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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차례를 무시하고 내플류도프를 만나 주었다. 그는 곧 자기가 조사한 메니쇼프 모자 사건에 대해서 말을 꺼냈고, 근거 없는 기소에 분개하고 있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사건입니다." 변호사가 말했다. "이 방화는 보험금이 탐나서 집주인이 자기 손으로 한 짓이 틀림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모자의 범죄도 전혀 증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증거가 전혀 없단 말입니다. 이것은 예심판사의 지나친 특별 배려와, 검사보의 무성의에서 온 것입니다. 이 사건이 만일 지방 재판소가 아니고 여기서 심리된다면, 나는 승소를 보증하겠으며, 보수 따윈 한 푼도 받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건, 황제에게 낼 페도샤 비류코바의 청원서는 이미 작성해 놓았습니다. 페테르부르크에 가게 되면, 가지고 가서 직접 제출하고 탄원하십시오. 안 그러면 청원 위원회에 조회하게 되고 또 청원 위원회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손뗄 수 있도록 제멋대로 해답을 할 것이 뻔합니다. 즉 각하되어 한시라도 여태까지의 고생이 허사로 돌아간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유력한 분에게 부탁을 드려 보도록 하세요."
"그렇다면 황제께 청원하란 말씀인가요?" 네플류도프가 물었다.
변호사는 빙그레 웃었다.
"그것은 제일 마지막, 즉 황제가 심의하는 최종심에서입니다. 지금은 그보다 낮은, 말하자면 청원 위원회 서기나 주지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 그럼 위뢰하신 건 다 됐지요?"
"그리고 또 하나, 분리파 신도들이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네플류도프는 분리파 신도들의 편지를 호주머니에서 꺼내면서 말했다. "이 사람들이 써온 것이 사실이라면 놀라운 사건입니다."
"아무래도 당신은 감옥의 모든 불평이 흘러내리는 깔때기나 병 모가지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리신 모양입니다." 변호사가 웃으며 말했다. "너무 많은데요. 그러시다간 감당해 내기 힘들 겁니다."
"아니, 이것은 놀란 만한 사건입니다."하고 네플류도프는 사건의 진상을 대충 설명했다.
그것은 이런 것이었다. 어느 마을에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한 농부가 복음서기를 읽기 위해 동료 농부들과 모였다. 그러자 경찰이 와서 이를 해산시켜 버렸다. 농부들은 다음 일요일에 다시 모였다. 그러자 마을의 경찰이 불러가더니 고소장이 작성되어, 농부들은 전원 재판에 걸리게 되었다. 예심 판사가 심문을 하고, 검사보가 기소장을 작성하고, 재판관이 이 기소 사실을 인정하여 재판에 붙여졌다. 검사보는 유죄를 구형했다. 테이블 위에는 증거물로서 복음서가 놓여 있었고, 결국 그들은 유형을 선고받았던 것이다.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과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 사건의 어느 점이 이상하다는 것입니까?"
"사건 전부지요. 하기야 상부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경찰이야 그렇다치더라도, 기소장을 작성하는 검사보는 교양이 있는 인간 아닙니까?"
"그러나 바로 거기에 오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검사나 재판관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무슨 새로운 자유주의적인 인물인 양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들도 한때는 그런 인물이었긴 했습니다만, 지금은 전연 다릅니다. 그들은 다만 월급을 받고 있는 이상, 더 많은 월급을 받았으면 하고 원하고 있으며, 그들의 주의 주장도 이 한 곳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닥치는 대로 기소하고, 재판하고, 유죄로 판결해 버리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과 같이 단지 복음서를 읽었다 해서 사람들을 유형에 처하는 법률이 있을 수 있습니까?"
"네, 복음서를 읽어 줄 때, 규정되어 있는 이외의 해석을 함으로써, 다시 말하면 교회의 해석을 비난했다는 것만 입증되면 유형정도가 아니라 시베리아 징역도 받게 됩니다. 대중 앞에서 정교의 교리를 비판한 자는 제 196조에 의거해서 거주 유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터무니없는!"
"아니, 그렇습니다. 나는 항상 재판관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감사하다는 마음 없이는 당신네들을 대할 수가 없다고요. 왜냐하면 나나 당신이나, 우리들 모두 감옥에 들어가지 않고 있는 것은 오직 그들의 자비에 의한 것이니까요. 사실 우리들 중의 누구라도 공민권을 박탈해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유형을 보내는 것쯤은 그들로서는 식은죽 먹기입니다."하고 변호사는 말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식으로 법을 적용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음이 검사나 판사의 재량에 달렸다면 무엇 때문에 재판 같은 것을 합니까?"
변호사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거 무슨 그런 질문을 다 하십니까! 공작님, 바로 그것이 철학입니다. 그래서 그런 문제를 크게 논의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만, 그럼 토요일에 와 주시지 않겠습니까? 학자, 작가, 예술가 들이 모이게 되어 있으니 그 때 '일반적인 문제"를 논의하시지요." 변호사는 '일반적인 문제'라고 하는 말에 힘주어 비꼬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집사람하고는 인사하셧겠지요? 꼭 와 주십시오."
"네, 되도록..." 내플류도프는 자기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되도록 토요일 밤에 변호사 집에 모이는 학자와 작가, 예술가들의 모임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재판관들이 자기들의 뜻대로 법률을 적용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면 재판따윈 무의미할 것이라고 네플류도프가 말했을 때, 변호사 및 그 동료들이 만사에 있어 네플류도프 자신과 얼마나 동떨어진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말해 주는 것이었다. 그는 센보크와 같은 옛 친구들과도 멀리 떨어진 존재가 되었지만, 그보다도 변호사와 그의 주변 사람들과의 거리는 한층 더 먼 것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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