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고리오 영감>
-발자크 作-
***동우***
2011년 5월 30일
책부족 5월의 책,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de Balzac, 1799~1850)'의 소설 '고리오 영감'
2008년 출판된 ‘임희근’번역의 ‘열린책들’의 책을 텍스트로 읽었다.
발자크의 소설, 그옛날 남독(濫讀)시절 ‘골짜기의 백합’‘외제니 그랑데’등 몇편을 읽은 기억이 있지만 낭만적인 연애소설 분위기의 느낌만이 아슴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로서 19세기 프랑스의 대작가로 문명(文名)을 떨쳤던 발자크.
로댕이 빚은 발자크 동상이 여럿 있거니와. ‘고리오 영감’을 포함한 수십편의 소설로 구성된 ‘인간희극’은 단테의 신곡과 쌍벽을 이룰만큼 문학사에 위대하고 놀라운 사건이라고 할 정도이니 그의 대단한 명성을 어림할수 있겠다.
1840년대의 파리.
마치 영화적 기법을 차용한듯 싶은 소설의 서두(書頭).
조감(鳥瞰)으로 파리의 어떤 한 지역을 조망하고 서서히 중경(中景) 근경(近景)으로 접근해 나간다.
40년째 보케라는 과부가 운영하는 그저그런 수준의 하숙집이 다가오고, 클로즈업으로 가구와 벽지와 보케부인의 치마의 주름까지도 세세히 묘사된다.
이윽고 등장하는, 보케 하숙집의 예닐곱 군상(群像)들.
왕년의 제면업자 고리오 영감.
법대생인 시골청년 외젠 라스티냐크.
넉살 좋은 정체불명의 장년 보트랭.
부자 아버지로부터 내침을 받은 처녀 빅토린과 빅토린의 후견인 격인 쿠티르부인.
그리고 푸아레 노인과 미혼노파 미쇼노와 하인 크리스토프와 뚱보식모 실비등...
왕년의 부자도 있고 퇴락한 상류계급도 있고 하위계층 출신도 있다.
장면마다 작가의 목소리가 오버랩된다.
‘이것은 허구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다, 모든 것이 사실이다’
하숙비며 밥값이며 옷값 세탁비 마차값등등 일상사 사소한 것들까지도 그 금액이 아주 구체적인 숫치로서 소설 속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은 놀라웠다. <현실 잡사의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강박이 ‘사실주의’라는 문예사조에는 있었던듯.>
나는 당시 프랑스 화폐단위 ‘프랑’의 실질적인 가치를 실감할수 없어 좀 답답하였다.
시골에서 외젠에게 부쳐주는 돈 연간 1천 2백프랑이 과연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 나름 계산으로 어림하면서 읽었다. <형편없는 가난뱅이의 한달 숙식비가 45프랑이라고 하니까 대충 계산하여 한 20만원정도로 때려잡아 프랑당 5천원 정도로. 그러니까 1천 프랑이라면 500만원 쯤으로. (너무 싸게 잡았나?).>
일흔쯤 나이의 왕년의 제면업자 고리오 영감.
처음에는 보케 하숙집의 독채를 썼고 하숙비 1천 2백프랑을 호기있게 지불하였던 영감님.
고급옷, 다이아몬드 박힌 셔츠 핀, 금 담뱃갑, 허리춤에는 금시곗줄이 건들거리고 쾌활한 미소를 지을줄 아는 부르주아였다.
하숙집 주인인 보케부인은 그를 선생님이라 불렀고, 늙은 그를 자신의 배우자로 점찍어 눈독을 들이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영감님은 두 딸에게 헌신하느라 점점 가난뱅이가 되어갔고, 드디어는 하숙집에서조차 뒷방신세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전에는 연수입 6만프랑 이상인 부자이면서 자기자신을 위해서는 단돈 1200프랑도 쓰지 않는 고리오 영감.
아내를 사랑하였고, 그 아내가 죽자 딸들이 품은 환상을 채워주는 것이 그의 생존목적이 되어 버렸다.
파리에서 가장 훌륭한 선생을 골라 온갖 재능을 갖추도록 여러 교육을 두 딸에게 베풀었다.
딸들은 승마를 했고 시집 가기전에 벌써 마차도 갖고 있었고, 아버지 덕에 마치 부유한 늙은 영주의 정부라도 되는 듯 풍족한 생활을 누렸다.
“고리오는 딸들을 천사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그러니까 당연히 자기보다 딸들의 위상이 더 높았다.
가여운 영감!
그는 딸들이 자기에게 잘못하는 것까지도 사랑했다. 딸들은 각자 아버지 재산의 반씩을 지참금으로 가져가게 되었다.”
귀족적인 성향과 미모 덕분에 레스토백작의 구혼을 받은 큰 딸 아나스타지는 아버지 집을 떠나 상류사회로 성큼 도약하였고, 둘째 딸 델핀은 돈을 좋아해서 독일 출신으로 신성 로마제국의 남작이 된 은행가 뉘싱겐씨와 결혼했다.
두 딸들이 남편들 때문(핑계인즉슨 그러하다)에 아버지를 집에 모시는 것뿐 아니라 남 보는 앞에서 집 안에 맞아들이는 것조차 마다하여 영감은 이 하숙집에 투숙하게 된 것이었다.
어느 날 외젠이 고리오 영감에게 물었다.
“영감님. 그렇게 잘사는 딸들을 두셨으면서 어떻게 이러 누추한 곳에 사실수가 있어요?”
“요컨대 이거요. 내 인생은 두 딸에게 있다 이 말이오. 딸들이 행복하면 내가 아무리 누추하더라도 괜찮소. 내게 슬픔이 있다면 그건 오직 딸들의 슬픔 뿐. 당신도 자식을 나아보오. 저것들이 내 몸에서 나왔지. 내 피 한방울 한방울을 받아서 피어난 예쁜 꽃들이라는걸 느끼게 될거요. 나는 아버지가 되고나서 하느님을 이해하게 되었소. 하느님은 어디에나 온전하게 계시지요. 나도 내 딸들을 생각하면 그렇다오. 하느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것보다 내가 딸들을 더 사랑하지요.”
딸들에게서 그토록이나 내침을 당하면서도 그에게는 도무지 리어왕의 그 자책 겨운 부르짖음 한조각 없었던 것, 그것이 바로 고리오영감의 비극이었다.
그가 몽환처럼 도취하였던 내리사랑이란 과연 어떤 종류의 것이었을까.
외젠 드 라스티냐크는 프랑스 남부 퇴락한 귀족의 후손.
시골에는 부모와 두 여동생과 두명의 남동생이 오로지 파리 유학생 외젠을 태양처럼 바라보면서 얼마 안되는 땅뙈기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었다.
약 3천프랑의 소출중, 매년 외젠을 위해 1200프랑이 송금되고 있었다.
그런데 외젠은 욕망과 권력의 도시 파리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물질적인 파리의 향락, 극장마다 상연되는 연극들, 파리의 복잡한 골목길 익히기.”
사교계에 드나들기 위하여 외젠은 다시 어머니에게 돈을 마련해 보내 줍시사고 편지를 쓴다.
어머니는 땅을 저당 잡히고 누이들은 모아 둔 푼돈을 그러모아 아들, 오라비에게 1천5백50프랑을 부쳐준다.
'가족들의 이런 헌신에 대한 보답은 오로지 상류사회의 진입이다’
입술을 깨무는 외젠.
양복점 재단사를 불러 양복을 맞춰 입고 셔츠와 구두와 모자로 치장한다.
샹젤리제 가도를 걷는 그의 발걸음은 경쾌하였고, 전날만 해도 초라하고 숫기없는 모습은 일신되었다.
의상의 날개를 달고 주머니가 두둑한 외젠은 모든 것을 할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고, 마음은 쾌활하고 너그러워졌으며 풍부한 감성은 넘쳐나고 있었다.
새가 드디어 날개를 단 것이다.
비로소 외젠은 고리오 영감의 둘째 딸 뉘싱겐 남작부인과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낭만주의와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를 뚜렷이 가늠할만한 소양이 내게는 없다.
사실주의 소설이란 최대한 현실에 가깝도록 묘사하여 쓰여지는 소설이 아닐까하고 생각할 뿐이다.
‘역사적. 사회적, 환경적, 풍속적 현실’과 ‘인간성, 인간관계적, 드라마적 현실’의 구현.
그러나 내게, 전자(前者)에 있어서 ‘고리오 영감’은 짙은 사실주의였지만 후자에 있어서는 작위적인 느낌이 없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고리오 영감이라는 캐릭터.
두 딸을 향한 무조건적 헌신의 자기희생이나 두 딸의 아버지를 향한 냉대는 마음에 깊이 닿지 않았다.
플룻에 있어 꼭 필요하였겠지만, 작위적인 설정으로 느껴져 내 정서에는 다소 어색하게 접수되었다.
외젠 드리크냐크의 돈과 야망과 무모한 열정 또한.
어리숙하던 시골 촌놈이 차츰 세련되고 능란한 도회 사나이가 되어가는 과정은 흥미로웠지만 그 캐릭터는 좀 모순으로 느껴지는바 없지 않았다.
외젠은 무작정 환락 속에 함몰되는 성격도 아니었고 나름대로의 비판의식이 있었고 인정에의 갈망과 휴머니즘도 남 달랐다.
모두가 외면하는 고리오의 주검을 거두어 준것도 바로 그였던 것이다.
“그의 눈 앞에는 세상의 진흙투성이 대양과 같아서 한 인간이 발을 잘 못 디디면 목까지 잠겨 버리는 곳이었다. 이 곳에서는 비열한 범죄만이 자행될 뿐이다! 차라리 보트랭이 더 위대해.”
“그는 세가지 사회 모습을 보았었다. 복종, 투쟁, 저항... 즉 가족, 세계, 보트랭이었다.
그는 어느 편도 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복종이란 따분한 것이고, 저항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투쟁은 불확실했다.”
복종과 투쟁과 저항, 이것을 가족과 세계와 보트랭으로 대입하여 중얼거리는 외젠의 대사는 의미심장한바 있다.
이를테면 복종이란 구체제(앙시엥 레짐), 투쟁이란 혁명, 저항이란 삐뚜른 길이라도 좌우간 현실에서 이득챙기기의 은유일 법 하지 않은가.
소설의 마지막 대목.
“혼자 남은 라스티냐크는 묘지의 높은 언덕 쪽으로 몇걸음 걸어 올라가, 등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센 강의 양쪽 기슭을 따라 구불구불 누워있는 파리를 보았다. 그의 시선이 거의 탐욕스럽게 집착한 곳은 방돔광장의 기둥과 앵발리드의 둥근 지붕 사이, 그가 뚫고 들어가고 싶어 했던 그 멋진 사교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웅웅거리는 벌집같은 이 곳에 그는 미리 꿀을 빨아내기라도 할 듯한 시선을 던지며 이 거창한 말을 던졌다.
“자, 이제 파리와 나, 우리 둘의 대결이다!”
그리고 그 사회에 대한 첫 도전의 행동으로, 라스티냐크는 뉘싱겐 부인 집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결국 외젠은 ‘구체제’도 아니고 ‘혁명’도 아닌 ‘저항’을 택하였던가 보았다.
뒷장 해설을 보니 ‘고리오 영감’은 외젠의 성장소설로도 읽혀 질수 있다고 하였는데, 쌩뚱맞게 나는 외젠에게서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이 떠올려졌다.
‘젊은 날의 초상’에는 그 어디에서도 사회의식은 엿보이지 않는다, 지극히 사적인 고뇌의 기록일뿐.
그리고 외젠에게서는 사회를 느끼는 시선만 강렬하였지 그 어디서도 젊은이로서 내면적 고뇌 따위 엿보이지 않았다.
내면의 기록은 하나의 리얼리즘이 될수 없는걸까.
또한 ‘고리오 영감’의 드라마에서는 현실성이 별로 만져지지 않았다.
보케 하숙집이라는 무대 세트에서 벌어지는 지극히 연극적인 전개.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열정과 야심과 갈등.
등장인물들과 고리오의 딸들은 적시에 등퇴장하면서 연극적 대사를 읊조리고, 돌연히 밝혀지는 보트랭의 정체, 그 아버지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딸의 정부가 되는 외젠등등...
나는 몰리에르의 풍자적인 희곡을 연상하기도 하였다.
캐릭터나 드라마 공히 지극히 유형적이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사실주의’는 솔직히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작금의 세태에 비추어도 손색없을 ‘액추어리티’가 고리오 영감에는 있었다.
투기, 고리대금, 타산적 결혼, 범법, 도박등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축재방식이 냉소적으로 그려져 있었고, 황금만능주의, 즉물성, 쾌락의 추구, 속물성등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배신 당한 귀족 부인의 눈물을 구경하려 무도회에 몰려오는 사교계의 속물들.
고리오를 멸시하고 그의 죽음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하숙인들의 잔인함.
넉살 좋고 배짱 두둑한 보트랭이라는 사나이.
“이봐 젊은 친구. 파리에서 제대로 행세하고 싶다면 말 세필에다 낮에 탈 이륜마차 한 대, 저녁에 타고 다닐 4인승 사륜마차 한 대가 있어야 한다네. 마차에만 도함 9천프랑은 들어야 하지, 그리고 양복점에 3천프랑, 향수가게에 6백프랑, 구둣가게에 3백 프랑, 모자가게에 3백프랑을 쓰지 않으면 안되네. 옷 세탁에 1천프랑쯤 들겠지, 첨단을 걷느 젊은이는 셔츠같은것도 허술히 말고 아주 빵빵한걸로 챙겨입어야 하는 법이지. 그럼 벌써 1만 4천 프랑 아닌가, 도박내기 선물등에 허비하는 돈은 언급하지도 않았네. 용돈 2천 프랑도,”
“후견인을 찾게나. 그러면 연봉 3천프랑을 받는 초심재판소 검사가 될테니 말이야. 그리고 시장따님과 결혼하게 될테지. 정치적으로 잔머리 잘 굴리는 비열한 짓을 한다면 자네는 마흔살에 검사장이 되고, 국회의원도 될수 있을걸세. 허지만 어뵤게 명심하게. 그나마 있는 양심에 오점을 남기게 될테고, 20년간 남들 모르게 가난에 찌들어 가며 지겨운 생활을 하겠지.그리고 누이들은 혼기를 놓친 노처녀가 될테고,, 프랑스 전체를 통틀어 검사장 자리는 스무개 밖에 없다는걸 자네에게 지적해 주고 싶네. 그런데 그 자리를 노리는 후보자들은 2만명이고 말이야.”
“돈많은 여인과 결혼? 그건 목에 돌덩어리를 하나 매다는 격이라네. 돈 때문에 결혼한다면 자네의 명예, 고결함은 어떻게 될 것인가? 여자 앞에서 뱀처럼 살살 기고, 장모의 발바닥을 핥고.”
“인간사회의 더러운 관습에 맞서 지금 당장 반항을 시작하게.”
“정직이란 아무 소용이 없다네. 사람들은 천재의 위력 앞에서 굽신거리지만 사실은 그 능력을 증오하고 어떻게든 비방하려 하지. 왜냐하면 천재는 남과 나누려고 하지 않고 자기 것을 가져가니까.”
“타락은 제멋대로 날뛰고 재능은 희귀하다네. 그래서 부패야말로 넘쳐나는 용렬함의 무기인 셈이지. 남편이 몽땅 합쳐 연봉 6천 프랑을 버는데 제 몸치장에 1만 프랑을 쓰는 여자들을 자네는 보게 될걸세. 롱샹의 한길 복판으로 남보라는 듯이 달리는 상원의원 아들의 마차에 동승하기 위해 몸을 파는 여자들을 볼수도 있을거네.”
“딸이 빚진 약속어음을 갚아 주어야 만 하는 가엾은 바보 고리오 영감을 자네도 보았지. 그 남편은 연 수입이 무려 5만 프랑인데 말일세.”
고리오 영감의 두 딸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지참금등으로 부자이지만 당장 소비할 돈이 없어서(이를테면 유동성 위기..) 아버지는 은식기까지 팔아가면서 딸들에게 뒷돈을 대어주었던 것이다.
“파리에서 정직한 사람이란 입 다물고 나누기를 거부하는 사람일세. 도처에서 자기가 한일에 대해 결코 보상받지 못한채 힘든 일을 하는 저 가엾은 노예들. 내가 ‘하느님의 둔재집단’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세상은 항상 이랬어. 도덕군자들은 절대 세상을 바꾸지 못해.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야. 어느 정도 위선적이고 말야.”
“영웅이 되게. 나폴레옹처럼.”
보트랭, 그 사나이는 실은 탈옥수 콜랭이었고, 미혼 노파 미쇼노의 밀고로 보케 하숙집에서 체포되었다.
“당신은 우리보다 나은가요? 우리가 어깨에 진 파렴치함이 당신들 마음속에 있는 파렴치함보다 덜 합니다. 타락한 사회의 무기력한 구성원들인 당신들 말이오. 당신들 중 가장 낫다는 인간도 내게는 저항하지 못했소.”
“당신들 처음봤소? 콜랭이라는 이름의 낙인 찍힌 이 죄수, 여기있는 이 사람은 남들보다 덜 비겁한 인간이오. 그리고 장 자크(루소를 말함)가 말한대로 사회계약이 주는 깊은 실망에 저항하는 인간이라오. 난 장 자크의 제자라는게 영광스럽소. 요컨대 나는 정부와 그 숱한 법정, 헌병, 예산, 이런 것에 대하여 혼자 싸우는 사람이고 그런 것들을 조롱하고 있는 거요.”
당시 파리에는 벌써 도박기 룰렛이 있었던가 보았다,
외젠은 정부(情婦)인 고리오 영감의 둘째 딸 델핀이 내어 준 1백프랑으로 순식간에 7천프랑을 딴다.
우골탑(牛骨塔)의 고향 외젠네 그 많은 식구의 일년 소출의 두배가 넘는 돈이다.
상류층은 너나없이 정부(情夫)와 정부(情婦)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피차 배우자가 묵인하는 바였다.
바야흐로 자본주의가 발호하여 부르주아는 남작이니 하는 귀족칭호를 사용하고 있었고, 가짜 백작부인등 사기꾼이 들끓기도 하였다.
19세기의 소설이 작금의 우리 현실에 그대로 겹쳐지는 기분은 참 묘한 것이다.
무르익은 후기자본주의 대한민국, 권력과 욕망이 결집된 용광로 유물론의 도시 서울, 소와 논밭 팔아 자식새끼 공부시키는 우골탑의 눈물, 카지노, 고스톱, 나이트 클럽의 불야성, 모텔의 성업, 도박과 쾌락, 섹스와 사랑, 뼛속 깊이 배인 속물근성, 발호하는 이기주의, 부자 되세요라고 굳어진 도식적 인사....
1789년 대혁명의 수도, 불과 반세기 넘어 그곳에서 벌어지는 복마전은 내 상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그리하여 ‘고리오 영감’은 내게 역사소설이었고 사회소설이었고 풍속소설이기도 하였다.
뒷장의 해설.
부르주아 발자크가 꿈꾸었던 혁명.
“‘도로가 재포장되면서 7월 혁명은 그 밑에 묻혀 버렸다.’나폴레옹 숭배자 발자크는 1832년 부르주아 왕정의 천박성에 맞서는 자신의 생각을 천명하고, 강한 권력만이 사회의 단합을 가져올수 있다고 믿었다. 강력한 왕이 있어 종교로 단합된 사회에 자기 에너지를 골고루 나누어 주는 것을 꿈꾸었다. 경제적 자유주의로 인해 사회는 개개인으로 해체돼 개인주의가 발호하고 공동의 믿음은 파괴된다. 부르주아사회에서 구질서로의 회귀는 곧 좌절된 도약을 의미하며, 이로부터 싹트는 환멸로 인해 사람들은 전력투구하여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꿈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두가지 영원한 진리, 즉 종교와 왕정에 힘입어’글을 쓴다고 말하였다.”
‘고리오 영감’에서 나는 부르주아 발자크의 그 분노를 읽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부터의 프랑스사에 나는 상당한 흥미를 가지고 있다.
근세사의 가장 드라마틱한 대목들이 이 시기 프랑스 파리에 집약되어 있는 듯한 느낌인데 숱한 영화와 책과 그림들을 접하여 그럴까.
내 감상주의적 어줍잖은 역사의식은 다음과 같은 어휘를 대하면 공연히 심장이 두근거린다.
바스티유, 루이16세, 마리 앙트와네트, 바리 백작부인, 국민공회, 앙시엥 레짐, 지롱드당, 당통, 자코뱅당, 로베스피에르 형제, 라파예트, 길로틴, 미라보, 라메트, 자코뱅당, 다비드가 그린 마라의 죽음, 장발장, 푸셰, 나폴레옹의 구테타,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로제타석, 샹폴리옹, 대륙봉쇄령, 러시아 원정,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트라팔카 해전, 엘바섬, 루이18세의 왕정복고, 7월 혁명, 루이필립, 맑스 앵겔스의 공산당선언, 2월 혁명, 루이 나폴레옹 대통령, 크리미아 전쟁, 보불전쟁, 비스마르크....
혁명과 반혁명. 피의 숙청. 혼란과 변화와 반복의 현장, 파리.
가능태로서의 수많은 정치적 실험들이 발아(發芽)되었고, 역사적 반동(反動)이 교차적으로 엄습하였던 파리.
‘고리오 영감’의 시대.
혁명의 반동은 왕정이 다시 복고 되도록 하여 길로틴에 목이 잘린 루이 16세의 동생인 루이 18세가 왕이 되어 집권하였다.
옛날의 거드름쟁이 귀족들은 다시금 권력을 잡았다.
신흥 부르주아와 옛 귀족들의 불안한 동거.
대혁명과 나폴레옹의 흔적을 지우고 앙시엥 레짐으로 회귀하려는 또다시 맞는 반동의 시대였다.
돈이 모든 가치를 대변하였으며 맘모니즘과 헤도니즘은 만연하였다.
소설 속의 대목.
“센강 좌안의 생제르맹 구역은 귀족의 영역은 더없이 세련된 취향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고급 극장들은 열광하는 관중들로 넘치고, 인기절정의 이탈리아 극장이 로시니 오페라의 화려함과 활력으로 열광하는 딜레탕트들을 끌어 당긴다.
한편 센 강 우안 소세당탱 구역에서는 금융 부르주아 계층이 자본의 축적을 바탕으로 그 세력을 막강하게 늘려가는 중이다, 투자로 부가 증가하면서 그들의 욕심도 늘어난다.”
사회개조를 꿈꾸는 래디컬한 생각들은 혁명을 잉태한다.
그러나 혁명에 역행하는 역사의 반동.
앙시엥 레짐의 반작용의 힘은 옛보다 더한 꼬라지의 타락상을 연출하는가 보다.
그로부터 30여년 후.
파리에는 꿈결같은 체제의 입성이 이루어졌다.
파리코뮌.
그것은 두어달만에 또다시 반동에 의하여 궤멸되고 말았지만 파리코뮌은 하나의 기적이었다.
당시 진보적인 몸짓으로 분노를 표출하였더라도 발자크 필경 나와 같은 보수꼴통.
그러나 이 역시 역사에 따라 카멜레온같이 변화무쌍한 개념일 뿐이다.
‘고리오 영감’.
엉뚱한 생각으로 갓길로 빠져버린 느낌의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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