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오 헨리]]
<인생은연극이다><사랑의 봉사><중간휴식시간>
<인생은 연극이다>
-오 헨리 作-
***동우***
2015.07.24 05:30
오 헨리의 ‘인생은 연극이다’.
옛날 정능의 너른 개천가 (미아리 고개마루에 미도극장이 있었고 그 아래 주택가에 어머니의 박의원이 있었고 그 건너편..지금은 흔적도 찾을수 없는)에는 가끔 커다란 천막이 쳐졌습니다.
울긋불긋 회칠한 얼굴을 한 광대의 나팔소리에 어린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지요.
가마니 깔린 객석을 돌면서 자신의 사진(브로마이드 같은..)을 파는 하얀 분을 바른, 서커스의 소녀는 참말 어여뻤습니다.
그러나 나는 1부 서커스가 끝나고 공연하는 2부의 연극이 더 좋았었습니다.
신파극.
얼마나 슬프고, 때로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내용의 단막극이었던지.
가마때기 위의 관객들을 울리고 웃기면서 그야말로 들었다 놓았다 하였습니다.
체홉을 신파조로 번안한 소극(笑劇)도 있었다고 나는 기억합니다. (후에 체홉을 읽고서야 아, 그게 이 얘기였구나 하였지만)
그 가설천막 무대에는 후에 유명스타로 떠르르 이름을 날린 연예인이나 극작가나 음악가들도 꽤 출연하였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 시절 서커스 공연은 바로, 이른바 보드빌(Vaudeville)이었지요.
결혼식을 마친 바로 그 날, 새색시에게 당신을 향한 사랑을 포기할수 없다고 애탄(哀嘆)하는 남편의 절친한 친구.
그를 단호하게 뿌리치는 신부, 그 장면을 오해한 남편은 여자 곁을 떠납니다.
몇시간 짜리 부부였지만, 여자는 남편을 기다리면서 2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두 남자가 여자의 집에 세 들었습니다.
한 남자는 그 옛날 떠난 남편이라고 여겨지는 남자이고, 또 한 남자는 신비한 분위기의 음악가였는데,,,
여자의 마음은 자꾸만 음악가에게 끌리지만, 옛 남편을 외면할수는 없습니다.
옛사랑과 새사랑...
자신을 두고 떠난 남편의 후회와 사과를 기다리는데, 이게 왠일입니까?
음악가가 바로 그 남편이었던 겁니다.
「어머! 당신은 대체 누구에요?」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그가 잡은 손을 뿌리치고 나서 외쳤다.
「나를 기억하고 있지 않나요, 헬렌? 언제나 당신을 가장 깊이 사랑한 이 나를? 존 데라니요. 만일 당신이 나를 용서한다면……나는……」
그러나 그때 그녀는 벌써 거기 있지 않았다.
그녀는 뛰면서, 곤두박질하면서, 껑충거리면서 계단을 올라가 음악가 사나이―이미 그녀를 잊어 버렸지만, 그 두 번째 인생에서 그녀를 유일한 여성이라고 생각한―에게로 달려갔다.
그녀는 그 앞에 쓰러지면서 울고불고, 노래 부르듯이 외쳤다.
「프랭크, 오, 프랭크, 나의 프랭크!」
이 소설, 서정주의 시 ‘신부’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사랑과 오해와 세월과.....
오 헨리의 '인생은 연극이다'
작가는 슬몃 보드빌을 빗대어 이 사연을 신파조로 묻습니다.
이 이야기,
비극인가요? 아니면 한편의 소극(笑劇) 입니까?
뉴욕 뿐이겠어요?
수많은 사람이 희로애락으로 부대끼며 사는 부산이며 서울이며...
골목마다 마을마다 동네마다 집집마다 무슨 사연인들 없겠어요?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인생은 신파입니다.
우리 여인네들 아침마다 훌쩍이게 하는 아침 드라마, 막장드라마라고 쯧쯧 혀찰거 호리도 없다오.
<사랑의 봉사>
-오 헨리 作-
***동우***
2016.07.04 04:09
오 헨리의 '사랑의 봉사'
오 헨리의 다른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과 비슷한 컨셉의 소설이로군요.
사랑이 있는데 예술이 대수런가요.
델리아와 죠, 사랑스런 한쌍입니다, .
지금 이 시각, 부산하고도 영도의 창밖에서는 우르릉 꽝! 번쩍번쩍!
본격적으로 한줄금 할 기세입니다. (은비님, '한줄금'이라는 어휘, 북한말이라네요)
***庭廈***
2016.07.06 07:55
연사흘을 장맛비가 굳세게 퍼붓고 있답니다.
어제 저녘답엔 개울물 구경 나갔어요.
흙빛으로 철철 돌다리 위를 타넘는 물줄기는 힘이 있었지요.
힘차게 흐르는 물을 내려다 보며 '염소는 힘이 세다''염소는 힘이 세다' 단원 서두마다 내뱉던(?ㅋ)
문장을 떠올리며 나는 '물살은 힘이 세다' '물살은 힘이 세다'하면서 웃었더랍니다.ㅎㅎㅎ
베란다에 앉아 먼산 산허리에 감겨드는 비먹음은 구름들을 보느라
멍때리기 삼매가 매일 계속되고 있어요.
초록으로 뒤덮인 눈아래 풍경이 참 좋습니다.
동우님의 여름이
기쁨이길 바랍니다.
***┗동우***
2016.07.07 04:53
정하님.
내 아내 이름 비슷한... 뉘신지 이름이 참 곱수다레. ㅎㅎ
물살의 힘이야 염소의 힘에 비할라구요.
어제 본 동영상, 계곡에서 웃고 떠들던 한무리의 캠핑족 젊은 남녀들이 눈깜짝하는 한순간에 물살에 떠밀려..
큰물을 겪은 사람들은 호랑이보다 불보다 무서운게 물이라고들 하지요.
그래도 <한줄금> 퍼부었으면 좋겠ㄴ느데, 북녘에 퍼붓는 장마비, 근데 이상하게도 남녘의 빗줄기는 시원스럽지 않아요.
정하님의 여름도 기쁨이시기를.
<중간 휴식시간>
-오 헨리 作-
***동우***
2016.06.27 04:04
오 헨리의 '중간 휴식시간'
유머 가득한 문장.
영어 까막눈이어도, 원어(原語)로 읽는 사람의 반만큼은 충분히 웃겠습니다. 하하
5월 휘영청 달이 밝은 어느날 밤.
저녁식사가 식탁에서 싸늘하게 식고있는 대신 매카스키 부인은 시나브로 뜨거워지고 있는데.
얼근하게 한잔 걸친 매카스키 씨가 들어섰습니다.
결전의 시간입니다.
몇마디 언어 펀치가 교환되는가 싶더니 급기야 강펀치가 상대를 타격하기 시작합니다.
냄비 돼지등심구이 푸딩 치즈덩어리 대야가 공중을 날아다닙니다.
그때, 어퍼커트 강펀치가 작렬하려는 순간 밑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우리에게도 아이가 있었더라면...
아이 생각에 우리 격투사 부부의 마음이 잠시 노골노골해집니다.
공이 울리고 바야흐로 중간 휴식시간(Between Rounds)에 들어가는겁니다.
그런데 잠시후 침대 밑에 자고있는 아이를 찾았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부부의 전의(戰意)는 다시 불 붙습니다.
격투는 다시 이어집니다.
철제기구와 도자기 그릇과 부엌살림이 와장창 우당탕 부딪치는 소리가 순찰을 도는 경찰의 귀에 요란합니다.
허구헌날 저러는걸 경찰인들 어쩌겄수?
속으로 남편이나 응원할 밖에요. ㅎ
부부싸움. 아무리 살벌하더라도 칼로 물베기.
우리의 매카스키 부부. 뜨거워진 김에 저날 밤 아이나 하나 만들었으면 좋았을텐데. 하하
6월의 마지막 주일, 유쾌하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어줍이***
2016.06.27 06:40
어제도 그제도 이미 반쯤이나 사위어 든 붉은 달은
자정넘긴 늦은 밤을 도와 조용히 동녘에 솟았지요.
일그러진 달이 둥그러지면 여름은 그제사 무르익을 텝니다.
요며칠은 머피부인 하숙집 동네의 봄 못지않게 싱그러운 날씨였습니다.
바람은 잎새에 키스하고, 여울물은 가슴속을 간지럽히는...
갤러거 술집이라도 들러서 주머니속 몇푼의 동전마져 탕진하고픈
상큼하게 아름다운 여름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ㅎ
매카스키 씨, 당신도 아일랜드 촌뜨기였군요.ㅎ
당신들처럼 그렇게 떠들썩하니 이전저런 소소한 일들이 벌어지는
동네에서 살아야 제맛 난다는 생각이 글 읽는 동안 맴도네요.
이 동네는 너무나도 조용하거든요.ㅋ
공기를 흔드는 소리는 겨우 까지 몇 마리의 외마디 짖음 뿐이랍니다.
펠런이든 펫이든 하루죙일 나풀거리며 온 거리를 쏘다니며 말썽부리는
아이가 있는 집...마을...거리... 그 게 사는 맛이지요.
오 헨리
오우~ 헨리!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ㅎ
***┗동우***
2016.06.28 04:43
어줍이님.
동녘에 반쯤이나 사위어 든 붉은 달.
나는 달을 별을 본지 언제인지 모르겠네...
조용한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나 역시 때로 떠들썩하니 이런저런 소소한 일들이 벌어지는 곳에 잠기고 싶지요.
사람사는 맛... 그래서 자주 시장길을 걷습니다.
어줍이님 사시는 동네는 그렇게 조용한가요?
사시는곳 이름난 도시의 아파트일거라고 생각됩니다만, 참 좋은 환경이로군요.
장마 시작이라지요?
남녘땅 어제는 가는 빗방울 성글게 듣더니만.. 여름 오기전 시원스레 한줄금 쏟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분위기가 낯 익은 분. ㅎ
***송현***
2016.06.30 13:54
신혼 때 다혈질 부산 말씨를 쓰는 집에 세들어 살았습니다~
허구헌날 거의 끝장을 치르듯 싸우다가도.... 아직도 잘 사십니다
어이그 쟈가 내 아님 한순간도 못싼다~
사실은 행복한 부부들 이었습니다 ^^
***┗동우***
2016.07.01 04:46
하하, 송현님.
매카스키 부부 또한 그럴테지요.
*****************
-독서 리뷰-
[[오 헨리]]
<식단표의봄><참다운회개><1천달라><세상사람은모두친구>
<식단표의 봄>
-오 헨리-
***동우***
2015.07.21 05:21
오 헨리, 자네.
이른 아침부터 사람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는군.
자네, 어제는 표정이 좀 어둡고 춥더니만(가구달린 셋방) 오늘은 이토록 따숩네그려.
삶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애환의 마디마디.
세월따라 인생따라, 세월이 그러하고 인생이 그러한 모양일세.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여름이 저물면 조락의 계절이 오고..
지금 내 방에는 솔베이지의 노래가 흐르고 있다네.
긴 세월 백발이 되어 비로소 해후한 솔베이지와 페르귄트.
만나자 이별이라, 사랑하는 이와 이제 영결(永訣)해야하는 솔베이지.
조수미가 노래하는군.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은 간다 세월은 간다...
자네가 들려주는 삶의 애환.
같은 뉴욕의 하늘 아래.
어느 셋방에서는 바슈나가 가스를 틀어 자살하고 어느 다락방에서는 세라가 사랑하는 워월터와 민들레의 기약을 꿈꾸고 있네.
봄은 초록 옷을 입은 귀부인인가.
대지가 선택한 사람, 봄처녀의 신랑이 되고 싶은 사람만이 봄을 신부로 맞이 할수 있네그려.
창밖을 내다보네.
뉴욕에는 봄이 왔다는데, 부산의 초여름 비는 오지 않네.
비를 좋아하건만.
<‘봄이 왔어, 새러, 정말 봄이 왔다니까. 나 좀 보라구. 내 숫자가 그걸 나타내고 있잖아? 몸매가 아주 아름다워. 새러, 아름다운 봄의 몸매야......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슬픈 얼굴로 창 밖만 내다보고 있지?’>
부드러운 봄기운이 스며있는 봄 요리, 자네는 봄 식단의 그 맛을 즐기는가 보이.
한결 산뜻해진 수프의 맛은, 러시아 순무와 함께 구운 돼지고기는 앙트레에서 빠지는 모양이지.
푸른 소스와 더불어 등장하는 양고기는 어떤 맛일지, 애정을 깃들여서 차츰 약하게 조리되는 굴 요리는 어떤겐지.
봄 식단에서는 파이의 종류가 많아지고 푸딩에서는 기름기가 사라지는가 보지.
그리고 겉옷을 길게 걸친 소시지라...
봄의 정경(情景)과
요리(料理)의 정경과.
그리고 세라, 저 처녀 마음의 정경.
그 정경들, 내가 영어에 통달하였더라면 오 헨리 자네는 내 마음 더욱 따스하게 주련만.
북녘에도 그렇다더만 남녘에도 병아리 눈물처럼 찔끔거리는 비.
비내리는 창 밖, 그 정취에 늙은 마음 실어 보련만.
인색한 장마로다. ㅎ
<참다운 회개>
오 헨리 作-
***동우***
2013.09.21 06:21
멋쟁이 지미 발렌타인.
멋쟁이 벤 프라이스.
따뜻한 작가, 오 헨리.
***고향***
2013.09.23 07:50
아름다운 결말이라 마음이 훈훈해요.
오 헨리는 정말 따스한 사람인가봐요.
***동우***
2013.09.24 05:47
그렇지요? 고향님.
오 헨리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따스함.
품성이 따뜻하지 않은 사람이 이런 소설을 쓸수는 없겠지요.
오 헨리는 횡령으로 감옥살이도 했다는데, 그런 우여곡절이 인간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눈을 따스함과 유모어 가득하게 만들었을 것.. ㅎㅎ
<1천 달라>
오 헨리 作-
***동우***
2015.02.08 04:11
오 헨리의 1천 달라.
바람둥이 낭비쟁이.
평판 나쁜 질리언에게 큰돈도 푼돈도 아닌 1천달라.
풍자적인 맛, 원문으로 읽으면 더 진할텐데 내 무식한 영어가 아쉽습니다만
오 헨리는 언제나 유쾌하고 따뜻합니다.
***eunbee***
2015.02.08 12:22
그런데 동우님,
질리언은 그 1천달러를 준 그 여인의 사랑을 얻어, 나머지 유산도 그여인과 함께 누리게 되는건가요?
아침에 이 이야기가 쉽게 해석되지 않아서 두번이나 읽었다니께요.
내가 리딩북 읽을 적에 두번씩 읽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그건 동우님 댓글(독후 멘트?)때문이 많은데...동우님 감상을 명쾌하게 캐치하지 못하는 경우에 그렇게 하지요.ㅎ
맹초성 댓글 남기고 갑니다.
영화보느라 굶은 브런치 이제 먹으러...ㅎㅎㅎ
(식탁 앞으로 ㅋ)
***동우***
2015.02.09 04:56
번역이 썩 나쁜건 아닌데, 확실히 원문의 은유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내가 읽은 느낌은 이렇습니다.
헤이든 양에게 사랑을 고백하였지만 헤이든양은 바람둥이 놈팽이 질리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듯 합니다.
그렇지만 질리언의 마음씨는 평판과는 달리 참으로 따뜻한 사람이지요.
사랑을 아는 사람,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하여 5만달러라는 거금을 포기하고 맙니다.
모르지요, 그를 기화로 다시 헤이든 양에게 대쉬할런지.
곳곳에 질리언의 허세롭고 낭비적이고 쾌락주의적인 면모를 은유하는 문장의 매력.
질리언은 마치 이 세상을 아주 하찮게 보는 태도로 어슬렁어슬렁 다가갔다....이 문장 참 매력적입니다.
마지막 질리언의 휘파람 소리를 들으면서 '이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라고 혀를 차면서 딱하디 딱한 표정을 짓는, 질리언의 순정한 마음을 알리없는 두 변호사의 표정이 여실합니다그려. ㅎㅎ
***설레임 ***
2015.02.12 21:35
잘 읽고 갑니다
이글을 읽으면서 왜 성경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뮤가 자꾸 떠오르는지 예수님이 이 게으르고 나태한 종아 꾸지람이 생각납니다
땅속에 묻어놓은 달란트 ㅎ ㅎ
은유이지만 크게 와닿는 저는 마지막장에서 희망
을 건져올려봅니다
새로운 탄생의 질리언을 예고하는것 같은 ㅎ
***동우***
2015.02.13 05:04
설레임님.
사랑하는 이에게 무엇이든 이로움을 베풀려 하는, 질리언의 저 선한 달란트.
말씀처럼 사랑이란게 바로 희망입니다그려. ㅎㅎ
***eunbee***
2015.02.09 09:52
아, 이 상큼함이라니...
다시 읽었어요.
동우님 안내로 적어도 이 오 헨리는 제대로 감상되었어요.
바비처럼 휘파람 불고 싶은 기분.
예전엔 독서의 올가즘도 있다고 주장했건만. 에구구
어디부터 잘못된거야?????ㅠㅠ
영화
동우님 안내로 다시 띄어
재감상 하려구요 ㅎ.
감사~~^^
<세상 사람은 모두 친구>
-오 헨리 作-
***동우***
2017.08.07 04:27
'세상 사람은 모두 친구'
오 헨리, 역시 따스한 소설입니다.
강도와 강탈 당하는 자,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끼리의 깊은 동류감.
저날 밤, 두 사람의 주탁(酒卓)에는 동서고금 류마치스에 관한 온갖 이야기들이 질펀하였을겁니다.
저처럼 세번째 부류의 강도를 나는 만난 일이 없습니다만 (아하, 첫번째고 두번째고 간에 나는 강도를 당한 일이 없었군요. ㅎㅎ), 말 그대로의 저 동병상련(同病相憐)은 충분히 공갑합니다.
늙은이들 나누어 갖는 대화들은 대부분 건강에 관련된 것이지요.
늙어 쇠(衰)한 몸뚱이, 건강이나 의학정보보다 절실한게 있을라구요.
그리하여 노인은 모두 친구랍니다.
늙어 갈수록, 산 것들의 친구가 죽음이듯이.ㅎ
-계속-
-독서 리뷰-
[[오 헨리]]
<물방아있는 예배당> <시인과 농부>
<물방아 있는 예배당>
-오 헨리 作-
***동우***
2015.07.26 05:52
오 헨리의 ‘물방아 있는 예배당’
오래전 읽었던 소설.(박순녀의 '영가(靈歌)'라는 소설이었을겁니다.)
6.25 휴전 얼마 후.
삼팔선은 영원토록 허물어질것 같지 않은 철벽이었습니다.
새도 바람도 구름도 넘나들수 없을 정도, 철저하게 단절된 이산가족들의 인식..
북에 가족을 두고 내려온 가난한 중년의 화가가 있었습니다. (이중섭이 모티프였던지)
화가는 월북한 애인이 있었던, 복잡한 심리상태의 여자 아나운서와 재혼을 하지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남북으로 갈라진 남자와 여자는 서로 연민하고 서로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런데 첫날 밤, 신부를 안고자 이불 속으로 들어오기전 남자는 스톱모션으로 정지한채로 한동안 멈추어 있습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 잠간의 멈춤은 북에 두고 온 어린 딸(소아마비)에게 전하는 소리없는 기도의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아비가 이렇게 살고 있듯 제발 너도 살아있거라. 오늘 밤도 잘자거라 내 딸아."하는 (그 책 찾을수 없어서 대충의 기억...)
그것은 전에도 그랬을 것이고, 결혼 후에도 남자는 이불 속 들어오기 전이면 어김없이 수행하는 하나의 의식이었습니다.
딸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아버지는 아버지를 목매도록 찾아 부르고 있는 딸의 환각으로 견딜수 없습니다.
후처가 된 여성(아나운서), 사랑과 연민과 시기(猜忌)의 감정의 미묘함이 정치하게 묘사된 소설이었는데..
결국 화가는 미쳐버리고 맙니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아버지를 사랑하는 딸.
'오누이'의 이미지처럼 이 테마는 내게 사무치는바 있습니다.
매스컴에서는 괴물 아버지도 괴물 딸도 없지 않아 그런걸 접할 적마다 나는 정말 온 세상이 서늘해 진답니다. ㅎ
오 헨리의 물방아 있는 예배당.
나 역시 이런 행복을 감히 꿈 꾼답니다.
이 낫살, 이제 밀가루 뒤집어 쓸 일도 없겠고 내게 어린 아그레이아도 있을리 없고, 있다면 아그레이아 대신 비니미니일테지만 말입니다.ㅎ
<아그레이아가 네 살 때, 그녀와 아버지 사이에는 날씨만 좋으면 빼놓지 않고 일과가 날마다 오후가 되면 반복 되었다. 저녁 식사 준비를 마치면 어머니는 반드시 아그레이아의 머리를 빗어주고 아름다운 에프론을 입혀, 길 건너편의 방앗간에 아버지를 모시러 보냈다. 방앗간 주인은 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보면 전신이 가루로 하얗게 되어 마중을 나온다. 그리하여 손짓을 하며, 그 지방에서 잘 알려져 있는 방앗간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 노래는 이러하였다.
‘물레방아 돌고 돌아 곡식을 찧네.
가루 쓴 방앗간 영감은 언제나 싱글벙글.
하루종일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일하며,
사랑하는 자식을 생각하노라.‘
그러면 아그레이아는 그를 향해 웃으며 달려가서 외치는 것이었다. “아빠, 담스를 집에 데려다 줘.” 그는 아이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역시 방앗간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에 돌아가곤 하였다. 저녁때가 되면 언제나 이 일이 되풀이 되었다. >
마지막 대목에서도 저 딸은 얼마나 이쁜지요.
<"저는 이제 겨우 아버지를 찾았으니까요. 당분간은 아버지와 단 둘이 있고 싶어요. 그래서 그 이더러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몽매에도 그리던 딸을 찾고 딸로 인하여 넘칠듯한 아비의 행복.
아브람아버지, 저 영감쟁이 늙마에 대복이 터졌습니다.
딸 못보고 먼저 죽은 아내가 불쌍합니다그려.
나는 예전, 체홉에 비하여 모파상을, 모파상에 비하여 오 헨리를 좀 가볍게 여기지 않았나하고 근자에 반성(?)하고 있습니다. (오 헨리와 슈베르트, 소박하고 따스함으로 오버랩 시키기도 합니다)
낫살의 여린 보편성은 깨우침이 아니라 삶에 젖어드는 순리(順理)인가 봅니다.
바하 모차르트 베토벤 비틀즈 패티김 심수봉 슈베르트 아그네스 발차 플라치도 도밍고 카라얀 오이겐 요쿰 라흐마니노프와 이미자 사라브라이트만 최백호 심포니 실내악 뽕짝 뮤지컬 동요 민요 판소리꺼정..
모두 모두 나는 좋습니다.
저 부녀의 해후
아버지는 밀가루를 뒤집어 쓰고 물레방아 노래를 부릅니다.
그 가락을 듣고 딸은 자기도 모르게 외칩니다.
"아빠 담스를 집에 데려다 줘!"
무지한 광대 잠파노는 어느 마을을 걷다가 왠 시골 아낙이 흥얼거리는 한소절의 멜로디를 듣습니다.
아, 젤소미나의 멜로디.
그날 밤 잠파노는 어둔 밤 해변에서 몸부림치면서 흐느낍니다.
"나는 외톨이야!" (영화 ‘길’)
주막 여인의 판소리 한가락을 듣고 나그네 청년은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흐느낍니다.
아, 버리고 떠나 온 장님 누이. (서편제)
냄새가 기억중추에는 강인한 흔적을 남긴다는데 (푸르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냄새라는 매질(媒質)이 불러내는 것은 옛 서사가 아니라 일단은 어떤 정서입니다.
정서가 낚시가 되어 숨어있던 기억을 낚아 올리는 겁니다.
서사기억은 쉽게 잊혀지지만, 정서기억이 보관된 뇌 속 편도체라는 하드웨어는 튼실하답니다.
냄새가 그러하다지만 노래가락 역시 과거의 정서를 불러 깨우게 하는 것도 없을겁니다.
존재 속에는 존재가 겪었던 무언가 따뜻한 것이 추상의 형태로 들어 있습니다.
구체적 기억의 영역으로 끄집어 올려지게 하는 미끼, 한소절 노래가락...
골목길 담벼락에 오줌 갈기면서 어느 집에선가로부터 희미하게 들렸던 슈베르트.
그 때 나는 울었던가.
이제 찍찍거리는 그 라디오 소리 내게 들리지 않으니 청춘의 기억은 내게 없으리... ㅎ
***teapot***
2015.07.28 00:11
우선 동우님께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동우님 방에 오면 꼭 만나는 은비님께도 ~
동우님께 전화 한통 달랑 드리고 인사도 못드리고
그냥 와버려 죄송합니요!
은근히 수줍움을 탄다고나 할까(주위에선 안 어울린다 하지만~)
정작 멍석 깔아주면 못하는 승질이기도 합니다~ ㅎㅎㅎ
이번에 고국다녀오고는 향수병에 걸리는게 아닌가 싶게
아무나하는 귀농이 아닐진데.
텃밭가꾸고 시골에서 살고 싶다하는 생각(현실을 잊은 채~)을 많이 한답니다 ㅋ
여전하신 동우님이신것 같고~
은비님은 파리에 계신지 은비님방에 마실 다녀 와야겠습니다
반갑습니다!!
***┗동우***
2015.07.28 04:58
티팟님.
방가 방가!
어느 VIP 국빈보다 바쁘셨던 귀국의 나날..캘리포니아 귀환하신 후 티팟님의 짤막한 블로그 언질로 짐작하였습니다.
전화기 너머 티팟님의 목소리, 이분이 곧 손주보실 바로 그 티팟님인가 하였더랬지요. ㅎㅎ
긍정적이고 쾌활한 티팟님의 성격이 확 묻어나는 음색과 톤이었어요.
만나뵙지 못하여 아쉬웠는데, 고백합니다 티팟님. 은근히 수줍음을 타는건 내 쪽이라오. 핫핫
귀농이 아니시더라도, 이제 아드님 코리아에서 자리잡으면 고국에서 늙마를 보낼 계획 갖으시는 것도 바람직하리다.
한국 산천 그림 그리시면서..
티팟님댁 자주 들르겠습니다.
자주 뵈어요, 티팟님.
***eunbee***
2015.07.28 01:58
오 헨리의 이 소설도 좋았지만 난 동우님의 댓글이 더 마음이 닿아요.
그리고 동우님.
몰개월의 새, 나도 월남전과 무관하지 않답니다.
모바일 손꾸락 동작은 불편해...
커단 화면 우두두 거리는 키보드 소리가 그리운데. ㅎ
***┗동우***
2015.07.28 04:50
은비님.
'오 헨리'하면 그랬지요.
간결한 문체로 (상투적인?) 선량한 캐릭터를 등장시켜서 짜임새있는 에피소드(종장에 반전이 있는 재미로움으로)로 쓰는 작가, 소년기 즈음의 연배에게는 무언가 교훈적인 느낌도 없지 않은.
얘기했지만, 3대 단편작가로 회자되는 체홉과 모파상과 오 헨리.
오 헨리는 모파상에 한참 못미치고 모파상은 체홉에 조금 못미친다는 내 선입견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은비님과 함께 읽었던 모파상도 그렇거니와 이번에 오 헨리를 여러 편 읽으면서 그 따위 선입견이 얼마나 못난 것이었던가 느꼈습니다.
동요를, 안데르센을 느끼는 감수성을 어찌 폄할수 있을꺼나 하고.
비평의 눈이라는게 얼마나 낫살에 따라 자의적인 것인가를. ㅎㅎ
몰개월의 새.
월남전과 무관하지 않으셨다니, 은비님의 한시절 좋아하시는 뉜가..? 하하
커단 화면 우두두거리는 키보드.
은비님의 적실한 표현.
나는 더욱 그렇지요, 아무리해도 모바일 글쓰기에는 익숙해지지 않네요.
구글에서는 음성인식의 인식율도 높기는 한데.
일본 체류하시는 홍애님은 P/C는 닫고 모바일 SNS로만 출몰하시는데 댓글 하나 달지도 못하겠어요.
그러하니, 리딩 북도 모쪼록 독자분들께 조촐한 새벽파티가 되었으면. 하하하
<시인과 농부>
-오 헨리 作-
***동우***
2015.07.22 05:49
오 헨리의 ‘시인과 농부’
같은 제목, 주페의 오페라 서곡 '시인과 농부'와는 관계가 없겠지요?
시인.
자연을 벗삼아 살아온 시인의 노작(勞作)인 전원시(田園詩)는 편집자에게 툇자를 맞습니다.
"기교를 너무 부렸소."
시골이라고는 차창밖 풍경으로 스처 보았을뿐 생전 도회지를 떠나본 적 없는 소설가가 장난삼아 긁적인 전원시 '숫사슴과 여우'
그런데 편집자는 그 작품을 극찬합니다.
"나는 곧 그것이 대자연과 심금이 닿은 인간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지요. 마지막 구절의 기교도 그런 점에서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었어요. 평범한 비유를 사용한다면, 이건 숲이나 들에서 자란 자연아가 유행하는 옷을 걸치고 브로드웨이를 걸어다니는 격이지요. 그 복장 밑에 진실한 인간의 얼굴이 보여요."
농부.
머리에는 지푸라기까지 묻힌 농투산이 몰골 그대로 거금을 들고 대도시의 다운타운을 활보하는 사나이.
미꾸라지처럼 반지빠르고 교활한 도심의 사기꾼들은 감히 요 촌놈을 속여 등처먹을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지나친 촌무지렁이의 면모를 고차원적인 사기꾼의 분장 쯤으로 여겼기 때문이지요.
"나한테는 눈속임을 못하네. 나는 자네 분장에는 조금도 반대하지 않네. 그러나 자네는 좀 지나치네. 이스라엘의 루벤족들도 79년 이래로 그런 꼴은 하지 않네. 그런 몰골을 하고서는 부루클린에서 싸구려 시계 하나 걸려들기 어렵네."
농부가 신사복으로 빼입고 빤지르르하게 면모를 일신하자, 비로소 도시의 승냥이들은 농부를 봉으로 여겨 거금을 강탈합니다.
시인과 농부.
풍자적이지만 신랄한바 있습니다.
이와 같은 아이러니.
오 헨리도 경험했던가 보지요.
정성을 기울인 작품이 혹평을 받고 가볍게 만든 작품이 의외로 대박을 터뜨리는.
문학과 회화와 같은 예술작품에서 흔할듯 합니다.
타인에 대하여 때로 그럴 때가 있습니다.
상대의 진면목을 간파하려고 딴에는 치밀하게 머리를 굴리는 것이지만, 그런 선입견으로 정작 자기가 속아넘어가지요.
으흠, 타인 뿐이리까.
자신에 대하여도 그럴 경우 없지 않습니다.
자아를 속이려고 자신의 내면을 향하여 짓는 포커 페이스말입니다. ㅎㅎ.
그런 의미에서 나오지는 진실하였습니다.
[내가 조숙한 체 해 보였더니 사람들은 나를 조숙하다고 수군댔다, 내가 게으름뱅이인 체 해 보였더니 사람들은 나를 게으름뱅이라고 수군댔다, 내가 소설을 못 쓰는 체해 보였더니 사람들은 나를 못쓰는 사람이라고 수군댔다, 내가 거짓말쟁이인 체 해 보였더니 남들은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수군댔다, 내가 부자인 체 했더니 남들은 나를 부자라고 수군댔다. 내가 냉담을 가장했더니 남들은 나를 냉담한 놈이라고 수군댔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괴로워서 나도 모르게 신음했더니 사람들은 나를 괴로운 체 하는 것이라고 수군댔다, 아무래도 어긋나기만 한다. -다자이 오사무 '사양'-]
오 헨리의 소설, 영어를 많이 알고 뉴욕을 좀 알아 원서로 읽는다면 재미가 참 각별할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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