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나의 영화 편력기'-其9- (1,4,3,3)

카지모도 2019. 9. 25.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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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화 편력기 -其 9-> 

2003년 11월

 

 

여보게들. 

어느새 가을의 뒷모습도 가뭇 자취를 감추어 버렸군. 

이제 겨울의 문턱을 넘어섰네. 

그리고 곧 세밑일테지.

무릇 계절마다 연출되는 풍광이 저마다 독특하고 살갗에 닿는 감촉이 저마다 새롭고 감성의 현(絃)을 자아내는 느낌이 저마다 다르지.

계절이라는 스크린에 이스트만의 코닥 칼라를 입혀보면 어떨까.

소생과 부활.. 가지에 물이 오르고 꽃봉오리가 벙그는.. 봄은 단연 엘로우(Y) 일세.

계절의 오르가즘... 육체가 무성한... 여름은 빨강(마젠타)일세.

육체는 무상하다는 자각같은게 슬슬 깃드는...가을은 파랑(시안)이고.

소멸하여 이르는 죽음인가,.. 부활을 내포한 생명의 은유인가... 겨울은 검정이지(K)

하하, 시시껄렁한 비유.

 

올 여름 한반도에는 참 줄기차게도 비가 내렸지. 

여름의 종장,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하여 서민의 삶을 빼앗았었고. 

망연자실 넋을 잃고 퍼질러 앉아있는 수재민들. 

수재의연금 한푼 내놓지 못하는 스스로의 꼬라지가 부끄럽기는 하였는지. 

으흠, 안타깝다는 마음은 없는 놈이 그냥 입으로 지껄이는 한낱 레토릭일거구만. 

겨울의 초입.

그리고 세상은 왜 이리도 시끄러운지. 

부안이, 무슨 특검이, 국제사회가, 이라크가, 경제가, 실업이, 교육이, 정치가.

그리고 예제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대한민국. 

보혁(保革)은 쫙- 편을 갈라 서로 예각을 세워 으르렁거리고.

실존으로서 보수를 껴안고 존재로서 진보에 헌신하는, 그런 가치의 실체는 과연 있는 것인지. 

이념적 인간이란 그리 쉽사리 완성되는게 아닐텐데.

하나의 의견(opinion)일 뿐인 것이 거창하게 사상(thought)이라는 탈을 쓰고 이데올로기 행세를 하는 것은 아닌지. 

불확실성의 시대. (허긴 언제라고 확실성이 세상을 지배하였던 적 있었던가마는.)

혼돈속에도 패턴이 있고 숨은 모색이 있을거라는 카오스 이론으로서 설명 가능할, 현상의 깊은 곳에는 새로운 것을 창출하고자하는 그 무엇이 역동적으로 꿈틀대고 있을까.

새로운 패러다임,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의 어떤 양태인지 나 따위 알수 없으나 모더니즘의 세기는 확실히 저물어가고 있을세.

나로서는 좀 불안할 뿐이네.

인류라던가 국가와 민중이라는 의미의 대의적인 불안이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내 핏줄... 내 새끼... 

낫살 먹을수록 노욕(老慾)의 이기(利己)는 이리도 비좁건만, 어이하리.

 

어쨌거나 여보게들. 

겨울의 초입, 계절적 우울인지 내 마음밭은 그저 건조하네, 

자네의 감정밭은 잘 모르겠으되, 우리 옛 영화 하나 떠올리며 잠시 우울에 잠겨보지 않으려나. 

우울을 모색하여 우울을 다스린다는, 이울치울(? 以鬱治鬱)의 폼을 잡고서. 

 

그 옛날 궁핍하고 척박하였던 시대, 몹씨도 어두운 화면이 있었지. 

바로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  

김진규, 최무룡, 문정숙, 김혜정, 노재신등이 출연한, 이범석의 동명소설이 원작인 영화.

오발탄, 나로서는 가히 코리언 네오리얼리즘이라고 칭하고 싶은 영상이었다네.

 

도대체 삼팔선이란 것이 하늘높이까지 벽돌을 쌓아놓은 것이란 말이냐고. 

삼팔선 너머의 내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늙은 어머니의 귀기서린 주문. 

“가자! 가자!” 

만삭으로 죽어가는 아내, 양공주 여동생, 은행강도가 되고 마는 동생.. 

이빨을 뽑고 출혈한 몽롱한 의식으로 택시 속에서 서울거리를 방황하는.. 오발탄같은 존재.

No Way Out! No Way Out!

그나마 목숨으로 부지하였던 가치관은 어디론가 실종되고, 어느 곳에서도 출구는 보이지 않는 가혹한 현실.

내게. 

유현목의 오발탄은 그 전에 보았던 국산영화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었지. 

뿐만 아니라 영상언어는 문학언어와는 너무나 달랐지.

원작 이범석 소설에서 보다 유현목의 영상이 전달하여주는 그 충격은 사뭇 강렬하였어. 

이 영화는 너무 어두운 현실을 묘사하였다고 해서 상영중단 되었다가 한참후 극장에 다시 걸렸을때 내가 본걸게야. 아마. 

“가자! 가자!” 

김진규의 늙은 어머니가 부르짖는 두음절의 귀기서린 목소리의 환청. 귓전에서 떠나지 않는 듯 하이. 

그 세리프는 내게 아직 어둡기 짝이 없는, 일종의 교조적인 상징어로 남아있다네. 

여보게들. 

우리의 실존 어느 부분에다 이 외마디 세리프를 비명의 음색으로서 대입하여 보세나. 

“가자!” 

어디로 가자는 말인가. 

“가자!” 

아, 여보게들. 

도무지 어디로 가자는 말인가. 

그 두 음절의 외마디 소리는 한 시대의 사회적언어에서 벗어나 보편적 우리 존재를 지배하는 실존적언어로 들리지는 않는가.

 

유현목은 그후 다른 영화 한편으로 또 나를 감동시켰지. 

*잉여인간* 

김진규,박암,도금봉,신영균. 그리고 태현실도 나온것으로 기억하네. 

역시 암담한 현실 속의 군상들. 

제 식구 하나 먹이지도 못하는 주제에 거창한 애국심 만을 부르짖는 사내, 치열한 전투의 기억으로 정신질환을 앓는 사내, 그들이 노닥거리는 치과의원의 대기실, 그곳의 의사인 김진규는 가장 중심을 이루는 듯 하지만 그 역시 잉여인간이라는 자의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잉여인간이라니. 

여보게, 한번 이 단어를 곰곰 생각하여 보세나. 

‘잉여’는 지극히 유물론적인 경제학적 어휘. 

잉여인간. 

수요와 공급의 법칙. 

수요에 충당하고도 남아도는 인간. 

상품이라면 교환가치로서의 역할을 담당할세마는 인간잉여는 그냥 인류의 삶에 아무런 쓸모없어 폐기되어도 좋은 대상들이란 말가.

여보게들, 얼마나 참혹한 말인가. 잉여인간이라니. 

오직 경제적 효용가치로서만 재단되는 호모(homo) 아무개들이여.

지금 후줄근한 거리의 아버지들에게 물어보세나. 

우리의, 우리 자식들의 아버지들은 곤혹스러움과 안타까움에 젖은 눈길로 대답할것일세. 

아니노라고.. 결코 잉여인간이 아니노라고.. 

 

유현목의 흑백의 영상과 작금 범람하는 총천연색의 영상. 

아이들 현란한 휴대전화의 칼라액정 화면에는 잉여인간이나 오발탄 아버지의 후줄구레한 흑백 영상은 비춰지지 않을 것이네. 

그만두세나. 

정녕 우울한 얘기일세. 

 

내가 보았던 영화들이나 나열함세. 

 

*피크닉* 윌리엄 인지원작의 시니컬한 로맨스. 

*멋대로 놀아라* 엘비스 프레슬리, 안 마가렛.. 나는 엘비스 프레슬리보다 안 마가렛이 좋았다네. 그녀의 춤과 노래... 

*국제음모* 폴뉴먼, 에드워드 G 로빈슨 

*롱 쉽* 리처드 위드마크, 시드니 포이티어..그리스 신화... 오락영화 

*주인 좀 빌리세요* 잭 레몬, 로미 슈나이더..잭 레몬을 기억하나? 참 유쾌한 희극배우였지만 심각한 역도 여럿 연기하였지. 

*잃은자와 찾은자* 고영남감독, 최무룡, 김지미, 신성일.. 분단민족의 비극...

*침략전선* 스튜어드 그랜저 

*네 멋대로 해라* 장 륙 고다르, 장 폴 벨몽드.. 누벨바그의 태동이 아니었을까..후에 리메이크하여 리차드 기어가 주연한 헐리웃 영화가 기억나네만. 

*갯마을* 김수용 감독, 고은하, 신영균, 이낙훈. 오영수 원작의 서정적인 영화.. 나는 한 장면에서 젖은 저고리 속에 도드라진 고은아의 젖꼭지를 보았다네. 

*태양의 제왕* 율 부린너, 조지 차키리스..잉카 제국의 영광... 조지 차키리스에 홈빡 빠진 한 여인을 나는 알고 있는데 다음에 들려주겠네. 

*우리 생애 최고의 해* 윌리엄 와일러, 프레드릭 마치, 다니 앤드류스, 버지니아 메이요.. 역시 흑백영화.. 2차대전후의 미국 사회를 담담한 톤으로 그린 사회성 짙은 영화.. 윌리엄 와일러는 대단한 감독일세그려. 

*도라 도라 도라* 태평양전쟁의 시발.. 도라는 호랑이(일본어)라는 군사적 암호..

*유정* 김수용 감독, 김진규, 남정임.. 이광수 원작... 배우 남정임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이름을 차용한 예명일세... 

*제삼의 사나이* 캐롤 리드, 오손 웰스.. 유명짜한 마지막 씬... 

*테레마크 요새* 커크 다그라스, 리차드 해리슨. 

*OSS 일촉즉발* 잔 마레 

*불나비* 신영균, 김지미 

*연인아 돌아오라* 록 허드슨, 도리스 데이.. 

*청춘을 변상하라* 김운하, 김지미. 

*카라마조브의 형제* 리차드 브룩스 감독, 율 부린너, 마리아 셀, J 리 콥.. 도스토에브스키의 방대한 원작을 두시간 남짓 영화화한다는 것은 어차피 무리.. 

*국제 첩보국* 마이클 케인.. 잘 만든 스파이 영화.. 마지막 시퀜스의 반전...추리소설적인 전개와 결말. 

*007 위기일발* 테렌스 영감독, 션 코넬리,로버트 쇼...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첫번째의 007시리즈.. 영상적 감각이 정말 새로웠다네. 

*황야의 무법자* 클린트 이스트우드, 엔니오 모리코네.. 서부 영화의 서정성을 일격에 부숴버렸지.. 과도한 클로즈엎..시가 쪼가리인지 질근 질근 씹으며 무표정한 표정으로 권총을 뽑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 영화를 시발로 마카로니 웨스턴이 풍미하기 시작하였지. 

*그레이트 레이스* 잭 레몬, 토니 커티스, 나탈리 웃, 피터 포크.. 돈깨나 들인 80일간의 세계일주 비슷한 포맷의 영화.

 

 

오늘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