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화 편력기 -其 12->
2010년 8월 30일
오너라, 가을.
입추랑 처서랑 버얼써 지났는데 봄처녀마냥 너 심하게 수줍도다.
한여름 그만큼 들끓었으면 이제 서늘한 기미 한줌 공중에다 띄어주면 좀 어떠냐 그래.
8월 막판까지 매서운 여름의 발톱, 올 더위는 참으로 절륜할세.
올 여름 39도까지 올라갔다는 동경의 아들놈, 몇백명의 일본 늙은이들 폭염때문에 속절없이 세상을 버렸다고 하더군. (지구라는 행성이 날로 뜨뜻해 지고 있는 모양일세만, 그런데 이상한 것이 미국공연 마치고 돌아온 냉이별꽃님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한여름의 굉장한 추위라니... 거참, 기상학의 요상함일세.)
더위가 끔찍한 늙은이, 게다가 느닷없이 엄습한 요통(腰痛)이라니.
또 투덜대네만 나는 무더위가 싫으이.
올 여름, 서병수교수님과 꿈지기님 내려와 이시영님 김영숙님등과 함께 어울려 수영서 나눈 유쾌 유익한 술자리 (그 며칠후 내려온 헤레나님과의 해후도), 그리고 어제 뉴욕으로부터 날아 온 서민정님의 정성스러운 손편지는 우리 책부족의 따뜻한 우의(友誼)가 아닐수 없네.
그런 청랑(淸朗)한 것들, 무더위 짜증속의 한줄기 시원함이었지만, 오늘도 그저 덥네그려.
안방 에어컨 그늘 벗어난 내 방 책상 앞, 선풍기바람은 뜨뜻미지근하고 복대 찬 이 눔의 허리는 이리저리 들쑤시고.
아, 거듭 칭얼대는 바 여름은 내게 힘든 계절일세, 오히려 내게는 겨울이 화려할세. (내게 남은 겨울들이 마냥 바라이어티한 총천연색일까마는.)
영화 이바구.
그리하여 오늘은 칼라와 흑백에 대한 얘기를 지껄임세.
생각나는가 자네? 그 옛날 영화포스터 말일세.
역부채꼴의 <시네마스코프>라는 도안문자 위에 <총천연색>이라는 글자가 조합된 심볼.
그리고 느낌표를 단 현란한 단어들.
액션. 서스펜스. 스펙타클. 스릴. 로망. 기대하시라 개봉박두....따위의, 가슴을 뛰게하는 어휘들 말일세. (옛날에는 신문 광고란의 반 이상은 영화광고가 차지하고 있었지)
70mm는 말할것 없거니와 시네마스코프만 하여도 35mm 스탠다드 화면에 익은 눈에 그 스크린은 드넓은 운동장이었지.
게다가 총천연색. 코닥칼라 이스트만칼라.... (밀짚모자 테두리로 전락한 칼라 네거티브 필름. 어쩌다 운좋게 얻어 햇빛에 투과된 그 색감은 어린놈에게는 그야말로 황홀한 환각이었지)
알다시피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하여도 우리나라는 흑백의 시대였다네.
영화는 물론 티브이, 사진, 신문, 출판물들 죄다.
처음으로 칼라로 인화된 사진을 받아들었을 때, 그리고 1980대초 칼라 TV를 접하였을 적의 경이로움.
칼라필름은 현상 인화라는 일정 기간의 공정을 거쳐야하였고, 비용에 있어서도 저렴하지 않은 경제재(經濟材)였지만, 작금에 이르러서는 어떤가.
그런 아날로그 칼라는 또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네그랴.
디지털 칼라는 공기처럼 물처럼 자유재(自由材) 되어 버린 세상일세.
그 뿐 아니라 즉석에서 구현할수 있는 칼라 영상들.
지천으로 널린 칼라의 시대... 실로 격세지감, 놀라운 세상일세.
때로 나는 요즘 젊은이들 의식구조 자체도 칼라풀한 것이 아닌가 느껴질 때도 있다네.
이를테면 흑백은 없고 색갈만 있는. 깊이는 없고 바라이어티만 있는.
수년전 비디오로 보았던 영화 ‘플레전트빌’이 생각나네. (‘스파이더맨’의 ‘토미 맥과이어’가 출연한 좀 오래된 영화일세.)
흑백의 세계와 칼라의 세계를 대비시켜 흑백화면과 칼라화면이 교차로 나타나는 영화일세. (무슨 알레고리가 아니라 화면의 색갈로 확연하게 구분되지)
고지식하고 획일적이고 폐쇠적인 마을 플레전트빌과 그곳 사람들. (흑백)
그곳에 유입된 원초적 감정(사랑, 질투, 성욕, 분노등)에 솔직하고 개방적이고 분방한 한쌍의 젊은이. (칼라)
무채색의 플렌전트 빌에도 차츰 색채가 물들기 시작하지.
말하자면 안정만을 꾀하는 고리타분한 보수꾼 늙은이는 흑백, 변화를 꿈꾸며 발랄하고 자유로운 생각의 진보적 젊은이는 칼라.
총천연색은 청춘의 색깔, 낫살의 더께가 끼어있는 사물(事物)의 색감은 흑백, 하아, 대강 그러할세.
낫살의 칙칙함에 칼라를 입혀야 하겠지만 낫살의 무거움이 그걸 용납하지 않는 패러독스.
가난한 봉급쟁이의 전셋집 방 하나를 암실로 만들어 젊은 시절 한때 나는 사진을 하였었네.
그곳 어둠 속에 잠겨 시큼한 하이포 냄새에 젖는 순간은 행복하였었지.
물론 흑백사진이었는데, 회상컨대 양광(陽光)의 촬영작업보다 어둠속의 암실작업이 내게는 몇배나 재미로웠었지. (디지털카메라로서는 그와 같은 아날로그적 행복감을 맛보기 힘들거구만.)
흑백사진의 생명은 계조(階調), 농도가 가장 짙은 부분과 가장 옅은 부분까지의 그 미묘한 밝기의 차이를 정밀하게 묘사하는 것이라네.
필름과 인화지등의 소재(素材), 카메라와 확대기등 장비, 현상액 인화액등 화학적 조합등에 의하여 품질이 결정되는 것이지.(물론 비싼 재료와 장비가 장땡이고 예술적 감각 또한 중요하지만)
가장 밝은 부분인 하이라이트부터 가장 어두운 부분인 딮다크까지 그 그레이드(계조)는 150단계가 넘는다지.
그리하여 한마디로 흑백은 깊이의 모습이라네.
하이라이트라는 삶의 절정으로부터 완전흑(完全黑)인 죽음에 이르는 도정이랄까.
평면적 다양성보다 깊이의 천착(穿鑿).
다음은 과장된 귀납(歸衲)으로 정의(定義)하는 내 나름의 지껄임일세. (잘못된 유비추론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말일세)
흑백은 깊이, 칼라는 평면.
흑백은 개별성, 칼라는 대중성.
흑백은 보수, 칼라는 진보.
죽음을 설명하는 흑백, 삶을 설명하는 칼라.
하양은 반사하고 검정은 흡수할 뿐, 그래서 흑백은 결정론자의 색일세.
칼라는 기쁨을 노래하는 디오니서스, 흑백은 신음을 내뱉는 프로메테우스일세.
리비도가 춤추는 칼라이고 타나토스가 침잠하는 흑백일세.
그리하여 인생을 설명하는건 흑백일세.
흑백이 근원적이라면 칼라는 덧칠일세.
뮤지컬을 흑백으로 상정하여 보게, 혹은 샤갈의 그림을.
흐음, 그건 얼마나 무미 건조한 느낌인가.
영화도 그러하네.
칼라가 아니면 도무지 말이 안되는 영상이 있는가 하면 흑백으로도 충분한 영상도 있다네.
나는 프란시스 코폴라의 ‘대부’를 흑백의 감수성으로 이해하더라도 (영상이 아니라 내면적인 드라마의 현실을) 무방하다고 생각하네.
카라바치오나 렘브란트의 그림 역시.
밝음과 어둠의 대비, 흑백의 그 컨트라스트는 얼마나 깊고 근원적이며 운명적인가 말일세.
미켈란제로 안토니오니, 잉그마르 베르히만, 이탈리언 네오 리얼리즘의 영상들은 죄 흑백이었지 않은가.
되지못한 썰은 각설하고 영화 얘기.
흑백영화 *죽어도 좋아* (원제는 ‘페드라’)
'줄스 닷신' 감독, 계모역은 '멜리나 메르쿠리'(줄스 닷신의 마누라, 그리스의 문화상을 역임하기도 하였지), 아들역은 '안소니 퍼킨스', 아버지역의 '랄프 바로네'.
아들과 계모의 금기(禁忌)의 사랑, 금압(禁壓)함으로 더욱 거세게 타오르는 정념(情念)... 그리스 신화 (라신느의 희곡)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비극...
그 흑백영상은 내게 지울수 없는 화인(火印)을 남겨 주었다네.
내 영화노트에 기록된 라스트 신.
자동차를 몰아 낭떠러지로 돌진하여 추락하는 안소니 퍼킨스.
자동차 라디오에서 울리는 바하의 토카타와 푸가.. 안소니 퍼킨스의 처절한 독백의 외침.
"가자 그래 가자구! 그래 그래. 음악이 듣고 싶다구? 좋아 그렇겠지. 어때 우리한테 바하만큼 멋진 음악도 없을거야. 오 세바스찬 바하여. 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 페드라! 페드라!".
바하를 따라 부르는 안소니 퍼킨스..그 영혼의 외침.. 그 처절함.. 질투와 분노와 사랑과..
그 사랑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죽어도 좋아’에 오버랩 되는 영상 윌리엄 와일러의 ‘애정’(폭풍의 언덕)
눈보라 속에서 외치는 히스클리프,
"죽음으로라도 돌아오라! 캐시!"
이성도 로고스적 논리도 접근을 거부하는 파토스의 회오리.
우리 인간성의 불가해함.
우리 안에 숨어있는 근원적으로 비극적인 것.
슬픈 것.
어쩌면 아름다운 것.
오늘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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