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2012년 10월 19일 포스팅)
<詩集 '움, 앤솔로지'>
-전민선 詩-
가을이다.
세상에다 화가는 그림을 내어 놓고 시인은 시집을 내어 놓는다.
소기호 화백은 서울 전시회 도록을 보내주시고 전민선 시인은 시집 '움, 앤솔로지'를 보내 주셨다.
전민선의 시, 몇 편 베껴 쓴다.
<눈부신 전모>
-전민선-
사유의 지축을 흔들며
맒의 행간마다 짓쳐들어오는
황홀한 침입자 살바도르 달리
무구한 혼재의 회화 한 편에 견준
경외의 강적 백 한 마리 순정한 코뿔소
그리운 날마다 작별하고
사랑한 날마다 작별하며
만났던 날보다 더 오래 그리운
그리운 날보다 더 오래 사랑한
금속활자 방만한 첫 장을 펼쳐 놓고
시를 빙자한 오욕을 묵언으로 평정한 후
흙으로 빚은 역사의 유래에 대하여 장황하던
찬란하신 관통이여, 참 눈부신 여생의 전모여
(*** 이 시의 이미저리는 내게 낯이 익구나.)
<천년 와불>
-전민선-
천불산 기슭 꽃불 번지면
와불로 누운 정령을 불러
그립단 말, 한 마디를 아낌없이 다 하리라
천불 천탑 소망한 죄가
영원을 땅에 눕힌 단단한 징벌
육골마다 마른 욕창, 천년을 주검으로 살아
이승에서
단 한번 돌아눕지 못할 업보로
다시 천년, 와불로 누울 눈 먼 바라기
삼백예순날
명징한 하늘만 어로를 영혼의 오체투지
주검 같은 그리움마저 무시로 기쁜 미욱한 연모
(*** 와불로 누울 천년 뉘게 있으리)
<당신의 혼잣말>
-전민선-
달거리도 끊긴지 오래이나
마구잡이 살을 헤집는
아직 어지러운 밤 있다며
해당화 꽃진 자리처럼 홀로 "던 당신
여자를 산
하염없는 넋두리
弄인양 뇌였으나
잔주름 글썽한 당신의 혼잣말
어쩔 거여!
저문 세월 짐작하며
당최 넘나들이를 안 하자는 디
제풀로 시들하여 벼락처럼 돌아눕는 것을.
<뜨거운 보살>
-전민선-
아마, 전생에 샛서방이었을지도 몰라
연애사마다 경전 같은 조언과 격려를 일삼던
음전하고 정숙하고 두루 얄밉도록 우아한 그녀
눈 밝은 목어 한 마리 닫힌 귀에 스리슬쩍 풀어놓고
보소, 지천명 지났으니
고작 심장으로 헐떡일 텐데
가슴팍 불 지른 죄도 선연한 죄
썩어 문드러질 살, 넌짓 잡아 주소
개심사 부처님도 질끈 눈 감아 주실 것이니
우아한 그녀가 쓰시는
오방색 모호한 경전 무작해탈문
바람난 부덕마다 옹골진 추임새 넣어주다가
가슴 천불조차 슬몃 부추기는 작정의 그 여자
열반의 경지를 남몰래 꿈꾸는 길상화, 뜨거운 보살
(註 : 무작해탈문: 바라거나 구하는 마음을 버리고 깨닫는 해탈의 경지)
<청춘의 系譜>
-전민선-
혀뿌리까지 홧홧한 삼복
파 한 단에 수박 한통 얹고
두부 한 모에 팥빙수 세 개 얹고
가루비누에 시금치 한 단을 얹고
한 학기 영화학 종강마저 단단히 얹은 뒤
거개 된비알 굽이굽이 골목에서
몸으로 자본주의를 습득하는 배달맨
오백만원 월세 보증금 옥탑방
하루치 곤고를 눕히고
영화학 개론을 소리 내어 읽는
청춘, 소리없이 빛나는 이름
변방을 산 저녁만이
젖은 빵의 진실을 온전히 먹는 법이라고
청춘의 계보를 흑석동 산1번지에 적으며
가난한 혈통 세습의 자식 개강을 꿈꾸며 청춘을 산다네
(*** 시인의 아드님 영화를 전공하고 지금 영화계 시다바리로 땀흘리고 있음을 나는 안다.)
<悲 歌>
-전민선-
그대가 나를
한없이 사랑한다 해도
사랑의 모든 내일은
뜨거운 눈물의 불을 너나없이 삼켜야 한다
살아,
눈물의불을 삼킨 다는 것은
찬란해야 할 사랑의 마지막 승복
애써 혀로 말하지 말자
지상의 밀어는 본디 뿌리가 없나니
불변인 사랑은
더러 묵언에 있다
진부한 비유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사랑이라고 더 말하지 말자
다만 사랑을 사모한 죄에게
쐐기풀 옷 열두 벌을 지어 입히고
천불산 외불 쯤으로 나란히 돌아누워
살아서도 그만 온전히 죽어 버리는 것이다
꽃같은 시절을 다정으로 불러 함께 살아 죽는 것이다
<수요일에 우는 딸>
-전민선-
당신의 입내를 아슴하게 기억해요 날감 비린내 같다가 단내나는 엿물 같던 쪽쪽 입 맞춰 주셨을 당신의 천형, 갈라진 입술 단 한번도 아무에게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던 내게, 우리에게 더없이 아름다운 당신 생의 어귀 환해질 적마다 입술 부득부득 감추시던 당신
신의 저주였다 믿으며 딸 넷 해산의진통 올 때마다 주검처럼 엎디어 무릎 꿇던 당신, 당신의 짠한 생애를 바라보며 그 업보 내가 당당히 대물림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다행스레 다 비켜 간건 당신이 꿇었던 진실한 무릎 때문이며 기도의 간절함 때문이었어요
수요일 오전 어김없이 날 울리는 어머니 놓친 세월이 어디라고 부모를 찾고 자식을 찾고 형제를 찾는 눈물의 수요일 육 남매 손 하나도 안 놓치고 이만큼 견뎌 오신 가난했던 당신 감사하고 감사해서 울어요 그리하여 어머니, 태반으로 끊어지던 처음으로 사랑할 수 밖에요.
<꿈꾸는 동조>
-전민선-
백일 지난 핏덩이 병으로 잃어버린 목숨까지 자그마치 일곱을 찬란한 지상에 내놓으신 다산의 아버지 몹쓸 병 얻어 당신 호시절을 다 잊고 늙어 가는 딸년 곁에 세 살 아해처럼 누워 사시는 어느새 구박의 아버지 예끼놈 소리 단 한마디도 자식 놈들 귀에 들려주시지 않은 자애로운 아버지 당신을 제가 사랑해요 제가요
희망다방 윤마담 치마 속으로 욕망의 손 쑤욱 집어넣던 아버지 어머니도 안사주신 자개장 턱 사주신 바람의 아버지 자식된 이름으로 눈물의 어머니를 옹호하며 아버지를 무찌르던 그 시절 막무가내 동조로 무시로 그리워요. 물장사로 이골 난 윤마담 스물아홉 순정을 송두리째 취하신 재주꾼 매력의 아버지
이부자리에 오줌 싸는 것 무슨 큰 죄라고 날마다 작아지시는 아버지 윤마담은 아닐지라도 오매불망 청춘을 돌려 달라는 사설조 노파 하나 꼬드겨 보세요 꿀물처럼 달콤한 언변 눈부신 서체로 노파의 주름진 주저를 보란 듯 취해 보세요 당신 궤춤 오만원권 지폐 두어 장 쥐어 드리며 기쁘게 동조하리니.
<저문 발원>
-전민선-
아서라, 아직은 그리 말아라.
새벽 별 아래 씩씩하게 기립하던 사내여
귀밑머리 풀던 초야의 밤이야 같겠느냐만
그대의 여자는
아직 펄펄 끓는 밤을 지날 거라고
뜬금없는 망상이라도 그냥 접지 말고
곱게 앙다문 치마끈을 냉큼 풀어 보아라.
고독한 불씨 한 점 넌지시 지폈을지도 모르는 일
사내여,
생이 곤하고 낡은 아비여
밤이면 밤마다 등으로 먼저 눕던
한 시절 튼튼한 기둥을 가진 씩씩한 사내여 지상의 아비여
어쩌면 오매불망, 그녀의 심정을 활짝 열고 화끈하게 들어 서시라
(*** 넋 놓고 누워계신 두분, 늙고 늙으신 부모님 대소변 수발 여념없는 시인의 나날을 나는 좀 알고 있다)
+++++
***불루보트***
2012.10.19 08:20
1. 잘계시죠? 모바일 맨 동우님?.....ㅎㅎㅋ
2. 동우님의 끝말 붙이기가 참 재미납니다....역쒸 동우님의 동우님다운 소평에 감탄^
3. 꿈꾸는 동조 중 3절 첫행에서 이부자리 오줌싸는 거 무슨 큰 최라고...에서 최는 무슨 자 혹은 무슨 뜻인가요?
4. 새벽에 일어나 며칠 씨름하던 감기기운 털어내고 몇자 끄적이다 동우님의 방에 불현듯 비상 걸었네요
그런데 저는 詩는 게으른 사람들이 쓰는 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중 하나였는데 소개 하신 시 정독하게 만드네요 글자가 좀 어렵지만 말입니다.
시의 문체나 구성도 새로운 수단이 있다는 것도알았구요 /꿈꾸는 동조
이럴 땐 한글 좀 더 깨우쳤어야 하는데 하는 자조가 번뇌하게 만듭니다.
5 항상 건강하시고 항상 가을같은 남자로 더 늙지 말고 멈추어 계시기 바라며 문지방 넘어 갑니다 일부러 배웅하실까봐 소리없이......
***┗동우***
2012.10.22 05:47
블루보트님.
날더러 모바일 맨이라 하시니, 대충 이해하시리다.
블로그질 소홀한 이유를 말입니다.
그놈의 모바일, SNS의 실시간 교류가 느긋한 P/C교류를 재미없게 만드는 것인지, 원.
그 옛날 우체부 오기를 목빠지게 기다리며 편지를 기다리던 시절.
전보라는 것도 그다지 빠른 통신수단은 못되었고...
옛날 귀하던 전화 역시 대중화되기는 오랜 세월 지난 후에야...
그리고 P/C통신이라는 것...느려터진 인터넷시대, 인터넷 '인'字는 참을'忍'자로 회자 되기도..
그러다 광속케이블의 P/C...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 접속 교류가 가능한 모바일 시대...
하하, 블루보트님.
세월이 그러하니 어쩌겠습니까?
블루보트님 댁도 모바일 좁은 화면으로 들여다 보고 있다오.
아무리 그래도 모바일의 경박성은 낫살먹은 사람으로서는 어딘가 맞뜩치 아니한 구석 없지 않아요.
블로그에다 글쓰고 생각 나누는 진중함을 모바일에 기대한다는 건 어불성설...
블로그질을 떠날수는 없지요.ㅎ
그리고 오해 마시기를.
전민선시인의 詩 '눈부신 전모'중.
교정 놓친 '맒'을 지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맒'이라는 어휘에서 느껴지는 발음에 묘한 매력이 있어서 혹여 시인이 일부러 만들어 시어로 사용한 조어가 아닐까하여..
시인의 답변은 없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오타가 분명해 보입니다.
'삶'을 두드린다는 것이 잘못 두드린.
녭! 블루보트님.
'최'는 분명한 나의 오타.
고쳐 놓겠습니다.
그리고 전민선시인의 시는 좀 진한 비린내가 끼쳐지지 않나요?
날것처럼. ㅎㅎㅎㅎ
월요일.
좋은 한주의 시작을.
***┗불루보트***
2012.10.22 08:29
전 체질이 인/忍질인가봅니다...그래서 이번엔 화면을 더 큰 외이드로 바꾸었는데...동시대 사람이 이질로 사는 거 같아 신기합니다......ㅎㅎㅎ/ㅋㅋㅋ
동우님의 글은 언제나 바늘같아 조심스러웠는데....이제 오타로 판명나니..깎아버려야 할 손톱만큼 허망하네요,,,,이또한 ㅋㅋㅋㅋㅋ
* 비늘이라 함은 비늘은 벗겨야 속살을 볼 수도 먹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 비오는 가을날은 건강 특히 조심하십시오......ㅎ
***길손***
2012.11.08 09:30
효녀 시인.
시를 읽다가 울컥했어요.
***┗동우***
2012.11.09 09:54
뒤의 세편의 시.
시인의 효심을 읽으셨군요.
울컥 하셨다니 전민선시인의 깊은 마음을 들여다 보셨나 봐요.
***┗어리***
2012.11.18 00:26
아고~~저 망할 인사 입니다 효녀가 절대로 아니고요~~
어무이에게 버럭질^^한 후 시방 달포쯤 어무이와 눈도 안 마주치는....
당신의 울컥에게 깊게 절합니다...
***어리***
2012.11.18 00:25
오우. 이 적나라한 ^^당신의 노고, 고맙습니다...
제 어줍잖은 막무가내~~오기로^^제 멋에 겨워 지어낸 날조된 단어입니다
앎과 맒^^그 비스무리한 맥락으로..한번 뻣대보았습니다.
인쇄소에서 오타 났다고 송구하다 전갈이 오기도 한 어리표~~시건방진 맒^^당신 만이라도 오냐~,잘했다 해주십시요 ^^
불루보트님 그리고 길손님~~어줍잖은 잡가에 손 얹어 주시어 고맙습니다
세월이 좋아 저 따위에게도 詩라는 이름을 덧대 주시니 그도 정말~고맙습니다
어제나 한결같이..주봉에 세워 주시는 오라버니...고맙습니다.
***┗동우***
2012.11.23 09:57
아, 전민선님.
시인께서 다녀 가셨네요.
'어리'라...
하하, 닉네임도 다양하셔라.
어리표 어휘 '맒'
그러하였군요.
詩에 孝에 여념없으시지만, 자주 좀 오시우
***산맥***
2012.11.30 08:33
평소 좋아하는 전민선 시인의 시어들.
예서 다시 느꺼웁니다.
시인이 자신의 아버님과 아드님을 묘사한 대목.
그 해학도 좋을시고~
***┗동우***
2012.12.01 05:55
반갑습니다, 산맥님.
전시인님 시를 접한 연조가 오래이신듯.
자주 뵈어요.
산맥님의 닉네임에서 느껴지는 유장함이 좋습니다.
'내 것 > 잡설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 헨리 3.4.5 (1,4,3,3) (0) | 2019.10.17 |
---|---|
오 헨리 1.2 (1,4,3,3) (0) | 2019.10.17 |
<아베일족 (阿部一族)> -其5- (1,4,3,3) (0) | 2019.10.14 |
<아베일족 (阿部一族)> -其4- (1,4,3,3) (0) | 2019.10.12 |
<아베일족 (阿部一族)> -其3- (1,4,3,3) (0) | 2019.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