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잡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 (The World's Fastest Indian)>
2011년 8월 22일
제작년도 : 2005년
감독 : 로저 도널드슨
출연 : 안소니 홉킨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
아비에게, 이 영화 꼭 봅시라고 아들녀석이 보내준 영화, 어제 감상하였다.
‘인디언’은 1920 년산 고물 모터사이클의 애명(愛名).
'인디언'의 주인은 뉴질랜드 시골에 사는 버트 몬로(안소니 홉킨스粉)라는 홀아비영감님.
일흔 넘은 고령이고, 협심증으로 담배와 술을 혐오한다.
그에게는 꿈이 하나 있으니, 그건 미국 유타주의 보너빌 경주(세계에서 유일하게 1000 km의 속력을 낼수 있는 광활한 해변의 자동차 경기장)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보너빌 경주에서의 우승이 목적이 아니라 200마일 이상으로 달려 공식기록으로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사람들이 혀를 차는 구석기(?)시대의 오토바이로 말이다.
고물 오토바이의 이것저것 부품을 깎고 이리저리 개조하고 이모저모 닦고 조이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은행 대출로 돈을 마련하여 '인디언'을 끌고 장도에 오르는 버트 몬로 영감님.
궁핍한 그 여행이 편하고 순탄한 여정일리 만무하다.
배삯 대신 선박의 주방일을 하면서 태평양을 건너 LA에 도착.
우여곡절 끝에 보너빌에 도착한다
낯선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자동차 꽁무니에 바퀴 두 개짜리 트레일러를 달아 거기 인디언을 싣고서.
자동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어렵사리 보너빌 경기에 출전한 우리 버트 몬로 영감님.
여러 안전장치도 미흡한 고물 모터사이클 '인디언'을 몰아 드넓은 해변의 경주 코스를 전속력으로 달린다.
최고속도로 질주하여, 기록을 깨고 드디어 꿈을 이룬다.
그 순간 나는, 극적 감동을 일으킬 무슨 영화적 장치가 있겠거니 은근히 기대하였으나 그런 건 없었다.
뉴질랜드 고향 마을로 돌아와 동네 사람들로부터 소박한 환영을 받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
소박하고 조용한, 떠들썩하지 않은 영화였다.
버트 몬로는 실존인물.
실제로 1967년 버트 몬로가 세운 보너빌의 기록은 아직까지 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내 마음에 잔잔히 흐르는 감동.
그 감동은 영화의 내러티브가 아니라 버트 몬로라는 인물에 그냥 스며 있는 그런 것이었다.
고향을 떠나오기 전 옆집의 어린 친구 토머스에게 버트 몬로영감님은 말한다.
“얘야, 가야 할 때 가지 않으면 말이다, 가려 할 때는 갈수가 없단다. 사람은 꿈을 잃는 순간 그때 죽는 것이란다.”
꿈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끈질긴 도전정신.
그렇지만 그 뜨거움과 끈질김은 영화적으로 요란스럽게 묘사되지 않았다.
평범한 한 노인네의 범상하기 짝이 없는 일상적 행동과 몸짓에 그대로 녹아 있었던 것이다.
'안소니 홉킨스'는 명배우.
천연덕스럽게 '버트 몬로'라는 인물을 연기하였다.
노인의 연륜에서 우러난 지혜.
고매한 인격에서 우러난 지극한 성실함.
누구에게나 정중하고 따뜻한 마음 씀.
낯선 사람과 금세 친구가 되는 놀라운 친화력.
그를 접하는 사람은 그냥 그가 정겹고 그와 친교를 나누는 것이 행복하다.
그에게 무슨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싶은 마음이 저절로 우러난다.
이 영화를 아비에게 권한 아들녀석의 저의(底意)는 무엇일까.
아비의 취향을 알고있는 아들놈, 하다못해 자전거에라도 올라타 스피드를 즐기거나 그걸로 건강을 챙기라는 건 아닐테고.
버트 몬로 영감님처럼 아무리 늙어도 꿈을 잃지 말라는 그런 뜻일까.
흐음, 꿈이라.
늙은 꿈 뒤져보아야 이 낫살에 고종명(考終命)이나 있을까 무에 있으리.
그런 아비를 익히 알고있는 터에 확고한 목표를 세워 그걸 이루려 열정적으로 살란 뜻도 아닐듯 한데...
아들놈, 대충 이런 마음으루다 이 영화를 권한 것일 듯 싶기도...
“울 아버지보다 훨씬 늙은 버트 몬로 영감님. 꿈과 열정을 잃지 않고 농밀하게도 사는 저 영감님. 남에게 행복을 끼치고 스스로 행복한 저 영감님. 행복하게 나이 먹어 행복하게 죽을 저 영감님. 울 아버지 버트 몬로 영감님을 좀 부러워 하였으면, 그리고 좀이라도 닮으려고 노력 하였으면 얼마나 좋으랴. 좋아하는 술 좀 줄이시고,”
그려, 버트 몬로 영감님에게서 닮을 것은 따로 있구나.
원망하는 삶. 회한(悔恨)하는 삶. 수동적인 삶. 도망가는 삶. 움츠러드는 삶.
그런 구질구질한 삶, 스스로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이로다.
뚜벅뚜벅.
남은 여생, 남에게 이로움을 끼치지는 못할망정 손가락질 받지 않고 스스로 건강하게 스스로 행복하게 살다 죽으라는 것이로다.
얘야, 아비 십 년전에 담배는 끊었지 않니.
늙어 일락(逸樂), 아비의 술은 좀 봐 주려무나.
버트 몬로처럼 꿈은 뜨겁지 않을지라도.
버트 몬로처럼 뚜벅뚜벅 살다가도록.
아비, 마음 쓰마.
++++
<단호한 것들>
-정병근-
나무는 서 있는 한 모습으로
나의 눈을 푸르게 길들이고
물은 흐르는 한 천성으로
내 귀를 바다에까지 열어 놓는다
발에 밟히면서 잘 움직거리지 않는 돌들
간혹, 천길 낭떠러지로 내 걸음을 막는다
부디 거스르지 마라, 하찮은 맹세에도
입술 베이는 풀의 결기는 있다
보지 않아도 아무 산 그 어디엔
원추리 꽃 활짝 피어서
지금쯤 한 비바람 맞으며
단호하게 지고 있을 걸
서 있는 것들, 흔들리는 것들, 잘 움직이지 않는 것들,
환하게 피고 지는 것들
추호의 망설임도 한점 미련도 없이
제 갈길 가는 것들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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