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박민규]]
<카스테라> <갑을고시원 체류기> <몰라 몰라,개복치라니>
<카스테라>
-박민규 作-
***동우***
2013. 04. 16.
'무라카미 하루키'와 '박민규'
1949년생 하루키와 1968년생 박민규.
둘 사이에 문학비평적으루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통(相通)되는 바가 있는지 내 소양으로서는 바이 알수가 없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왠지, 통하는 구석 없지 않은듯 하다.
인식이랄까 정조(情調)랄까 어투(語套)랄까...그런 것들이.
내 딸아이는 무척이나 박민규를 좋아한다.
사오년전 읽어봅시사하고 아비에게 가져다 준 책이 '박민규'의 단편집 '카스테라'였다.
상상력도 문장법도 우리 소설로는 전혀 새로운 소설이었고, 참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딸과 아비 사이, 두 세대의 감성적 격차는 상당할 것이다.
감성적 기반을 구축한 환경이 그러하였을 것.
감수성의 색채.
1974년생 딸아이의 그것은 1947년생 아비와는(27년차) 분명히 다르다.
1919년생 내 어머니와 1947년생 나와의 격차(28년차)와는 비교 할수 없을 정도로.
느끼건대 내 어머니와 나와의 감수성 색채는 그닥 차이가 없을 듯.
세월 흐름의 가속도가 그러하다.
무어의 법칙(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24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법칙)이란게 그렇다던가.
그렇지만 부모 자식의 세대간 감수성의 소통이 무망(無望)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성 보편에 소구하는 그 문학적 알맹이야 그리 다를리 있으랴.
흐음, 무라카미 하루키와 박민규...
떠오르는 것 있으면 차츰 지껄이기로 하고, 마침 카스테라 텍스트파일 있어 포스팅합니다.
카스테라.
좀 신랄한 듯, 그러면서도 좀 따뜻하지 않습니까... ㅎ
***eunbee***
2013. 04. 16
참으로 신선한....
이런 멋지고 특이한 소재의 소설도 있네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감사!!^&^
***동우***
2013. 04. 17
박민규의 소설.
하하, 은비님 재미있으시다니 히죽 웃습니다.
오늘 아침 하루키 잔득 올려놓았어요.
심심풀이 땅콩으로 심심할적 씹으시라고. ㅎ
***하루***
2013. 04. 16
언제 시간 나시면 놀러 오세요..
***동우***
2013. 04. 17
잠시 들여다 보았더니 주식고수님.
떡고물이라도 떨어뜨려 주신다면 시간 없어도 놀러 가지요.ㅎ
***teapot***
2013. 04. 23
참 색다른 주제라 생각하고 다시 작자 이름를 봤습니다.
외국작가인 줄 알다가 김치병이 나오길래....ㅎ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따님이 읽어보라고 책을 권하고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저는 어려운 영어로 된 책을 읽을 실력이 안되고
딸애는 한국말 읽을 실력이 안되니,
가끔은 딸은 영어책을 전 한국말 책으로 된 같은 책을 읽는답니다ㅎㅎㅎ
동우님이 "모비딕"이 재미없는 책이라 하신 말씀이 생각나는데
그 책도 그리 다시 읽어본 책 중에 하나입니다.
죄송하지만 우리딸이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가 "모비딕"이고
저도 재미있게 읽었답니다~ㅎㅎㅎㅎ
***동우***
2013. 04. 23
미국땅 오래 사셨더라도 티팟님에게는 아무래도 한국어가 익숙하겠지요.
따님의 영어책과 티팟님의 한국어책, 같은 내용을 읽으시는데 모녀간 느낌의 커무니케이션에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ㅎ
내가 모비딕을 재미없는 책이라고 하였나요?
아마 그럴거예요, 처음 그 소설 읽었을때 너무나 진도가 나가지 않아 읽기를 포기한 적 있었지요.
허만 멜빌의 그 박학한 박물학적 사설에 질렸답니다.
그레고리 펙이 에이허브 선장 역을 맡은 영화를 보고서 나중에 다시 읽었는데, 과연 명작! 명작!
아, 티팟님 말씀하시니 모비딕 다시 한번 펴들고 싶습니다.
<갑을고시원 체류기>
-박민규 作-
+++동우***
2014.04.17.
박민규(1968~ )의 '갑을고시원 체류기'
황석영 선정 한국명단편 101에 포함된 소설.
동세대 멘탈리티의 공감영역에 속해서일까, 내 딸아이는 박민규의 소설들을 무척 좋아한다.
몇년전 딸이 건내주는 책을 통하여 박민규를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기발하기는 하였지만 딸아이가 상찬하는만큼 그렇게 화들짝 빠져들만큼은 아니었다.
남의 꿈 속에 침입하여 공작을 벌이는 영화 인셉션 쯤의 재미랄까.
디지털세대의 디지털적인 상상력,
박민규의 소설들의 서사는 시공을 넘나드는 무애(無碍)로움이었다.
풍자적 감성과 시적 판타지와 문화적 취향의 색감도 만져졌다.
그러나, 분명 독특한 에스프리는 느껴졌지만, 그때 거기에 내게 익숙한 문학은 없었다.
작가의 세계인식이라던가 삶에 대한 고뇌라던가 사유의 무거움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그저 현란하게 디지털 게임을 다루는 듯한 재능의 가발함.. 그냥 낄낄거리면서 즐김직한 가벼운 소설로 치부하고 말았던 것이다.
'갑을고시원 체류기'와 '카스테라'를 다시 읽었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전의 소감은 늙다리 선입견의 맹목(盲目)이었다.
오소독스한 안일함에 순치된 늙다리 의식..
낯선 앙팡 테리블의 건방짐을 무서워하여 짐짓 깔아뭉개고 싶은..
어떤 의도적 선입견 같은.
불온(不穩) 한 것은 아방가르드 쪽이 아니라 늘 꼰대들의 텃세 쪽이리라.ㅎ
박민규의 소설들.
기본이 되어 있었다.
건방지지 아니하였다.
아웃사이더의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낄낄거리는게 아니었다.
오히려 눈물겹도록 진지한 액추어리티가 있었다.
사기를 처서 집안을 쫄딱 망하게 한 삼촌, 가족의 해체, 부모의 빚상속, 정처(定處)없는 떠돌이 삶, 형의 죽음..
자본에서 탈락한 자의 소외와 외로움..
기성(旣成)이 만들어 놓은 세계와 그 시스템들..
도무지 맞득치 않더라도 어쩔 것인가, 우야든둥 빌붙어 살아야 할 곳은 그곳 밖에는 없는 걸.
갑을고시원 체류기는 그러기 위하여 안간힘쓰는 한 젊은이의 눈물겨운 기록이다.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과, 이 세상은 혼자만 사는 게 아니란 사실을―동시에,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모순 같은 말이지만 지금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즉, 어쩌면 인간은― 혼자서 세상을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혼자인 게 아닐까.>
혼자서 세상을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혼자인게 아닐까.
패러독스의 통찰적 인생관, 훌륭한 아포리즘이다.
세상은 말하자면, 방귀를 참으면서 사는 곳이다.
1cm 두께의 베니어로 나뉜 관과 같은 관 속에 누워서 행여 옆방의검사님에게 들릴세라 조심조심 방류하는 몹시 외로운 그 방귀말이다.
그럴때면 가족이 보고싶거나 '그리운 금강산'같은 노래가 고요히 귓가를 울린다.
그리하여 방귀는 단절이고 외로움이면서 방귀는 관계이고 소통이기도 하겠거니...
<상체와 하체를 동시에 움직이는 행동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중엔 결국 움직임 자체가 거의 없어지게 된다. 다리를 뻗을 수 없으니 늘 어딘가가 뭉쳐 있는 느낌이고, 몸은 점점 나무처럼 딱딱해져간다. 마치 가구(家具) 같다. 아닌게아니라, 늘 그 자리에 붙박이인 오래된 가구처럼 말이다. 1cm 두께의 베니어로 나뉜 칸칸마다 빼곡히 남자나 여자들이 들어차 있다. 그 속에서 다들 소리를 죽여가며 방귀를 뀌고, 잠을 자고, 생각을 하고, 자위를 한다. 살아간다. 생각할수록 그것은 하나의 장관이다. 뭔가 통해 있고, 비릿하고, 술렁이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것은 세포막이 아닐까? 베니어의 벽에 손을 얹은 채, 나는 그런 생각에 잠기고는 했다. 문은 늘 잠겨 있고, 창문은 없다. 그저 질식을 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나의 폐는 이미 퇴화된 게 아닐까? 어느새 나는, 아가미 호흡과 같은 것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겨드랑이 아래의 흉곽을 짚어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기포와 같은 것이 방 속을 두둥 떠다니는 것을 본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쩔 수 없이―온순한 열대어처럼 항문을 빠져나와야 했던 억눌린 가스의 덩어리였을까. 아니면 가구로 변해버린 육신을 잠시나마 이탈해 있던 나의 지치고 고단한 영혼이었을까.>
위대하고 행복하고 완전하고 싶으나 막상 닥치면 왜소함과 불행과 불완전함으로 꽉 차있는 (-팡세-)실존의 공간에 방귀소리는 매가리없이 잦아든다.
내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은 인생은 힘든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도무지 내것이 아닌 세상으로 느껴지는지라 청춘은 아픈 것이다.
오로지. 간신히.
시간이 약이다. 세상은 그렇게 서서히 청춘에 스며드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임대아파트 하나라도 얻어 걸린다.
<그리고 나는`―`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했다. 셋 중 어떤 일을 떠올린다 해도 간신히, 간신히, 안간힘을 다해 할 수 있었다는 생각뿐이다. 과연 인생은 고시를 패스하는 것보다 힘들었고, 그나마 나는 운이 좋았다는 생각뿐이다. 오로지? 오로지. 그리고 그 사이, 역시나 간신히`―`나는 작은 임대아파트 하나를 마련할 수 있었다. 비록 작고 초라한 곳이지만 입주를 하던 날 나는 울었다. 아마 당신이라도, 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치 꿈처럼`―`나는 두발을 뻗고 자고, 아주 자주, 내 몫의 계란프라이를 먹으며 살고 있다. 그리고 간혹, 아주 가끔 나는 그 고시원의 작은 밀실을 떠올리고는 한다. 그러니까 어제처럼, ‘몸에서 사람의 귀가 자라는 쥐’의 뉴스라도 보면서 말이다. 이제 그것은 먼 옛날의 일이고, 나는 비교적 긍정적인 마음으로 그 특이한 이름의 고시원을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쥐의 몸에서 자라난 사람의 귀를 이해하듯. 엉뚱하게도, 말이다. 결국 시간은 우리의 편이다.>
이 청춘에게는 위선(僞善)과 위악(僞惡)의 자기기만이 없다.
비뚤어진 방어기제로 가식(假飾)한 우리 때와는 달리, 내 청춘보다 훨씬 더 건강하다 .
내 청춘보다 훨씬 사랑을 알고 있는 청춘이다.
<어쨌거나 그 특이한 이름의 고시원이 아직도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 거대한 밀실 속에서 혹시 실패를 겪거나
쓰러지더라도 또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그 모두가 돌아와 잠들 수 있도록. 그것이 비록 웅크린 채라 하더라도 말이다>
청춘은 아버니와 어머니와 학교와 미국과 중국, 소증하거나 해악이 될만한 것들을 냉장고에 넣어 냉장한다.
다음날, 그것들은 반듯한 한조각의 카스테라로 변해 있었다.
카스테라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맛이었다.
모든 것을 용서할수 있는 맛..
젊은이는 홀연 목에 메었다.
<놀랍게도 그 속은 텅 비어 있었고 오직 냉장실의 정중앙에 희고 깨끗한 접시 하나가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접시 위에 한 조각의 카스테라가 있었다. 마치 하나의 세계를 다루듯 나는 조심스레 카스테라를 집어올렸다. 놀랍게도 따스한. 반듯하고 보드라운 직육면체가 손과 눈을 통해 거짓없이 느껴졌다. 살짝 한 입을 베어 물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이 입과 코를 지나 멀리 유스타키오관까지 퍼져나갔다. 그것은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맛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따스하고 부드러운 카스테라를 씹으며 나는 눈물을 흘렸다. -카스테라->
박민규의 소설...
문득 밀란 쿤데라가 생각난다.
이데올로기는 장황하다.
'쁘띠드 프라즈' (간결문) 면 족하다
'이마골로기'(Imagologie)로 충분하게 세상을 느낄수 있으려니... ㅎ
<모든 이데올로기는 패배당했다. 현실은 이데올로기보다 훨씬 강하고 이마골로기는 현실보다 훨씬 강하다-밀란 쿤데라->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박민규 作-
***동우***
2013.04.21 05:08
근래 쌩텍쥐페리를 읽었다. 연이어 하루키를 읽었다.
그리고 박민규를 읽는다.
바야흐로 시대의 트렌드, 그에 따른 취미와 취향과 감각이 사유를 지배하여 그들끼리 공감을 나누는가.
만화, 영화, 동영상, 컴퓨터, 게임, 해외토픽, 기네스북, 위키피디아의 단편들...듀란, 바둑, 수영, 바다거북키우기, 나오미 켐벨, 버뮤다삼가지, 지구와 인류와 자본주의의 나이, 9호구름, 고무동력기, 이라크전쟁, 홍키통키맨, 잭필드의 면바지, 앙코르와트, 코스모(우주적 오르가즘을 말하는지)....
철학적 정치적 시대정신등등에 대한 사유와 통찰력과는 별개로, 자신이 숨쉬는 시대의 어휘(語彙)들만으로도 사고(思考)하여 놀라운 상상력을 창조 해내는 솜씨들.
'몰라몰라,개복치라니'라는 제목을 나는 '이를어째 (I don,t believe it!) 알고 봤더니 지구는 개복치였네'쯤의 뉘앙스로 읽었는데, 검색해 보니 몰라몰라(mola mola)는 개복치라는 어종의 라틴어 학명이었구나.
중의적(重意的)으로 한 어휘를 써먹는 이 재치라니.
박민규의 솜씨는 그렇다치고.
그렇지만 나는 진짜배기 솜씨꾼 밀란 쿤데라를 다시 펼쳐 들여다 보지 않을수 없다.
'이마골로기' 혹은 '쁘띠뜨 프라즈(간결문)'.
<모든 이데올로기는 패배당했다. 현실은 이데올로기보다 훨씬 강했다. 그러나 이마골로기는 현실보다 훨씬 강하다. -밀란 쿤데라 '불멸'->
<우리의 이미지란 단순히 겉모습이고 그 뒤에 숨겨진 독립된 자아의 실체가 숨겨져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밀란 쿤데라 '불멸'->
존재 속에 갇힌 인간의 우스꽝스러움을 밀란 쿤데라는 현란한 오리요리를 만들어냈다.
비본질적인 존재란 그것에 대하여.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으흠, 그것은 밀란 쿤데라의 슬픈 풍자였다.
얼마 전 읽은 책(문화를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조한욱 저)에서 '망탈리테'라는 개념을 얻어 들었다.
정치권력 중심의 역사관, 그 후 지정학적으로서의 역사관(이른바 아날학파), 그 후 등장한 개념이 '망탈리테'라고 하는데, 이를테면 장기지속의 역사를 인간과 문화의 세계까지 연장시키려던 시도란다. (대충 그렇다는..)
이데올로기가 이념이나 가치관 대의명분등의 삶의 태도로서 의식적으로 목표를 추구하려는 것이라면 집단적으로 확립되기는 했지만 반드시 의식적이라고 말할수 없는 태도나 개념이나 규범이나 자연에 관한 특정 사회집단의 가치관 등을 말한다. <어떤 조건에 의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집단적 사고방식, 생활습관같은걸 의미>
생각해 본다.
우리의 현실을 결정하는 것은 신념(이데올로기)인가, 아니면 정서(망탈리테)인가.
SNS의 단문들 어디 생각들이 었던가, 오로지 난무하는 바 그것은 정서일 뿐이다.
정치는 이제 국민들의 감성에다 소구하는 광고일 뿐이다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풍자적 감성과 에스프리, 시적 판타지..이른바 문학은 분명히 있었다.
그렇지만 늙다리의 눈에는 삶과 시대에 대한 문학적 통찰력은 그다지 뵈이지 않는다.
기발한 재미로만 읽히는, 늙다리의 판타지는 죄 서사적 감성에 기반하고 있는겐지.
한마디 부언. (씨잘데기 없는ㅎ)
하루키는 밀란 쿤데라에 못 미치고 박민규는 하루키에 미치지 못한다.
내게는 말이다. ㅎ
새벽의 횡설수설.
좋은 휴일을.
***저녁산책***
2013.04.29 10:27
동우님 덕분에 재미있는 글 읽었습니다.
판타지에 팝 아트 적인 산문!
저자가 쓰는 고유명사들이 제게는 아주 익숙합니다.ㅎ
제목이 무슨 뜻인가 했었어요..ㅎ
그런데..동우님,비니? 미니? 의 모자. 완전 귀엽고 정겹습니다.혹시 동우님 모자인가요?
우왕..정말 사랑스럽네요.
***동우***
2013.04.30 05:29
나보다 엣지(edge, 이러때 쓰는 어휘가 맞나?ㅎㅎ)한 감각의 저녁산책님.
판타지에 팝아트적 산문... 과연.
박민규의 소설, 적어도 나보다는 색다른 재미를 느끼실듯.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나도 처음에 제목의 중의적 의미를 몰랐어요, ㅎ
저 아이, 둘째 미니예요.
나도 저런 모자를 쓰고 학교 다녔지만, 반세기 전 모자가 남아 있을리 있나요?
저 사진은 즤 식구들 군산여행중 근대박물관인가에서 찍은 거랍니다.
저녁산책님의 "우왕..정말 사랑스럽네요."
우리 미니에게 들려 주어야지. ㅎ
보내 주신 "투 롬 위드 러브"
오늘 감상 예정입니다.
거듭 탱큐, 저녁산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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