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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23)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7. 2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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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표트르 게라시모비치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재판장은 배심원 협의실에서 돌아오자 선고문을 읽어나갔다.

188X년 4월 28일, 황제 폐하의 칙령을 받들어 N지방 재판소 형사부는 배심원 여러분의 결의에 따라 형법 제 771조 제 3항 제 776조, 제 777조에 의거하여 다음과 같이 선고한다. 농민 시몬 카르틴킨(33세)과 평민 예카테리나 마슬로바(27세)에 대하여 이 양인은 형법 제 28조를 적용하여 공민권과 일체의 재산권을 박탈하고 카르틴킨은 8년, 마슬로바는 4년의 징역에 처한다. 평민 예브피미야 보치코바(43세)는 형법 제49조에 의거하여 공사의 특권 일체를 박탈하고, 3년간 금고형에 처한다. 본건에 관한 재판 비용은 등분하여 피고들에게 부담시키기로 한다. 단, 그들에게 그 능력이 없을 경우에는 국고의 부담으로 한다. 본건에 관한 증거물을 공매 처분키로 하며 반지는 반환하고 유리병은 파기한다.

카르틴킨은 여전히 장승처럼 몸을 쭉 펴고 두 팔을 옆구리에 찰싹 붙이고 손가락을 옆으로 쫙 펼치고 볼을 실룩거리면서 서 있었다. 보치코바는 어디까지나 태연자약해 보였다. 마슬로바는 판경을 듣자 금방 얼굴이 새빨개졌다. "저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억울합니다."하고 그녀는 갑자기 법정이 울릴 만큼 큰 소리로 외쳤다. "그건 너무해요. 전 억울합니다. 그런 짓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입니다. 제가 말한 것은 사실 그대로예요. 정말 사실이에요!" 이렇게 말하고 의자에 쓰러져서는 큰 소리로 통곡을 했다.

카르틴킨과 보치코바가 끌려나갔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서 울고 있었으므로 헌병은 할 수 없이 그녀의 죄수복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니다.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네플류도프는 자기의 못된 생각을 깨끗이 잊어버리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한 번 더 그녀의 모습을 보려고 복도로 급히 나갔다. 문에는 사건이 끝난 데 대하여 만족스러운 듯한 배심원들과 변호인들이 떼를 지어 나오면서 웅성거리고 있어서 한참 동안 통로가 막혀 기다려야 했다. 그가 복도에 나왔을 때 마슬로바는 벌써 저만큼 가 있었다. 그는 남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은 생각지도 안고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쫓아가 앞지른 다음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벌겋게 얼룩진 얼굴을 목도리 자락으로 닦으면서 어깨를 들먹거리며 흐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눈 팔지 않고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그녀를 보내고 나서 네플류도프는 재판장을 만나기 위하여 급히 되돌아왔으나 재판장은 벌써 퇴정하고 없었다.

"재판장님! 지금 막 판결이 내린 사건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네플류도프는 이미 얇은 외투를 걸친 후 수위가 내주는 은손잡이가 달린 단장을 받아쥔 그의 곁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저는 배심원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네플류도프 공작이시지요? 전에 뵌 일이 있었지요."하고 재판장은 악수를 하면서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 네플류도프를 만났던 날 밤에 그가 다른 청년들보다 뛰

어나게 멋있고 즐겁게 춤을 추던 일을 흐뭇한 마음으로 회상했다. "그런데 뭘 도와 드릴까요?"

"마슬로바에 관한 답신서에 잘못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독살에 관해 전혀 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징역을 선고받고 말았습니다." 네플류도프는 좀 굳어진 듯한 어두운 표정을 하고 말했다.

"법정은 당신들께서 내주신 답신서에 의거하여 판결을 내렸던 것인데요?"하고 재판장은 출구 쪽으로 걸어나가면서 말했다. "하기야 그 답신서가 부당하다고 생각되긴 했습니다만." 그는 만약 배심원이 살의를 부정하지 않고 '유죄다.'하고 답신했을 경우에는 고의적 살의를 긍정하는 것이 된다고 배심원들에게 주의시키려고 했던 것인데 빨리 끝내려고 서두르는 바람에 말하지 못했던 것이 문득 생각났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잘못을 시정할 수는 없을까요?"

"상소의 이유는 충분하지요. 변호사와 의논해 보십시오." 재판장은 모자를 약간 비스듬히 쓰고 여전히 출구 쪽으로 걸음을 옮겨 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좀 어렵지 않을까요?"

"잘 아실 줄 압니다만, 사실은 마슬로바에게는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운명밖에 없었습니다." 재판장은 네플류도프에 대해서 될 수 있는 대로 부드럽고 공손한 태도를 취하려는 듯 외투깃 위로 구레나룻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가볍게 상대방의 팔을 잡고 출구 쪽으로 끄는 듯이 하면서 말을 계속했다. "당신도 돌아가시는 길이지요,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네플류도프는 급히 외투를 입으면서 대답하고 함께 걸어나갔다.

두 사람은 상쾌하고 밝은 햇빛 속으로 걸어나갔다. 그러나 곧 포도를 달리는 마치 소리 때문에 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시다시피 일은 참 묘하게 되어 버렸습니다."하고 재판장은 소리를 높여 말을 이었다.

"그 마슬로바는 둘 중 하나를 택할 운명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테면 거의 무죄나 다름없는 미결일수까지 계산한 단기간의 금고, 또는 구류 처분을 받든가, 그렇잖으면 시베리야 유형이든가, 이 둘 중의 하나이지 딴 경우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만일 당신들께서 '단,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라고 한 마디만 덧붙였더라면 그녀는 무죄가 되어 풀려났을 겁니다."

"그것을 빠뜨렸던 것입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실수였습니다."하고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문제는 바로 그 점에 있는 것입니다."하고 재판장은 미소를 띠며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클라라가 정해 놓은 시간까지는 겨우 45분밖에 남지 않았다.

"이렇게 된 바에야 변호사와 의논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상소 이유를 찾아내야 할 테니까요. 그러나 그런 것은 곧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이봐, 드보랸스카야 가까지 가!" 하고 그는 마부에게 명령했다. "30코페이카 이상은 절대로 안 돼."

"좋습니다, 나리. 어서 타십시오."

"그럼, 실례합니다. 무슨 일이 있으시면 드보랸스카야 가의 드보르니코프의 집으로 오십시오. 외기 쉽습니다."

그는 다정하게 인사를 한 뒤 마차를 타고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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