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12 1996. 6. 1 (토)
유홍준의 글읽기.
어떨 때에는 다소 독선적인 주관이 불거져 나오기도 하지만 그의 글읽기는 대체로 행복하다.
차마 자신의 공간에서 떠나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대리만족.
비록 화장실에 앉아 떠나는 답사여행일망정.
폐기물에 대한 실사.
P상무는 건설 쪽, H이사는 조선 쪽으로 중점을 두었으면 바람직할 듯 싶은 내 생각인데.
어쨌던 나는 두 쪽을 모두 받처 주어야 한다.
월드컵.
일본과 공동개최 결정.
그나마 다행이다.
俊이 밤늦게 M/T에서 돌아오고, 좀 늦게 출근하여도 괜찮은 모양의 英이는 7시가 다된 여적까지 잠 들어 있다.
J는 이른 아침 시장행.
18013 1996. 6. 2 (일)
Sh씨는 무슨 담석이라던가.
좀 더 입원해 있을 모양이다.
새벽 산에 오른다.
함지골까지 헉헉거리며.
꿈- 대훈고모집에 더부살이, 소금기의 땀에 함빡 젖은 머리카락, 물벌레 득실거리는 더러운 목욕물...
18014 1996. 6. 3 (월)
일요일 홀로 집을 나선다.
자욱한 안개, 태종대의 숲 길에는 자욱하게 안개가 흐른다.
축축한 습기를 머금은 대기가 휘적휘적 온 몸을 감싼다.
윗길의 운동장에는 농아그룹이 단체로 놀러들 왔는데, 배구등을 하며 수십명이 야유를 즐긴다.
그런데 너무나 이상한 영화를 보는즛 하다.
연기들은 다이나믹한데 도대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영화.
토키가 꺼져 버린 영화화면.
침묵의 그들은 끼리끼리 더욱 정다운 그림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침묵의 공원이 고마웁다.
유격대 기념비곁, 아무런 인기척없는 그 호젓한 곳에서 나는 한병의 소주를 마신다.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행복하게 올라오는 취기...
월요일, 안개는 걷히고 초여름의 아침 햇살은 벌써부터 따갑다.
18015 1996. 6. 4 (화)
월요일, 오후가 되니까 부슬부슬 내리는 비.
사무실은 후덥지근한데 아직은 에어컨의 바람은 나올 생각이 없다.
녹화된 TV 프로, 일본에 관한 다큐멘타리.
'오다꾸', 아마 '오宅'의 발음일 것인데.
말하자면 한가지 취미에만 몰두하여 외부와는 단절된 생활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군대, 만화, 오락, 자동차개조, 연예인등 한가지 취미에만 파묻혀 생활한다.
어둡고 차단된 자신의 공간에서만 그들의 현실은 행복하다.
일본에서는 어둡고 부정적인 의미의 어휘 '오다꾸'
다양성과 폐쇄성- 개체성.
이것은 미래적 비젼의 형태인지도 모른다.
전혀 부정적인 시각으로서만 보아서는 안될 듯 싶다.
어쩌면 나의 옛날도 '오다꾸'적 기질이 많았을 것이다.
英이 교회 후배 남학생.
한밤중 심장마비 사망, 아침에 깨우는 그의 어머니에게 발견되었다.
나이가 많건 적건 그 분이 '오너라'하시면 가야한다.
18016 1996. 6. 5 (수)
사무실에 새 팬티엄 P/C 한대 더 들어오다.
INSTALL할 소프트 웨어 관계로 전산실 아이들과 실랑이.
전산실 직원들의 되지 못한 시건방짐, 오도된 엘리트 의식이다.
저희들만이 전문가인양 별 것도 아닌 소프트웨어 부탁에 이러쿵 저러쿵...
대동조선 권기대이사로부터 전화.
약 200톤의 선각 BLOCK처리를 부탁한다.
그러나 한진 것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 어려운 청이다.
5시쯤, 몇 명의 부차장들 Sh씨 입원한 해동병원 특실에 문병가다.
금일봉을 만들어.
독한 노인네답게 대수술후 회복 또한 놀랍게 빠르다고.
그의 마누라와 의외로 예쁜 俊 또레의 딸네미가 지키는 그의 병상에서 무언가 따스한 그의 이미지를 유추해 볼수도 있겠지만..
나의 그에 대한 고정관념은 그 이미지를 그려낼수가 없다.
둘러 선 부하직원들에게 주저리 주저리 읊조리는 자신의 수술 얘기, 여전히 자만과 독선 그리고 어리광 가득하다.
그리고 해동병원에서 회사의 정기 신체검사 받다.
몇가지 사안에 대한 숙제를 마치고 부담을 덜은 것이다.
18017 1996. 6. 6 (목)
현충일 전날.
퇴근 무렵, 英이의 전화.
아비보고 생선회를 사달란다.
이런 전화는 무조건적으로 나를 즐겁게 하는 것.
누군가를 인사시켜 줄 모양.
봉래시장통의 하동횟집.
앞에는 英이와 남자친구인 OM영 이란 친구가 앉았다.
발브공장을 한다는 보통 체구의 청년, 듬직한 용모는 아니고...
생선회와 소주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눈다.
뒷풀이 노래방까지..
英이의 빼어난 노래에 비하여 형편없는 노래 솜씨.
딸아이는 무슨 생각으로 아비에게 녀석을 소개시킨걸까.
18019 1996. 6. 8 (토)
빌린 '91학번'이라는 소설.
요즘 대학생들의 속이라도 들여다볼까하고 빌린 책이다.
그러나 익히 내가 알고있는 내용들만 가득.
이책에서도 俊이의 유니크한 내면을 들여다 볼수는 없다.
俊이는 어제 저희 학교에서 부산소재 대학의 경영정보학과가 연합한 M.I.S모임이 있다고 하더니만 간밤에 돌아오지 않았다.
비, 가득 습기찬 대기.
꿈- 목욕탕, 넘처나는 똥무더기, 혁명의 와중인데 나는 반혁명분자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물 속에 뛰어들어 탈출.....
토요일 새벽.
자욱한 안개.
視界는 10M도 되지 않을듯.
18020 1996. 6. 9 (일)
토요일의 하루.
간 밤 돌아오지 않은 俊이에게 몇 번씩 삐삐를 호출하여도 녀석은 오불관언 연락 한통없고, 크레인 레일관계의 보고서 때문에 P상무는 빼럭 신경질을 부려대고, 이것저것 바쁘기만한 잡무에 울컥 신경질은 오르고...
정신이 자꾸만 어둔 굴 속으로 외곬로 기어 들어갈때에는 억지로 노새를 일으켜라.
육체를 움직여 정신을 유혹하라.
새벽, 몸을 일으켜 J를 깨운다.
태종대의 새벽 숲길....
18021 1996. 6. 10 (월)
일요일 어머니께.
호젓한 집안에는 어머니와 彦이뿐.
노인.
다변한 말씀은 때로 조리에 맞지 아니하지만 중늙은이 자식에게 이것저것 주변의 얘기들을 늘어놓고 싶으시다.
말씀중의 친척들 소식.
문호가 죽었다.
충청도의 어느 요양소에서 49세의 나이로 석달전에 죽었다.
왜 한줌 감회가 없으랴, 나와동갑인 내 고종사촌.
그리고 삼촌,숙모,고무들 얘기.
외삼촌, 이모 얘기서껀...
진부한 세월이 만들어주는 진부한 필연들을...
덴뿌라 하나 시켜 놓고 소주를 홀짝이며 나는 그렇게 오후 한나절을 어머니 곁에서 보낸다.
彦이는 7월 23일 입대.
俊이는?
제가 알아서 생각하고 있는겐지, 아비에게 반발심리가 있는 녀석과 어떻게 조근조근 얘기를 나눌 기회를 녀석은 주지 않는다.
18022 1996. 6. 11 (화)
안전진단, 또 14명이 몰려오다.
안전검사, 안전진단, 안전점검... 지나치게들 야단이다.
몰려와서는 이현령 비현령식의 피상적인 지적만 가득 늘어놓고는 떠나는.
이런 행태는 전적으로 전시행정이라고 할수 없을지 몰라도 관료주의적 형식임은 틀림없다.
18023 1996. 6. 12 (수)
KPE K사장.
이번 기성 4천만원의 빠른 결재를 부탁하지만 대선의 지불관례를 난들 어쩌랴.
SB-426 2선대에서 진수.
Sh씨 퇴원하여 사뭇 비장하게 아픈 몸을 이끌고 일에 열중한다는듯 폼을 잡고 설친다.
18024 1996. 6. 13 (목)
존.D.매도날도. '사형집행인'
옛날 그레고리 펙과 로버트 미첨이 나왔던, 근래에는 리메이크하여 로버트 드 니로와 닉 놀테가 출연하였던 '케이프 피어스'의 원작인 소설이다.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미치광이가 벌이는 다이나믹한 서스펜스가 소설에서는 약하게 그려졌다.
오히려 미국적 덕목들이 정의로서 강조되었다.
가족, 정의, 사랑, 용기, 부부애,....
며칠째 습기 가득한 대기와 아침, 저녁의 서늘함.
아마 이런 날씨 뒷편에는 장마가 숨어 있을 것.
18025 1996. 6. 14 (금)
안전진단 끝나고 강평시간.
총무부장의 정확한 지적의 반발성 발언은 지극히 타당하여 시원하였다.
답변에 궁색한 안전공단 사람들.
이런 경우의 H부장은 돋보인다.
타코마조선의 생산관리부장 방문.
생산성의 문제, 진수후 10개월의 안벽기간이 소요되는 타코마.
해군 함정과 민수선 건조의 감각 문제.
타코마에 비하면 우리의 생산성이 드높다.
18026 1996. 6. 15 (토)
습기찬 무더위.
사무실의 에어컨은 아직 가동되지 않는다.
사람의 입맛이라니.
WINDOW에 익숙해지니까 이제 D.O.S 따위에는 아예 손이 가지 않는다.
실로 내게 P/C는 없어서는 아니될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점심시간에 어떤 영성깃든 서적과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구경할까하여 영도에 있는 책방 두어곳 기웃거렸으나 입맛대로 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가지가지 신간들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홍수처럼 쏟아져 너무나 흔해 빠진 책, 책들...
예전 한권의 책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하였던지 금석지감이 없을수 없다.
대본소에서 고이 빌려온 한권의 책, 종이는 바래고 표지에는 닳고 닳아 두꺼운 마분지로 껍데기를 해입힌 그 책은 얼마나 소중하였었는지..
지금은 너무나 흔하다, 넘친다.
너무나 흔하니까 책이 소중할 리가 없다.
18027 1996. 6. 16 (일)
金烏 '금까마귀'라는 호를 쓰는 한의사의 책 '좋다 싫다 생각해보자'를 회사 화장실에서 틈틈이 읽는다.
동양사상에 뿌리를 둔 한의학.
물질적인 현상에서 보다 주역에 이론적 바탕을 둔 의학체계.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조화를 더 중시하는 의학.
병이 생기면 그것을 적으로 인식하여 무찔러야한다는 서양의학과, 병이란 어떤 조화로운 상태의 파괴라는 신호로 인식하여 병까지도 고마운 종용의 덕으로 포양하려는 동양의학.
서양의학에 비하여 형이상학적인데, 과학은 형이상학만이 아니다.
水昇火降이고 頭寒足熱이라.
나의 고질적인 아랫배의 시원찮음은 어쩌면 아침마다 들이키는 차거운 냉수에 있지 않을까?
아침마다 뜨거운 것으로 속을 다스린다면 어떨까.
머리는 차고 아래는 더웁게...
일요일 아침, 일어나 차를 끓인다.
공복의 뱃속을 덥혀 보고자.
18028 1996. 6. 17 (월)
안개 자욱한 일요일, 장마철인지.
英이만 교회가서 없고, J와 俊이 각 자기들 방에서 개기고.
나는 마루에서 왼종일 TV.
캐빈 코스트너 '워터 월드'
극지의 빙하가 녹아서 지구는 물에 덮이고 인간은 부유물 위에서 씨족 단위로 생존한다.
맬 깁슨이 출연하였던 '매드 맥스'의 아류이지만 그에 훨씬 못미치는 시시한 영화.
'혜옥란' 청조말의 서태후 이야기.
섹스로서 역사를 이야기하려니 부자연스럽다.
俊이, 이제 녀석과의 대화는 힘들어졌다.
부자의 간극은 날로 심화되고 아비의 가슴은 멍들고 자포가 되어 간다.
아들놈의 머릿속을 한번만 들여다 보았으면.
도대체 무얼 생각하고 무얼 꿈꾸고 있는지.
미치게 알고 싶은 아비짜리...
18029 1996. 6. 18 (화)
중부지방에 많은 비, 200MM이상의 강우량.
부산에도 종일 내린다.
어제가 형의 생일.
J가 선물 들고 큰 집에 다녀오다.
그러나 동서끼리의 모처럼의 대면은 매끄럽지 못한 모양.
이것이 쓰라린 남편짜리, 시동생짜리.
간 밤에 어떤 멜로디가 떠올라 흥얼거리기까지 하였으나 도무지 그 곡목이 기억나지 않아서 끙끙댄다.
수면중에도 그것으로 끙끙, 꿈까지 꾸었는데 도무지 곡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멜로디만 입에서 맴돌고.
새벽 화장실에 앉아서 명곡 애창곡집 2권을 샅샅이 뒤져서야 겨우 그 제목을 찾아내고 만다.
그것은 베토벤 'ICH LIEBE DICH'
나는 어쩌면 편집광이다.
3일째
새벽 공복의 뜨거운 차.
18030 1996. 6. 19 (수)
英이 방에 뒹굴고 있는 책을 주워 읽는다.
하병무 '남자의 향기'
사이비 소설, 이런 따위가 제법 읽혀 베스트셀라 운운하다니.
그럴듯한 장정과 요란한 광고 때문에 직접 읽어보지 않고서야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할수 있겠는가.
범람하는 문화의 홍수, 이것을 필터링하여 취사선택하는 기능을 개인에게 맡겨 놓는다는 것은 무책임한 현상이다.
어떤 시스템의 정립이 필요하다.
18031 1996. 6. 20 (목)
어제 아침은 솜구름 뭉게뭉게 솟아오른 청명한 가을 날씨이더니 시간이 좀 지나자 음산하게 변모한다.
그러나 올듯 올듯 비는 내리지 않는다.
조반을 먹지 않으면 속이 편하다.
식욕은 탐욕스럽게 게걸대지만 아랫배에서는 비명을 지른다.
한 몸뚱이를 이루는 각 지체마다 맡은 역할들이 있고, 이를 통제 조화시키는 기능도 두뇌 어딘가에 있겠지만 식욕을 참는다는 것은 좀 힘들다.
물리적으로는 존재치 않으나 엄연히 존재하는 추상적인 것들의 영향에서 인간은 벗어날 수 없는 존재다.
성격, 의지, 개성, 성품, 기호 따위....
또한 그 배후의 심층심리, 무의식, 이드, 리비도....
나를 결정하는 것은 나이고 또 내가 아니다.
자아란 나이면서 내가 아닌것들로 이루어진 무엇.
사회적으로 한 인간을 결정 짓는것도 그 인간 객체가 아니다.
관계라는 것.
사회살이, 가정살이, 핏줄살이등이 그 인간의 격을 형성하고 궁극적으로는 그 인간의 자아 형성에 있어서 막중한 역할을 수행한다.
간 밤.
한 마리 모기의 비상음.
피부 곳곳의 가려움.
18032 1996. 6. 21 (금)
아침밥을 절제하고 코오롱 크린스도 먹지 아니하고 있는 요즘인데 더부룩한 아랫배의 느낌은 여전하다.
코오롱 크린스를 먹지 않으니 역시 심한 변비다.
늘 시도하는 것은 뱃속이 말끔하게 비워 지도록 시원스런 똥누기를 하는 것인데...
잠자기와 똥누기.
快便과 快宿이라는 지극히 동물적 기본적 현상들이 내게는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떠나기.
이 답답한 나의 공간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기.
어려울 것도 없고 힘들 것도 없는 것인데.
훌쩍 떠나 파묻힐 수 있는 자연이 내 주위에 널려 있건만.
토요일이나 일요일날, 돈 몇 푼 쥐고 역이나 터미널로 가서 탈 것에다가 몸뚱이를 실으면 그만인 것을.
그런데 무슨 고착강박에 걸린 사람마냥 이 쉬운 것들을 못하고 있으니.
이는 게음름 탓만이 아니다.
무엇일까....
俊이.
입대하기전 마지막 시험.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인지 정말 녀석의 생각 속에 들어가 보고 싶다.
18033 1996. 6. 22 (토)
스프레드 시트 프로그램인 쿼트로에 푹 빠진다.
퇴근하여 베란다 내 방에 박혀서 소주를 마신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의 모든 것.
추하고 부끄러운 모든 것들.
과거와 현재의 모든 숨어있는 부끄러움들, 감추고 싶은 것들.
모두 까발려 글을 써 공개할수 있는가.
윤정모처럼.
어느 창녀의 적나라한 수기처럼.
한 톨 숨김없이.
아, 나는 그럴수 없을 것이다.
내게는 아직 부끄러움과 창피스러움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마음이 있다.
벗어던져야 할 옷을 남보다 더 켜켜히 껴입고 자유롭기를 꿈꾸고 있는 몽상가.
너무나 허영 가득한 나의 내면.
내 희망과 바람도 순 허영 덩어리이다.
18034 1996. 6. 23 (일)
옛집, 보생의원은 헐리고 그곳에 오륙층의 무슨 유흥건물이 들어선지도 벌써 수년이 지났다.
그 주위의 모습도 너무나 많이 변하였다.
영도시네마 자리는 흔적도 없이 큰 간선도로가 차지하고, 십자당 약국자리는 무슨 투자신탁의 고층건물이 들어섰다.
그런데 앞의 '진주집'만은 집만 새롭게 개비를 했을뿐 그 자리에서 여전히 문전성시의 성업중이다.
이른바 컨셒도 하나 변함이 없이.
오직 한가지 메뉴, 해장국.
상당한 돈을 여전히 끌어 모으고 있다.
무슨 장사술의 테크닉도 없이 일관되게 유지하는 맛이 돈을 긁는 것이다.
18036 1996. 6. 25 (화)
본격적인 장마.
주룩주룩 하염없이 비가 내린다.
한진중공업은 조합원 투표, 90%이상의 찬성으로 파업결정.
아침 출근길에 차창 밖을 보면 전에 위장취업하여 해고된 김진숙이라는 이른바 여자투사는 어김없이 가슴에 피켓을 안고서 정문을 지키고 섰다.
이제 서른이 넘었을 그녀가 노동운동의 중심을 한사코 지키게 하는 그것은 무었일까.
정의의 이념? 아니면 무슨 현실적인 떡?
어쨌든 또 기업으로서는 어려운 계절이다.
英이 낮에 잠시의 통화.
영업실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모양이다.
직장이라고 들어간 곳이 고작 영업의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곳.
아비는 고등학교 때부너 전문직업인 전문직업인하고 그토록 염불을 외었건만.
18037 1996. 6. 26 (수)
참 비는 끝도없이 내리누나.
이토록 흔한 비가 어떤 때는 귀하기 짝이 없고.
하나님D; 순환시키는 계절의 이치가 이러하다.
한겨울 한줌의 볕살의 소중함, 한 여름 한줄기 바람의 소중함.
법정스님 '무소유' 다시 꺼내 읽는다.
한 아귀에 잡혀지는 조그만 책 속에는 구름처럼 표표히 살아가는 선승의 체취가 묻어 있다.
소유하지 않는 삶의 참된 즐거움을 나는 알듯도 하지만 그것은 그러나 앎으로서 인식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존재로서 인식하지 않으면 도달할수 없는 경지.
존재의 삶을 살았던 위인들.
깐디, 슈바이처, 프란치스코, 부처, 예수님.....
英이의 직장 문제를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俊이는 휴학계 제출, 입영신청, 토익시험, 카투사 응시등 일련의 과정을 제대로 할 생각인지...
18038 1996. 6. 27 (목)
모처럼 비 내리지 않는 하루.
어제 아침에는 그예 코오롱 크린스를 듬뿍 털어 넣는다.
도무지 아랫배의 숙변이 답답하여 견딜수가 없기 때문이다.
퇴근하여 소문난 돼지국밥집.
역시 그 집의 돼지수육은 맛이 있다.
한길로만 파고들다보면 음식의 맛도 어떤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J, 내 티셔츠 하나 사온다.
18039 1996. 6. 28 (금)
장마는 오락가락.
오전 인천 손철수와 통화.
곧 부평으로 약국울 옮긴다고, 요셒약국.
교회다니고, 담배와 술은 여전하고 아들 우현이는 원주의 의대본과 2학년이고 새 마누라는 착하고.....
전혀 느긋한 망둥이의 목소리는 쉰넘은 지금도 여전하다.
백성익과 도깨비등의 소식을 물었으나 성익이는 도통 소식을 모르겠고, 도깨비는 이미 죽었다고 들려준다.
俊이 밤 1시 넘어 제 어미에게 택시비 들고 집앞에서 기다려 달라는 전화.
시험 끝나고 서면서 술을 잔득 마신 모양이다.
英이는 또 월말이라고 매일처럼 늦는다.
직장에 대하여 물을라치면 짜증을 내서 얘기를 나눌수도 없다.
꿈- 내 집은 제법 높은 곳, 창문으로 태풍의 바다를 내다본다, 산더미 파도, 크고 작은 배들이 낙엽처럼 들까분다, 어떤 배는 그대로 파도에 휩싸여 가뭇없이 물속으로 사라지고, 또는 뒤집혀져 떠있고, 선수만 기울어 잠기고, 나는 카메라로 그것들을 촬영하고, 막내삼촌도 등장.
물이 무의식이라면 배들은? 배들은 나의 무엇이었을까?
18040 1996. 6. 29 (토)
俊이 딴에는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입대를 준비하는 심경으로 그 뒷풀이가 바쁜 모양이고 英이는 월말이라 바쁘고.
이래저래 아이들은 매일 늦는다.
유선방송의 재방송 '시네마 천국'
어쩌면 이태리의 정서는 우리와 비슷하지 싶다.
시골, 마을사람, 미망인, 이웃들, 극장과 영화.....
동네의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가난한 그들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오락.
가난이란 상대적인 개념이다.
보편적인 가난은 불행하지 않다.
가난함으로 서로 사랑할줄 아는 사람들...
음악도 너무나 좋았다.
이런 일관된 정서를 만들 수 있어야 진짜배기 영화 예술인 것이다.
18041 1996. 6. 30 (일)
하늘은 낮게 드리워있고 바람은 설렁설렁 분다.
검은 구름짱은 한바탕 비를 퍼부을 것 같은데 그저 빗물만 머금고 있는듯.
통근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길, 동삼동의 바람은 거세어 가로수의 몸뚱이가 부러질것처럼 활같이 휜다.
이런 바람불어 음산한 분위기는 어떤 문학적인 정서를 자아낸다.
토요일 저녁.
J와 서면으로 가 황근부부, 낙영부부 만난다.
상곤은 불참.
보신탕집 안방에 둘러앉아서 개고기 수육과 김삿갓이라는 새로 나온 소주를 마신다.
여자들도 제법 맛있게 먹는 개고기.
그리고 나면 정석코스가 된 노래방.
12시 훨씬 지나 택시타고 돌아온다.
일요일.
퀴즈대학.
제법 알아맞춰 자신감이 생기지만 직접 출연하는 용기와는 다를 것이다.
가수 이소라.
느린 충청도 말씨, 아주 좋은 음색의 가창력있는 노래.
결코 미모가 아닌 그녀의 외모도 친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