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1 1996. 2. 1 (목)
며칠째 회색수면.
노오란 환각은 사라졌지만 요즘 무슨 강박이 있는지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회사를 비롯하여 俊이, 英이, 어머니, J등 내 강박 재료야 널려있으니.
회사에서 읽는 스테판 킹의 '빨래 집게'
작가의 명성에 속는 세 번째의 소설이다.
그의 '부적'과 '캐슬록의 비밀'에 이은.
서스펜스의 대가라는 명성에 스스로를 너무 사로잡히게 하는 작가.
英이 俊이와 함께 어머니께.
아랫배의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음에도 어머니와 마주하였는데 어쩌랴.
맥주를 마신다.
그리고 늙은 어머니는 그런 아들곁에서 아들이 사가지고 간 생선회를 맛있게 드신다.
17892 1996. 2. 2 (금)
서태지와 아이들' 공식 은퇴 선언.
10대 소녀들은 울부짖고, 그들은 '창작의 고통'운운하며 떠나다.
창작의 고통이라니.
그러나 그렇다. 그들의 형식에 있어서도 음악과 춤이란 굉장한 고통 속에 탄생하는 무엇일 것이다.
그냥 연때를 맞추어 등장한 아이돌 영웅이 아닐수도 있다.
나의 십대때에도 이와 같이 자신을 완전히 투사하여 동일시하고 미치도록 좋아하였던 우상이 있었던지.
이런 대상이 등장하는 것은 청소년 심리학적인 측면보다 사회 경제적학적인 접근이 더 옳은 것이나 않을지.
추운 날씨, 전방의 고지는 영하 20도.
미국영화 '패트리어트 게임'
스릴과 서스펜스.
헤르만 프라이가 부르는 슈베르트.
추운 겨울 아침에 듣는 슈베르트는 어쩌면 이리도 좋을까.
17893 1996. 2. 3 (토)
제법 추운 날씨.
계절을 느끼는 감각은 나이를 먹을수록 얼마나 다른가.
아스라이 나의 느낌이 갖고있는 기억.
정능.
미아리쪽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북풍.
외꼬챙이 썰매.
병원 진료실의 톱밥난로, 리어커를 끌고 미아리의 목재소에서 톱밥을 싣고 오던 길, 형과 명규형.
그리고 중랑천의 스케이트장.
겨울의 기억들.
손등은 터져 갈라지고 피가 굳어서 딱지가 져도, 그 때의 겨울은 얼마나 반짝거렸던지.
군대의 겨울, 해운대 종교대의 겨울, 군의학교의 겨울, 감기몸살로 텅 빈 내무반에 메트리스를 덮고 끙끙 앓으며 한낮을 보냈더니 몸살 따위는 깜쪽같이 나아져 있었고, 육군병원 본부중대의 뒷편, 연탄을 찍고... 아아, 오분대기조, 몇날며칠을 군복과 군화를 입은채 24시간을 보내니까 내복에 득실거리던 이, 어깨쭉지에 손을 넣어 드윽 긁으면 손톱사이에는 살찐 이가 박혀 나오고, 그 이를 벌겋게 달아오른 난로 위에 던지면 꼭 고기 굽는 냄새가 나서 회가 동하였고... 그 군대의 겨울조차도 반짝거림이 있었는데.
반짝거림은 없어지고 이제 메마른 무덤덤함의 추위만이 느껴지는 이 겨울.
신명기.
주님, 도우소서. 나의 품성, J의 품성을 도와 주소서.
깨닫게 하여 주소서, 스스로의 모자람을 깨닫게 하여 그를 알게 하여.
그리하여 주님.
변케 하소서, 일으켜 주소서.
17894 1996. 2. 4 (일)
토요일의 오전 일과는 늘 바쁘다.
제법 추운 날씨.
2시쯤 퇴근하여 동삼동까지 돌아와 미장원 앉다.
파마.
박종호감독의 '영원한 제국'
안성기가 고종, 조재현이 이인몽, 김명곤이 정약용.
원작보다 못하다기보다 소설의 줄기를 따라가기에 급급하여 숨이 찬 영화.
원작이 있는 작품의 시나리오란 오랜 시간 곰삭여야 한다.
그것이 재창조의 과정이다.
소설과 영화는 트루기 자체가 다르다.
장편의 소설과, 채 2시간이 되지 못하는 동안에 모든 걸 그려내야하는 영화.
박종호감독의 전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경우는 원작보다 훨씬 훌륭한 영화였으되 이 영화는 좀 더 곰삭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하였으면 좋을번 하였다.
소설을 읽지 않은 관객은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기에도 어려웠을 것.
17895 1996. 2. 5 (월)
아들 놈의 무력감에 젖어있는 모습을 왼종일 바라본다는 것은 성미 급한 아비에게는 견디기 힘든 답답함이다.
제 누나는 밖으로 밖으로 잘도 나가 어울리는데 이 녀석의 칩거주의는 중증이다.
무얼하는지 제 방 문 걸어 잠그고 틀어 박히면 밖과는 완전한 단절이다.
간혹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음악소리.
아비는 속만 북북 태운다.
녀석을 지배하고 있는 강박은 무엇일까?
군대? 또 학점?
꿈- 수산대학이 배경, 부산역부근에서 택시 잡지못해 우왕좌왕, 곽정수의 찝차를 탔는데 차안은 한개의 방이다, 그의 처자식들, 그리고 되돌려진 금일봉...
다시 월요일.
다시, 다시, 다시라는 반복의 늪.
반복의 늪에 잠겨 세월만 가노라.
17896 1996. 2. 6 (화)
스테판 킹 '빨레집게'
작가만이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을뿐 내게는 시시하다.
구성도 그러하며 에피소드들도 시시하고 캐릭터들도 시시껄렁하다.
그 유명한 스테판 킹에게 세 번째 속아 가면서 읽는 소설.
俊이, 제 고등학교 친구 군대가는데 그를 배웅하러 춘천까지 일박으로 떠났다.
녀석은 지금 착잡할게다.
주위에서는 친구들이 하나둘 시나브로 군대에 들어가고.
군대의 이것저것을 들어보면 겁도 날 것, 군대의 2년이 생각할수록 아득하게 느껴질 것이다.
어휴 어른이 된다는게 어찌 이리 번거로운고.
이런 골치 아픈 과정을 생략해 버릴수는 없을까.
육체는 혈기방강하여 무언가 발산하고 싶건만 주위의 기성질서라는 경찰관은 눈을 부릅뜨고 있고, 아, 인생은 설마하니 고달픈 것이 아닐까 싶기도한데 아버지라는 위인을 보아하니 즐거운 것은 아닌듯도 하고.
云云하는 아들 놈의 마음일 듯.
17897 1996. 2. 7 (수)
날씨는 겨울답게 연일 매섭다.
부서장회의, 느닷없이 나타난 Sh씨, 또 되지도 않는 일방적 독선의 언어들.
정말 회사가 싫어질때가 바로 이러한 경우.
어거지의 원맨 쑈우에 무력하게 노출되어 꼼짝 못하는 자신을 의식할 때.
케이션 때문에 찾아온 항만청 직원,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떡값.
개혁의 한계.
삶의 현장은 전혀 다르다.
윗대가리들의 상투적인 구호만으로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俊이 어젯밤 돌아오다.
꿈- 동토의 땅, 쏘련, 밤, 2층 건물, 어머니....
생일.
이제 우리 나이로 오십인가.
17898 1996. 2. 8 (목)
계속되는 회색수면.
아침에 잠시 본 유선방송의 '그것이 알고 싶다'
충격으로 나를 때리는 것은 멀쩡한 사람을 가둬 놓는 정신병원이라는 상투적인 주제가 아니라.
자식이 아버지에게 해대는 그 욕지기.
"이 새끼, 너 내 손에 한번 걸리면 없어"
이것이 아버지에게 하는 자식의 언사이다. 놀라울 뿐.
파괴.
파괴되는 관계 관계들.
전율이다.
17899 1996. 2. 9 (금)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다시 읽다.
기발함 속에 번득이는 사회와 인간성에 대한 풍자.
장 바스티유 그로누이.
냄새의 천재.
17900 1996. 2. 10 (토)
곰곰 생각해 보면 물질이 풍요롭지 못하였던 예전에는 관계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러나 우라질 물질이 풍요롭다는 이 시대에 관계는 고독하고 메마르다.
물신에게 정신들을 빼앗겨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문득 돌아보니 홀로 고독하게 몸을 떨며 황야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현대인.
아, 추측컨대 북한에는 관계의 아름다움이 이 곳보다는 짙게 남아있을 것이다.
俊이 녀석, P/C 통신에서 얻은 음악프로그램으로 편곡한 솜씨.
재능이 있다.
아들 놈은 재능이 있다.
그런데 그 의기소침한 포즈의 병인은 무엇일까?
17901 1996. 2. 11 (일)
사장아들 AJ용의 결혼 참석차 Sh씨서껀 모두 서울로.
배우자는 조달청장의 딸네미라고.
손을 비비는 몇명의 부차장도 상경.
비디오 공테이프, 다섯 개 만원.
소주마시며 비디오 감상.
스페인 영화 '에스트라다 미망인'
국산의 에로영화와는 격이 다르다.
깊은 곳에 숨어있는 성적인 환상을 자극하는데 있어서 한국산 에로영화는 너무나 서툴다.
내가 만들면 정말 근사한 에로물 한편쯤 만들수도 있으련만.
17902 1996. 2. 12 (월)
알 파치노 주연의 '광란자'
알파치노의 이글거리는 눈빛과 커단 덩치들의 동성연애의 그림이 인상적이지만 그렇고 그런 영화.
동성간의 성애에 탐닉한다는 사실, 도무지 느낌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지만 내게도 전혀 그런 요소가 없다고 자신할수 있을까?
꿈- 외갓집 아파트, 배낭, 媛이, 주옥이, 점주...
17903 1996. 2. 13 (화)
俊이의 성적, 또 F가 두개다.
아마 자식들 대학 성적표받아 올때마다 이토록 마음 졸이고, 반복되는 참담함을 느끼는 부모도 흔치 않을 것이다.
수학능력에 어떤 장애가 있는 겐가, 무슨 커다란 착각 속에 빠져 있는걸까, 무슨 친구나 여자 문제일까...
아들녀석의 대학생활에 첫단추를 끼우는데 도와 줄 방법이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의지박약, 엉거주춤..
이도 저도 아닌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듯.
뚜렷한 목적의식도 보이지 않고, 젊은놈다운 호기심어린 패기 따위도 찾을수 없고, 용기도 부족하고.
아, 저 녀석을 일깨워 번쩍 정신이 들게 할 그런게 무어 없을까.
이 시점에서 군대에 가는게 최선일수도 있다.
17904 1996. 2. 14 (수)
출근하기 전의 아침, 俊이에게 아비짜리의 정제되지 못한 감정을 장전하여 두서없이 기관총을 쏘아대다.
뒤죽박죽 얼켜 있던 논리의 짬뽕들이 불쑥불쑥 단절음이 되어 외마디로 표출된다.
이성이란 놈은 감정이란 다급한 숨가쁨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俊아, 아비의 외마디 언어들 속에 숨어있는 아비의 진실만은 느껴다오.
톰 클랜시, 역시 일급 엔터테이너 소설가인데.
그의 '복수'는 전작 '크레물린의 추기경'에 미치지 못하는 소설이다.
캐리라는 주인공의 캐릭터나 팸의 복수라는 설정도 소설적 당위성이 부족하다.
캐리는 흡사 람보처럼 묘사되었는데, 그러나 재미는 있는 소설.
17905 1996. 2. 15 (목)
TV '그것이 알고 싶다'
두 얼굴의 성, 게이들.
여자보다 더 예쁜 남자들.
17906 1996. 2. 16 (금)
회사의 고속도로 낙동휴게소 사업.
결국은 포기하다.
몇억의 돈을 날리고서.
정작 따지고 두드려야 할 곳은 어영부영 넘어가고, 지엽적인 것들은 미주알 고주알 따져대는 우둔함이 지배하는 회사.
북한의 ROYAL FAMILY 북한을 탈출.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
17908 1996. 2. 18 (일)
설이라는 명절보다 나를 마음 설레이게 하는 것은 며칠을 푹 놀수 있다는 점이다.
그 논다는게 하잘 것 없는 빈둥거림임을 뻔히 알면서도.
생선회를 사들고 비디오 테이프 빌려 일찍 돌아오다.
俊이와 비디오보면서 생선회를 먹다.
물론 소주를 홀짝이며.
'파리넬리' 카스트라토, 거세한 남성 소프라노, 16세기 바로크시대의 유럽, 헨델의 음악이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
'장미빛 인생' 최재성, 최명길 주연.
지하의 만화방, 5공의 암울한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한 막다른 골목에 쫓긴 군상들의 이야기, 괜찮게 만든 영화다.
새벽 일어나 전날 술에 취하여 대충 본 영화들을 다시 본다.
내일은 설날.
17909 1996. 2. 19 (월)
어제 하루.
세수도 않은채 먹고, 싸고,자고, 보고.
게으른 그릇에 고이는 정신은 냄새가 날 정도.
비몽사몽의 회색수면.
그러나 꿈은 찬란하여라.
자의식이 연출하는 바라이어티 쑈우.
그리고 뿌리없음, 어디에도 삶의 근거를 마련치 못한 내 삶의 바람소리.
고향도 없고 조상도 없고 관계도 없어 내 정서는 전전긍긍하는데.
자기연민의 그것 한줌.
오늘은 설 날.
아, 뿌리있고 근거있는 삶들의 카니발, 명절.
어머니.
어제 당신의 무덤을 꿈꾸었답니다.
어머니.
17910 1996. 2. 20 (화)
늙으신 어머니.
설날이라 어머니 주위에 모이는 것은 그나마 피붙이.
서울 珍이 基의 할머니께 드리는 전화.
가야 숙모와 D은이 내외.
모여 앉아 예배를 드리고 둘러 앉아 떡국을 먹고.
TV에 눈길을 준채 형과 양주를 홀짝인다.
택시타고 사직동.
정종을 마시고 아이들과 둘러 앉아서 윷놀이도 한다.
저녁 집으로.
俊이와 맥주잔을 권커니 자커니.
모처럼 부자간의 대화.
올해 3/4분기에 군대 지원하고, 카투사 시험은 다시 치르겠다는 아들놈....
부대끼는 속.
변기에 선홍빛 하혈.
일찌거니 세수 면도등 신변잡사를 정돈하여 자꾸 처지려는 정신을 추스르려고 단도리한다.
시편 소리내어 읽는 아침.
17911 1996. 2. 21 (수)
어제 세편의 비디오보다.
'개같은 날의 오후'
잘 만든 국산 영화, 패미니즘.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알게 모르게 핍박받는 사회.
잘 만든 영화다.
'펄프픽션'
퀜틴 타란티노라는 감독이 만든 괴상한 영화.
카메라 앵글은 춤을 춘다.
드라마 트루기도 없고 시간마저도 순서없이 뒤헝클어 놓았는데 칸 영화제는 이 영화에 그랑프리를 주었다.
이 영화에는 수호지, 갱스터, 잔혹, 사랑 얘기들이 마구 섞여 있다.
어지럽지만 여기에는 연출의 치밀한 계산이 숨어있는듯도 하다.
'올레이디 두잇'
형편없는 에로영화.
일관성도 없고 연기도 없고 성적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도 없고,
다만 있는 것은 여자의 희멀겋게 커다란 엉덩이.
17912 1996 2. 22 (목)
무엇을 기다리는가.
무슨 각성의 순간을.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그 빛나는 각성의 날, 찬란한 깨달음으로 나의 빛바랜 것들을 죄다 빛내 줄 그 날.
그저 기다리다 기다리다 백발이 될지니..
한병의 소주도 이제 나는 즐겁지 아니하고, 술마시기에는 쾌락으로 인도하는 몽롱함도 없어지고 말았다.
반추되는 자의식의 가시는 더욱 날카롭기만 하다.
연휴후의 첫출근은 곤혹스런 기분.
17913 1996. 2. 23 (금)
어지러운 회사 분위기.
그러나 평형감각을 잃지 말자.
환멸이 점점 누적되어 폭발할때 폭발하더라도 미리부터 그것을 예감하여 평형을 잃지는 말자.
그저 묵묵히 나의 것을 연마하자.
감각을 닦고, 감정제어의 기술을 습득하라.
꿈- 방, 도배, 英이 신랑감, 바위투성이 갯가, 납작한 집, 바위산, 추락한 비행기..
17914 1996. 2. 24 (토)
톰 클랜시 '복수'
3권째를 모두 읽다.
시시하다.
가장 효과적인 창작방법으로 한사람의 작가보다 여러명의 혐력체제로 소설을 쓰면 어떨까.
다양한 아이디어와 에피소드...
그러나 작가의 철학과 문체의 일관성등, 문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국산영화의 경우, 참신하지만 매끄럽지 못한 부분은 협작하여 만들면 하나의 재료를 곰삭여야 하는 시간은 절약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英이 졸업식.
학사.
딸년, 제가 학업에 무슨 형설의 공이 있었으며 부모의 맹모삼천의 정성이 어디 있었겠느냐마는 그래도 자랑스럽지 아니한가.
딸의 대학졸업.
어엿한 학사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딸네미.
17915 1996. 2. 25 (일)
토요일, 매우 바쁜 오전 업무처리.
11시에 회사를 나서 택시에 오른다.
꽉 막힌 교통.
12시가 다 되어서야 수산대학 도착, 英이는 까운을 입고 학사모를 쓴채 큰엄마, 은민이와 함께 기다리고 있다.
제 엄마와 俊이는 12시 훨씬 넘어서야 겨우 도착.
졸업식은 이미 끝나 버렸다.
부랴부랴 몇장의 사진을 찍는다.
英이 졸업증서 앨범등을 찾으려 간 동안 英이 동아리 방에 형수, J, 俊이 앉아 있는 동안 SEA SOUND 멤버들, 우리 앞에서 공연을 펼치다.
현란한 기타 연주와 노래 솜씨들...
그리고 더욱 빛나는 것은 그 스스럼없는 젊음들..
일을 마치고 돌아온 英이도 기타를 치며 답송을 부른다.
그레듀에잇 티어스....
英이 노래솜씨 또한 너무나 기막히다.
英이,형수,J,俊,은민이, 英이의 어떤 남자친구등과 쌈집의 늦은 점심.
英이의 졸업.
대학의 낭만과도 결별.
J도 역시 쓸쓸할 것이다.
나는 가족들과 헤어져 택시타고 백병원으로 달려간다.
SB수 차장 부친상,
치과의사였던 부친.
장남인 SB수 의 동생들은 한명이 판사이고 또한명은 공인 회계사다.
삐까번쩍한 집안답게 영안실 입구부터 도배하듯 도열한 화환들.
S과장 차를 타고 남포동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자' 한권 구입.
17916 1996. 2. 26 (월)
일요일의 사무실.
SB-418 의 경사시험으로 분주한 현장.
H부장, 금요일날 포항으로 해병대 훈련을 마친 작은 아들 면회갔던 얘기.
군대 얘기라면 귀가 솔깃하여 이제 남의 얘기가 아니다.
꿈- 다락방 극장, 노조원들 무슨 찬반투표, 나는 개표요원, 투표용지는 빵과 봉지땅콩사탕...
17917 1996. 2. 27 (화)
英이 졸업식 날, 동아리방에서 우리에게 보여준 동아리의 공연이 꽤 각인되었던 모양이다.
대학생활의 낭만.
자꾸 俊이의 학교생활과 대비가 된다.
방문 잠그고 들어 앉아서 홀로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그것도 젊음의 하나의 방법론일수도 있으나, 어울려 함께 젊음의 에너지를 발산하여 즐긴다는 것.
이것은 俊이의 성격에 퍽 큰 긍정적 영향을 줄 터인데.
英이가 구입한 서영은의 소설 '꿈길에서 꿈길로'
英이의 말마따나 양귀자 따위와 비교될 수 없는 문학적 품격이 있는 소설.
소설 속에는 서영은과 김동리, 남이 볼때에는 어색해 보였던 그 관계가 문학적으로 변명되고 있다.
그리고 서영은의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광대한 사막이 이번에는 실제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 광대한 공간 속에 찍힌 미세한 한 점의 존재, 인간.
서영은의 은유,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
정말이다.
자신이 진실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인식한다면 두려운 게 없어진다.
그런 인식에 도달하면 스스로 강해질뿐 아니라, 어쩌면 타인을 사랑하것도 가능해 진다.
17918 1996. 2. 28 (수)
법정에 선 전두환.
노태우와는 다른 당당함이 있는데 그것은 허세일 것이다.
俊.
아들 녀석이 진정 대학의 낭만을 즐겼으면하는 열망이 아비에게는 있건만 이 녀석은 선뜻 응해주지 않는다.
그토록 서클, 서클을 되뇌이는 아비.
그런데 녀석은 서클에 들어갈 마음도, 아비가 사준 입성들을 걸처볼 생각도 품지 않는다.
이것은 녀석에게 그러한 의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닐 것.
우유부단하고 발동이 늦게 걸리는 바지런하지 못한 성격 탓일것.
그런 아들 놈의 성격이 아비는 안타깝고 부아가 나는데..
17919 1996. 2. 29 (목)
한진중공업에다 선각 BLOCK 발주를 PROPOSAL하다.
말하자면 업무량의 구걸이다.
경영의 부재, 대선조선.
김성동.
그가 살아낸 어린시절.
충청도, 육이오, 할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월북한 아버지.
그에게 있어서 아버지란 곁에 존재하지 않음으로 하여 빛을 발하는 의식의 리비도 일것이다.
英이 졸업사진을 끼울 액자, 하얀 칠판 작은 것, 헤어 브라쉬, 면도기의 건전지등을 톱 스토아에서 구입하고.
오징어회를 사들고 돌아온다.
J, 캐나다 여행. 5월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