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내가 훔친 여름 (1,4,3,3)

카지모도 2019. 10. 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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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내가 훔친 여름>

-김승옥 作-

 

***동우***

2013. 07. 15

 

계절의 오르가즘.

북녘에는 빗줄기 시원하다는데 부산은 어제 휴일도 염서(炎暑).

결혼식서껀 예제 다니면서 아기들 재롱도 보았는데, 나의 늙은 여름은 오히려 외롭고 쓸쓸하기도 합디다.ㅎ

어쨌거나 여름은 바야흐로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60년대 말 즈음 내 청춘의 여름을 들여다 봅니다.

그 그림은 아마 희망과 절망 기쁨과 우울 우월과 열등으로 점철된 컨트라스트 강한 풍경화였을겝니다.

젊은 놈들이 갖고 있었던 감수성이거나 열등감이거나 혹은 죄의식 같은 것들은.

그닥 평온치 못하였던 한반도 남쪽 땅 근세사에 의하여, 잘난 것들 모여있는 중앙과 매가리 모자란 지방에 따라서, 지금처럼 빈부 격차 극심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있는 자와 없는 자에 따라서.. 자의식(自意識)에 겨운 것들이었을 거예요.

그러나 작금의 청춘이라고 엄청 다를리 없겠지요.

젊음이란 언제나 아파하는 것이니까요.

 

서울대학교.

그 곳은 예나 지금이나, 특별한 인종들이 노니는 듯한 까마득한 곳입니다.

이 나라에서 거들먹대는 꼭대기 대다수 사람들이 거치는 곳. (상고 졸 노무현의 가치는 이런면에서도 작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립서울대학'의 이니셜 ㄱ과 ㅅ과 ㄷ이 조합된 서울대학교 마크는 공부 좀 하는 치들에게는 한사코 달고자 하는 꿈의 심볼이기도 하였지요.

고등학교 적 공부를 못하였던 나로서는 (공부를 못하거나 안하였던 당위에 대하여 나는 노트 한권 쯤 사설을 늘어 놓을수 있노라.ㅎㅎ)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 서울대학.

그 무렵 날라리 지방대학생으로서는 서울대학을 향하여 열패감을 갖는 것 마저도 사치였을 겝니다.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에서 쫓겨 내려 온 내게는 서울 자체가 열패감의 대상이었을 것...)

때로 서울대학생들과 회동하여 어울린 적 없지 않지만, 스스로의 자격지심은 언제나 그들에게서 한발짝 떨어져 있게 하여 지레 주눅 들어 깊은 대화조차도 회피하게 하였답니다.

몇 서울대학 출신과의 어울림에서 그들 취향의 척박함이나 인문적 소양의 빈약함에 놀란 적도 있습니다만 그건 훗날 이야기입니다.

서울대 출신인 내 친한 블벗 야초님과 김인주 목사님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인문학적 소양 넘치는 분들이지만.

 

김승옥의 장편소설 '내가 훔친 여름' (1960년대 말 중앙일보인가에 연재된 신문소설이었습니다).

이미 몇편의 소설로 그 시절 젊은이를 홀딱 빠지게 하였던 ‘김승옥’이었는데, 이 소설은 내게 공범의식(共犯意識)적 위무(慰撫)이기도 하였을겁니다.

 

다시 읽어 보아도 김승옥의 감수성과 언어는 신선합니다.

 

차츰 지껄이기로 하고.

김승옥의 장편소설 '내가 훔친 여름'을 다섯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이글이글 여름이 익어가는 이번 주.

한 시절 청춘의 여름을 나랑 함께 훔칩시다.

우리 공범이 되어요.

 

***eunbee***

2013. 07. 15

 

공범이 되어 훔치기 시작했습니다.

두꺼비 얼굴의 그 친구, 맘에 들었다 말었다합니다.ㅋㅋㅋ

장영일이라고 했나요?

방금 읽어내려왔는데도 이러니....

훔치는 데도 '머리'가 있어야 들키지않는 법일텐데, 시작부터 이래가지고서야 원.ㅉㅉ

 

김승옥, 그와 함께라면 갈지자 읽기라도 기꺼이 하렵니다.하항~

그리고 유감을 표할 사항있습니다요~

동우님이 자꾸만 늙어서 어쩌니 저쩌니,의 발언을 자주 하시면

더 늙은 내가 화납니다.ㅋㅋㅋㅋㅋㅋㅋ

 

일체유심조!

영원한 로맨티스트로 나아가시어욧!!ㅎㅎ

옆사람 힘빠지게 하지말고서리.

그것도 옮아요. 영일이의 치질은 안옮지만.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기시우?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녀~'인지 알면서. ㅎㅎㅎㅎㅎ

 

***동우***

2013. 07. 16

 

공범 되어 주신다니 저 젊은 여름은 필경 우리의 것. (찌질이 부분은 빼고 그들이 꿈꾸는 싱싱한 여름바다만..)

은비님은 진작부터 내 공범이오만. ㅎㅎ

 

애늙은이 같은 장영일. (등장인물 이름 못 외우는 내기 하려우? 나도 만만치 않다오.)

그 친구 은비님 맘에 안드시는 부분, 나는 대충 감을 잡지요. 하하

뒤에 열차깐에서 만난 그 여대생이 장영일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한답니다.

<"영리한 가난뱅이. 그렇죠?"

"제가요? 어떤 뜻일까요?"

"별로 깊은 뜻은 없어요. 가난하기 때문에 불쌍하게도 책을 많이 읽으셨죠. 책을 많이 읽으셨으니까 불쌍하게도 스물 두서너 살에 벌써 늙어 버리셨죠. 늙어 버렸으니까 불쌍하게도 남에겐 관대하고 자신에겐 엄격하죠. 불쌍한 불쌍하신 늙은이...">

 

그러나 삶을 살 줄 아는 사람, 은비님께 있어서 생물학적 나이야 무슨 그다지 대수리오?

웃는게 아니게 웃지 마시우, 은비님.

목젖 보이게 까르르 까르르.

은비님의 젊음 앞에서, 늙은 번데기 주름 좀 잡을랍니다.ㅎㅎ

 

***큰서방***

2013. 07. 15

 

그 공범중 일인을 자처했습니다.ㅎ

동우님께서 말씀하신 매가리 모자란, 그것도 한참이나 모자란 지방에서도 나름의 젊은 20대를 보내면서

텅 빈 머리속으로 대충 살았지요. 동물적인 기쁨만으로...

아이들 방학직전의 동중정의 시간속에서 한참을 읽었으나 아직 끝까진 못 읽었으니 앞으로도 계속 이곳을 들려야할 이유는 충분한 거죠?

가뜩이나 더운 계절이지만 이런 연유로 아마 올 여름은 겨울의 사우나를 미리 맛보는 좋은 기회가 될듯합니다.

언감생심 꿈도 못꾸어본 "ㄱㅅㄷ"의 존재를 새삼스레 상기하면서요.

내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동우***

2013. 07. 16

 

큰서방님까지 공범 함께 하신다니, 이번 우리 푸른 여름은 떼어 논 당상. ㅎㅎㅎ

큰서방님.

매가리 모자란 지방대학이라는..

내가 지방대학을 폄하는게 아니라는것 아시지요?

더구나 인문이나 이공도 아닌 예술을 천착하고 정진함에 있어서는 중앙이나 지방이나 무슨 차이가 있을라구요.

20대를 스스로 텅빈 머리속.. 동물적 기쁨.. 운운하시는데, 큰서방님이야말로 알찬 젊음을 보내셨을듯 합니다.

소화백님의 작품들이 그를 증거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지닌 경험과 사유와 공상을 끄집어 내어 예술을 창조한다는 것.. 아름다움으로.

생각건대 예술가들은 행복한 사람들이올시다.

 

북녘은 한동안 염천이다가 요즘은 빗줄기 퍼붓는다던데 이곳 부산은 엇그제부터 염천이랍니다.

여기도 빗줄기 한번 시원하게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무더위, 건강 유의하시어 좋은 작품 만드시기를.

소기호 화백님.

 

***teapot***

2013. 07. 17

 

조금만 움직여도 땀을 줄줄 흘리던 곳에서 따갑지만 뽀송뽀송 건조 한 곳 내 집에 오니 살 것 같습니다.

날씨가 그리 난리 법석이라 한국 뉴스에서 어제도 홍수 진 모습을 보여 주더구먼요.

부산은 비는 안온다니~비 오고 선선한게 더 나을까 비 안오고 더운게 더 나을까?~ 어떤 것이 더 나을지요?

 

동우님은 왜 외롭고 쓸쓸 하실까요? 가을이 오면 어쩌시려고 이 한 여름에.....

 

5번에 걸쳐 연재하신다니 우선 이걸 먼저 읽자 하며 읽습니다.

이야기가 어찌 전개 될지 기대가 됩니다.

나의 젊은 시절을 다시 살라면 열심히 할 것이 몇가지 있긴 한데 이제는 그냥 넘어 가야겠지요?ㅎㅎㅎ

 

***동우***

2013. 07. 18

 

티팟님.

캘리포니아의 계절도 바야흐로 염천인가 봅니다.

그래서 콩국수는 더욱 시원하시겠지요. ㅎㅎ

 

몇번 말하였는데, 한반도도 좁다란 땅덩이가 아닌가 보아요, 티팟님.

북녘에는 물난리 걱정 할 판이던데, 남녘 끝 부산에는 연일 땡볕 더위랍니다.

여름은 역시 청춘의 계절.

그 옛날 가난한 청춘들은 저 젊은이들처럼 훔쳐야 하는 여름이지만.

 

티팟님.

나는 유난히 더위를 타는 편인지라, 비 안오고 더운것 보다 비오고 션선한게 백번 낫지요. ㅎㅎㅎ

 

티팟님이 '젊은 시절에 열심히 할 것을..' 하는게 무엇일까?

티팟님 연배쯤 되면 도전 못할 것 무에 있으리오.

지금 그림에 매진하시듯 말입니다.

 

***동우***

2013. 07. 16

 

앞에서 나는, 이 소설이 내게 공범의식적(共犯意識的) 위무감(慰撫感)을 주었다고 하였는데, 과연 그러하였다.

나와는 별종들이라고 여겼던 서울대생 (알다시피 작가 역시 서울대 불문과 출신.).

그 내면을 들여다 보니 나랑 흡사한 황량한 젊음, 저나 나나 별수없는 따라지 청춘. ㅎㅎㅎㅎ

 

열등감과 도피주의,

경쟁자를 의식하지 않아도 좋았으므로, 방학중인 캠퍼스가 가장 아름다운 대학 모습이었고 진정한 <너의 학교>였구나.

아, 빌어먹을 그 놈의 부끄러움.

그 때문에 한 밤중 너도 어둠을 향하여 두 주먹 불끈 쥐고 몸을 비틀면서 으응 으응 신음하였구나.

우열(優劣)과 미추(美醜)와 순잡(純雜)과 정사(正邪)와 노청(老靑)...그로 인한 정신분열증.

그래서 너 또한 때로 몸이 뒤틀리고 진땀을 흘리면서 이빨 틈으로 승냥이 울음을 울었었구나.

 

생각건대.

내게 김승옥의 신선함이란 '개별(個別)'에 관한 싱싱한 인식이었을 것이다.

개별의 내면에 대하여 전혀 새로운 인식의 언어.

그때까지 내가 만났던 우리 문학 속의 개별이란, 집단(集團, 정치와 역사와 사회와 제도등등을 포괄하는 나의 엉터리...)에 의하여 규정되는 개별이었다. (대체적으로)

명확하지 않을지언정 (自意識이란 본시 몽롱한 것, ㅎㅎ) , 당시 내가 만난 그의 언어는 모종(某種)의 상투성을 벗어 난 싱싱함 바로 그것이었다.

 

이창수군의 저 사기꾼의식은 얼마나 순수한가.

애늙은이 같은 장영일군의 병과 영혼에 관한 장황한 사설 또한 순수하다. <그 시절 대학생들 흔히 사창가에서 동정을 잃었고, 화류계(?) 관록은 남자새끼(?ㅎ)들 사이에서는 은근한 자랑꺼리이기도 하였을 터이지만 영일이의 성병론(性病論)은...ㅎㅎ)

 

그리고

<게다가 영일이의 아가씨는 대화가 통하는, 적어도 추상적인 얘기를 들려 주면 오줌을 질금질금 흘릴만큼 좋아하는 여대생인 모양인데 내 아가씨는, 내 짐작이 틀림없다면, 나는 당신과 비슷한 신분에 있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멸치 넣은 시래깃국이고요. 참 이미자가 부르는 '울어라 열풍아' 좋죠? 그 노래만 들으면 난 미칠 것 같답니다. 참 내일 친구한테서 카메라 빌려 가지고 우리 사진 찍으러 갈까요? 식으로나 얘기하지 않으면 이쪽을 경계하여 말도 못 붙이게 할 게 틀림없이 보이는 신분의 여자였다.>

 

대(大)서울대학생 이창수 군이 조 알량한 엘리트 의식으로 넘겨집는 (신성일을 목숨바쳐 사랑하는) 한 아가씨의 면모.

당시 백(화이트 칼라)과 청(블루 칼라)의 구분은 지금보다는 훨씬, 젊은이들 의식속에서도 상당히 뚜렷하게 자리잡고 있었으니...

대부분 사실이기도 하였거니와, 봐 주자. ㅎㅎ

 

***teapot***

2013. 07. 18

 

작가가 서울대 불문과 출신이라니 전 좀 의외입니다.

1편을 읽으면서 진짜 서울대생들 이야기를 어찌 알까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제가 모른다고 틀린 건 아닐테니까요.

대부분 사실 이겠지요, 봐주지요~뭐~ㅎㅎㅎ

 

***동우***

2013. 07. 18

 

티팟님.

작가 김승옥은 서울대 불문과 시절부터 문명(文名)을 날렸답니다.

그가 주도하여 만든 대학생 동인지 '산문시대'는 예사롭지 않은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지요.

 

그런데 김승옥은 한창 필력이 왕성할 무렵, 예수 그리스도한테 사로 잡혔어요.

붓을 꺾고 신앙인으로 침잠하였지요.

문단에서는 아쉬운 한숨 요란하였지만

 

***동우***

2013. 07. 18

 

<녀석은 내 등을 열심히 밀어 주면서 시시덕거렸다. "임마, 이건 수돗물이라고." "바다가 이십여 미터 전방에 있다는 걸 잊지 말라구. 자, 내 등 좀 밀어.">

 

작렬하는 태양과 짓푸른 바다에 몸을 담구고 청춘을 구가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지척에 바다를 둔 여수땅에 무전여행꾼 장영일과 이창수는 안돈할수 있었다.

그런데 으흠..

여수라는 도시의 작지않은 지역사회, 저토록 쉽사리 그곳 이너서클에 진입할수 있다니.

그건 순전히 서울대의 프리미엄 덕이 아닐수 없었다.

거룩하여라 서울대 배지...이 나라에서 이름값이란 예나 이제나 값이 후하고나.

 

무전여행.

나도 젊은 놈인지라 남의 무전여행 영웅담에 가슴이 뛰었지만, 남에게 아쉬운 소리 못하고 숫기없는 나로서는 감히 시도조차 못하였었다.

혼자서 기차나 버스에 실려 낯선 곳 떠도는 짓은 제법 하였지만 돈 떨어진 나의 경유지는 으레 서울이었는데 그건 친가 외가의 친척들이 죄 서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푼 쥐어주는 용돈 맛...)

그때 내 가슴팍에도 서울대 배지가 달려 있었다면 모자란 내 숫기도 튼튼강화되었을 터이고 친척들로부터도 좀 두둑한 회폐를 수거할수 있었지 않았을까...ㅎ

 

<육중하고 통쾌한 대기가 쓰러져 있는 나를 짓밟고 요란하게 지나가고 있는 소리에 나는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눈을 들어 보니 저 멀리 하얗게 빛나는 대기가 쫓겨가고 있는 게 빗줄기를 통하여 보였다. 아름다웠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아름다웠다.>

 

몇메터 전방에는 시커먼 빗줄기의 세상인데, 내가 서 있는 여기는 쨍쨍한 햇빛속.

지척의 두 공간에 연출되는 자연의 컨트라스트.

어느 여름철 한낮의 그 긴장을 나도 경험한 적이 있다.

아름답고 신비하고 짜릿하고 유쾌하기 그지없는.

 

***teapot***

2013. 07. 18

 

문득~ 왜 미국대학은 배찌가 없는지요??? ㅎㅎㅎㅎ

대학 친구는 딸이 하바드에 합격통지받은 것을 액자에 넣어 고히 간직하고 우리에게 보여 주더군요.

그래도 하바드 안가고 다른 대학을 갔답니다.

하바드 합격하고도 안갔다하는 아쉬운 마음에서 인가봅니다. ㅎㅎㅎ

 

***동우***

2013. 07. 18

 

티팟님.

문득 어떤 기억이 떠 오릅니다.

면년도 였던가, 어떤 학생이 서울대학에 합격(법대였던지? 의대였던지?)하였어요.

그런데 그 학생은 서울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자신의 소질과 취향따라 다른 대학(홍대였던가?)에 들어갔지요.

그것이 신문에 커다란 기사가 되어 한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지요.

미국사람 들으면 얼마나 웃었을까요.

그런게 장안의 뉴스가 되고 장안에서 신기한 사건으로 화제가 되는 나라.

 

그러니 티팟님 지인의 따님 '하버드 합격통지' 액자.

하바드가 어딥니까?

흐음, 부모로서는 당연히 그럴만 하고도 남지요.

미국인 부모라도 말입니다.

 

***동우***

2013. 07. 18

 

'내가 훔친 여름' 다시 읽어보니 서사적 측면에서 완성도가 높은 소설은 분명 아닌듯 합니다.

 

영일이 녀석의 구라빨이 뻑적지근하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낯선 도시에 진입한 바로 그 당일.

쉽사리 지역사회의 이너서클에 편입되어 그 도시의 이슈에 대하여 함께 이빨을 까고, 남의 가정사의 깊은 내막에 인간적으로 개입하는 비약..

두 녀석 가슴팍에 매달려 빛나는 서울대학 배지의 거룩한 후광이라고 봐 줄꺼나, 속도감있게 재미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신문연재소설의 특딩이라고 봐 줄꺼나. ㅎ

 

저 두 젊은 친구들이 훔치는 여름.

열등..우월..순수..추접..정의..자의식..엉거주춤.. 청춘스럽게..혹은 음습하게 끈적이는..그런 여름.

올여름, 그 맛이 썩 나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마지막 회를 읽어보시면, 이야기의 마무리도 좀 중동무이 한듯한 느낌이 드실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김승옥의 감성적 감각적 언어로 마무리되는 종장의 시퀜스의 문장은 좀 슬프게 상큼하답니다. ㅎ

 

***teapot***

2013. 07. 19

 

잘 읽고 있습니다만 정독형이 아닌고로 주제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편 남았는데 아직도 모르면 좀 곤란 하지 않아요? ㅎㅎㅎㅎ

마지막편 기대합니다.

 

***동우***

2013. 07. 19

 

하하, 티팟님은 잘 읽고 계시는 겁니다.

무슨 공부도 아니고 누가 눈 밝혀 주제 찾아가면서 소설을 읽는답니까? ㅎ

곤란할거 눈꼽만치도 없다오. 티팟님.

 

그냥 저 두녀석의 마음 속을 슬쩍 엿보고 그 행각을 들여다보는 재미로 읽으시면 굿.

 

***동우***

2013. 07. 19

 

1967년 발표된 '내가 훔친 여름'

김승옥(1941년생)은 나보다 한연배 위이지만 1960년대 그의 감수성은 바로 나의 것이다.

 

1967년의 여름.

송정해수욕장의 민박집, 우리 무리들은 바닷물에 몸뚱이 적실 염도 품지않고 물통(수도꼭지 달린 보온통)에다 막소주를 부어놓고 술이나 마셔 댄 못생긴 나의 여름

 

<그 방의 어두운 밑바닥에서 여자와 나는 걷기 시작했다. 나의 여름이 내 팔을 베개삼아 베고 쿨쩍쿨쩍 울기 시작했다. 얇은 칸막이로 나누어진 방들이었기 때문에, 여인숙 안은 온통 과즙처럼 끈적끈적하고 촌충처럼 마디지면서 긴 소리들로 낮게 소란스러웠다. 내 못생긴 여름이 숨죽여 우는 것을 나는 말릴 생각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시원한 게 먹고 싶을 뿐이었다.>

 

<이것이 여름일까? 그래 이것은 여름이다. 비치 파라솔, 눈부신 백사장, 검푸르고 부드러운 파도, 빨간 수영복, 풍만한 아가씨의 웃는 얼굴, 하얗고 가지런한 이빨, 짧기 때문에 유쾌한 자유, 그것들은 남의 여름이다. 나의 여름은, 차표 없이 불안한 기차 여행, 신분을 속여 맡는 일거리, 땀내음에 찌든 아가씨, 겁탈 같은 유혹, 비린내 나는 여인숙에서의 정사, 그러고 나면 기다리고 있는 괴로운 휴식과의 만남일 뿐이다.>

 

<나는 어두운 바다를 향하여 돌아섰다. 그들이 내 등뒤를 지나기를 나는 기다렸다. 이 시간에, 나의 여름이 여인숙의 비린내 나는 방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고, 태양도 형태도 빛깔도 다 잃어버리고 오직 소리만, 저 괴로운 신음같은 소리만 가지고 버둥거리고 있는 바다야말로 비로소 내 몫의 바다인 듯이 생각되어 놓쳐 버리고 싶지 않은 이 시간에 나는 영일이와 선배님을 그냥 보내고 싶었다. 그들은 내가 아는 한, 날이 밝으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얼마든지 어디서든지 만날 수 있고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나로서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내 연인이 잠들어 있는 여인숙의 대문을 두드리고, 그리고 빈방이 없다는 사환의 졸린 음성을 듣고, 그리고 거리의 저쪽으로 멀어져 갈 때, 내가 영일이를 잠깐 붙들고 싶었던 것은 '강동우씨가 화가 나 있지는 않더냐? 내일 실내 장식을 하겠다고 찾아가면 받아 주지 않을 눈치는 아니더냐?'고 묻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어둠 속에 오래 묻혀 있고 싶었다.>

 

촌충처럼 마디진 여인숙 일실에서 숨죽여 울고 있는 못생긴 여름.

열등감과 죄의식과 암담함으로 흐느끼는 여름...

자의식과, 겉도는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채 끈적이는 여름...

 

계절 저물어 1967년 가을 나는 군대로 도망갔는데, 저 두 녀석은 못난 여름으로 부터 어디로 도망갔을까.

창수는 교수님께 사죄하고 다시 서울대학 배지를 달았을까.

영일이의 여드름과 치질은 좀 잦아들었을까..

 

늙마의 저 두 녀석은 어떤 모습일까.

한 녀석은 막강 서울대학 졸업하고, 다른 녀석은 절륜 구라빨로 이 나라 어디 웃자리 하나씩 꿰차고 앉았을까.

 

소설 밖.

작가 김승옥은 문학을 버리고 예수의 품으로 도망갔다.

그런데 나는 여적 어둠에 잠긴채 내 못난 여름을 울고 있다.

 

***teapot***

2013. 07. 19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이 못 미쳤었는데 동우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진짜 그 구라빨 센 녀석이 이 나라 어디 웃자리를 꿰차고 있음 어쩌나 걱정이 돼네요~

 

소설 밖의 김승옥은 혹시 목사 명단에 올라져 있는 건 아닌지요??

 

동우님은 아직도 감상적이십니다!!

 

소설은 그냥 읽으라는 말씀으로 듣고 마음에 들어하고 있답니다!! ㅎㅎㅎ

 

***동우***

2013. 07. 20

 

티팟님.

엄혹하였던 시절.

권력에 저항하면서 김승옥의 친구들은 감옥으로 어디로들 끌려가 고초를 겪고 있었지요.

떨치고 나서서 행동주의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자괴감으로 김승옥은 불면과 음주로 심신 모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중, 어느날 밤 실제 하나님의 손이 나타나 복부엔가 쓰다듬을 받았답니다.

육신과 마음의 병이 치유되는 기적을 맛 보았다지요.

영원한 가치의 본령은 따로 있었구나....그로부터 그의 영혼은 뒤집어졌습니다.

순복음교회 (당시 조용기목사가 깃발을 날리던) 교회의 돈독한 신앙인이 되었지요. (목사는 아니에요.)

 

그의 회심의 글, 텍스트 파일 구해지면 언젠가 올리겠습니다.

 

***고향***

2013. 07. 20

 

저의 사계절은 여름만 못생긴 것이 아니라 봄도 여름도 겨울마저도

별 잘생기지 못했던것 같아^^^ 왠지 편치않은 나날들이예요.

세월은 흘러가도 변하지않는 감수성으로 인해 동우님도 가끔 편하지않는 나날들을 보내시는듯??

다만 짐작이랍니다.^^^

 

***동우***

2013. 07. 20

 

고향님.

드넓은 호주의 자연과 더불어 맞고 보내는 고향님의 사계절은 잘 생겼더만, 무얼 못생겼다는 말씀.. ㅎ

 

편편치 못한, 나의 못생긴 여름.

하하, 고향님.

일단 나는 더위에 취약하답니다.

육신도 그렇거니와 심리적으로도 무척이나 답답해 하지요.

때로 관계의 표정으로부터 금속성 차가움이 엄습, 그런 것들이라도 서늘하였으면 좋겠는데 숨막히는 답답함이니 탈이랍니다. ㅎ

 

***eunbee***

2013. 07. 22

 

이렇게 저렇게 공범이 되어 여름을 훔치기는 했으나

텁텁한 입맛입니다.ㅎㅎㅎ

 

어제 큰애네에서 심심파적으로 다시 훑어내려간 김애란 젊은 작가의 '비행운'에서의

'너의 여름은 어떠니'가 상큼한 입맛가심으로 훨 낫습니다.ㅋ

 

좋은 글 올려주시는 동우님께 웬 배신성 발언? 흐흐흐

 

***동우***

2013. 07. 23

 

공범으로 훔친 여름에 대한 은비님의 배신성 발언

그 또한 good!, bonne!.

취향의 다양성은 댓글의 풍요로움이지요.ㅎ

 

은비님의 엘레강스한 취향과 섬세한 감각에 '내가 훔친 여름' 좀 구질구질한바 없지 않음을 모르는바 아니랍니다.ㅎ

 

전에 은비님이 어디선가 '비행운'을 상찬하신걸 들은 기억 있는데, 나도 구해 읽어야겠어요.

나도 상큼한 입맛가심 있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