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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과의 대화와 신선한 바깥 공기 때문에 네플류도프의 마음은 다소나마 진정되었다. 그가 아침부터 지금까지 겪은 감정은 여느때 느끼던 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그 자신이 너무 긴장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정말 상상도 못할 정도로 놀라운 우연이군! 그리고 나는 그녀의 슬픈 운명을 도와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야 한다. 그것도 한시라도 빨리 해야 한다. 지금 곧 말이다. 그렇다. 지금부터 재판소로 가서 파나린이나 미키신, 둘 중 한 사람의 주소만이라도 알아봐야겠다.' 그는 유명한 한 사람의 변호사 이름을 생각해 냈다.
네플류도프는 재판소로 되돌아오자, 외투를 벗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첫 번째 복도에서 파나린을 만났다. 그는 그를 불러 세우고 잠깐 볼일이 있다고 말했다.
파나린은 그의 얼굴과 이름을 익히 알고 있는 처지였으므로 무엇이든지 도움이 될 수가 있다면 기쁘겠다고 말했다.
"좀 피곤하긴 하지만...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 일이라면 들어 보지요. 이리로 오십시오." 이렇게 말하면서 파나린은 네플류도프를 어떤 방으로 데리고 갔다. 아마 어느 재판관의 방인 듯싶었다.
두 사람은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우선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하고 네플류도프는 말을 꺼냈다. "내가 이 사건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 주셔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야 물론이지요. 그래서요?"
"나도 오늘 배심원의 한 사람이었습니다만, 우리들은 한 여자에게 징역을 선고했습니다. 죄도 없는 여자에게 말입니다. 나는 그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습니다."
네플류도프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면서 말을 더듬었다.
피나린은 눈을 번뜩이며 그를 힐끔 쳐다보았지만 다시 눈을 내리깔고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요?"하고 그는 묻기만 했다.
"죄도 없는 여자를 유죄로 만들었으므로 상소하고 싶습니다. 사건을 상급법원으로 옮기고 싶습니다."
"대심원으로 말이지요?" 파나린이 정정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이 일을 좀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네플류도프는 이 거북한 일을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고 싶어서 얼굴이 상기되어 서둘러댔다.
"이 사건에 드는 사례와 비용은 얼마가 되더라도 일체 내가 부담하겠습니다."
"아, 그것은 나중에 결정하기로 합시다."하고 변호사가 그가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함을 보고 미소로써 점잖게 받아넘겼다.
"대관절 어떤 내용입니까?"
네플류도프는 사건의 내용을 상세히 설명했다.
"알았습니다. 내일 사건 기록을 가져다가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럼 모레, 아니 목요일 저녁 6시경에 저의 집으로 와주시면 그 때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되겠지요? 그럼 가보십시오. 난 아직 여기서 조사할 일이 있어서요."
네플류도프는 그와 헤어져서 밖으로 나왔다.
변호사와 의논을 했다는 사실과, 자기가 마슬로바의 변호를 위한 재빠른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은 네플류도프의 마음을 한결 가라앉혔다. 그는 거리로 나왔다. 상쾌한 날씨였다.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봄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마부들이 마차를 타라고 권했으나 그는 걸어갔다. 그러자 카추샤의 일, 그녀에게 했던 자기의 행위와 추억과 상념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아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잘 생각하기로 하자.'하고 중얼거렸다. '지금은 이 무거운 감정을 씻어 버리기 위하여 기분전환을 해야 한다.'
그는 코르차긴가의 만찬회가 생각나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직 늦지는 않았으므로 식사 때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마침 철도 마차가 방울을 울리면서 지나갔다. 그는 달려가서 마차를 잡아탔다. 광장에 이르러 뛰어내린 그는 다시 보기 좋은 마차를 잡아타고 10분 후에는 코르차긴가의 웅장한 저택 현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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