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전민선 시인의 근작시 (1,4,3,3)

카지모도 2019. 10. 7. 05:40
728x90

 

-잡설-

 

[[전민선 시인의 근작시]]

2012213일 포스팅

 

***동우***

2012.02.13. 05:35

 

전민선 시인의 근작시 5편을 소개합니다.

내게 인색한 시인의 시, 인터넷을 뒤져 주워다 감상하는 형편이랍니다. (전민선님 이 글 보시라고.)

 

++++

 

<미완으로 만나다>

 

선불로 다섯 달 치 수강료를 지불하고 가지 못한다. 재즈 스포츠 강좌. 화요일과 목요일 언제나 발목을 잡는 일상이나 심정. 객지에 정박중인 아이에게 송금을 하면서 먹먹하다 정물처럼 들어앉아 길이 아닌 곳을 정처 없이 배회하는 어미란 몰골로. 길이 아닌 곳을 늘 걷는 빌어먹을 정신의 수음.

 

그 파란을 살고도 아직 익숙하지 않은 세상의 길들과 사람과 풍경들을 심정 너머로 해찰하고 유리창을 닦는 청소도구를 샀고 상추와 쑥갓을 샀고 머리를 묶는 끈 하나를 샀고 휴대폰 요금을 정산한 일상의 수순으로 코발트 불루의 재킷 하나를 저문 호기로 입었다

 

참 곱다. 가을 하늘을 잠시 내려 입은 듯 곱다 심정조차 불현듯 환해진다. 축복처럼 환해진 심정으로 휘적휘적 모처럼 등등하여 돌아오는 길. 투합하여 돌아선 이름 하나가 나보다 먼저 내 집 앞 삼색 신호등 아래 형상도 없이 서 있다 오! 결국 다시 만나지는 내 목숨의 서글픈 미완.

 

 

<상처를 꽃처럼 두어>

 

다시 한 상념이 푸른 혼의 이탈을 첫사랑으로 꿈꾸다 저문 세월 모질게 데이고야 말았으니 어쩌랴, 심장에 당겨진 누군가의 혼불. 빛과 같으나 인습을 관통하고 내게로 와 박힌 형벌

 

모르스부호 같은 아라비아 숫자로 꿈처럼 수신한 망상의 날들. 불 같은 언어들을 은밀히 감추고 사소한 안부를 물었으나 아프구나. 일생을 데인 상처 언저리로 옮겨 붙은 뜨거움이라니

 

아침과 저녁 같은 황홀한 교신을 살아 잊고자, 한 번 더 홧홧하구나. 오랜 세월 감추었던 속 살의 치골을 발송하고 견딜 수 없는 것들을 더 견디라 묵언으로 종용하는 단단한 새날

 

이제는 진실로 회한의 면벽. 시간의 고리는 이미 낡았고 허공중에 흩어진 황홀한 밀어가 제 눈물을 외 사랑처럼 몰래 감춘다. 청록의 침묵과 부동으로 오래, 더 오래 살아 벌 받기 위하여

 

내 순금의 시간은 변절도 없이 크기조차 잴 수 없는 사모의 사리 한 알로 남아 살갑던 순간이 영원으로 그립다 빗장을 지른 소통을 담담으로 기록하다 기예 눈물 한 방울 툭.

 

 

<이별 >

 

이제는

어제의 신발을 담아낼 시간

두 눈 다 멀던 신열로

몸보다 영혼이 먼저 뜨거울 때

시린 바람을 작정으로 맞던 베란다여 잘 있으라.

 

사소한 수도꼭지여, 너도 잘 있으라.

튼튼한 빨랫줄과 서른 두 개의 빨래집게여

화단의 작약이여, 저 홀로 붉어진 줄장미여

천국처럼 기뻐 오르던 계단이여 무엇보다 춘몽 같은 아득한 침실이여

수음의 땀 몰래 씻던 낡은 샤워기여. 다 잘 있으라.

 

바람처럼 스친 춘정

홀로 겨워 제 풀에 피었다가

섭리로 이운 잠시의 노래를 예 두고 간다.

누군가 네 환한 정신의 몸을 다정하게 열어

다시 여문 꽃씨를 놓을 테니 안심으로 그만 나는 가리.

 

, 이 골목과

이 집 담을 객으로 지나칠지라도

이제는 완연한 타인의 집이여!

잠시 혼곤했던 꿈의 방이여

그러면 안녕, 첫 마음으로 작별하나니 부디 오래 잘 있으라.

 

 

<뿌리의 이름으로>

 

. . . .

라고 아직 말하지 말자

어느새 헐거워진

어느 모서리에서도 아직, 아직은 꽃의 본향에 대하여 아무 말 말자

 

지금은 세상 위로

눈먼 사랑이 자박자박 걸어가는 다만 직진의 시간

인연의 골 아래 섭리의 눈이 쌓이고

필경, 목숨으로 불러낼 당신의 노래 어딘가에 남았으리.

 

호흡마다 그리움이 살 오르는 오래된 無念

해지는 들판에서 오래 만나 흔들리지 못했어도 남아있는 날들에 대하여 아무도 궁금해 말자

세상의 생가지마다 몸 푸는 첫 것은 모두 그리 아프나니

숨어, 견딜 수 없을 만큼 더 아파라, 작신 아파 영영 침묵으로 몸져누워라.

 

 

<살비아를 회억 함>

 

가랑가랑 애끓는 심사로

시절도 잊은 채 붉어 울던

간 곳 없는 너를 쓰는 오십의 겨울 밤.

 

더 이상 살비아.

당돌하고 고혹한 네가 아니구나.

다 잊었는가. 그윽하나 단단한 만개를

 

청춘을 어루는

순정한 기도 여전하고

다시 맨몸으로

저문 사랑에게 마지막 옷 한 벌 하늘처럼 지어 입혀야 하는데

 

어지간한 추억도 시들하고

섹스 없는 날마다가 그다지 슬프지 않은 기꺼운 승복

뿌리에서 꽃 대궁까지 어제의 호시절만이 무시로 그리울.

 

++++

 

***곰통***

2012.02.13 07:59

 

동우 이상헌 선생님

이른 아침에 들려서 안부인사 드리옵고

전민선 님의 고운 시에 쉬어감에 감사드리며

오늘도 즐거운 하루를 시작하시기 바라옵니다

 

***동우***

2012.02.14 05:11

 

곰통님의 촌음을 아껴쓰는 근면하심과 성실하심의 자기관리는 놀랍습니다.

밤새 소설을 집필하시고, 낮에는 직장.

이렇게 일일이 찾아주시는.

스스로 언제나 깨어있게 하는 그 힘이 바로 작가의 저력이겠지요.

 

전민선 시인.

'고운 시'라고 하면 환하게 웃으실겁니다.

근데 저 언어가 그저 곱다랍지만은 않은듯.

끈적이면서 스스로 아파하는 저 표정의 붉은 맛.

가슴이 저리도록 시큰하기도 합니다.

 

곰통님께서도.

오늘도 좋은 하루, 건필하시기를.

 

***큰서방***

2012.02.13 22:52

 

동우님께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올리신 것 같은 전민선님의 시 4편을 읽으며,

앞으로도 덩달아 감상할 수 있는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이미지가 바뀌었군요.

영화 '타이타닉의 로즈' (케이트 윈슬렛)같은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는데..

현실세계로 회귀한듯한.... 혹시.... 손녀....? (좋다는 말씀입니다. )

 

***동우***

2012.02.14 05:18

 

큰서방님.

이번 그리신 그림은 언제쯤 선을 보이실건지.

전시회 작품이라도 블로그에 슬쩍 올려주심이 여하?

 

거듭 느끼는 바이지만 인터넷 공간의 기적.

이토록 상거하고 있어도 知人의 예술세계를 엿볼수 있다는...

또한, 시집을 찾지 않더라도 예제서 그녀의 작품을 접할수 있다는.

그림 관람료와 책값은 별도로 계산하더라도.

 

그래요, 큰서방님.

저 아이, 내 큰손녀 비니랍니다.

무얼 먹고 시어서 저런 표정인지, 무서운걸 보고서는 저리 찡그린 것인지.

이 아이, 여리고 겁이 많지요.

 

***후니마미***

2012.02.15 01:54

 

시인의 감수성, 시 속의 정서.

참 좋아요.

 

***동우***

2012.02.15 05:48

 

하하, 후니마미님.

전민선 시인의 '미완(未完)으로 만나다.'

시 속의 정서가 읽는자의 상황과 기분에 따라 마냥 우울할때도 있습니다.

어떤 몹쓸 기분일때 만나게 되는 또하나의 나.

조우하게 되는 그 미완(未完)의 내 꼬라지에 부아가 치밀어 오를때, 어제 대체로 그런 기분... (저조한 날의 기분에 속지 말라.. 이 말, 내가 전에 마미님에게 들려드린 말인데 )

 

"늘 먹먹하다. 길이 아닌 곳. 나의 길은 어디인가. 빌어먹을. 흔들흔들 딛는 곳마다 흔드는 나의 미완(未完). 고비고비 마주치는 저 낯선 나. 숱한 파란을 겪고도 여적 낯설기만 한 이 노무 세상. 저 미완의 나. 골라 지르는 것마다 연이어 터졌던 저 배팅의 대박. 손쉽게 골라 잡았던 저 기분의 대박. 저 어리석음의 대박. 저 오류의 대박. 거꾸로 부르는 세노야. 기쁜일 있거들랑 바다에는 주지 말라. 내가 내게 던지는 파렴치와 무배려와 무례함. 저문 호기로 술을 마셔도 문득문득 마주치는 내 목숨의 서글픈 저 미완. 달나라로 도망 가려해도 끈질기게도 달라붙는 내 목숨의 저 미완. 그예 눈물 한방울 툭. 저 미완의 나에게 경배하라."

 

전민선 시인의 시, 어떤 평자가 '칸나'와 같다고 하였는데.

여성성, 아픔, 붉은 색감의 어떤 진한 이미지가 남자인 내게도 진하게 느껴져요.

 

, 후니마미님.

요즘 페이스북 재미 드셨던데, 나도 거기서 노닥거려 볼까요?

 

***후니마미***

2012.02.15 13:32

 

마십시오, 동우님.

저는 블로그 취향인듯 합니다

결국 페이스 북에서도 책 이야기 하게 되는데 페이스 북은 긴 이야길 나누는 공간은 아닌 듯 합니다

 

***동우***

2012.02.17 05:10

 

날더러는 '마십시오'하시면서 페이스북은 혼자 즐기고 있더군요. 요즘.

 

***저녁산책***

2012.02.15 09:49

 

전민선 시인님의 시.. 참 먹먹하고도 아름답네요.

잘 읽고 갑니다.

이따 다시 와서 찬찬히 음미하렵니다.

(지금 운동 가야할 시간이어서요.ㅜㅜ)

 

동우님! 행복한 하루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동우***

2012.02.19 06:10

 

흐음, 저녁산책님.

여성적 아름다움....

일상에 스며드는 여성적 아픔...

여성의 먹먹한 삶.

전민선님의 시는 마냥 여성입니다.

남성도 절절하게 느낄수 있는.

 

일요일입니다.

저녁산책님의 행복한 하루...

 

***뜨락***

2012.02.18 23:26

 

여성의 삶, 여성이라는 속성적 굴레. 그리고 여성이 영위하는 일상이라는 범속한 상투성.

그러나 일상 속에서 문득 마주치는 낯선 자아는 얼마나 선연한지요.

그러길래..전민선 시인의 감성은.. 오늘 저에게 더욱 붉습니다.

 

오늘 제가 그러했어요. 동우님.

익숙한 사람들과..제가 순치된 사물들과 어울려.. 술잔 나누고 조금전 돌아 왔답니다.

추운 거리를 지나.. 내 집은 이리도 따뜻하지만..

나이 든 나의 붉음은 이리저리 뒤척이고.

 

그래서 동우님의 블로그 여기저기 뒤적입니다.

동우님의 옛 얘기들... 동우님의 적빈의 보배들...

 

전민선시인은 아마도 제 또래쯤 될듯.

서울오시면 동우님, 전민선님과 우리 함께 술 한잔 나누어요.

멋지게 쏠께요. ♬♬♪

 

***동우***

2012.02.19 06:12

 

하하, 뜨락님.

나들이 퍽 즐기는 시인은 아니지만.

뜨락님과 함께 술잔 나누기...

말씀만으로도 설레입니다.

 

뜨락님.

부산 오시면 내가 멋지게 쏠께요.

 

***연두***

2012.02.26 22:34

 

홀라당 벗기워

저자에 세우신 당신,

이 날 것들을 어쩌자고^^

꽃피고 새우면 벗기던가 하실 것을..춥습니다..

일생, 추웠던 자..겨울의 말미를 다녀갑니다...

 

무엇보다..

제 못난 이름을

불러 주신 곰통, 큰서방, 후니마미,뜨락님..

생면부지 제 이름을 불러 주셨기에...

꽃은 언감생심이나 한 올 풀로나마 다시 뵈옵지요..

 

고맙습니다..오라버니..

당신의 저변, 참 아름다운 이들도..모두 고맙습니다 -

 

필명이랄 것도 없지마는

근자에 연두라는 단어에 제가 맥을 못추겠습니다^^

왜냐고 제발 물어봐 주십시요^^

 

여언두 하고 부르면

소싯적에 잃었던

순결조차 되찾아 올 것 만 같더이다.^.

 

그리하여 한 시절

뾰족햇던 붉은산을 허물고..

연두라고 명명하며 다녀갑니다...여언두~~^^

 

참으로 미거한 인사를

마호가니 향 그윽한 당신 성소에

세월로 세워 주신..그 한량없음에 깊게 읍합니다...

 

아비와 어미의 기저귀를 나란히 채운 밤..

-

저 졸작들은 서너줄 고쳐 쓰기도 하였으리.

이거야 말로 진정한 미완이구마는 아고 남사시러버~~

뜨락님...당신의 초대를^^제가 기억해도 되려는지요??^^하하하~고맙습니다^^

 

***동우***

2012.02.27 05:42

 

연두님.

, 자신의 시가 읽혀지는데 홀라당 벗기운 느낌이라니.

퇴고하여 고쳐 썼으면 고쳐 쓴 걸 소개해 주시면 될 것을.

 

시인이 맥을 못춘다는 연두라는 어휘.

짐작 못할바 없지요.

시인이 자신의 손주딸에게 붙여 준 별칭의 아명인줄.

나도 어린 계집아이 둘의 할비인걸.

 

예전에 무당벌레의 그 색감을 좋아하신걸 압니다.

연두라는 음감에서 그도 좀 느껴집니다그려.

 

시인의 시 뿐 아니라.

늙으신 친정 아버지 어머니의 기저귀 수발하시는 따님으로서도 전민선님은 참 아름답습니다.

 

외딴집나무, 붉은산, 도깨비풀...

그리고 이제 연두님.

 

멋지게 쏘신다니, 함께 뜨락님의 초대 기억합시다.

그 회동이 부산이라면 당연히 내가 쏘아야 합지요만.

 

자주 들려 주시우.

그리고 늙으신 효녀도 고우시지만, 시도 더욱 곱다랗게 게으르지 마시고..

 

***뜨락***

2012.02.27 16:04

 

전시인님.

동우님 서울 오시면 함께 뵈어요.

.

 

***창섭***

2012.03.27 12:22

 

전민선시인.

뼈저리게 슬프네요

글귀가

문학을 모르는 나도.

 

'내 것 > 잡설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후의 추신쿠라 (1,4,3,3)  (0) 2019.10.11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1,4,3,3)  (0) 2019.10.07
불을 지피다 -잭 런던- (1,4,3,3)  (0) 2019.10.07
2011년 11월 단상 (1,4,3,3)  (0) 2019.10.04
마사 퀘스트 (1,4,3,3)  (0) 2019.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