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에 대하여] -4-
11.
몇 번이나 기도한 자살.
죽음은 어린 시절부터 오사무의 곁을 서성이며 유혹하고 있었다.
1936년, 27살 때 오사무는 ‘만년(晩年)’이라는 책이름 (15편의 단편소설을 모은 소설집인데 '만년'이라는 제목의 소설은 없다)으로 첫 창작집을 세상에 내어 놓았다.
새파란 젊은이의 처녀출판물의 제목이 ‘만년’이라니.
오사무는 자살을 전제로 유서를 남기듯 첫 소설을 썼다고 한다.
어느 폐허(廢墟)의 쓸쓸하고 고즈넉한 풍경화.
오사무가 꿈꾸었던 멸망의 그림이었을까.
<옛날 축성의 대가는 성을 설계하면서, 그 성이 폐허가 되었을 때의 모습을 제일 고려하여 도면을 그렸다. 폐허가 되고나서 모습이 훨씬 아름답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수필 중에서->
그러나 오사무의 죽음에 미학(美學) 한줌 있지 아니하였다.
자살의 진정성, 절망으로 죽었던 것이다.
그의 자살.
‘미시마 유키오’처럼 유치한 작위적 미학 따위는 없었다.
앞에서 나는 ‘인간실격’의 ‘오바 요조’는 ‘자의식(自意識)의 확대재생산’한 캐릭터지만 '요조'는 오사무 자신에 다름 아니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오사무는 ‘요조’처럼 전혀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자아성취(自我成就)를 꿈꾸거나 희비(喜悲)하지 않은 사람이었을까.
다른 사람과의 통속적인 교유(交遊)를 조금도 즐기지 않았을까.
장삼이사(張三李四)와는 다른 지극히 비상식적인 생활인이었을까.
아니다, 오사무도 한 시대를 생활인으로 살다 간 사람이다.
말하였지 않는가.
그의 반듯하고 밝고 유머러스하고 세련된 면모를.
제1회 ‘아쿠타가와’상에 2등으로 낙선하였을 때 ‘카와바타 야스나리’의 심사평에 항의하는 글을 발표하였고, 제3회 때는 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최종심에서 제외되었을 때 그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수 없이 컸던 것이다.
‘인간실격’류의 어브노멀한 색채의 작품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명징한 상식과 날카로운 비평정신으로 써서 예제 잡지에 기고한 글도 적지 않다.
서른(1932년)때 미치코와 결혼 후에는, 심지어 전쟁의 와중에서도 오사무의 내면은 비교적 평온하였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의 ‘절망과 허무’는 때로 욕동(慾動)하기도 하였겠지만, 대체로 무의식의 영역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후(戰後)의 세상이 그것을 덧나게 하였다.
전후(戰後) 일본에는. 어제의 서슬 퍼렇게 올곧았던 도덕과 역사와 학문과 교육과 철학은 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무참한 인간성만이 난무하는 세상.
그의 자의식(自意識)을 발호(跋扈)케 한 것은 ‘인간성‘을 향한 한 줌 믿음마저 무참하게 무너져 버린 까닭이었다.
전쟁의 전후(前後)를 관통하여 일관(一貫) 명확(明確)하게 으의 눈에 드러난 것은 오로지 ‘이기주의’의 추악함 뿐이었다.
‘사양’을 쓸 무렵에는 그나마 어떤 구원의 여지가 있었을런지.
‘인간실격’에 이르러서는 그의 자아(自我)가 더는 숨을 쉴수가 없었다.
분석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자의식,
그 곳에 침잠하여 가장 낮고 어두운 지점으로 스스로를 하강(下降)시켰다.
그곳에 오사무의 주관적 진실이 있었다.
바로 그 곳이 내가 ‘겨워하는’오사무의 영토이다.
자학적이고 자폐적인 그 영혼의 현장(現場).
지금 나는 그 곳을 들여다 보면서 주절거리고 있음을.
인간실격.
나는 새가 아니다, 짐승도 아니다. 그리고 인간도 아니다...
<이제 여기서 나가도 나는 역시 미치광이, 아니 폐인이라는 낙인이 이마에 찍히는 것이겠지요. 인간, 실격.이제 나는 완전히 인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인간실격->
<죄의식. 나는 인간 세상에 있어서 평생을 그 죄의식으로 괴로움을 받으면서도, 그것이 마치 나의 조강지처와도 같은 좋은 반려자로서 그와 단 둘이서 쓸쓸하게 어울려 노닐고 있는 듯한 모습이 내가 살아가는 자세의 한 면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실격->
<하나님에게조차도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수 없었고, 하나님의 벌만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옥은 믿어지지만 천국의 존재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던 거지요. -인간실격->
<내가 조숙한 체해 보였더니 사람들은 나를 조숙하다고 수군댔다, 내가 게으름뱅이인 체해 보였더니 사람들은 나를 게으름뱅이라고 수군댔다, 내가 소설을 못 쓰는 체해 보였더니 사람들은 나를 못쓰는 사람이라고 수군댔다, 내가 거짓말쟁이인 체해 보였더니 남들은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수군댔다, 내가 부자인 체했더니 남들은 나를 부자라고 수군댔다. 내가 냉담을 가장했더니 남들은 나를 냉담한 놈이라고 수군댔다, 그러나 내가 정말 괴롭고 나도 모르게 신음했더니 사람들은 나를 괴로운 체 하는 것이라고 수군댔다, 아무래도 어긋나기만 한다, 결국은 자살할 수밖에 도리가 없지 않은가, 이처럼 괴로워해도 겨우 자살로 끝날 뿐이라고 생각하니 그만 소리를 지르며 울어 버렸다. -사양->
오사무의 영혼, 지극히 사적(私的)으로 고유한 그 현장.
성령으로 무장하여 불타는 신앙의 불꽃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모른다.
신념으로 인생을 계획하고 세상을 설계하려는 사람들은 알수가 없다.
집단주의와 역사주의의 힘을 신뢰하는 이상주의자들은 알지 못한다.
치지도외(置之度外), 자신의 그러한 내면을 들여다 보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12.
오사무의 ‘생활의 가면(假面)’뒤에서는 언제나 권태의 그림자가 하품을 하고 있었다.
하품이란 생리적인 현상, 사람들은 진저리를 치면서 몸을 쭈욱 뻗고 입을 한껏 벌리면서 하품을 한다.
본능적으로 무엇을 그토록이나 갈구하는 것인지.
희구(希求)하는바 그 근원은 잠일까 죽음일까.
프로이트는 '살고파'하는 욕망과 '죽고파'하는 욕망, 곧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무의식 영역에 공존하는 리비도라고 하였다.
<살아가는 힘이란 싫증난 활동사진을 끝까지 보고 있는 용기. –수필 중에서->
그럴 것이다, 목숨의 열망 아니라도 살아가는 힘은 따로 있다.
박경리는 의지로 사는 삶과 욕망으로 사는 삶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전자는 아름답고 후자는 추하다고.
용기로 사는 삶이란 의지로 사는 삶과는 다른 것인가.
그러하다면 용기는 능동태일까 어쩔수 없이 행하는 수동태일까.
나태의 하품인가 허세의 하품인가.
처세(處世)의 방편으로서의 자살.
<형은 또 자살을 제 흥에 겨운 것이라고 꺼렸다. 그렇지만 나는 자살을 처세술처럼 타산적인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으므로, 형의 이 말이 뜻밖이라고 느꼈다... 다 털어 놔? 누구 흉내지?.. 물 흘러 도랑을 만든다...-소설 ‘잎’중에서->
무엇을 향한 타산인가, 죽는 마당에.
산 자에게 청산하는 죽는 자의 손익계산서란 말가.
당위를 위한 핑계꺼리,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한 변명일 것이다.
필경은 어떤 절대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처세이고 타산이란 것이겠지.
이를테면 하나님을 향하여 어떤 변명꺼리의 계산서를 흔들면서 구원을 간구하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
“하나님, 내가 딴에는 얼마나 살려고 했는지 아시지요? 보세요, 아무리 살려고 해도 도무지 안되잖아요. 그러니까 나 죄인은 아니지요? 지옥행은 아니겠지요? 그렇지요?”
자살이 타산(打算)이라는 사람의 삶에 무슨 ‘실존적 명분’따위 있을리 없다.
그에게 삶이란 허세이고 권태일 뿐이다.
<나태라는 트럼프, 나의 수많은 악덕중 가장 몹쓸 악덕은 나태이다. -수필 중에서->
권태(倦怠)와 나태(懶怠)는 다른 개념인가.
둘의 어휘는 지겹다는 의미로 같다.
‘권태’.
또 한 사람의 천재를 말해야 한다.
오사무와 너무도 비슷한 자의식 과잉의 사람 ‘이상(李箱)’.
1910년에 태어나 1937년 27세의 나이로 병사(病死)한 李箱과 1909년에 태어나 1946년 38세의 나이로 자살한 오사무.
(오사무의 대학시절 비밀좌익서클에서 연상되는 또 한분에 관하여 지껄이고 싶은바 있지만 그만 두련다. 沒年은 모르지만 내 아버지는 1917년 태어났다.)
책을 펴놓고 ‘이상’을 베껴 쓴다.
<생활, 내가 이미 오래 전부터 생활을 갖지 못한 것을 나는 잘 안다. 단편적으로 찾아오는 '생활 비슷한 것'도 오직 고통이란 요괴뿐이다. 아무리 찾아도 이것을 알아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무슨 방법으로든지 생활력을 회복하려 꿈꾸는 때도 없지는 않다. 그것 때문에 나는 입때 자살을 안 하고 대기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말하고 싶다만.
제 2차의 각혈이 있은 후, 나는 어슴푸레하게나마 내 수명에 대한 개념을 파악하였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 만신창이의 나이언만 약간의 귀족 취미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남 듣기 좋게 말하자면 나는 절대로 내 자신을 경멸하지 않고, 그 대신 부끄럽게 생각하리라는 그러한 심리로 이동하였다고 할 수는 있다. 적어도 그것에 가까운 것만은 사실이다. -李箱 ‘공포의 기록’->
<나는 그러나 그런 이불속의 사색생활에서도 적극적인 것을 궁리하는 법이 없다. 내게는 그럴 필요가 대체 없었다. 만일 내가 그런 좀 적극적인 것을 궁리해 내었을 겨우에 나는 반드시 내 아내와 의논하여야 할 것이고, 그러면 반드시 나의 아내에게 꾸지람을 들을 것이고- 나는 꾸지람이 무서웠다느니보다는 성가셨다. 내가 제법 한 사람의 사회인의 자격으로 일을 해 보는 것도 아내에게 사설 듣는 것도 나는 가장 게으른 동물처럼 게으른 것이 좋았다. 될 수만 있으면 이 무의미한 인간의 탈을 벗어 버리고도 싶었다. 나에게는 인간사회가 스스러웠다. 생활이 스스러웠다. 모두가 서먹서먹할 뿐이었다. -李箱 ‘날개’->
다음은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잎’의 모두(冒頭)이다.
<죽으려고 생각했다. 올해 설날, 옷 감을 한 필 받았다. 새 해 선물이다, 천은 삼베였다. 쥐색 줄무늬가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여름에 입는 거겠지, 여름까지는 살아 있자고 생각했다. 노라도 한번 더 생각했다. 복도로 나와 등 위의 문을 쾅 소리나게 닫고 생각했다. 돌아갈까.>
죽고자 하는 다자이 오사무.
살고 싶었던 이상.
다음은 ‘이상’의 소설, ‘봉별기(逢別記)’의 冒頭이다.
<스물세 살이오, 삼월이오, 각혈이다. 여섯 달 잘 기른 수염을 하루 면도칼로 다듬어 코밑에 다만 나비만큼 남겨 가지고 약 한제 지어 들고 B라는 신개지 한적한 온천으로 갔다. 게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 그러나 이내 아직 기를 펴지 못한 청춘이 약탕관을 붙들고 늘어져서는 날 살리라고 보채는 것은 어찌 할 수가 없다. 여관 한등(寒燈)아래 밤이면 나는 늘 억울해 했다.>
자의식 과잉, 생활력의 결핍, 권태와 나태, 귀족취미등 두 작가의 <불행한 당디의 모습>에 있어서는 기질적(氣質的)으로 비슷하였을지라도 그 자의식의 질감(質感)은 사뭇 달랐다고 나는 생각한다.
李箱의 자의식은 적어도 ‘타나토스’에 경도된 그런 것은 아니라 차라리 ‘에로스’쪽이었다.
‘아직 기를 펴지 못한 청춘’, 얼마나 살고 싶어 하였던 李箱이었던가.
李箱의 자의식은 비상(飛上)하려 하였지, 오사무처럼 멸망을 향하여 추락하려 하지는 않았다.
‘정희’와의 사랑싸움에서 늙은이 시늉을 하는 李箱.
<이 황홀한 전율을 즐기기 위하여 정희는 무고(無辜)의 李(이상 자신)를 징발(徵發)했다. 나는 속고 또 속고 또 또 속고 또 또 또 속았다.
나는 물론 그 자리에 혼도(昏倒)하여 버렸다. 나는 죽었다. 나는 황천을 헤매었다. 명부(冥府)에는 달이 밝다.나는 또다시 눈을 감았다. 태허(太虛)에 소리 있어 가로되 너는 몇 살이뇨? 만 25세와 11개월이올시다. 요사(夭死)로구나, 아니올시다. 노사(老死)올시다. 눈을 다시 떴을 때에 거기 정희는 없다. -李箱 ‘終生記’->
李箱의 자기추락(自己墜落)의 포즈 뒤에는 늘 여자라는 존재가 있었다.
그러할 때 자기비하나 자기폄훼는 지극히 기교적인 일종의 해학, 그의 자의식은 난만(爛漫)한 꽃처럼 화려한 레토릭으로 내게는 느껴진다.
허긴 언제나 오사무에게도 늘 여자가 있었다.
그러나 ‘오바 요조’가 ‘여자가 없는 곳으로 갈테야’라고 부르짖은 것 처럼 李箱의 경우에 진심으로 그처럼 토로할수 있었을랑가.
생각건대, 엘리트의식으로 충만하였을 李箱, 그의 기조(基調)에 깔린 정신적 토대에는 남산골 딸깍발이의 자부심 같은게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출신이야 어떻든.)
천의무봉(天衣無縫)의 감성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감수성, 게다가 탁월한 언어감각까지.
李箱은 자신의 내면을 골계(滑稽)로 비틀면서 자의식을 노리개처럼 가지고 놀았다.
그리하여 그의 절망은 화려하였고, 그의 문학 또한 화려하였다.
‘사이비 자의식’(pseudo self-conscious-흐음, 이런 말이 있나?)을 뽐내다가 스물일곱 청춘의 나이로 숨을 거둔 불세출의 천재 ‘이상’....
오사무는 20대에 세상에 내어 놓은 창작집의 제목을 ‘晩年’이라고 붙였다.
늙은이(晩年)시늉을 한 것이 아니라 진짜 임종인의식(臨終人意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죽어 버릴 작정을 하고서 첫 창작집을 세상에다 내어 놓았던 것이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의 감성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감수성, 게다가 탁월한 언어감각까지.
절망적 자의식을 지닌채 서른 아홉해 한세상을 살다 스스로 세상을 버린 불세출의 천재 ‘다자이 오사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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