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90. 11

카지모도 2016. 6. 23. 13:39
728x90




15972 1990. 11. 1 (목)


오늘부터 생산관리부 부서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애거서 크리스티등 영국작가의 추리소설을 읽으면 영국인을 이해할수 있겠다.

영국인의 유니크한 의식구조, 문화의식, 사회적인 습성...

민족성의 특성이라는 것.

오랜 역사를 켜켜히 쌓아 온 집단무의식의 소산이다.


한국인의 특질은?

特質考라도 한편 써보았으면.


15973 1990. 11. 2 (금)


어제 자리 옮기다.

박이사가 요구 하는 바는 많기도 하고 어수선하기도 하다.

핵심을 끄집어 내서 논리적으로 어프로치하는 스타일이 아니니까.

염효동과장, 정시영과장의 능력을 믿어 보아야 한다.


생산부 송별연.

직반장들을 포함하여 근 20여명.

나는 누구보다도 3년여 동안의 현장관리에 있어서 직반장들에게 감사한다.

관리자 모모씨들에 품은 앙금이 있다면 이 또한 털어버리고.


15974 1990. 11. 3 (토)


연일 마셔대는 음주로 육신은 한껏 피곤하지만, 어제의 일과는 그것이 일종의 마취작용을 하는지 석명한 정신으로 일과를 보낸다.


내일 J는 시형어머니등과 주황산 간다고.

英이는 요즘 공부에 전념하는지.

식구들에게서 오랜동안 떨어져 있었다는 느낌이다.


마음과 육체의 소욕은 자꾸만 쾌락주의, 물질주의, 안일주의로 흐르는데, 어디엔가 금강석같은 영혼 한조각은 나의 주님께 S.O.S를 발신하고 있다.


15975 1990. 11. 4 (일)


퇴근하며 J를 불러내 파마.


저녁에 英이의 학습노트를 검사한다.

그 부실함에 큰소리로 야단을 치는데 英이의 그 커단 눈에서 주르르 주르르 눈물이 쏟아진다.

금새 후회가 물밀 듯.

저토록 커단 눈망울을 갖고 있는 내 딸에게 아비의 큰소리가 부디 상처가 되지 말기를 필사적으로 간구한다.


어떻게 英이의 정확한 실력을 가늠하고 올바르게 지도할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영어, 수학에 기초가 부족하니까 저로서도 기본과목을 공부 하고자하는 동기부여가 되지 못하고 있을게 아니냐.


일요일.

온갖 꿈의 바라이어티 쑈우로 숙면 이루지 못하다.

J는 새벽같이 주황산으로 떠나고 英이는 도서관으로 떠난다.

俊이와 둘이 덩그러니 남아있은 아침녘.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

이 기도는 전혀 상투적인 헛소리가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15977 1990. 11. 6 (화)


대동조선의 외주조건과의 비교분석보고서, 박이사에게 결재 올렸는데, 우리가 외주에 대한 조건이 뒤짐이 분명한데도 그는 지엽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며 결코 그렇지 않다고 우긴다.

화물선건조와 어선건조에 있어서도 다르다.


민자당은 또 내분.

김종필은 못먹는 밥에 재나 뿌리자는건지.

이 나라에 진정한 지도자는 없다.

그 누구도 간디는 꿈도 꿀수 없거니와 케네디 정도의 카리스마도 없다.


모처럼 J와 새벽 산에 오른다.


15978 1990. 11. 7 (수)


어제 몹시 마시다.

무슨 대단한 보스처럼 염과장, 정과장 거느리고.


서늘한 대기에 섞인 낙엽의 냄새.

군대시절 새벽기상하여 연병장에 정렬하여 일조점호를 마친후 논둑을 구보하며 맡았던 냅새.

짚더미 태우는듯한 그 냄새, 새벽 늦가을의 냄새.

그리고 보초서던 그 언저리에서 언제나 풍겨왔던 늦가을의 냄새.

일본의 우에노 박물관 뜨락에 가득 넘실대었던 그 냄새. 그 곳에서는 까마귀 울음까지도 후각으로 느껴젔던 그 냄새.

나는 냄새를 뚜렷한 이미지로서 기억하고 있다.


6시 지나 기상, 부랴부랴 행하는 출근전 행사.

독수리 잡기, 목욕, 아침밥등 모든 것을 빠뜨리지 않는다.

기도까지, 그리고 일기까지도.

시간이라는 것, 그렇다.

시간의 길눈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겠다고 나는 자신하는척 한다.


오늘.

온유와 사랑, 그리고 절실하게 사는 느낌.

어영부영은 용납되지 않을 것.


15979 1990. 11. 8 (목)


황당무계한 이야기.

마이어라는 스위스사람이 외계인과 접촉하여 우주와 창조와 역사의 비밀을 알아냈다던가 어쨌다던가.

그따위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나도 한심하다.


민자당 사태 수습.

김종필은 김형욱 회고록에 묘사된 바에 의하면 권모와 독선과 권력욕의 화신이다.

전두환은 슬슬 백담사에서 내려 올 기지개를 켜고, 그런데 그를 배알하고 오던 버스가 소양강에 처박혀 2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15980 1990. 11. 9 (금)


김재규의 최후 진술 읽다.

자기도취적인 영웅주의 가득하지만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쨌던 그에 의해 유신독재가 종식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 아닌가.

대통령을 시해한 것이 순간적인 충동이었더라도, 지극히 사적인 감정의 발로도 있었겠지만 막강한 직위의 사람에게 적어도 어느 만치의 혁명의식은 있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어언 10여년이 흘렀는데, 박정희의 딸들은 서로 다툰다는 소식.


내년도 해외영업부와 국내영업부서의 신조선 수주가 부진하다.

부하를 분석하여보니 일정 기간중 유휴가 발생될 것이 분명하다.


비오는 아침.

늦가을 비, 이 비가 그치면 겨울은 성큼 닥아 올 것이다.


시편 57편.

공감할 것 같은 다윗의 마음.

새벽을 깨우라.


내일, 토요일은 부차장들 1박2일의 용인자연농원과 민속촌행.


15983 1990. 11. 12 (월)


용인의 어느 리조트.

그 조경과 시설들. 인공으로 만든 눈밫에서 가을 스키와 골프를 즐기려는 부르조아의 놀이터.


서울사무소의 P상무, D차장등이 부산서 올라 온 촌스런 부차장들 접대하느라 곤욕을 치룬다.

술들 마시고 잠을 자는둥 마는둥, 최광준의 발에 밟혀 안경알 금이 가다.

다음 날의 사파리관광.

호랑이의 근엄한 근육에서는 뛰뛰한 시골이 느껴지고, 사자 아빠의 등에 올라 탄 라이거는 조금 슬프다.

민속촌.

이조의 어느 뒷곁. 외가의 기억이 아물아물 떠오르기도.


참 잘도 조성하여 놓았는데, 그러나 물량적으로 압도하여 오직 돈을 쓰게 하려는 목적일 뿐이다.

곳곳에 자본주의의 냄새.

여기저기 돈, 돈, 돈.


15984 1990. 11. 13 (화)


일가족 4명을 생매장, 그 범인들 중에는 21살짜리 여자도 끼어있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이 세태.

고향을 잃어버린, 이 산업사회, 오직 자본만이 판을 치는 황금만능의 세상에 쾌락을 위한 돈 말고는 무에 가치있으랴.

그 쾌락은 광기의 쾌락이다.


그러나 다섯 살짜리 여아를 산채로 묻을수 있다는 것은 사회 탓으로 돌리기 전에, 이 무리들은 천래적인 악마일시 분명하다.


15985 1990. 11. 14 (수)


이덧찬씨.

그의 가정은 그의 아내 때문에 성립할수 있다.

질서와 존경이 유지될수 있는 것은 순전히 그의 아내 덕이다.

아이들은 독립심이 넘치고, 아버지를 존경하지는 않더라도 제일 우선으로 받들어야 한다는 가풍이 확립되고 있는 것이다.

이덕찬씨로서는 그것이 엄청난 복이다.


베토벤의 '아파쇼나타'

내 옛날 열정은 다 어디 갔을까?

피아노의 포르테 터치로 가슴을 치는 방망이 소리.


15988 1990. 11. 17 (토)


현장을 벗어났음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쫓기지 않고 극심한 스트레스 없이 일할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지.

출근할때의 아득함같은게 이제는 없다.


이 감사함을 가치있는 쪽으로 활용하라.

안일과 타성에 빠지지 않도록, 건전한 독서와 경건한 정신.

이를 유지키 위하여 늘 기도하라.


俊이 학년 43등으로 다소 오르다.

그러나 수학 점수는 낮다.

어쨌거나, 수고하였네. 여보게 俊이.


꽤 괸찮은 국산영화 '애란'

색채감도 근사하고 화면도 개성이 엿보인다.

에로 영화를 표방하지는 않지만 선정성도 대단하다.


15990 1990. 11. 19 (월)


어제 어머니 오시다.

일흔넘은 연세가 무색하게 씽씽한 서울바람 몰고서.

모두 형네 모여 형이 사온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도 뜯는다.

彦이의 엄청난 식성, 英이나 俊이는 그에 비하면 그야말로 코끼리 코에 비스켓의 양이다.

어머니를 중심으로의 이러한 핏줄의 어울림에 감사.


꿈- 많은 꿈들의 행진을 사열하였으나 기억은 아리송.

많은 꿈을 꾼것에 비하여는 비교적 숙면이루다.


베토벤 '크로이체르 소나타'가 울리는 가을.

아침은 포근하고 음악은 행복하다.

흐릿한 하늘에서는 곧 빗방울이라도 듣을듣한 풍경.


기도.

감사.

사랑과 온유.

어머니, 가족들.

사랑과 온유.


15991 1990. 11. 20 (화)


네 눈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남의눈에 티끌만 보이느냐.

이 말씀은 일상에서 느낄수 있는 아주 평범한 진리이다.

일상중 자기성찰의 순간을 갖는 사람이라면 이 말씀의 의미심장함을 곧 깨닫게 된다.

캐토릭에서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로소이다.'하는 자기암시에 의한 인식도 이런 자기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지만 나 부터도, 그러한 자기성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눈의 티끌은 왜 그렇게 커보이는지,

利己의 主觀이 만들어 낸 시각의 슬픔.


4시 기상.

오른쪽 새끼 발가락 무좀 때문에 갈라진 피부가 몹씨 쓰라려서, 이것이 꿈에 작용하다.


비는 그치고 다소 서늘한 새벽.

목욕하여 정신을 수습하여 소리내어 고린도 전서와 시편 62, 62 읽는다.

새벽의 경건.

감사.


15992 1990. 11. 21 (수)


아침바다는 다시 아름답다.

여명의 수평선위로 길게 누워있는 놀.

바다의 검푸른 색조는 창조시의 색조이다.

보지는 못하였으나 오로라,극광의 신비한 광경을 상상하여 보고, 나의 아침바다 풍경이 오로아와 닮지도 않았으련만 오로라 오로라하고 뇌어보면 나의 새벽바다는 꼭 오로라의 이미지처럼 느껴진다.


J는 서예를 배운다.

하거라, 하거라.

문화적인 어떤 배움은 아무리 배워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15993 1990. 11. 22 (목)


오후 회의실에서 일본 다녀온 기능직사원들과의 좌담회.

진솔하게 일본의 인상을 얘기하는 그들 앞에서도 박이사는 알고잽이, 하고잽이의 풍모를 여실하게 드러낸다.


퇴근하여 서정엽과 맥주.

Sh 씨 와 안씨가의 갈등.

봉급쟁이의 술좌석, 높은 직위의 인물을 씹는 것만큼 맛있는 안주는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뒷폄론을 하고 난후 술이 깨면, 자신의 소인근성이 부끄러워 어떨 때는 괴롭기까지 하다.


창에 잔뜩 낀 허연 김.

겨울의 문턱.

이글이글 해는 김서린 창을 붉게 물들인다.


영국 대처수상 사임.

그 깨끗한 결단은 얼마나 보기 좋은가.


15996 1990. 11. 25 (일)


어제 퇴근하여 바바리코트 찾다.

초량에서 지하철타고 남포동나와서 책방기웃거리다가 약과 코오롱 크린스사고, 모차르트 '액슐타테 유빌라테' LP 구입.

만두와 맥주 사들고 돌아온다.


英이는 저희 학교의 음악선생 부탁으로 초량 교회에서의 피아노 반주.

학교나 교회에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피아노 실력.

그러나 음대는 꿈도 꾸지 못할..


英이는 반주 마치고 10시 넘어 돌아오다.


15997 1990. 11. 26 (월)


일본의 문화.

지방제후가 주체가 되는 봉건주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보다 훨씬 더 다양한 문화 양태를 창출하고, 지방마다 특색있는 장르가 있고 또 나름대로 이것을 아주 유니크하게 탐미적인 문화로서 창출한다.

그런 일본적인 색채감이 내게는 한국적인 것 보다 더 낯익은바 없지 아니하다.


월요일 아침, 목욕하고 모차르트의 청순한 모데트.

맑고 청아한 소프라노는 천상에 올라 그 문을 두드린다.

열어 주소서. 열어 주소서.


요즘의 일출의 바다는 너무 아름답다.


그러나 법정스님은 말한다.

해는 지는 해가 아름답고 달은 뜨는 달이 아름답다고.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 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길가에 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내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슬픔으로 걸어가는 들길을 걸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하나

슬픔을 앞세우고 내 앞을 지나가고

어디선가 갈나무 지는 잎새 하나

슬픔을 버리고 나를 따른다.

내 진실로 슬픔으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으로

끝없이 걸어가다 뒤돌아 보면

인생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저녁 놀에 파묻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16000 1990. 11. 29 (목)


내 살아 온 날수가 오늘 1000자리가 바뀌었다.

낭비하는 목숨.


3시 일어나다.

사흘째 목욕을 걸러서인지 온 몸이 가렵다.


깜깜한 새벽, 바람이 음산하게 창문을 붙들고 흔들어댄다.

그리고 나는 일만육천날 째를 살고 있다.

낭비하는 목숨.


俊이 어제 학원 등록.

나의 경제적인 능력은 이런 문제에 있어서 J에게 입도 벙긋 못하는 주눅이 들어있다.


안방, 책상 펴 앉아, 새벽잠이 든 J를 의식하며 소리내어 고린도 후서 읽는다.

아침밥 앉히러 부엌으로 나간 틈을 타서 불끄고 어둠 속에서 기도.


16001 1990. 11. 30 (금)


어제 이기수반장, 촌에 다녀 오면서 밀주 한병 들고 본관 사무실까지 가져다 내 책상 아래 놓아둔다.고마움.


SB-360 고려해운 화물선 BALLAST TANK 의 DAMAGE件의 보고서는 최종적으로 내 차지가 되어 버린다.

설계부, 구매부, 조기부의 견해서와 도면, 사진등을 종합하여 평결의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


며칠째 술 마시지 않다.

6시 30분쯤 새벽 산책길에 어머니 들르셨다가 고작 10분쯤 계시다가 이내 가신다.


미우라 아야코 '이 질그릇에도' 읽다.

'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 > 部分'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91. 1  (0) 2016.06.23
1990. 12  (0) 2016.06.23
1990. 10  (0) 2016.06.23
1990. 9  (0) 2016.06.23
1990. 8  (0) 2016.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