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행복론>
-마르쿠제- -라즈니시-
<순간적인 행복, 지복의 한 조각으로 충분하다>
-마르쿠제 作-
***동우***
2015.01.01 04:33
무한으로 연연(連延)한 세월을 나누어 인간은 달력이라는걸 만들었습니다.
몇시간 전에 들어선 2015년, 을미년이라지요 (음력상으로는 아직 아닌가).
새해.
어제와는 느낌이 사뭇 다른 날것의 새벽냄새가 나는듯 합니다.ㅎ
새해 벽두, 행복에 관한 짤막한 글 몇편 골라 올립니다.
오늘은 ‘루드비히 마르쿠제’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와는 다른 사람인가 봅니다)의 '행복론'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들을 합니다.
지금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듯이,
언젠가 반드시 쟁취하여야 할 행복이라는 경지가 따로 있다는듯이.
기를 쓰고 도달하여 획득하려는 행복이라는 푯대.
그 정체란 과연 무엇일까요? <지금 세상의 언필칭 행복이란 돈(경제적 상황)일거라고 말들 하지만...>
생명의 근원적 본성을 무어라고 인식하고 계시는지..
약육강식이라거나 생노병사라는 운명론적 의식을 짊어지고 한목숨이 호흡한다는 것.
호흡자체가 불편한 것이라면 그 목숨은 한시라도 살고 싶지 않을겁니다.
그렇다고 그 누구도 숨쉬는걸 쾌락이라고 여기지는 않을겁니다.
그러나.
에피쿠로스가 설파하는 상태적(常態的)인 행복감은 정적(靜的)인 것이랍니다.
격렬한 쾌락은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지요.(오르가즘이 그러하듯.)
개별적 인간이 누리는 지족(知足)의 삶.
자아가 획득하여 느끼는 지복(至福)의 한 조각...
아타락시아 (常態的 행복감?)
올 한해, 벗님들의 ‘아타락시아’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렇게 삽시다들.
***노루***
2015.01.01 12:15
동우님.
여전하심 늘 뵙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쓴 마르쿠제는 그 마르쿠제가 아니군요. 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행복했구요. ㅎ
새해 아침에 읽기에 딱 좋은 글을 골라 올리셨네요.
고마워요.
새해에 동우님도 많이 행복하시기를요!
***동우***
2015.01.02 05:18
노루님.
작년 한해 익명으로 드나들었지만 덴버의 청랑한 기운, 늘 교수님으로부터 끼침을 받아 익숙하였습니다.
새해에도 여일한 교수님의 건승과 건필을 기원합니다.
***불변의 흙***
2015.01.01 15:18
乙未年 새해 아침 입니다.
새해엔 활기차고 힘차게 출발하시고
올 한 해 소망하시는 모든 일 잘 이루어
지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새해 福많이 받으세요
-불변의흙-
***동우***
2015.01.02 05:19
고맙습니다, 불변의 흙님.
님께서도 새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하시는 일 형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저녁산책***
2015.01.01 18:00
동우님, 새해 첫날이 저물어 갑니다.
오늘도 염치없이 일방통행으로 동우님의 알곡을 한보따리 얻어갑니다.
올 한해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소원도 모두모두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실은 지난주에 가족들과 부산에 다녀왔어요.
고등학생때 부산에 부모님과 해운대 해수욕장에 다녀온 이래,,처음이니까 정말 오랜간만에 간것이지요.
상전벽해! 란 말이 딱 어울리게
눈이 휘둥그래질정도로 해운대 인근은 엄청나게 변했더군요.
이박삼일 일정에 서울에서부터 자동차로 움직이니 오고가는 시간빼고나니
시간부족으로 부산의 명소를 다 보진 못했어요.
그래도 자갈치 시장, 국제시장, 용두산 공원, 광복동, 해운대, 태종대, 광안리.
그리고 을숙도에 감깐..ㅎ
멀리서 조망하는 부산은 앞에는 푸른바다, 뒤로는 산, 그리고 산중턱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의 모습이 어우러져
그리 졍겹게 느껴질수가 없었습니다
흡사 나폴리 같은 느낌이랄까요.
동우님은 어디에 사실까..속으로 상상도 한번 해 보구요.
부산 다녀와서 국제시장이란 영화를 보게되니 영화도 더욱 생생하게 보게 되었구요
온화한 겨울날씨, 맛난 별식들..여러가지 몽땅 마음에 들었답니다.ㅎㅎ
처음으로 돼지국밥도 먹어보고. 광안리에선 생선회도 실컷 먹고, 조선비치 커피샵에 가서 커피도 마시구요..
시간이 없어 밀면은 못 먹어보았어요.ㅎ
다음에 기회를 또 만들어 방문하고 싶단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녕 부산의 속살은 어떤 것일까..그런 궁금함도 갖게 되어봅니다.
첫날부터 너무 두서없는 인사 죄송합니다.
다시한번 동우님의 무한한 행운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동우***
2015.01.02 05:26
저녁산책님.
한반도가 광활한 영토도 아니고 옛날 교통편도 아닌터에, 그토록 오랜동안 부산에 오시지 않았다니. ㅎㅎ
저녁산책님 고등학교 적 기억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딱 맞는 말씀.
나 사는 곳 영도를 비롯하여 구도심은 그다지이지만, 해운대 쪽은 맨하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변하였지요.
태종대도 다녀가셨다니, 우리 집 창문너머 지호지간에 저녁산책님 있었던 순간이 있었을겁니다. ㅎㅎ
부산의 속살,
이번 가족 함께 하신 저녁산책님 부산행보에는 어려웠을 것이지만, 언제 느긋하게 내려오시면 그 속살 보여드리리다.
을미년 새해 저녁산책님과 댁내 두루 만복 가득하시기를.
더불어, 정겨운 정원에 음악 가득 넘치는 날 기다립니다.
<자신이 바다라고 주장하는 파도가 있다면 그는 미친 것이다>
-라즈니쉬 作-
***동우***
2015.01.02 05:08
라즈니쉬의 행복론.
무엇에 매혹되었었던지, 한때 라즈니쉬라던가 크리슈나무르티같은 신비주의자의 책들을 사다 읽었었다.
나와 같은 어줍쟁이로서는 그 경지 이르기는 까마득하여 지금은 먼지 앉은 책만 형해처럼 남아있지만.
모더니즘의 담론으로는 담을수 없는 직관적 존재론.. 영적체험에 의한 자각...언어가 규정하는 너머에 있는 존재의 본질...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시피니에...
에고(ego)는 거짓 자아(自我).
<"에고는 그대가 분열될 때에만 존재한다. 그대가 조화로운 상태에 있을 때, 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의식은 결코 행복을 허용하지 않는다. 지금이야말로 그대가 가진 유일한 순간이며, 여기야말로 그대의 유일한 장소이다.">
으흠, 지금 이 순간의 존재로써 의식되는 그것만이 언제나 새로운, 진짜배기 자아.
며칠전 신문을 보니, 요즘 일본의 젊은이들이 과거의 젊은이보다 더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예전에는 고도성장이 있었고 소속된 곳이 있었고 내일은 더 나아질거라는 꿈이 있었고 목표가 있었지만 작금의 일본사회는 양극화의 격차와 불투명한 미래와 알바이트로 하루하루 떼워가는 현실이면서도 그렇다고 한다.
어느 학자가 그것을 역설적으로 '희망이 없기에 행복'한 것으로 진단하였다는데.
여기다 그걸 들이대는게 비약일터이지만, 나는 '희망이 없으므로 행복하다'는 그 뜻이 몽롱한채로 절실하게 심금에 닿는다.
깊은 명상으로 얻는 신비한 깨달음 없더라도, 벗들이여 우리 마음먹기로 그냥 행복하자.
"행복하고 싶으면 행복하면 된다”
염불외듯 중얼거린다.
아타락시아. 아타락시아....
***mayblue***
2015.01.02 09:19
라즈니쉬라던가 크리슈나무르티같은 신비주의자의 책들을 사다 읽었었다.
동우님..저는 주로 대학 도서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젊음의 한 때 그런 심오한 책들을 읽으며 내 인생에 뭔가 변화를 추구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도 싶었던 허영심 때문에 읽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누구인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의 근본 문제의 해답을 찾으러 그런 책들을 뒤적거린 것 같은
희미한 기억의 조각들이 단편적으로 떠오르지만 젊을 때라 읽긴 읽어도
대부분 제대로 그 뜻을 파악하거나 음미하지 못했답니다.
아직도 여전히 난해한 대목이 많지만
먼 세월의 강을 건너 새로이 대하는 글들에서 지금은 이렇게 명확해지는 구절을
그 땐 왜 그리 뽀얀 안개길을 걷는 것처럼 헤매었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납니다.
시간이 흐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걸 그 땐 정말 몰랐었네요.
그리고 지금 이 나이에도 제대로 이해 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은
또 어느 정도의 시간을 요하겠지요.
그런 면에서 때로는 나이든다는 것이 즐겁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ㅎㅎ
희망이 없으므로 행복하다.
희망없이 사는 젊은이들이 그런 행복을 거론한다는 자체가 참 서글픈 세태란 생각이 들지만
그들에 비하면 너무 늦은 깨달음이지만 저 또한 그럴 수 있겠구나 공감가는 대목이네요.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조차 그 어떤 기대치를 갖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갖게 되는 실망과 좌절은 분명 행복의 이름과는 다르니까요.
순간순간 내 일상의 모든 삶의 순간들에 몰두할 수 있는 그것이 바로 행복이란 말 즐거이 다가옵니다.
예전엔 집안일 같은 하찮고 사소하고 평범한 삶이 주는 행복을 간과하고 살았어요.
이제는 그 평범한 순간순간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동우님도 아실까요?
내 아이들의 양말이나 뽀얀 셔츠들을 건조대에
조롱조롱 걸어넣고 흐뭇한 기분으로 바라보는 엄마 마음을요~
거울 앞에 앉아 약간 주름진 나이든 내 얼굴을 바라보며
거울 속 나를 향해 싱긋 웃으며 자족하는 순간을요~ㅎㅎ
놓치고 살았던 많은 순간들의 행복을 나이들어서야 이삭줍기 하듯 주워담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흘리고 사는 것들도 많겠지만...
행복의 관념이 확대되고 다양해지고 현실적으로 변한 건 분명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입니다.
새해 둘째날, 모처럼 밝은 아침햇살이 창으로 환히 비춰 들어옵니다.
이 하루도 건강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랄게요^^*
***동우***
2015.01.03 01:05
메이블루님.
덜 여문 영혼이 혼돈스럽던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영적 신비주의를 기웃거리게 되는가 봅니다.
단전호흡을 성명쌍수라 한다지요?
그 호흡으로 눈을 감고 감은 눈으로 회음(會陰)을 바라보면서 모든 감각과 마음과 생각을 자신의 가장 아래에 가라앉게 한다는 명상법.
그러면 이윽고 도달하는 무념무상의 경지..
그러나 나와 같은 촐랭이는 연이어 떠오르는 잡념들을 도무지 물리칠 재주가 있어야지요.
한번도 무념무상에 이른적이 없었답니다.
바깥 사물은 마음먹기 달렸나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지만, 그 마음 다스리기가 얼마나 지난하였던지... 하하
어떤 한 생각(잡생각)에 사로잡혀 그 상태에 빠져버리면 가끔 일종의 최면같은 상태에 빠지기는 하였습니다.
하아, 나란 위인은 수행자가 되기는 애시당초 그른 몸, 그래서 자기최면 책을 사다가 딴에는 열심히 연습하기도 하였지요.
하하하, 그마저도 중동무이.
메이블루님의 위 말씀이 진리에 가깝다는걸, 나도 낫살들고서야 어렴풋 깨닫게 되었을겁니다.
<순간순간 내 일상의 모든 삶의 순간들에 몰두할 수 있는 그것이 바로 행복이란 말 즐거이 다가옵니다.
예전엔 집안일 같은 하찮고 사소하고 평범한 삶이 주는 행복을 간과하고 살았어요. 이제는 그 평범한 순간순간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동우님도 아실까요? 내 아이들의 양말이나 뽀얀 셔츠들을 건조대에 조롱조롱 걸어넣고 흐뭇한 기분으로 바라보는 엄마 마음을요~ 거울 앞에 앉아 약간 주름진 나이든 내 얼굴을 바라보며 거울 속 나를 향해 싱긋 웃으며 자족하는 순간을요. 놓치고 살았던 많은 순간들의 행복을 나이들어서야 이삭줍기 하듯 주워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진리마저 그때끄때의 감정의 기복에 오르락내리락.
아하, 속된 자의 마음 다스리기가 이토록 요원합니다그려.
새해 세쨋날.
메이블루님도 밝은 기운 가득찬 나날 되시기를.
밤이 깊었습니다. 편히 주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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