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화 편력기 -其 14->
2011년 5월 13일
얼마전 치루어진 재보궐 선거.
30몇프로의 투표율, 그래도 재보선치고는 그나마 높은 투표율이라고 하는데...
나는 左도 진보 쪽도 아니네만 이명박 대통령은 기질적으로 싫어하는 편이네.
책부족 어떤 분께서는 날더러 左쪽이라 하더만 스스로 생각건대 나는 좌는 아닐세.
좌의 일반적 속성을 따져볼 때, 그래도 나는 右쪽에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
혹은 중도좌(中道左) 쯤이 어떨까싶기도 하네만 정치적 기질 따위, 따져 무얼 하겠나.
각설하고 그 옛날 한편의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헤밍웨이' 원작, '샘 우드' 감독. '게리 쿠퍼' '잉글릿 버그만'출연.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내가 이 영화를 본 것은 60년대말 즈음이었을거야.
전의 부산시청(지금은 롯데 백화점) 건너편에 있었던 시민관의 어둠 속에 잠겨 연거푸 두 번을 보았네.
공화파 게릴라들과 파시스트(프랑코) 간에 벌어진 스페인 내전.
전투씬과 폭파씬등 전쟁영화다운 스펙타클과 스릴이 없지 않았지만, 내 기억속 감성 한켠에는 애절한 로맨스 영화로써도 남아 있다네.
미국인 로베르토(로버트)와 스페인 처녀 마리아.
로베르토(게리 쿠퍼)는 그 전쟁에 의용(義勇) 참전한 중년의 미국인이었고 마리아(잉글릿 버그만)는 파시스트에게 부모를 잃고 능욕 당하고 머리를 깎인 처참한 상처를 갖고 있는 스물 남짓의 처녀였지.
그녀, 잉글릿 버그먼.
클로즈업된 스크린 속 잉글릿 버그먼.
사랑의 기쁨으로 반짝이던 에메랄드빛 눈동자와 반쯤 벌어진 도톰한 입술.
그 모습은 여적도 내 가슴에 신비한 아름다움으로 고여있다네.
젊은 날 내 어여쁨의 아이콘, 잉글릿 버그먼.
게리 쿠퍼와의 첫 입맞춤후 그녀의 표정을 한번 떠올려 보게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키스. 그 황홀함, 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네.
사랑의 황홀함과 행복함을 그 영화의 잉글릿 버그먼처럼 표정으로 연기한 배우는 달리 없을 듯 싶으이.
입맞춤 후 연인에게 속삭였던 그녀의 대사를 기억하나?
“키스할 때 코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늘 궁금하였어요." (맞는지? 내 기억.)”
당시 순진 연(然)하는 숙녀제위께서 써 먹기 그럴듯한 대사였겠지만, 남자가 미묘한 감각으로 느껴지는 숙녀분의 능란한 리액션으로 전과(?)가 뽀록 나기도 하였을랑가. 하하
여성에게 고전적 음전함이 강요되던 그 시절, 입맞춤도 정조(貞操)의 범주에 속할법도 하였을 것이네.
옛 영화에 등장하는 로맨스의 방법론.
이성(異性)에 끌리는 신비함은 설명불가한 마음.
(요즘 접하면 닭살돋을만한) 은유가 담겨있는 촌스런 대사와 몸짓들.
그리하여 서서히 벙글어져 서서히 익어가는 사랑.
그런데 요즘 영화야 어디 그런가.
감각적이고 스피디한 영화속 연인들.
이성을 접할때 분비되는 요즘의 옥시톡신은 아주 노골적인 화학작용일세.
일단 외양이 그럴듯해야 하고, 쩐(錢)이 좀 두둑해야 할 것이고. 위트와 유모어와 기발한 테크닉이 있으면 금상첨화.
사랑은 직유적. 호리(毫釐)도 구질구질하지 않다네.
섹스는 일종의 에피타이저, 그 연후에야 사랑 이야기가 전개되는게 보통일세그려.
요즘 어떤 스크린에서는 남녀의 성기가 노출되어(옛날 영화에서는 감히 꿈도 꾸지못할) 아이들과 함께 멋모르고 보았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일걸세.
어떻게 하면 적나라하고 멋진 섹스 시퀜스를 만들까 하는 요즘 영화감독들의 안달이 내게는 느껴진다네.
그러하니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옛 영화들이 얼마나 느려터진 답답함과 유치찬란한 사랑의 메쏘드일런지.
영화를 보면서 입에서는 하품이 끊이지 않을테고 등에서는 오소소 간지런 닭살이 돋을 것이네.
그러나 여보게들.
남녀간 사랑이라는 것, 본질적으로 성적 흐르몬에서 비롯되는거라지만 섹스로만 치환하기에는 호모사피엔스의 인문(人文)이란 놈이 좀 서글프지 아니한가.
좀은, 품위와 은유가 깃들어야 발정하는 동물의 짝짓기 혐의에서 벗어날 듯 싶지 않은가.
흐음, 마리아와 로베르트의 사랑, 옛을 회억하는 늙은이에게 그것은 한떨기 어여쁜 꽃이로세.
서서히 젖어드는 사모의 마음... 서로의 눈동자를 한참동안이나 응시하는 그윽함,,, 그제서야 나누는 첫키스...그키스는 그야말로 키스 오브 화이어!
오, 세상의 모든 첫키스에 축복있으라.
그들의 사랑은 침착하였네,.. 그리고 확고하였다네....언제나 감정의 중심을 잃지 않았다네... 언제나 서로에게 황홀하였고,.. 언제나 서로에게 그윽한 헌신(獻身)의 몸짓이었다네.
라스트 신.
부상 당하여 말을 탈수 없는 로베르토.
사랑하는 로베르토를 떠나지 않으려 울부짖으며 동료 게릴라들에 의해 말에 태워지는 마리아.
그 마리아에게 하는 로베르토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네.
“I'll go with you wherever you go.”
마상에서 울부짖으며 동료들에게 끌려 산 모통이로 사라지는 마리아.
로베르토는 가물거리는 의식을 추슬러 눈을 부릅뜨고 기관총을 움켜 쥐지.
그리고 화면에는 죽음을 앞둔 게리 쿠퍼의 독백이 오버랩 된다네.
“미국을 생각하라. 아니다. 마드리드를 생각하라. 아니다, 마리아를 생각하라. 그렇다 마리아를 위하여.”(이 대사의 기억은 불확실)
공화주의의 이념, 정의를 위하여, 역사의 비젼을 꿈꾸며 참전한 국제여단의 일원인 로버트 조던(로베르토).
그의 최후를 맞는 망막에는 이념이라는 추상의 것이 떠오를리는 없었을 것이네.
감각이 기억하고 마음이 사무치는, 오로지 마리아의 애틋한 입술과 눈망울이...
인류의 연대란 이와 같이 한쌍의 연인 사이, 사랑 사랑마다의 개별성으로부터 싹이 트는게 아닐까.
내 노트에 기록된 영화의 카피.
"묻지 말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고. 울리는 저 종소리는 바로 당신을 위하여 울린다."
오로지 마리아를 위하여, 추격하는 파시스트 군대를 향하여 기관총을 난사하는 로베르토.
스페인 내전을 다룬 많은 문학작품(책부족이 읽었던 도리스 레싱의 '마사 퀘스트'에도 국제여단으로 참전하는 등장인물이 있었고, 조지 오웰의 '카타로니아 찬가'등등)과 미술작품(게르니카)들이 있지.
독일(히틀러)과 이탈리아(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의 지원을 받아 공화파와 전쟁을 벌이는 파시스트 프랑코. (알다시피 결국 프랑코가 승리하여 오랜 기간 스페인을 통치하였지)
파시스트와 싸우기 위하여 의용군으로 참전한 각국 수만명의 좌파 지식인들, 이른바 국제여단.
로버트 조던 역시 평범한 미국의 대학강사였다네. (이 영화가 스페인 내전을 천착하는 그런 영화는 아니었지만)
순정한 이념을 위하여 남의 나라에서 목숨을 버리는 그들.
정치적 로맨티스트들.
아아, 여보게들.
우리 시대 로맨티스트가 있는가.
우리나라 이른바 좌파 이념가들, 그들에게 저 로버트 조단의 순정한 정치적 로맨티시즘 한줌 기대하여도 좋을까.
천만 어려울 것 같네.
마리아와 로베르토의 저 느려터진 사랑의 방법론이 이 시대 설 자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일세.
생각건대 작금은 인문이나 사상의 그 생각들의 속살이 행태학적으로 해석되어지는 세상일세.
그리하여 과학적 경제적 요인에 의한 동기유발이 있어야만 행위하는, 계산적인 의식이 지배하는 세상.
어쩌다 로맨티스트의 아류가 나타나더라도 그는 다만 어리숙한 몽상가의 모습일걸세.
내 보건대 요즘 좌파에게 있는 것은 죄 영악함으로 무장된 냉혈한 투사의 검(劍)이거나.
또는 순정함의 너울을 쓴 더욱 끔찍한, 추악한 '위선'(僞善)이거나.
예전 누군가 '신재보수(身在保守) 언재진보(言在進步)'라는 아주 그럴듯한 조어를 만들었네.
삶의 형태의 모든 것은 오로지 보수적 방법에 의존하면서 입으로만 진보를 씨부리는 자들.
자본을 추구하고, 부르주아 문화를 만끽하고, 부와 지식과 지위의 계급적 우월감으로 자못 흐뭇해 하면서도 입으로는 '진보의 가치'를 뇌까리는 인사들.
강남 아파트를 차지하고 새끼들 학군이나 아파트 차익(差益)의 불로소득에 목을 매면서도 재개발 용산 철거민의 부조리에 대하여 게거품을 무는 치들.
그들에게 무슨 로맨티시즘 한조각 있겠는가.
보수꾼이라고 다르랴, 이 나라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는 보수꾼 인사들은 또 어떤가.
입만 열었다 하면 정의 공평 민주를 뇌까리면서, 하나같이 투기 학군 탈세 병역의 혐의에서 자유로운 놈 하나 없으니 말일세.
위선적 두얼굴.
보수적 가치에 대한 순정한 로맨티시즘?
어림없을세.
위선자들.
이 시대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를, 앞장 서서 이끌고 있는 도깨비들.
가면을 뒤집어 쓰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도깨비들이로세.
그들 뿐이런가.
우리 스스로의 꼬라지는.
왼쪽이나 오른 쪽이나 우리의 욕망은 너무나 벌거 벗었네.
로맨티시즘이 깃들 입성 한조각 걸치고 있지 아니하네.
벌거벗은 욕망의 벌거벗은 구호,
'부자 되세요.'
한점 쭈뼛거림없이 서로에게 던지는 덕담. 돈 돈 부자 부자...
그러할세.
오로지 노골적인 맘모니즘이 이 시대의 덕목일세
나남없이 부자되고 싶지 않은 사람 어디 있으랴마는.
속 마음이야 굴뚝이더라도 좀 은근짜하게들 속삭이는 덕담이었으면 좋겠네.
도무지 부자되기에 싹이 노란, 내 자의식일테지만 말일세.
그리고 나는 집단주의라는걸 상당히 못마땅해 하는 사람일세.
하나같이 뻘건 옷을 입고 ‘대한민국!’하고 고함치는 붉은 악마들.
그 '뻘건 옷'과 '대한민국'이라는 한결같음의 집단성,
내 보기에 거기에도 로맨티시즘은 있지 아니하네.
거기서 '감각적 사랑'과 '벌거벗은 욕망'과 '신재보수 언재진보'의 일단(一端)을 읽는다면 내가 참 ‘이상한 놈’으로 비추일테지. (내 이름이 이상헌이다 보니 한때 별명이 ‘이상헌 놈’이어서 그리 비추어져도 아무랑치도 않다네. ㅎ)
내 노트에 있는 옛 영화들이나 계속 지껄임세.
*내가 마지막 본 파리* '엘리자베스 테일러' '반 죤스' '도나 리드'주연. 피츠제럴드 소설이 원작, 얼마전 죽은 젊은 리즈(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 영화에서도 그리 이뻤지.
*짚시* '브리짓 바르도' 주연. BB(브리짓 바로드), MM(마릴린 몬로), CC(클라우디아 카르디나레)는 육체파 3총사였지. BB는 개고기 먹는 우리나라를 되우 못마땅해 하면서 한동안 씹어댔지.
*백열전선* 남미 어느나라의 전쟁영화였다는 기억.. 갈증으로 고통받는 병사들... 급수차가 오지 않은 전선.. 전우의 오줌을 구걸하는 병사들.. 사선을 뚫고 도착한 급수차..그러나 물은 이미 엎질러 진 후.. 처열한 흑백영화.
*녹색의 장원* '멜 화라'감독, '안소니 퍼킨스' '오드리 헵번'주연. 아마존 유역의 정글, 오도리 헵번의 매력... 꿈결 같은 영화.. 멜 화라는 한때 오도리 헵번의 남편이었지. .
*제로 지대* '스잔 스트라스버그'가 출연한 공포영화
*틴 에이저 스토리* 그리고 *영 원스* 기억하는가, 한때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영국가수 '클리프 리차드'. 이대 강당에서 내한 공연하였을 때, 여대생들은 속옷을 벗어 무대에 던졌다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현상이었지. 우리 여인네들의 그 격정과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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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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