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박성원. 고창근]] (1,4,3,3,1)

카지모도 2020. 8. 3.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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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박성원]] <유서>

[[고창근]] <날마다 살인하는 여자> <응망> <자화상>

 

 

<유서>

-박성원 作-

 

***동우***

2013.06.24 05:23

 

박성원 (1969~ )의 '유서'.

짙은 실존적 냄새가 풍긴다.

그러나 상당히 무리스럽고 어수선하다.

작가가 보여주는 쌍둥이 형제의 의식세계는.

 

시기심으로 서로 싸우는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 그리고 카인과 아벨.

배리(背理)되는 두개의 객체.

동일한 오브젝트에 담겨진 실존의 야누스적 모습일 것이다.

절대성과 상대성, 순수성과 대중성, 시인과 벌레잡이, 탐욕과 탈욕(脫慾)...

두개의 자아는 서로 쟁투한다.

 

청컨대, 둘은 적당한 지점에서 서로 화해하라.

분열된 자아, 그건.....실패한 자아일지니.

 

<아포카리포스 apocalypse- 죽음. 누군가가 말했었지. 그것이 곧 시작이라고. 죽음의 기인 검은색 철 덩어리로 된 기차를 타고 역시 기인 터널을 지나 아주 희인 플랫포오옴에 들어서면 아브라카다브라 abracadabra- 축복, 즉 탄생이라고. 죽음이 곧 축복이라고.>

 

필경은 죽음으로서만 합일(合一)할 터인가.

내 지난 날, 형제의 탐욕을 용서하라.

 

***달리는말***

2013.06.24 18:09

 

친구님!

지난 주말을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토요일, 아시아의 알프스라고 일컫는

평창의 알펜시아 할리데이 인 리조트에 들어가

1박을 하면서 대자연의 대관령 삼양목장을

걸으면서 감동과 소중한 추억을 안았습니다.

또한 생생한 동계올림픽 프로그램 체험코스로

2018년 동계올림픽의 함성을 미리 느낄 수 있는

스키점핑타워에 올라가 평창의 모든 것들을

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유익하고 보람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늘 함께해주시는 친구님!

발자취를 남기며 행복하게 다녀갑니다.

 

다시 시작하는 한 주의 보람차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동우***

2013.06.25 05:33

 

친구님.

아니, 저보다 위의 연배이시니 선배님.

반갑습니다.

선배님의 활기 찬, 나보다 훨씬 젊으신 면모.

부러울 뿐더러, 진정 존경스럽습니다. ㅎ

자주 뵙겠습니다.

 

 

<날마다 살인하는 여자>

-고창근 作-

 

***동우***

2014.07.24 04:53

 

고창근이라는 작가의 소설, 처음 읽습니다.

상주에 살며 그림도 그리는 중견작가라는데 생년(生年)은 알수 없군요.

 

한 '요양보호사'를 통하여 세상과 살이의 우울한 모습을 들여다 봅니다.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은 업무강도에 비하여 상당히 박한 보수의, 봉사정신 없으면 힘든 직업이라고 들었습니다.

 

여자와 늙음과 경제...

삶의 품질.

 

으흠, 복지(福祉).

우리 선대(先代) 때 보다야 아무래도 좀 나아졌겠습니다만.

 

날마다 살인하는 여자.

옛날 어른들, 세상사 미운 대상을 향하여 가끔 혼잣소리를 중얼거렸지요.

소리없는 총이 있었으면 하고.

어느 세상 누구에게나 뉜가에 대한 기분학적(?) 가벼움으로서의 살의욕구가 없지 않을듯 싶습니다..

그 감정모체의 색깔은 제가끔 다를지라도.

 

여름 익어가는 한주의 시작.

밝으시기를.

 

 

<응망(凝望)>

-고창근 作-

 

***동우***

2017.02.20 04:35

 

그림도 그리는 연배가 지긋한 작가로 추정됩니다만 '고창근'이라는 작가의 자세한 프로필은 알수가 없네요. (전에 '날마다 살인하는 여자'를 올린적 있습니다)

 

눈길을 모아 한 곳을 바라본다는 뜻의 두 어휘.

응시(凝視)와 응망(凝望).

凝視가 유물론적(?) 이라면 凝望은 유심론적(?) 느낌입니다.

하하, 왠지 기분학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부부 관계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걸까요?

섹스 ,윤리, 사랑, 법률...

함께 부대껴 늙어가면서 본원적 자아는 순치되고 마모되어 시나브로 휘발(揮發)되고 맙니다.

 

관계가 억압으로 인식되기 시작할 때.

으흠, 욕망에 충실하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몸.

늙어 그 욕망은 추함이 아니라 자유함이라는.

자유라는 추상으로 구현되는 아름다운 몸.

 

헬스장 탈의실의 거울.

젊은 육체의 美 옆에 선 내 늙은 몸의 醜.

오랜시간 응망하면 찾을수 있으려나, 한조각 美라도. ㅎ

 

 

<자화상>

-고창근 作-

 

***동우***

2018.02.28 04:25

 

​그림도 그리는, 지긋한 연배의 작가 고창근.

전에 그의 소설 두어편 올린적 있습니다.

고창근의 블로그. http://blog.daum.net/sgamm

'자화상'

​나이브한 영혼에 가해지는 추하고 不正한 현실의 압박.

싫어 싫어 하면서도 그 진창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갈등은 자학으로 변질되어 더욱 욕망하는 일탈.

무의식에 새겨진 트라우마,

그 분열된 의식이 화폭에 그리는 깨진 거울 속 자화상.

그건 일그러진 영혼의 모습입니다.

​과잉된 자의식으로 ​의식은 분열되었습니다.

옛 내 직장생활, 현실적 不當한 것들에 대하여 남처럼 능숙한양 동화되어 몸을 담구었지만 실은 당시의 나는 심각한 현실순응 장애자였습니다.

심한 분열을 겪었었지요.

관료주의.

명경지수처럼 맑도록, 완벽한 적폐(積弊)의 청산은 가능할까요?

공적영역 속에 사적영역의 혼화비율이 높은 우리 풍토에서는 참 어려울듯 싶습니다.

마음의 작용을 로고스와 파토스로 확연하게 구분할수 없듯이,

그러나 엄정하도록 公正한 세상을 지향하여 나아가야 하겠지요.

곁길로.

​확산되는 미투 (me too)

그렇다고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 속에서 에로티시즘을 완벽하게 없애거라한다면, 그건 살맛 안나는 세상일겁니다.

자웅(雌雄)의 서로 끌려 어쩌구저쩌구하는 건 유전자적 의무이고 권리입니다.

미투가 과유불급이 되어서는 아니될테지요.

그러나 sex에 보태어 젠더(gender) 의식이 작용하여 휘드르는 권력은 성적(性的) 갑질이 됩니다.

생물학적 기능을 떠나서 여자의 성이 왜 항상 乙이 되어야 합니까?

페니스가 힘자랑하는 상징적인 질서, 그건 의식의 차원이 아니라 거의 신체화되어 버리기까지 한 불편부당한 폭력입니다.

그리하여 보바르가 말하였듯, 여자는 태어나는게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겁니다.

순진할만큼 솔직하게 섹스를 찬미하였던 마광수는 작년인가 자살하였지요.

세상이 얼마나 까대었습니까? 그토록 순수하고 여린 영혼의 마광수를.

분열된 의식, 일그러진 영혼...

그를 생각하면 고은 이윤택 김기덕 따위 뒷구멍으로 추악한 그들의 性的 갑질, 더욱 가증스럽습니다.​

내 두 손녀가 성인이 되었을 적 저 페니스 적폐만은 반드시 청산되어 있기를 나는 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