난감한 낯빛으로 그에게서 시선

을 빗기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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