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에 대하여] -5-
13.
예전에, 다자이 오사무를 읽다보면 흠칫흠칫 놀랄 때가 많았다.
이른바 명작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은 어떤 식으로든 읽는이의 감정밭에 소구(訴求)하는바 있게 마련이지만,오사무의 경우에는 똑 나의 가장 아픈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서 꼬집는듯 하였던 것이다.
지독한 열등의식, 무언가 부끄러움..무엇에겐가 미안함, 남 앞에서의 낯섬, 교유(交遊)의 서툶..
그리하여 필사적인 광대짓..자폐성 나르시즘..
지금은 낫살 들어 많이 나아졌지만, 한때 내 자의식은 다른 사람보다는 상당히 과잉하였을 것이다.
<원래 겁쟁이거든. 나는 슬플 때 오히려 가볍고 즐거운 이야기를 한다. 남들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살얼음을 밟는 마음으로 농담을 한다. -수필 중에서->
<겁쟁이는 행복조차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인간실격->
<존경받는다는 관념의 무서움.-사양->
<어릿광대 짓으로 남을 속이고 있는데, 만일 그것이 간파되는 것은 죽기보다 더한 수치이고 공포이다. 아아, 상대가 속아 넘어간 것을 알게 되면...-사양->
<계산할 때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손놀림....공포와 현기증. -인간실격->
<나는 마음이 약해서 술도 안 마시고 진지하게 대화를 하다 보면 삼십분이면 지쳐 버려서, 비굴하게 주뼛거리게 되어 견딜수 없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자유롭고 활달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일 따윈 도저히 안 되는 것이다, 네,라든가 어,라든가 무성의한 대답을 하면서 전혀 다른 생각을 할 뿐이다.... 쓸데없이 지칠 뿐이다. 술을 마시면 기분을 속일수가 있어서 엉터리를 지껄여도 그다지 내심 반성하지 않게 되어 정말 도움이 된다. 그 대신에 술이 깨면 후회도 심하다. 땅바닥을 구르면서 와,하고 크게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다. 가슴이 쿵쿵 뛰고 안절부절 못한다, 뭐라할수 없이 울적하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슬을 알고 나서 벌써 십년이 지났지만, 전혀 그 기분에 익숙해 지질 않는다, -수필 중에서->
한때 나 또한, 타인과의 교유(交遊)라는 것이 왜 그렇게 어색하고 싫었을까.
남과의 접촉이 두려웠고 대화가 두려웠다.
‘오바 요조’처럼.
내 딴에는 필사적으로 맥을 이어가던 대화가 단절되는 순간의 정적, 그 침묵은 바로 전율이고 공포였다.
어릿광대 짓은 그런 경우의 방어기제였을 것이다.
그런 ‘오바 요조’에게 마음을 나눌 벗이 있을리 없었다.
기중 속물건달 ‘호리키 마사오’하고만 어울렸는데, 속으로는 그를 멸시하였고 그와의 친교를 내심 부끄럽게 생각하였으면서도.
<그와 걷고 있으면 남과의 무서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쉴새없이 지껄여대는 그에게 맡기면 되니까. 서먹한 침묵에 빠지는 공포가 없으니까. 어릿광대 역을 대신 해주니까. -인간실격->
오사무가 고뇌하는 '귀족'의 의미를 헤아려, 나오지의 고통을 보라.
<누나. 안되겠어, 먼저 가야겠어. 나는 왜 내가 살아야 하는지 그걸 전혀 알수가 없어요. 살고 싶은 사람은 살면 돼./ 나는, 나라고 하는 풀은 이 세상의 공기와 햇빛 속에서 살기 어려운 거야. 살아 가는데 있어 어딘가 한군데가 결여되어 있어.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나름대로 성의를 다하고 힘을 다한 거야./ 내가 자라온 계급과 전혀 다른, 굳센 풀. 그런 친구들 그의 기세에 밀리지 않으려고 마약을 먹고 반 광란 상태가 되어 저항하기도 하였어. 나는 천해지고 싶었어, 강하게, 아니 횡포해지고 싶었어. 그게 소위 민중의 친구가 될수 있는 유일한 길. 민중의 방에 들어갈수 있는 입장권./ 그러나 60%는 거짓이야. 그들도 속을 터주지 않았고./ 누나. 믿어주세요. 나는 놀면서도 조금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쾌락의 임포텐스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다만 귀족이라는 자신의 그림자에서 떠나고 싶어, 미치고, 놀고. 거칠어졌습니다./ 누나, 도대체 우리에게 죄가 있는 걸까요. 귀족으로 태어난 것이 우리의 죄일까요. 유대인의 가족처럼 죄송해하고 사죄하고 부끄러움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게 우리의 죄일까요./ 나는 진작 죽어야 했어요. 그러나 단 한가지. 마마의 사랑, 그걸 생각하면 죽을수 없었어요./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 동안 그 죽음의 권리는 보류되어야 만 했어요./ 나는 죽는 편이 낫습니다. 나에게는 소위 생활능력이 없습니다. 돈으로 남과 다툴 힘이 없는 거에요./ 누님. 나에게는 희망의 바탕이 없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사요나라. 결국 나의 죽음은 자연사입니다./ 사요나라. 누나. 나는 귀족입니다. -'사양'중 나오지의 유서->
매춘부에게서 성녀의 광배(光背)를 보는 '오바 요조'.
<매춘부가 편하다, 인간도 여성도 아닌 백치나 미치광이로 보고, 그 품 속에서 오히려 안심하고 푹 잠이 들수 있다. 매춘부들에게서 친화감을.. 타산이 없는 호의,.. 강요하지 않는 호의, ...거기서 마리아의 원광(圓光)을 본 밤도 있었다.>
그에게는 인생과 세상의 ‘아웃 사이더’가 오히려 편하였다.
소외된 자와의 동류의식, 유유상종(類類相從).
창녀, 인생의 패배자, 전과자, 악덕자, 사생아..
<무언의 엄청난 외로움을 몸 외곽에 한치 정도의 폭으로 기류처럼 띄고 있어서, 그 사람에게 다가가면 이 쪽 몸도 그 기류에 휩싸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약간은 험악한 음울한 기류와 적당히 융합하여 ‘물 속 바위에 달라붙은 고엽처럼’내 몸은 공포로부터도 불안으로부터도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실격->
<세상을 떳떳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태어날 때부터 그러한 떳떳하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왔고, 세상에서 저 사람은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인 사람과 만나면, 나는 꼭 인자하고 상냥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냥한 마음은 나 자신이 황홀해 질 만큼 상냥한 마음이었습니다, -인간실격->
혹자(或者)는 오사무의 ‘좌익사상’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자본사회의 빈자(貧者)와 소외자를 향한 연민과 사랑.
착취함으로 부를 이룬 집안. 대지주의 아들.
역사의 변증에 의하여 필경 멸망되는 종족.
오사무의 자기학대, 괴로움, 죄의식, 수치심같은 것들은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고.
그들은 그가 자각하였을 '사회의식'에 주목하더라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사무는 전적으로 사적(私的)인 내용의 사람이다.
한때의 좌익활동 역시 ‘아웃 사이더적 취향’과 ‘도피적 어릿광대의 기질’에 연유한 것이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내 내면에 비추어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오사무를 닮은 사람이고, 나라는 인간은 집단의식 역사주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므로.
<사상가들의 회상록 선언문을 읽어도 나는 도대체가 뻔히 속이 들여다보여서 허망하다. 그 전기는 대체로 드라마틱하다. 감격적이다. 나는 그것이 거짓말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믿고 싶다고 몸부림쳐도 내 감각이 납득하지 않는 것이다. -수필 중에서->
<나는 사상이라는 단어 조차에서도 반발을 느낀다. 하물며 사상의 발전 따위 같은 이야기에는 짜증이 난다. 나한테는 그저 좋다 싫다 뿐이지, 사상 따위는 없다.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읽으면 소름이 끼치고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억지로 쓴 형편없는 문장을 접하면 나는 왜 그런지 소름이 끼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당시 재즈 문학이라는 것이 있어서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대항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는 커녕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수 없었다. 우습지도 않았다. 모던정신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당시 일본의 풍조는 미국풍과 소비에트풍 과의 교착이었다. 다이쇼 말기와 쇼와 초기에 걸처서의 일이다. 댄스홀과 스트라이크.. 결국 나는 집안을 속이고, 즉 전략을 써서 돈이랑 옷이랑 여러가지 것을 보내게 해서 그것을 동지하고 나누는 능력밖에 없는 사나이였다. -수필 중에서->
<인간은 모두 같은 것이다. 이 얼마나 비굴한 말입니까. 남을 업신여김과 동시에 자기 스스로도 업신 여기고, 아무런 프라이드도 없이 모든 노력을 포기하며 하는 말, 마르크시즘은 일하는 자의 우위를 주장한다. 같다고는 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존엄을 주장한다. 같다고는 하지 않는다.
‘헤헤, 아무리 잘난 체해도 다 같은 인간이 아닌가.’왜 같다고 하는가. 우수하다고는 말할수 없는가, 노예근성의 복수.
그러나 이 말은 실로 외설되고, 으스스하고, 사람들은 서로 겁내고 모든 사상은 능욕당하고 노력은 조소를 받고 행복은 부정되고 미모는 더럽혀지고 광영은 끌어내려지고 소위 ‘세기의 불안’은 이 불가사의한 어구 하나에서 발산되었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양'중 나오지의 낙서->
<불에 타서 죽는 것 같은 괴로움, 고통스러우면서도 고통스럽다는 말 한마디, 반 마디, 절규하지 못한다. 예로부터 미증유, 인간 세상이 시작된 이래, 전례도 없는 바닥 모를 지옥의 기색, 속이지 말라, 사상? 거짓말. 주의? 거짓말. 이상? 거짓말. 질서? 거짓말. 성실? 진리? 순수? 모두 거짓말이다, 우시지마의 등나무는 수령 천 년, 구마노의 등나무는 수백 년이라고 들었는데 그 꽃의 술도 앞의 것은 최장 9척, 뒤의 것도 5척이 넘는다고 하니 그 꽃 술에만 마음이 뛰는 듯 하다. 저것도 사람 자식, 살아 있다.
이론은 결국 논리에의 사랑이다. 살아 있는 인간에의 사랑이 아니다. 돈과 여자, 논리는 겸연쩍어 종종걸음으로 도망 간다. 역사, 철학, 교육, 종교, 법률, 정치, 경제, 사회, 그런 학문보다는 한 사람의 처녀의미소가 존귀하다고 하는 파우스트 박사의 용감한 실증. 학문이란 허영의 별명이다, 인간이 인간이 아니려고 하는 노력이다, -'사양'중 나오지의 낙서->
황족과 귀족이라는 엘레강스함과 로코코의 미학적 색감을 사랑했을지언정, 오사무가 사상적으로 천황제를 옹호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전후(戰後), 하루 아침에 돌변해 버린 인간성이라는 것의 허무가 그에게는 너무나 슬펐던 것이다.
절망적으로.
'인간'의 그 어디에도 구원은 없었다.
이 절망감은 안그래도 절망적인 그의 펀더멘탈의 기름에다 불을 붙였다.
오사무는 한줌 살아야 할 당위를 잃었다.
전후의 세상이 더욱 오사무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그들은 협박했다. 천황의 이름을 사취하여. 나는 천황을 좋아한다. 무척 좋아한다.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다. 나는 그저 부끄러웠다. 천황을 욕하는 자가 급증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고 보니 나는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천황을 깊이 사랑했는가를 알게 되었다. 나는 보수파임을 친구들에게 천명했다. 열살때는 민주파, 스무살때는 공산파, 서른살 때는 순수파, 마흔살때는 보수파. 그리고 역사는 역시 되풀이 되는 것일까, 나는 역사란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완전히 새로운 사조의 대두를 열망한다. 그말을 하려면 먼저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지금 꿈꾸는 경지는 프랑스의 모럴리스트들의 감각을 기반으로 하고 그 윤리의 의표를 천황에 두고 우리 삶은 자급자족하는 아나키즘풍의 도원경이다. 나는 새로운 윤리를 수립하는거야. 미와 예지를 기준으로 하는. 아름다운 것은, 영리한 것은 모두 옳다. 추함과 우둔은 사형이다. -수필 중에서->
<나는 인간의 허영을 비난하지 않는다. 허영은 생활의욕과 높은 현실성과 애정과도 결부된다. 나는 사상가들이 신앙이나 종교를 말하면서 그 한발짝 앞의 현세의 허영에 대해 진지하게 언급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을 뿐이다. 파스칼은 약간 예외로 하여. 절망은 우아함을 낳는다. 거기에는 아무래도 미모의 사탄이 한마리 살고 있다. -수필 중에서->
14.
18세때 만난 게이샤 ‘하츠요’는 오사무의 첫 여인이었다.
28세때 오사무와 하츠요, 두사람의 동반자살시도가 실패로 끝나 헤어질때까지 두 사람은 오랜 기간 동거(同居)하였다.
동거중에 오사무에게도 가까웠던 어떤 남자와 ‘하츠요’와의 부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로 인하여 오사무는 한층 깊은 절망의 나락 속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인간실격’의 종장 무렵에 그 이야기가 나온다.
‘오바 요조’는 순결한 소녀 ‘요시코’와 결혼한후 다소 안정을 찾는듯 하였다.
어느 날.
신혼살림집 1층에서는 요시코가 콩을 삶고 있었고, ‘오바 요조’와 친구 ‘호리끼 마사오’는 2층에서 ‘언어유희’를 하면서 놀고 있었다.
2층에서 두 사람이 노는 동안 1층에서는 요조의 아내 요시꼬가 어느 하찮은 장삿꾼에게 겁탈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2층의 유희와 1층의 비극, 이 은유(隱喩)는 읽을 때마다 내게 버거웠다.
언어유희(言語遊戱)란, 인간실격에 나오는 ‘오사무’가 발상(發想)한 재미있는 말장난이다.
<명사에 남성명사와 여성명사와 중성명사등 처럼 희극명사와 비극명사의 구별이 있어야 마땅하다. 예를들면 기선과 기차는 어느 것이나 비극명사이며, 시전(市電-시내전차)과 버스는 어느 것이나 희극명사, 왜 그럴까? 그걸 모르는 자는 예술을 논할 자격이 없다. 희극에 단 하나라도 비극명사를 삽입하는 극작가는 낙제, 비극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모름지기 두사람의 혼네(ほんね, 本音)와 혼네가 대화하려면 ‘오사무’의 이 언어유희를 하면서 놀찌어다.
인생사(人生史)에서 접하고 경험하였던 사물(事物)에 대하여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호오(好惡)의 느낌을 사람들은 가지고 있다.
그 느낌들을 디파인(define)하여 구체화 시키는 것이다.
기쁜 것 슬픈 것. 행복한 것 불행한 것, 좋은 것, 미운 것, 비슷한 것, 반대인 것등...
생물 무생물 구상 추상 구체 관념 의성어 의태어... 품사가 무엇이든 말이다.
‘흑(黑)의 반대는? 백(白)이야.’라는 식의 놀이라면 진부하여 아니함만 못하고. 적어도 ‘회색이야’쯤은 되어야 놀이다운 놀이가 될 것이다.
묻노니.
사랑은 비극명사인가 희극명사인가.
그대에게 그대의 어머니는 비극명사인가.
하늘은? 나비는? 대통령은? 가을은? 바다는?
‘죄’의 대의어(對意語)는 무엇인가? ‘벌(罰)’인가, 교회인가, 죽음인가, 섹스인가,
‘신뢰’의 동의어(同意語)는? ‘육체’의 동의어는? ‘죄’인가, ‘능동’인가, 겁탈인가.
‘버자이너’의 동의어는? 페니스인가, 슬픔인가, 내장(內臟)인가, 꽃인가.
오사무의 언어유희는 이를테면 의식의 흐름을 추적하는 방법론이랄까.
프로이트가 자유연상을 통하여 파우치에 누운 환자의 정신분석을 시도하듯이...
인간실격에 나오는 대목을 옮겨 적는다.
++++
<“알았지? 그럼 담배는?”하고 내가 묻습니다.
“그건 ‘트라(Tragedy-’비극‘의 일본식 약어).”하고 호리끼가 얼른 대답합니다.
“약은?”
“가루약이냐? 알약이냐?”
“주사.”
“트라.”
“그럴까? 호르몬 주사도 있는데.”
“아니, 단연 트라다. 이봐, 바늘이 무엇보다 훌륭한 트라가 아닌가.”
“좋아 져주지, 그러나 자네, 약이나 의사는 말야 그래도 의외로 ‘코메(Comedy-‘희극’의 일본식 약어)‘야. 죽음은?”
“코메. 목사도, 중도 다 그렇지.”
“잘 맞췄어. 그리고 삶은 트라지.”
“틀려. 그것도 코메.”
“아니, 그렇다면 뭐든지 모두 코메가 돼버려. 그럼 하나 더 묻겠는데 만화가는? 설마 코메라고 말할수 없겠지?”
“트라. 트라. 대 비극명사!”
“뭐야. 대트라는 자네 쪽이야.”>
이번에는 대의어(對意語-반댓말) 놀이.
<흑(黑)의 ‘안터(Antonym-대의어의 일본식 약어)는 백. 그러나 백의 안터는 빨강, 빨강의 안터는 흑....>
<“꽃의 안터는?”내가 묻자 호리끼는 입을 일그러뜨리며 생각하다가,
“에.. 가게쯔(花月)라는 요리집이 있으니까 달이다.”
“아니, 그건 안터가 되지 않아. 오히려 동의어(同義語-Synonym)다. 별과 제비꽃도 시너님이 아닌가. 안터는 아니거든.”
“알았어. 그건 벌이야...”
“벌?”
“모란에.. 개민가?”
“뭐라고? 그건 모티프(제목)야. 속이면 안돼.”
“알았어! 꽃에는 먹구름...”
“달에 먹구름이지.”
“그래, 그래. 꽃에 바람, 바람이다. 꽃의 안터는 바람.”
“어색한데. 그건 나니와부시(浪花節-일본 전통노래의 한가지)의 사설 아닌가. 출신을 알만해.”
“아니 비파(琵琶)다.”
“더욱 안 돼. 꽃의 안터는 말이야.. 대체로 이 세상에서 가장 꽃답지 않은 것. 그런걸 들어야 해.”
“그러니까, 그.. 가만있자, 뭐 여자 말이지?”
“나온 김에 여자의 시너님은?”
“내장(內臟).”
“자넨 도대체 시어(詩語)를 모르는군. 그럼 내장의 안터는?”
“우유.”
“이건 약간 그럴 듯 한데, 그런 식으로 또 하나, 수치(羞恥)의 안터의 안터?”
“철면피야. 유행만화가 죠오시 이끼다.”
“호리끼 마사오는?”
“건방진 소리 말아. 난 아직 너처럼 나와메(포박 당하는 수치)의 치욕을 당한 일은 없어.”
뜨끔했습니다. 호리끼는 마음 속으로 나를 올바른 인간취급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를 단지 죽다 남은 철면피, 바보의 허깨비, 소위 ‘산송장’으로 밖에 알아 주지 않으며, 단지 그가 쾌락을 위해 나를 이용할 수 있는데 까지는 이용한다. 그것 뿐인 교우(交友)였던 것이다라고 생각하니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었으나, 호리끼가 나를 그와 같이 보고 있는 것도 지당한 이야기로서, 나는 옛날부터 인간의 자격이 없는 것 같은 어린애였던 것이다, 역시 호리끼한테까지 경멸을 당해도 마땅할지도 모른다 하고 생각을 고쳐,
“죄, 죄의 안터님은 무엇일까? 이건 어려워.”
“법률이야.”
나는 기가 막혀서 “죄라는건, 자네 그런게 아니지 않아.”
죄의 대의어가 법률이라니!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 정도로 간단하게 생각하며, 체 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형사가 없는 곳이야말로 죄가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라고.
“그럼 뭐야. 하나님인가? 네게는 어딘가 예수쟁이 냄새가 나, 아니 밥맛이야.”
“그렇게 가볍게 처리하지 마. 좀 더 둘이서 생각해 보자. 이건 그래도 재미있는 테에마가 아닌가. 이 테마에 대한 대답 하나로 그 사람의 전부를 알수 있는 느낌이 든다.”
“설마.. 죄의 안터는 선이야. 선량한 시민, 즉 나와 같은 거야.”
“농담은 그만두자. 그러나 선은 악의 안터가 아니야.”
“악과 죄는 다른건가?”
“다르다고 생각해. 선악의 개념은 인간이 만든거다. 인간이 제멋대로 만든 도덕적인 말이다.”
“시끄럽구나. 그럼 역시 하나님이지. 하나님, 하나님. 뭐든지 하나님으로 하면 틀림없어. 배가 고픈데.”
“지금 아래층에서 요시꼬가 누에콩을 삶고있어.”
“고맙구먼. 난 누에콩을 좋아하지.”
“자네에게 죄란 것이 전혀 흥미가 없는 모양이군,”
“그건 그래. 너같이 죄인은 아니니까. 난 도락은 해도 여자를 죽게 하거나 여자에게서 돈을 빼앗는 일 같은건 하지 않아.”
죽게한 건 아니다. 빼앗은 것이 아니다 하고 마음 어디선가 희미하게, 필사적인 항의의 소리가 일어나도, 그러나 곧 내가 나쁘다고 되생각해 버리는 이 습벽(習癖). 나는 아무리해도 정면으로 맞서서 의논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히는 것만이 죄가 아니야. 죄의 안터를 알면 죄의 실체도 파악할것 같이 느껴지는데...하나님..구원..빛..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사탄이라는 안터가 있으며, 구원의 안터는 고뇌일 것이며, 사랑에는 미움,빛에는 어두움이라는 안터가 있으며, 선에는 악, 죄와 기도, 죄와 후회, 죄와 고백, 죄와....아아 모두 시너님이다. 죄의 대어(對語-반댓말)는 뭐야?”
“죄의 대어는 꿀이야. 꿀처럼 달아. 배가 고프구나. 뭔가 먹을 걸 가져오게.”
“자네가 가져오면 되잖아.”>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문득 그것이 두뇌의 한쪽 구석을 스치고 지나 깜짝 놀랐습니다. 만일에 그 도스토(도스토예프스키의 일본식 약어)씨가 죄와 벌의 시노님을 생각지 않고 안터님으로서 하나로 묶었다면? 죄와 벌. 절대로 상통(相通)되지 앟는 것.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얼음과 석탄은 서로 용납되지 않음). 죄와 벌을 안터로서 생각한 도스토의 해캄. 썩은 늪. 난마의 밑바닥...아아 알 것 같다. 아니 또... 하고 두뇌의 주마등이 빙글빙글 돌고 있을 때에, “이봐! 엉뚱한 누에콩이다. 와라!”>
++++
이때 아래층에서는 요시코가 겁탈을 당하고 있었고, 그 현장을 먼저 호리끼가 목격하였다.
강간(强姦)인지 결국은 화간(和姦)인지...두 마리의 동물.
속물이면서 냉혈한이기까지 한 호리끼의 손짓으로 곧 요조도 그 장면을 보아 버리고 말았다.
<나는 빙글빙글 현기증이 일어나면서 이것이 또한 인간의 모습이다. 놀랄 건 없다 하고 심한 호흡과 함께 가슴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요시코를 구해 낼 일도 잊어버리고 계단에 서 있었습니다. ....나를 엄습한 감정은 분노도 아니며, 혐오도 아니며, 슬픔도 아니며, 무시무시한 공포였습니다, 그것도 묘지의 유령같은 것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진쟈의 삼나무 숲에서 백의의 신체(神體)를 만났을 때에 느낄수 있을지도 모르는 고대(古代)의 거친 공포감이었습니다. 내 머리의 새치는 그날 밤부터 시작되고 더욱 사람을 밑바닥까지 의심하고, 이 세상의 영위(營爲)에 대한 일체의 기대, 기쁨, 공명(共鳴)등으로부터 영원히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실로 그것은 나의 생애에 있어서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나는 정통으로 미간을 맞아 넘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 그 상처는 어떤 인간에게도 접근할 때마다 아파지는 것이었습니다.
“동정은 하지만 너도 이걸로 조금은 알았겠지. 나는 이제 두 번 다시 여기 오지 않겠어. 마치 지옥이다...그러나 요시짱은 용서해 주게. 너 역시 훌륭한 놈은 아니니까. 실례해.”
있기 거북한 장소에 오래 머물러 있을 만큼 얼빠진 호리끼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일어나서 홀로 소주를 마시고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습니다. 얼마든지, 얼마든지 울수 있었습니다.
어느 사이에 요시꼬가 누에콩을 듬뿍 담은 접시를 가지고 뒤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아무 말도 안한다고 말해줘요....”
“좋아, 아무 말도 하지 마. 넌 사람을 의심하는걸 알지 못했어. 앉아. 콩을 먹자.”>
<용서하고 안하고가 없습니다. 요시꼬는 신뢰의 천재입니다. 남을 의심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생긴 비참.
하나님께 묻노니 신뢰는 죄가 되나이까?
요시꼬가 더럽혀졌다는 일보다도 요시코의 신뢰가 더렆혀 졌다는 일이 나에게 있어서는 그 후 오래 살아 있을 수 없을 만큼 고뇌의 씨가 되었습니다
나같이 몸서리쳐질 만큼 겁을 내며, 남의얼굴빛만 살피고, 사람을 믿는 능력이 깨져잇는 자에게 요시꼬의 깨끗한 신뢰심은 그야말로 신록의 폭포같이 시원스럽게 생각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룻밤 사이에 누런 구정물로 변해 버렸습니다. 보라! 요시꼬는 그날 밤부터 나의 일빈일소(一嚬一笑)에 까지도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중략...남편으로서 아무런 권리도 없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내가 나쁜 것같이 느껴져서 분노는 고사하고 잔소리 한마디 못하고 맙니다.>
‘요조’는 보잘 것 없는 그 장삿꾼과 요시꼬 사이에 조금이라도 연애 비슷한 감정이라도 있었다면 오히려 구원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통정(通情)은 남녀간 사랑 비스무리 한 감정에 원인이 있는 것이므로 남편으로서는 충격일지언정 남편의 권리로서 용서하든가 아니면 헤어지든가 하면 된다.
그것은 남편의 분노에 의해서 어떻게라도 처리될 트러블일뿐, 그토록이나 괴로운 문제는 아닌 것이다.
‘요시꼬’가 당한 겁탈은 의지나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암컷이라는 존재 자체에 깃든 근원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급기야 요조는 알콜과 마약에 빠져 들었고, 자기학대와 타락의 늪에 빠졌다.
<요시꼬는 육체가 소지하고 있는 보기드문 미질(美質-아름다운 기질), ‘때묻지 않은 신뢰심’때문에 겁탈을 당한 것이다. ‘때묻지 않은 신뢰심’이 죄란 말인가?>
요조는 요시꼬의 ‘때묻지 않은 신뢰심’을 동경하여 사랑하였고 그래서 결혼하였다.
오사무가 말하는 ‘때묻지 않은 신뢰심’.
생각건대, 그것은 ‘수동태(受動態)의 섹스를 갖고 있는 여성성(女性性)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순수하게 수동적인 인간성’의 삶이란 허세, 공허와 허무일수 밖에는 없는가.
절망의 대상은 ‘요시꼬’가 아니라 ‘오사무’자신이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언제나 수동적인 것, 가여운 것들에게 자신을 은유(隱喩)하였다.
<그리고 미치코는 이렇게 속삭였다. “그런 꽃이름 아니? 손을 갖다 대자마자 부서지면서 더러운 즙을 튀겨 순식간에 손가락을 썩게 만드는 그런 꽃이름을 알았으면...”나는 코웃음치고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으며 대답했다. “이런 나무이름 알아? 이 잎사귀는 질 때까지 푸르지. 뒤쪽만이 바삭바삭 말라 벌레먹은 잎사귀여도 그걸 깜쪽같이 감추고는 질 때까지 푸른 척 하는 거야. 그런 나무 이름을 알았으면... -소설 ‘잎’중에서->
내 이름은 후자(後者)의 나무이름.
아, 내가 오사무의 종족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나의 삶은 결코 능동(能動)이 아니었다.
내 삶에 혹여 적극(積極)의 표정이 있었다면 그건 내 슬픈 허세였다.
벗이여, 행여 내가 너에게 무언가를 끼친바 있다면 그것은 나의 죄(罪)였다.
당신은 어떤 이름의 사람인가.
저 꽃의 이름인가, 저 나무의 이름인가.
아름다운 할머니가 오사무에게 말하였다.
<“가을까지 살아 남아있는 모기를 슬픈 모기라고 한단다. 모깃불은 피우지 않는 법. 불쌍하기 때문이지.”>
‘웽~~’.
그 조그만 몸뚱이에 증오로 응축된 소리를 지닌 한 여름철의 모기.
가을모기라고 그 소리를 잃지는 않았을 터인데.
가을이라서 슬픈 모기인가.
슬픈 모기....
‘가을, 잠자리 날개, 투명하다.’(문득 떠오르는 문장인데, 오사무의 하이꾸였던지.)
가을이다.
올 가을에는 모기가 거의 없구나.
가을도 오기 전 죄 죽어버렸는지.
슬픈 모기가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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