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파트리크 쥐스킨트]]
<깊이에의 강요> <장인 뮈사르의 유언> <그리고 하나의 고찰> <좀머씨 이야기>
<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作-
***후니마미***
2012.03.03 15:05
문학 속의 인물들은 어떤 사람이기 위해 한 길을 걸어요
이 글을 읽으면서는, 피폐해져가는 그녀의 그 일관된 길이 예술이네요.
우리 보통 사람들은 중간 중간 자기 점검으로 일관된 길을 걷지 못하죠
나락으로 빠져가다가 기어올라오고 기어오르다가 떨어지고
그래서 어중간하게 사는 거죠 ㅎㅎㅎ
저는 가끔 저 소설 속의 여자처럼 어떤 맹목이 좋아 보여요
저는 잘 안 되니 그렇겠죠.
일본영화... ***의 일생 에서도 그렇고
아 여자이름 생각 안나요 ㅠㅠ
***┗동우***
2012.03.05 17:34
마미님.
괴짜로 소문난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내가 감탄하는 몇 안되는 생존 소설가중 한사람이랍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Patrick Suskind, 1949~ )의 ‘깊이에의 강요’
이 단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평론가라는 작자들의 허위의식(애매하기 짝이 없는 거드름스러운 한마디)에 치명적인 상처를 받는 어떤 화가의 자의식과잉이라고...
허지만 나는 쥐스킨트가 그따위 단순하고 진부한 의미로 얘기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
'깊이'.
쥐스킨트는 아마 그 '깊이'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던 걸겁니다.
후니마미님 언급하신 일본영화 나도 인상 깊게 본 영화랍니다.
가물가물하여 다시 찾아보니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아버지를 웃겨드리려고 짓는 그녀의 우스꽝스런 표정이 떠오릅니다.
교사로부터 전락하여... 가장 밑바닥까지 하강한 그녀의 말년...
남보기에 표피적으로 혐오스러운 일상의 마츠코.
노숙자를 향하여, '혐오'라는 그 어휘에는 아무런 깊이도 없습니다.
지극히 표피적인 느낌의 '혐오'일뿐.
마츠코의 일생에 깊이가 없었나요?
그녀 인생의 고비고비 쉽사른 그 선택들.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그녀는 깊이가 없었을 뿐이었지요.
기회비용을 잃었을 뿐, 결과가 참담하였다고 그녀의 인생에는 깊이가 없었습니까?
하하, 후니마미님.
이건 답글이 아니라 본문의 포스팅으로 얘기 해야겠습니다만.
다만, 나는 후니마마님이 간직하신..'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라는 영화를 떠올리는..
일종의 피해의식으로 점철된... 그 과잉된 자의식을 향하여...
한참 웃 연배로써 마미님에게 '떼끼!'하고 야단을 칩니다. ㅎ
천부적인 지능과 사유능력, 교욱과 독서로 지닌 지식과 지성,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거느린, 건강과 미모까지.
그런 후니마미님께 다시 한번 '데끼!'ㅎ
***저녁산책***
2012.03.04 06:59
쥐스킨트의 '향수'라는 책을 '고향을 그리워 하는' 향수로 오해하고 책을 펼쳤다가
아 그 향수가 아니네..하고 읽은 적이 있습니다.ㅎㅎ
그리고 그 시대 파리의 뒷골목이 그런 악취가 나고 있었나..신기해 하고요.
무심코 한 말이 그 사람을 이 세상 구석으로 몰아 갈수 있나 봅니다.
밖에서 '강요'를 해도 자기자신이 철저하지 못하면,,이리 극단으로 가진 않을텐데요
대게 자신에겐 너그럽지 않나요? (아, 저만 그래요 ㅎ)
그러므로 예술가는 범인들하고 다르겠지요.
독하게 철저하고. 자신에게 가혹한,,
동우님, 일요일 즐겁게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동우***
2012.03.05 17:52
저녁산책님.
쥐스킨트라는 작가는 참 괴짜라고 합니다.
저녁산책님 읽어 보셨을지 모르겠는데 '좀머씨 이야기'라는 소설에서 그의 면모가 엿보입니다.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두시오"
늘 사람들로 부터 도망가는 사람.
향수.
독특한 주인공 이름 잊히지가 않습니다.
장 그루누이 밥티스트.
파리의 뒷골목.
악취 가득하고, 곳곳에 싸질러 놓은 용변무더기들...
아하, 저녁산책님.
그 파리가 이탈리아의 로시니를 파리의 대극장에서 공연케하여 성장한 선남선녀들이 환호하던 그 파리랍니다.
냄새.
냄새로 인간을 지배한다.. 그 상상력이라니.
우리의 오감중 후각이야말로 가장 강력하답니다.
무의식의 저 밒바닥까지 요동치게 하는 감각이라지요.ㅎ
청각에 울리는 음악과 후각에 스미는 냄새.
이 조화를 상상함에 무리가 있나요? ㅎ
냄새에서 어떤 로직을 찾아서 냄새를 체계화시키고서리,
냄새를 영화관에 장면에 맞추어 뿌린다는건 일찌기 가능하였지요,
거두어 들인다는게 문제였던가 봅니다만. ㅎㅎ
음악과 냄새.
하아, 저녁산책님.
이 주제 한번 포스팅 해 보아요.
이 소설.
나도 이 소설을 일단은 그렇게 읽었습니다.
한 사람의 가벼운 농담이 다른 한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독화살이 된다는.
무심코 던진 돌맹이에 개구리는 죽지요.
그리고 이 명제는 작금의 인터넷 커무니케이션에서는 말할것도 없겠지요.
저녁산책님.
나는 이 소설을 '깊이'에 대한 것으로 읽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화가가 죽음으로서 평론가는 그 화가의 작품에서 깊이를 읽었다는 파라독스와 아이러니를.
***송현***
2012.03.05 09:11
언감생심이지만
저의 생활과도 무관 하지는 않습니다
사라져가는 붓글을 잡고있는 고독도 심한 우울로 이끌어 냅니다
해골들만 우글거리는 세상 알아주는 상대가 없는...
***┗동우***
2012.03.05 18:09
송현님.
깊이에 대하여.
언감생심이라니요?
오랜 세월 궁구하고 연마하여 도달한 수준.
그 경지와 몇 년 기웃거려 전수받아 이룬 경지와는.
필경 그 깊이가 같을수는 없을겝니다.
그러나 송현님.
상업주의가 지배하는 이 시대, 그 깊이를 들여다볼줄 아는 순수한 안목은 희소합니다.
한 시절 스러질 그 상업주의의 깊이라는...
서예 에술에 대한 시대의 가벼움이 언짢으신 우리 송현님의 마음 십분 헤아리고도 남는답니다.
상업주의적 재능이 藝의 값으로 취급되는...
그 불쾌함은 내게도 없지 않답니다.
청컨대 송현님.
송현님이 자존으로 간직하신 藝의 마음.
그로서 자족하시기를.
***후니마미***
2012.03.05 21:14
오늘은 특히 더, 동우님과 만나 술 한 잔이나 수다 한 바구니나 그런 거 하고 싶으다.
비가 오니까
봄비가 오니까
지금은 혼자니까
ㅎㅎㅎ
데끼에 대한 답글입니다 ^^
***뜨락***
2012.03.10 11:46
저도 동우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은 거의 다 읽었어요.
쥐스킨트 소설은 제게 기괴하였습니다. 뭐랄까..끝없이 우울하고 어쩌면 지독히도 혐오스러운.. 무척이나 냉소적이고 아이러니 하기도 하였어요. 그래서 아마 소설읽는 재미가 유별났을법도. ㅎㅎ
동우님.
쥐스킨트는 이 단편에서 무엇을 그리고자 하였을까요?
경박하고 무책임하고 일관성없는 평론가들을 향한 일침?
깊이를 강요하는 세상, 또는 깊이를 강요 당하는 실존에 대한 풍자?
동우님.
정말 우리의 삶이란 깊이가 있는 것일까요?
공연히 우울해집니다만 즐거운 주말 맞으세요 동우님. ♬♬♪♬
***┗동우***
2012.03.11 08:48
뜨락님.
정말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세상을 좀 혐오스럽고 냉소적으로 보는것 같아요.
작가 자신도 그리 괴퍅하다지요?
나는 뜨락님.
'깊이에의 강요'를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 평론가가 당초 '깊이가 없다'고 한 화가의 작품들이 말미에 '깊이가 있다'는 것으로 둔갑되는 아이러니를..
이를테면 깊이없는 작품들이 결국 화가의 자살로 인하여 깊이가 생겼다는.
자살함으로써 깊이가 생겨버린 예전의 깊이없는 작품들..
하하, 뜨락님.
좀 무리일까요?
공연히 우울하지 맙시다. 뜨락님.
뜨락님도 즐거운 휴일을...
***작은물결***
2012.03.16 10:45
아, 잘 읽었습니다... 깊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피상성/깊이라고 하는 폭력적인 이분법을 해체하려고 하는 것을 한 때 인상깊게 읽었습니다만...
비평가의 폭력에 한 영혼이 찢겨버렸군요.
***┗동우***
2012.03.17 06:16
나도 역시 묻는 것이지만, 작은물결님의 질문이야말로 근원적입니다.
깊이란 무엇일까?
학문적 오의를 얘기하는 심오한 언어들일까.
어떤 예술작품에 스며있을, 눈 부릅뜨고 찾아봐야 할 어떤 난해한 기호일까.
진실과 진정성이 담긴 지극한 단순함과 간결함.
오히려 깊이는 그곳에 있는듯.
삶의 깊이란 것도 그러한듯 합니다.
작금 범람하는 정치적 정파적 담론들에게서는 도무지 깊이를 느낄수 없습니다. 하하하
깊이에의 강요.
나는 작은물결님, 요 위 뜨락님의 답글에서도 말하였듯, 자살함으로써 깊이가 없던 작품에 깊이가 생겼다는.. 그 아이러니를 나는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ㅎ
***eunbee***
2012.04.26 07:53
알퐁스 도데의 별(앞 포스트)을 읽던 날, 함께 읽은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를 다시 읽으니 이번엔 새삼스레 소설가 신경숙씨가 떠오르네요.
산업고등학교를 다닐적에 선생님이 자기 반성문을 읽더니 '너는 소설가가 되겠다'라는 말을 해줘서 자기가 소설가가 되는데 굳은 바탕의 힘이 되어 현실에서 소설가가 된 이후에 그 선생님을 찾아가서 그런말을 했더니, '그냥 해본 소리였는데...'라고 말하더라는....ㅋㅋ
쥐스킨트의 소설은 '향수'를 읽었고, '좀머씨 이야기'를 읽었지요. 매우 인상적인 책들이었어요. '향수'는 책을 손에 들자(큰사위가 선물해준 책)단번에 읽어내려간 책이었고요
상뻬의 그림이 곁들여진 '좀머씨 이야기'는 왠지 가슴이 무겁기도,싸~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상뻬의 '사치와 평온과 쾌락'이란 책도 큰사위가 선물해서 만나게 되었지요. 큰사위가 프랑스인이거든요.ㅋㅋㅋ
다시 읽으러 왔다가, 이런저런... 생각의 안개속을 헤매고 갑니다.
***┗동우***
2012.04.27 06:49
은비님.
정말 그랬지요?
'향수'는 단숨에 읽히는 책.
나는 고교시절의 딸아이 책을 빌려읽었습니다.
'좀머씨 이야기'도 단숨에 읽히지만 왠지 가슴이 싸아~해지기도 하는 것.
좀머씨에게는 은둔형 괴짜라는 '쥐스킨트'의 어떤 면도 녹아 있기도 하겠지요.
허긴 작가 뿐이리까? 우리에게도 사람들로 부터 끊임없이 도망치고자 하는 '자아'의 어떤 구석을 가지고 있을껄요.
위의 쥐스킨트 '깊이에의 강요'에도 평론가라는 작자의 가벼운 한마디에서, 자의식 과잉의 '암시'에 사로잡혀 죽음에 이르는 한 예술가를 그리고 있지만 예술에 있어서 그 '깊이'라는 것을 향한 어떤 조롱이 읽히기도 하고....
더스틴 호프만 나오는 (그랑누이 역 배우 이름은 생각나지 않네요) 영화 '향수'도 보았는데 소설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였다는 생각.
하하, 은비님의 생각의 안개.
내게도 숱한 생각의 안개.
이런저런 얘기 나누면서 함께 헤쳐 보아요.
***┗eunbee***
2012.04.27 07:19
저도 '향수' 영화를 보고는 소설에는 한참이나 못미치는 영화구나 했다우.ㅋ
어둡고 긴긴 골목길에서의 향기좋은 여인을 훔쳐?가는 장면만 남아있는 지금이지만....ㅎ~
안개라~
저는 헤쳐나가기 보다 안개속 자체를 사랑해요. 제 게으름이지요.
그런데 동우님이랑은 한번 헤쳐나가 보고 싶단 생각도 갖게 되네요.
동우님은 안개속에서도 안개를 의식하지 않게 하는 '자체내의 밝음과 지나칠 만큼의 고급스런 문화로 무장된' 사람이라서 재밌을 것 같아요. 호홍~
***최동진***
2012.08.22 13:27
저는 이 글을 읽고, 사람이 다른 사람을 향해 내리는 평가가 얼마나 사소하게(즉, “깊이”가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평가를 받은 피평가자는 오히려 이를 얼마나 지나치게 중요하게(즉, 너무나도 “깊이있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지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만약, 두 사람이 각자 조금만 더 현명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겉으로는 무거움을 과장한 평가가 실제로는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를 그 실체를 만약 파악했더라면, 평가자가 그리도 날카롭게 비평을 썼을까, 그리고 피평가자는 그리도 절실한 가치를 부여했을까······.
결국, “깊이”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이 아닐까 합니다, 죽음을 통해서 “깊이”가 이제 생겼다고 생각하는 평가자나, 본인의 영원한 화두였던 “깊이”를 결국 찾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피평가자에게 있어 “깊이”에 대해 서로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튼, 제 생각입니다. ^^
***┗동우***
2012.08.26 06:33
최동진님.
진작 이 답글 보았는데 인사가 늦었습니다.
우선 좋은 글 남겨 주신데 감사의 인사만 드립니다.
손주들과의 상황이 모모하여 최동진님의 이해를.
내일쯤 진지한 답글 쓰지요.ㅎ
***┗동우***
2012.08.28 07:30
최동진님.
이 소설에 대한 최동진님의 생각이 일견 옳습니다.
이를테면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술마시고 지껄인 아버지(권위)의 한마디 무심한 말에 아들은 치명적 상처를 입기도 하지요.
그런데 나는 최동진님.
프투리크 쥐스킨트라는 작가의 기발함에 늘 감탄을 하는 편입니다.
인생과 예술에 있어서.
죽음으로서 깊이가 깊어진 생긴 범작, 이러한 숨겨진 의도는 없었는지... 하고 생각해 보았던 겁니다.
일본 추리작가의 '회귀천 정사'라는 추리 소설이 있습니다.
불멸의 시.
이미 씌어진 관념적 시에 리얼리즘의 깊이를 심고자 시인은 시창작 후에 시에 걸맞는 행위를 하지요.
자주 들러 좋은 말씀 주시기를.
<장인(匠人) 뮈사르의 유언>
-파트리크 쥐스킨트 作-
***동우***
2015.12.07 04:27
'장인(匠人) 뮈사르의 유언'
파트리크 쥐스킨트 (Patrick Suskind, 1949~ )는 유려한 필치로 기발한 자신의 상상을 마치 현실인 것처럼 독자에게 주입합니다.
<뮈사르는 끊임없이 특이한 것을 발견하고자 열심이었으며, 이러한 생각들에 너무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그의 이성에는 다행이라 할 수 없고 그를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한 친구들에게는 슬프게도, 아주 기이하고 참혹한 병의 모습으로 죽음이 찾아와 그를 앗아 가지 않았더라면, 그 생각들은 결국 그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체계로, 즉 엉뚱한 것으로 압축되었을 것이다. -루소 '고백록'->
쥐스킨트가 이 소설을 착상한 계기가 되었음직한.... 루소의 고백록에 저런 구절이 있었던가?
조개의 속살 깊숙히 감추인 진주의 아름다움도 하나의 형해화(形骸化)된 자각적 인식, 그 은유일런지.
점점 조개화되어가는 세계와 인간.
필경은 거대한 조개神의 의지로 화석으로 굳어진채로 멸망하고야 말 인류.
나 역시, 낫살들면서 시나브로 조개화되는 몸뚱이를 느낍니다.
관절 곳곳이 삐걱거립니다그려. ㅎ
아, 그런데 화석화되는 것이 어디 육신 뿐이리까.
으흠, 아름다움도 사랑도 감수성도 마음까지도....
늙은 자아가 자리잡은 내 주관은 그럴지라도, 내 아이들 시대 그 객관은 그렇지 아니하리라. ㅎ
++++
한창훈의 소설들, <리딩북>의 본문은 친구공개로 全文을 그대로 살려놓고, <Reading Book>의 본문은 모두 中略합니다.
++++
<그리고 하나의 고찰>
-파트리크 쥐스킨트 作-
***동우***
2013.08.24 10:01
쥐스킨트의 다른 면모를 느끼게 해 주는 수필.
그랬구나.
쥐스킨트의 기억력, 혹은 체화되거나 심화된 흔적의 느낌이란 이토록 휘발성이 강한 것이었구나.
어쩌면, 다른 사람의 책에서는 영감을 얻는 바 없다는 자신의 유니크한 독창성을 과시하는겐가.
과연, 문학체험은 우리의 어디에 남아 있어 우리의 삶에 효용을 끼치는 바는 무엇일까.
진지한 명제이다.
나 역시 문학건망증은 나이 들수록 자심하다. (어디 그런 건망증 뿐일까마는)
나의 경우.
옛날 읽었던 책 다시 펴들 적에 옛 기억 깡그리 사라져서 전혀 처음 읽는 것처럼 인식되기보다 옛 독서의 감흥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새롭게 읽히는 편인지라 쥐스킨트와는 좀 다른겐가.
문학체험, 나아가 예술체험 일반에 있어서.
진부한 말이지만 그것은 일반지식처럼 뇌주름에 새겨지기보다 감정주름(?)에 새겨지는 바가 깊을 것이다.
기억의 영역이 아니라, 느낌의 영역.
어떤 이는 해질 녘의 풍광이 마음 쓰리도록 아름다워 눈시울이 뜨거워 지는데 그건 뇌 논리가 설명 못할 가슴 미학의 영역이다.
지하실이거나 설합속이거나 다락방에서 마주치는 옛 흔적들, 특정한 어떤 사물을 마주하였을 적 문득 마음밭에 엄습하는 슬픔이거나 기쁨이거나 공포이거나 다정한… 그 익숙한 감성 한줄기.
하하, 리딩북의 독자님들.
개별적으로들 팍팍한 작금의 삶들, 거기 깃드는 조그만 즐거움으로 읽어 주시기를.
혹여 훗날, 은근하게 흐르는 눈물이거나 웃음 한줄금 있을지니.
핫 핫 핫
***고향***
2013.08.24 13:11
그렇게 유명하다는 작가도 이런 비슷한 체험을 하고 그것을 허물없고 겸허하게 쓴 것을 보고
우습기도하고 위안이 되기도 하는군요. 지금까지 읽었던 그 숱한 책들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해도
읽는 동안에 그 저서 안에서 뭔가가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지금의 우리들의 지성과 감성을 이루어왔다면,^^^
착각일까요.
열심히 올려주셔서 감사드려요.
***동우***
2013.08.25 08:38
고향님.
예술경험이란 필경 그렇겠지요?
알게모르게 뭔가가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지성과 감성을 이루어 왔다는.
내 리딩 북 읽으시고 자신의 블로그에 독후감 써서 올려주시는 고향님.
나야말로 열심히 읽어 주셔서 감사드려요.
<좀머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作-
***동우***
2013.04.30 05:43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 (1991년 발표), 중편(中篇)의 분량인지라 두 편으로 나누려다가 한 호흡으로 읽는게 좋을 듯 싶어 그냥 올립니다.>
'향수'(1985년 발표)의 주인공 '장 밥티스트 그루누이'.
기괴한 살인자, 악마적인 천사, 천의무봉의 예술가.. 그로부터 부터 받은 감흥은 묘한 충격이었다. (밴 위쇼가 연기한 영상의 캐릭터는 역부족으로 느껴졌다..)
프랑스 중학교에서는 독일작가의 이 소설이 과제로 주어진다고 한다. (은비님으로 부터 들었는데)
그러나 '향수'의 문학적 대성공에 아랑곳없이 은둔을 고집하는 쥐스킨트(1949년생).
"그러니 나를 제발 그냥 놔두시오!"
필경 '좀머씨'는 그의 또하나 페르소나일 것이다.
심리와 감정과 환경과 풍경과 상황... 주인공 소년의 나래이션으로 묘파한 이 소설의 분위기는 참으로 아름답다.
아, 나의 소년도 그러했던가.
바람을 타고 나를수 있고 높은 나무에 오를수 있는....소년의 삶이란 기쁜 것 뿐이었을까.
필경은 착륙이나 하강을 의식하지 않을수 없는....
불공정과 포악함과 상투성과 비열함같은 것들에 직면하게 되는 삶.
특히 죽음, 그 불가사의한 미지의 적멸을 의식 속에서 떠나 보낼수 없는 실존의 모습.
그로부터 한사코 도망가려 하는가. 나남없이.
어쩌면 좀머씨의 영혼은 순결한 우리 실존의 보편이 아닐런가.
쫓기는 모습, 겁에 질린 모습, 목이 타는 모습, 쫓기는 모습은....
<아저씨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호두나무 지팡이를 왼손으로 바꿔 쥐고는 우리 쪽을 쳐다보고 아주 고집스러우면서 크고 분명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 나를 제발 그냥 놔두시오!" 그 말뿐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 말뿐이었다.>
존재가 그러하다면....
떠나 온 예수 그리스도.
또, 불현듯 떠오른다.
***저녁산책***
2013.05.10 12:37
너무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숲과 호수의 풍광이 있는 마을에서 나무타기를 잘하는 소년,
그리고 좀머씨..
좀머씨가 호수안으로 사라진 것을 보고 침묵을 유지하는 소년 ..그의 죽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한 것이겠지요.
'제발 .놔두라는..'
오랜만에 올려주신 글 잘 앍었습니다.
동우님 감사합니다*^^*
***동우***
2013.05.11 10:35
저녁산책님.
보편적 감성은 슬프게 혹은 비극적으로 이 소설을 접수하는바 있을 터이지만 '너무 아름다운'으로 받아들이는 저녁산책님을 나는 평가하고 싶습니다.
저 '좀머씨의 슬픔'이 인간의 실존이로되, 그 대비감이 돋보이는 숲과 호수와 소년의 푸르름...
참 아름다운 소설이 아닐수 없습니다.
저녁산책님의 깊이있는 읽어주심, 오히려 내가 감사합니다.
독자 저녁산책님이 바로 리딩북의 보람이랍ㄴ다.
***eunbee***
2013.05.20 08:23
아, 이토록 재미나게, 아름답게, 가벼운듯 심오하게
글을 만들어 낼 수 있다니...
소설을 읽으면서,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에 울고 싶을만큼
가슴 녹아내리기도, 웃음을 참지못해 키득대기도...
끝내 입을 다문 이유에 대한 서술에선 한숨과 눈물이 함께..
이렇게나 재미난 좀머씨 이야기였던가?
예전에 읽었던 책인데...?
번역자가 다른 이었나?
그렇다면 혜자씨에게 찬사와 감사를..
그리고, 이 밤 늦도록 나를 행복하게 해주신 동우님께 감사를.
나는 글을 읽는 동안 정말정말 행복했다.
이 소설은 슬픈 소설이 절대 아니다.
아름답고, 잔재미가 널려있어 웃게도 하고, 무엇보다도
읽는 동안 몹시 행복해지는 소설
***동우***
2013.05.22 05:17
말씀처럼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예사로운 작가 아닙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꾸민 재미있는 이야기들.
소년과 좀머씨.
짐짓 가벼운듯, 삶에 대한 애환과 희락의 의미는 심오합니다.
은비님 언급, 새삼 번역이란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느낍니다.
은비님 행복하게 읽으셨다니 그게 나는 고맙다우.
은비님의 지중해.
요즘 벗님네들께 나들이 뜨아하여, 차츰 맛보려 합니다.
입맛 다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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