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90. 10

카지모도 2016. 6. 2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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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42 1990. 10. 1 (월)


어제 휴일 첫날, 아시안 게임을 보면서 하루를 보낸다.


새벽, J를 깨워 산에 가 물 길어온다.

새벽 英이 깨워 책상 앞 앉혔으나 돌아 온 7시, 아니나 다를까 英이는 쓰러져 자고 있다.

울컥 화가 치밀어 올라 英이 노트를 검사하니, 그나마 어제의 공부한 흔적이 있어 마음이 가라앉는다.

뛰어 난 두뇌를 갖고 있는데, 단지 동기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 미련한 부모짜리...


J는 왼종일 전을 부친다.

그 고소하고 침 넘어가는 전부치는 냄새.


15943 1990. 10. 2 (화)


어제 할머니 9주기.

어머니는 서울가 안계시고, 가야숙모등과 모여 예배.

추석 명절은 어제로 가불한 셈이다.


가을 양광, 연휴의 중간.


15944 1990. 10. 3 (수)


어제 시내 나가 '김형록 회고록' 3권 구입.

또 길거리에서 파는 라디오 구입하였는데, 또 쓰잘데 없는 짓거리를 한 것이다.

늘 후회하면서도 장사꾼의 약장수 노름에 넘어가고 만다.


오늘 종일을 김형욱 회고록에 흠뻑 빠져 보낸다.

권력놀음.

드라마보다 몇배나 더 흥미진진한 권력 놀음의 파노라마.

김형욱이 들려주는 5.16 혁명부터 정보부장을 하고 망명할때까지의 권력내부의 은밀한 얘기들이 너무나 재미있다.

권모술수, 음모, 복수등 드라마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박정희 그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과연 혁명가였는지.

글쎄 그런 평가는 차치하고 창백한 얼굴에 꽉 다문 입술의 박정희 모습에서는 고독한 영웅의 이미지가 어려있다.


오늘 추석, 날씨는 흐리다.

명절의 들뜸이나 설레임은 요즘 아이들에게는 없다.

제기차기, 딱총... 울긋불긋 색동옷, 먹거리들..

도시의 아이들에게는 이제 사라진 환상이다.


도시의 아이들 뿐이겠는가, 어른들도 환상이 사라진 것은 마찬가지다.

이제 물질주의에 찌들려 까르르 까르르 웃는 명절의 양식은 형해화되고, 잠시 어울려 공허하게 떠드는 하나의 그저 그런 날일 뿐이다.


15945 1990. 10. 4 (목)


어제 우스꽝스러운 의상을 입은 J와 아이들 함께 처가에 가다.

참, J의 취향은 때로 이해할 수가 없다.

비교적 옷에 대한 센스가 있은 편인데 어제의 의상은 영 그게 아니다.

깡둥한 바지에 검은 뱀무늬 스타킹, 윗도리는 도꾸리처럼 터틀이고.

게다가 앞섶을 장식한 금빛 문양에다가 금빛 벨트라니.

나는 볼수록 우스꽝스러운데 J는 그게 멋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주 잘 생긴 세기, 귀여움이 뚝뚝 흐른다.

이제 한결 의젓해진 택기와 준기.

잔주름이 보이는 큰처제, 작은 처제.

여위신 장인, 한결 늙으신 장모.

처남과 처남댁들.

좋은 품성의 내 처가 식구들.

그곳에는 우리집과 같은 이상스런 허영이나 과장이 없이 진솔한 정이 흐른다.


정종에 취하여 돌아온다.


6시 넘어 기상.

촉촉한 아침 비.


15946 1990. 10. 5 (금)


어제 그야말로 잠시도 쉬지않고 '김형욱 회고록' 읽는다.

1, 2권을 순식간에 독파하고 3권에 진입하였으나 눈알이 아파서 저녁 8시경 읽기를 그친다.

복마전- 내가 겪은 20년간을 지배한 본질의 원류가 그러했을진데, 당시 그런 부도덕한 세력에 겁먹을 당위성이 어디 있었단 말인가.

부도덕하여 더욱 무서웠겠지만.

겨우 그따위 정신들이 지배한 한국, 그것은 비극이었다.


꿈, 3시도 안되어 꿈에 쫓겨 일어나다.

4시에 목욕하고, 5시 책상 앞 앉는다.

사도신경, 나의 기도, 주님의 기도.


어두운 바다가 부윰하게 떠오르는 까닭은 서편 하늘에 휘영청 떠있을 달님때문일 것이다.

5시 30분, J를 흔들어 깨운다.

물통을 J는 메고, 나는 들고하여 새벽물 길어온다.


오늘 첫출근, 아이들 첫등교.


15947 1990. 10. 6 (토)


어제의 출근율 약 60%, 거리도 한산하다.

어쨋든 한가위 명절은 우리 민족에게는 참으로 큰 날이기는 한 모양이다.

고향이라는 것, 가족이라는 것.

아무리 형해화되어 있을지라도.

촌수.. 풍속.. 전통.. 음식... 조상.

내게는 공허한 단어들이지만.


아직 생산관리부로 전보 인사발령은 없다.


영환 소식.

성냥개비처럼 말라서, 극심한 고통으로 악에 바쳐 자신의 병을 저주한다는 그.

이제 며칠을 넘기기 힘들다고.

영환이 죽기전 한번 만나보려 하지만, 만나기가 무섭다.

암이라는 괴물에 기어이 죽음의 문턱까지 끌려가고 있는 그를.


아침, 비가 부슬부슬 듣고 있는 컴컴한 숲길을 후라쉬 불빛에 의지하여 걷는다.

혼자서는 무서워 숲에 들어서지 못할 것이다.


15949 1990. 10. 8 (월)


북경 아시안 게임 폐막식 보다가 10시쯤 안방 들어와 잠들다.

俊이는 시험공부 한다고 베란다 내 방에 앉아 안방 커튼에 동그마니 전등불빛 비추고 책상 앞 앉아 있다.


3시 일어나 화장실에서 오토의 '종교입문' 펼친다.


俊이 깨우고, 파스칼 '팡세'의 의미심장한 하나의 단장을 천착하고,

시편 90편의 사람 목숨의 일생이라는 것의 찰나같음을 천착하고,

기도드린다.


15950 1990. 10. 9 (화)


퇴근 길, 이덕찬씨와 늦도록 마신다.


그가 자주 찾아가 만나는 영환의 소식.

'와 안낫노. 와 안낫노. 나아야 될거 아이가. 와 안낫노 말이다' 하고 마누라를 들들 볶는다는 영환이.

온 힘을 다하여 자신의 병에 대하여 저주를 퍼부으며 분노에 떨고 있는 그.

영환이는 한사코 죽음을 거부하면서 그렇게 분노에 잠긴채 이승을 하직할 것이다.


그 분노와 거부와 고통을, 나의 상상력은 슬쩍 엿보고 있지만, 나란 놈은 과연 어떠할까.

그런저런, 짐짓 처절한 감상으로 술을 마신다.

그따위 감상의 본질은 아웃사이더의 허위라는 부끄러움을 반추하면서 시나브로 취해간다.


15954 1990. 10. 13 (토)


대퇴부의 동통은 수그러들줄 모른다.

음주로 인한 피폐함이 어디 몸뚱이 뿐이랴.

놀랄만큼 감퇴한 기억력.


이제 기억창고에 저장된 한 개의 자료를 찾아내려면 참 식은 땀이 나도록 안간힘을 써야한다.

이 서람 저 서랍 열어보고 이 궤짝 저 궤짝 들처보아도 결국 찾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제 내 기억력을 믿어서는 안된다.

보조기억장치를 활용해야 한다. 메모나 연상기억술의 활용을 습관화해야 한다.


아이들 시험 끝나다.

홀가분한 마음으로들 등교.


토요일.

성기게 구름낀 하늘, 그 사이로 내비치는 하늘빛은 샛파란 쪽빛 하늘이다.


15955 1990. 10. 14 (일)


잠농 방콕시장 우리나라 오다.

서울대생들 열광적인 환영.

청렴에 대한 환호다.

청렴, 때묻지 않은 사람.

그는 독실한 불교신자이다.


마음을 비운다, 욕망을 버린다...

나는 중얼거린다.

절제.. 절제.. 네 욕심을 극소화시켜라.

너는 범부이므로 욕심을 아주 버릴수는 없으니 욕심을 적게 하라.


간밤에 잠자고 있는 안방의 공간을 비상하는 농축된 적의의 소리.

모기다.

곤히 자고있은 J를 깨워 모기향을 피게 한다.


새벽산.

산길, 들국화, 코스모스... 숲의 냄새.

그리고 가을걷이 하여 텅 빈 논밭. 어미소와 송아지.

집근처 도심의 바로 곁에 이런 곳이 있으니 나는 좋은 곳에 사는 것이다.


'보라빛 코스모스가 찬바람에 흔들릴 때. 뜨거운 내 눈동자 그리움에 젖네. 가을이면 잊으련마는 그리운 그대여. 아아 아아 나는 잎떨어진 나무인가.'

하고 읊조려 보는 나의 옛노래.


돌아 와 보니 英이는 그저 잠에 떨어져 있다.

꿇어 앉혀 놓고 어쩔수 없이 또 야단을 치는 아비짜리.

英아. 내 딸아.

네 속을 보여다오.

아니면 아비나 어미 마음을 들여다 보아 다오.


15956 1990. 10. 15 (월)


어제 일요일, 회사 나갔다가 일찍 돌아와 노닥거리고 있는데 한봉화의 다급한 전화.

배에 불났다는.

택시 잡아타고 현장으로 달려나가다.

에상대로 SB-377의 1번 어창에서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연기.

관리자들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 10시경 겨우 진화하다.

내게 퍼붓는 박이사의 욕지기를 고스란히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피해는 어찌할꼬.

건조보험으로 COVER가 가능한지.

어창 공사를 한 효성공업의 작업자를 원망해야 하나, 휴일 방화책임의 체계의 미비를 탓해야 하나.


무거운 마음으로 늦은 밤 돌아온다.


15957 1990. 10. 16 (화)


어제, 오전에 화재현장 정리.

보험은 불가한데, 다행하게도 피해범위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선주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인원 대량 투입하여 뒷처리.


절제.

결코 위장 가득 밥을 먹지 말 것.

그저 마시기 위한 마시기로 술을 끝장보지 말 것.

온유함과 중심갖기.

끊임없이 '마음을 비우자' '욕심을 버리자'하고 중얼거릴 것.


새벽 일어나 목욕하고 존 윌리엄스의 기타 선율 흐르게 한다.

그리고 내 방에 앉아서 고린도전서 소리내어 읽고 기도.

내 육체- 영혼을 담고 있은 이 그릇을 나는 너무나 소홀하게 취급하고 있다.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수 없느니라.' -고전 6/15-


15959 1990. 10. 19 (금)


어제 퇴근하여 시내 나간다.

거리- 산떠미처럼 쌓여있는 상품들, 곳곳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소비는 미덕이라는 덕목은 언제나 유효한가.


J는 안방에 누워있고, 나는 마루에서 TV에 눈길을 준채 VIP 양주 작은 것을 한병 비우다.


2시 30분 기상하여 새벽을 노닥거린다.

俊이 오늘 소풍날.


15960 1990. 10. 20 (토)


어제 서정엽과 쿠폰으로 갤럭시에 가 양복 사다.

사장의 유별난 친절, 비상한 상술이다.

장사로서 입신하려면 이 정도의 상술은 기본일 것이다.


돌아오며 초량 중국집 골목의 중국집에서 난자완자 시켜 놓고 고량주 마시다.

이런저런 회사 얘기, Sh 씨 씹기.

중국집 만두 사들고 늦은 시각 귀가.

俊이는 해운대 소풍에서 돌아와 곯아 떨어저 있다.


그제, 광복동 거리에서 마주친 두 사람.

배에다 고무 깔개를 대고 엎드려 기면서 찬송가를 노래하는 젊은 불구자와 쪼그리고 앉아서 눈꼽 잔득 낀채 껌을 파는 70을 훨씬 넘었음직한 노파.

그 때 내게는 분명히 무언가 전류가 흘렀는데 그것은 동정이라기 보다는 부끄러움이었다.

내 슬픔만으로 나는 저사람들에 대하여 떳떳할수 있을까하는.


그때 나는 그만, 쉬바이처를 생각해 내고 말았다.

불구자와 노파가 불쌍해서라기 보다는 내가 불쌍해서, 그 슬픔에 잠시 울었다.


15961 1990. 10. 21 (일)


토요일, 퇴근후 시내 나가서 추석때 선물받은 상품권으로 구두, 지갑, 벨트 구입하다.

거리거리에는 범람하는 상품, 범람하는 낭비들.

나의 의식 역시 그 낭비의 하나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 현대라는 맘몬의 제국은, 자본주의라는 귀신의 舞蹈는, 모든 문화와 모든 존재하는 양식들을 소유양식의 색채로만 처발라 놓았으니.


俊이 성적 곤두박질.

반에서 12등, 전체 140등.


오늘 새벽, 俊이 데리고 함께 산에 오르며, 이런저런 얘기 들려주며 분발을 촉구하는 아비짜리.

말없는 녀석의 마음 속에는 어떤 생각이 맴돌고 있는지.


15962 1990. 10. 22 (월)


일요일.

가을 하늘.

바람이 선듯 불고.


술이 없는 한낮에.

가슴을 저미는 슬픔이 있다.

아슴프레한 기억 속의 어떤 색깔.

시골 토담집 모퉁이의 한적한 햇살 한줌.

넓은 운동장 한구석에 쪼그려 앉은 한 소년의 시루엣.

거리 모퉁이 호호 할머니의 때묻은 입성과 주름진 눈에 낀 눈꼽.


15966 1990. 10. 26 (금)


내게는 저 나이에 이런저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英이나 俊이에게는 그런 생각들이 없을까하고 느낀다는 것은 지독한 자가당착이다.

그 시절, 홀어머니를 향한 어두운 색채의 불안감을 타는 감상적이고 외로운 소년이었던 나와, 英이와 俊이를 비교할 수는 없다.

환경이 같지 아니하다.

英이와 俊이는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가 추위에 떨면서 창안을 들여다 보았던 풍경- 가족의 따스한 빛의 테두리를 환상으로 그리워 하는 아이들이 아니다.


내 시절, 그 사적인 성장환경보다 더 복잡한 어떤 범위의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또한 생각하라.

英이와 俊이에게는 내가 그 나이 갖지도 못한 얼마나 좋은 품성의 장점들이 많은지를.


미우라 아야코 '빙점'.

그리고 한낮의 보오들레르, 그 일락이여.


15967 1990. 10. 27 (토)


어제 이덕찬씨로부터 전화.

이영환 죽다.

KH근 에게서 전화.

PS곤 아버님 암으로 입원.


잠들어 꿈꾸다. 빌딩, 고무공장.

의미도 없이 질질 끌어가는 연속극처럼, 휙휙 스처지나가는 여러 장면의 몽타쥬.

새벽 깨어 일어나다. 하혈을 걱정하였으나 아주 순한 변을 보다.


'빙점' 하권.

소설의 내용은 인간의 용서함과 신의 용서함에 관한 것인데, 나는 그 소설에서 일본인을 느낀다.

일본인은 반듯반듯하고 단정하여서 한국인에 비하여 훨씬 더 문화적이다.

그러나 그 문화는 매우 인위적이어서 형식적인 아름다움이다.

일본인 개인 개인으로서는 한국인보다 몹씨 고독할 것이다.


원시의 서기 어린 새벽 가을바다.

시편, 기도.


'나의 때가 얼마나 단촉한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그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 -시편89-


영환이 죽었다.

오늘 이영환의 주검에 가야 하리라.


15968 1990. 10. 28 (일)


괴정 이영환네 아파트.

풍성해 보이는 그의 아내는 그다지 슬프지 아니하다.

남편의 그 고통의 과정을 곁에서 겪었으니 이제 고통에서 벗어난 지아비를 오히려 축복할 것이다.

영환 부부 결혼식 때는 내가 사회를 보았었지.


그리고 어차피 산사람들에게는 다른 생명의 소멸함은 그 의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

죽음은 다만 죽는 자에게만 절대적인 것.


영환 빈소 다녀오니, 생산관리부 책임자로 전보 발령.

아, 나는 이제 현장을 벗어난 것이다.

영환이는 갔지만 나는 현장을 벗어 났다.

이제 무엇이 나를 변케 하려는지.

밝은 쪽으로.


15969 1990. 10. 29 (월)


어제 서면.

JN영 , PS곤 만나서 소주 마신다.

어눌한 보수꾼, JN영 - 때로 번득이는 얘기들은 그러나 진보적인 것은 아니다.

PS곤 부친의 입원. 한사코 문병을 사양하는 PS곤 .

화제는 단연 건강에 관한 것. 병에 관한 것들.

암, 암.


옛날에도 암이라는 병이 창궐하였던가.

현대에 들어서 옛날 병들은 박멸시키기도 하였지만 새로운 병들이 자꾸 생겨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교통사고, 암, 안전사고... 곳곳에 널려있는 죽음의 웅덩이들.


15970 1990. 10. 30 (화)


때로 육체의 피폐함을 느끼고는 어떤 위기의식이 엄습한다.

육체적 매카니즘이 전과 같지 않음.

이것은 전적으로 음주의 탓임을 나는 또한 모르지 아니하다.

40대의 사망률의 심각하다는 보도가 공갈로서 위협하기도 하는데, 건강에 대한 나의 미련스러움은 스스로 느끼기에도 대단하다.

영환이 죽고, 주위의 이런저런 얘기들이 요즘 제법 심각한 작용을 하는 모양이다.


회사에서 읽은 월간조선의 윤석양이병의 수기.

당시 의식화된 대학생의 이념이라는 것은 그토록 강한 것이었을까?

회유, 고문, 협박공갈에 굳세게 견딘다는 것. 이른바 수사투쟁에서의 승리.

하나의 의견(opinion)에서 하나의 사상(thought)으로 전이되는 과정.


간밤의 꿈은 윤석양의 글에서 연상되는 단편들이 데포르마숑된 내용.


오늘은 관리부 직원들이 부서장 보임의 환영회를 한다는데, 나는 그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첫인상을 새겨줄까를 생각해 두는 것이 좋을 것.


15971 1990. 10. 31 (수)


어제 관리부 직원들과의 회식.

본시 익숙한 사람들이라 껄끄러움은 없다.

부산역 앞에까지 가서 끝나다.


英이 성적표- 학년 50등 안에 들어서 이제 회복세인가보다 하고 며칠째 짐짓 기분이 좋았으나 정작 그 내용을 알고보니 암담하다.

모두 암기과목에서만 올려 놓은 성적이다.

기초가 있어야하는 영어, 수학과목은 그야말로 참담하다.

늦은 시각, 마루에 앉혀 놓고 야단인지, 충고인지, 호소인지를 씨부려대는 아비를 딸이여, 불쌍히 여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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