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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54)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8. 31.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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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짧은 머리에 얼굴빛이 노랗고, 여윈데다가 몸집이 작은 베라 예프레모브나 보고두호프스캬야가 뒷문에서 커다란 눈을 반짝이면서 들어왔다.

"이렇게 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녀는 네플류도프의 손을 꼭 쥐면서 말했다. "절 알아보시겠어요? 앉으세요."

"이런 데서 만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정말 기뻐요. 어찌나 기쁜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예요." 베라 예프레모브나는 예전과 다름없이 그렇듯 선량하고 둥근 큰 눈으로 놀란 듯이 네플류도프를 바라보면서 추레하고 구겨지고 더러운 상의의 깃 밖으로 내민 몹시 가느다랗고 힘줄투성이인 누런 목을 설레설레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네플류도프는 그녀가 수감된 내력을 물었다. 그녀는 몹시 생기차게 자기가 감옥에 갇히게 된 경위를 띄엄띄엄 낯선 말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말 속에는 선전, 계급 타파, 자기가 관여하던 단체, 본부, 지부 등의 외래어가 많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그런 말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듯 했으나, 네플류도프는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말들이었다.

그녀는 네플류도프가 '이민 의지파'('나로드니키'운동에서 생긴 혁명 단체. 극도로 과격하여 테러 행위로 정부를 쓰러뜨리려고 모의하여 알렉산드르 2세도 암살함)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된다는 것에 몹시 흥미를 느끼고 유쾌하게 생각하리라고 분명히 확신하고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네플류도프는 그녀의 앙상하게 뼈가 드러난 목덜미와 숱이 적은 흐트러진 머리칼을 보면서 왜 그런 짓을 했으며, 또 무엇 때문에 자기에게 그런 놀랄 만한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의아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 여자가 측은하게 생각되긴 했지만, 그것은 아무 죄도 없이 지독한 악취가 풍기는 감옥에 갇혀 있는 저 농부 메니쇼프에 대한 측은함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측은해 보인 것은 그녀의 머릿속이 사상적으로 몹시 분명한 혼란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분명히 자기 목적의 성공을 위해서는 생명까지도 바칠 수 있는 영웅이라고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이 어떤 성격이며 그 성격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베라 예프레모브나가 네플류도프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용건은, 그녀의 친구 슈스토박라는 여자가 지부에 속해 있지도 않았는데 다만 보관을 부탁받은 서적과 서류가 그녀 집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5개월 전에 그녀와 함께 체포되어 페트로 파블로프스크의 요새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건에 대해서였다. 베라 예프레모브나는 슈스토바의 수감이 자기에게도 일단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어서 교제가 넓은 네플류도프에게 친구를 석방시키는데 모든 힘을 다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또 하나의 부탁은 이러했다. 즉, 페트로 파블로프스크 요새 감옥에 수감되어 잇는 구르게비치라는 사나이가 양친과 면회할 수 있고 또 그의 연구에 필요한 학문적인 서적을 받아 볼 수 있도록 수고해 달라는 것이었다.

베라 예프레모브나가 자기 경력을 이야기한 바에 의하면, 그녀는 산파 학교를 졸업하자 '인민 의지파'에 참가하게 되어 그들과 함께 혁명 운동에 가담하게 되었다 한다. 처움에는 만사가 잘되어 선언서도 쓰고 공장에서도 선전 운동을 하고 했으나, 그 후 간부 한 사람이 체포되어 비밀 서류가 압수되자 모조리 검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도 체포되었습니다만, 이번에 유형을 가게 되었어요."하고 그녀는 자기의 이야기를 끝냈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저는 무척 기뻐요. 올림포스의 신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에요."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플류도프는 양과 같은 눈을 가진 소녀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베라 예프레모브나가 그에게 말한 바에 의하면 그 소녀는 어느 장군의 딸이며, 퍽 오래 전부터 혁명당에 가담했을 뿐만 아니라 헌병을 저격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체포된 것이라고 했다. 그 소녀는 인쇄소로 위장된 비밀 아지트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헌병들이 가택 수색을 하러 왔을 때, 그 곳에 있던 동지들은 자위 수단을 쓰기로 결정하고 불을 끄고 증거물을 없애기 시작했다. 헌병들이 집 안에 뛰어들어오자, 동지 한 사람이 헌병을 쏴서 치명상을 입혔다. 그 뒤 저격범에 대한 심문이 시작되자, 여태껏 한번도 손에 권총을 쥐어 본 적도 없고 거미 한 마리 죽여 본 일이 없는 그녀가 자진해서 자기가 쏘았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이번에 시베리아로 중노동 유형을 가게 된 것이다.

"애타주의자며 훌륭한 성격의 소유자예요." 베라 예프레모브나는 감탄하는 어조로 말했다.

그녀가 부탁하고 싶었던 세 번째의 용건은 마슬로바에 관한 것이었다. 그녀는 마슬로바의 사건은 물론 마슬로바와 네플류도프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이미 감옥 안에 쫙 퍼져 있었다. 그러니까 마슬로바를 정치범으로 돌리든가, 아니며 지금 병원에는 환자가 많아 잡역부가 필요하니 가능하면 그쪽으로 돌리든가 해보도록 힘쓰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네플류도프는 그녀의 충고에 감사하고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겠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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