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46 1987. 10. 1 (목)
할머니 돌아가신지 7년째인가 보다.
대구 고모 내외분 오셔서 할머니 추모 예배.
일견 염불주의적 기념 석찬식이다.
형식적인 것이지만 아니하는 것보다는 낫다.
많은 친척들이 있는 집안일수록 이런 형식의 구심은 필요하리라.
그런데 어머니, 고모님의 어떤 행태는 좋게 보이지 아니하다.
다른 어떤 분들에 대한 폄하의 대화들.
누구에게나 이러한 기질이 없을수 없지만 다소 도가 지나치니 듣기에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당사자 부재의 자리에서 하는 쑥덕거림- 모든 여성의 생리적 기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렇지 않은 여성 또한 많이 있지 않은가?
이를테면 J는 이런 점에 있어서는 매우 고상하다.
어머니도 그러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어머니의 네가티브한 어떤 측면- 있는자,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비굴한 면이 있는가 하면 없는자, 약한 자에게는 없신여김과 강한 척하는.
어머니의 성격적인, 어찌보면 귀엽고 단순한 허영의 일종이라고 할수도 있으나 거기에는 어머니 살아오신 역정이 만들어 놓은 후천적 기질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후천적인 것 때문에 어머니를 가엾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폄하는 내용은 대부분 경제와 연관되어 있는 것.
경제- 경제-. 내게 경제의 권력만 있다면 우리 친척,친지 모든 불편한 관계를 단방에 때려 부술수 있을터인데. 나는 이 쪽의 능력이 너무나 미약하다.
英이는 4일간 휴일.
부쩍 재치스러워 진 내 딸.
俊이의 막내스러움도 이쁘다.
막내짓하는 俊이에게 짐짓 화를 내는 J.
속으로는 헤벌죽 웃고 있으면서.
일정한 시간에 기상하고 하루에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묵상할 것.
독서할 곳, 음악을 들을 것, 산보할 것, 추리소설이나 영화따위 도피적인 것에 탐닉하지 말 것, 적어도 한도를 초과하여 지나치게 하지 말 것, 과식 또는 과음하지말 것.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강제로 부과된 의무처럼 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늘어 놓아 보지만 이 중 어떤 것은 지금의 나로서는 실천 불가능한 것도 많다.
14847 1987. 10. 2 (금)
무척이나 바빴던 하루 일과.
현장을 내 것으로 만드는 길은 적극적으로 몸을 던져서 함께 먼지를 마시고, 함께 배위를 오르내리며, 함께 탱크를 기며, 같이 고함을 지르고, 같이 욕지기를 뱉고, 같이 껄걸 웃고, 곧 함께 진짜 노가다가 되는 길 뿐이다.
추석 보너스. 엄청난 세금.
J, 동산아파트 계약키로 하였다. S형 어머니 도움으로 계약금문제 해결한 듯.
그 분은 늘 고마웁다.
감사의 표현도 변변치 못하는 나란 위인.
성경의 좋은 주해서를 구입하여야 겠다.
전번 산 미어즈의 책은 좀 부실한 것 같고, 몇몇 구입한 책들은 지엽적이다.
시종 하나의 관점에서 꿰뚫는 오소독스한 해설서, 아무리 비싸더라도 이 기회에 구입해야겠다.
14848 1987. 10. 3 (토)
불면- 두시넘어 수면쪽으로 그 경계선을 넘었으나 그 잠은 편편치 아니하다.
전형적인 회색수면.
무엇이 또 나의 무의식의 그 세계를 지배하고 있을까?
끊임없는 무의식의 흐름, 그곳에서 삐져나오는 일관되어 표출되는 어떤 분위기같은 것이 있는 듯 한데 알수가 없구나.
그것은 희망, 기대감,행복,기쁨같은 밝은 쪽일수도 있고 애통,어둠,타락,슬픔,절망 등의 네거티브한 것일수도 있다.
어쩌면 그 분위기란 것이 어떤 감정모체에 근거한 무엇이 아니고, 그저 맥박의 속도나 소화기의 상태등 육체적인 상태에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새벽의 경건은 맞지 못하다.
英 俊 데리고 동산아파트 견본주택 가다.
좁은 공간일망정 꺠끗하고 정돈된 공간- 모델하우스여서 청결해 보이고 곧 생활의 때로 얼룩지고 어지러질테지만,
청결한 그 공간이 좋다. 그리고 바다가 조감으로 내려다 보이는 전망.
그 베란다에 나만의 공간을 꾸미는 공상- 예술과 신앙과 사색과 음악이 있는...
동삼동이란 동네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지금 점점 산을 깎아먹고, 바다를 메우고 야단인데 아, 그치자. 하나님 만드신 세계를 그만 갉아먹자.
내일도 휴무.
느긋한 마음은 경건을 외면하고 있다.
14849 1987. 10. 4 (일)
모처럼 집안에서 뒹구는 게으름.
TV로 본 '신의 아그네스'
자막이 분명치 않으나 대략, 논리적으로 본질을 규명할수 없는 神이라는 존재를 얘기하는 듯.
순결하게 예쁘고 맑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수녀 아그네스, 아기를 낳아 탯줄로 목을 감아 죽인다.
수녀의 해산과 태아의 살해. 태아의 아버지는 神이란 말인가?
이런 엽기적인 설정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독신함으로 신성을 증명한다?
"오늘 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서 예수님의 천국을 탐하는 자는 많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려는 자는 거의 없다. 예수님을 찬양하고 그 분의 축복을 비는 사람은 많지만 그것은 그 분에게서 위로를 받을 때 뿐이다." -토마스 아 캠피스-
14850 1987. 10. 5 (월)
3시 기상.
오픈성경 앞의 부록 읽고 창세기 1,2장 다시 읽는다.
J를 이 오픈성경으로 성경에 가까이 할수 있게 하였으면하는 생각, 나의 성실한 주석과 더불어.
J에게 진지하게 듣고자하는 마음이 일어나기를 기도해야 한다.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몇 쪽 읽다.
온전한 신의 사람이 되고자하는 성인의 방법론.
기도.
"그대가 육신을 제압하고자 한다면 진심으로 자기자신을 천하게 여기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먼지와 같은 존재여. 복종할줄 알아라. 흙덩이같은 그대여. 진심으로 겸손하고 모든 사람의 발밑에까지 닿도록 허리를 굽힐줄 알아라." -그리스도를 본받아-
주님,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 무엇인지 깨달아 알게 하소서.
14851 1987. 10. 6 (화)
어제 대취.
온종일 몸뚱이의 곤비함과 정신의 게으름이 함께 어울려 뒹굴다.
14852 1987. 10. 7 (수)
추석.
10월이고 중추절인데 더운 날씨.
할머니, 어머니, 형네, 우리네, 가야숙모네, 상하등 모여 앉아서 추석 예배.
가야숙모의 예배 인도, 옳게 예배를 인도할수 있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처가.
장인어른, 장모님,처남들, 처제들....
조카 T기 ,J기 ,S기 건강한 아이들.
T기 데리고 돌아오다.
내게 술안먹는 명절도 있는 것이다.
형네서 R.프리덴탈 '마르틴 루터의 생애'와 O.쿨민의 '신양성서입문' 빌리다.
14853 1987. 10. 8 (금)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비유가 아니라 말그대로의 진실이다.
이것은 인간이 갖고있는 죄악의 속성중 가장 판별하기 쉬운 속성중 하나이다.
사촌이 아니고 '친형제가 논을 사도 배가 아프다'가 더 적실한 표현이 아닐까한다.
나 스스로의 실험실에서, 나 스스로의 임상결과 나는 그것을 느끼고 그 감정에 경악하기는커녕, 그 심리적 갈등을 당연하게 내것으로 수렴하고 있는 것이다.
'논'이라는 것은 유형의 것만을 뜻하는게 아니고 무형의 것까지도 포괄하고 있다.
이 경우 무형의 것은 순수한 정신적인 무엇이 아니고 유물론적 범주 안에 드는 정신적인 무엇이다. 이를테면, 지식,학벌,직업등, 성경에서 말하는 초등학문 같은....
그러나 '형제의 영혼이 잘되면 배가 아프지 아니하다'
그 잘된 영혼을 도무지 감득할수 없거니와 그 영혼에 심술날 까닭이 없는데 사람이란 유물론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형 무형의 어떤 것으로 우월감을 느껴야만 만족하는 동물은 인간 뿐이다.
인간 속성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속성. 그러나 그 어떤 당위성도 획득치 못한 속성.
어쩌면 그것은 정신질환의 일종이 아닐까? 이기주의의 개념보다 더 악성의 질환.
생존은 다른 객체를 이겨야한다는 본능? 적자생존의 집단무의식?
그 대상이 자신과는 무관한 관계라면 관대하여 질터인데 왜 가까운 관계에서 더 맹렬하게 불타오르는 경쟁의식이 있는 것인지...
카인과 아벨... 성경은 이런것까지 분명히 적시하고 있다.
모욕을 느끼는 것. 모욕감도 역시 인간에게만 있을 것인데 모욕감을 느낀다는 것은 열등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추악하거나 열등한 인격에 모욕 당하는 고결한 인격은?
시기심과 열등감을 극복하는 길.
그것은 영혼이 고양되는 길 뿐이다.
그러한 감정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감정을 수렴하는 것이다.
복종. 절대 복종의 의미는 참으로 크다.
14854 1987. 10. 9 (토)
새벽일어나다.
기도드리지만 감동은 없고.
어제 할머니와 손자 손녀들의 동물원 나들이..
가슴에 번지는 잔잔한 기쁨.
가슴에 번지는 애잔한 슬픔.
어머니는 늙으셨다.
오늘부터 출근이다.
안일하게 신앙생활을 할수 있는 직장을 꿈꾸는 나의 신앙은 그 자체가 얼마나 안일한 신앙인지.
하나님 나의 아버지.
당신께로 더 다가가게 하소서.
14855 1987. 10. 10 (토)
새벽 기상.
기도. 간구하는 대상의 Priority.
아내,아이들,어머니,형제,처가....
가정- 주님 진정 원합니다. 가정의 희락, 평화, 조용조용함, 찬양, 감사....사랑.
무엇보다 주님. 이 들끓는 내 영혼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다스려 주소서.
가장인 나의 인도로 우리 식구 모여앉아 가정예배를 드릴수 있었으면.
J와 아이들 다소곳이 내 주위에 둘러앉아서 남편, 아빠의 하나님얘기, 예수님 얘기를 조근조근 들려줄수 있었으면.
내일부터 섬머타임은 다시 원위치된다.
시간의 리듬.
하루의 시간 활용을 다시 구상하라.
내 영혼의 시간은 새벽의 약2시간, 술안취하는 밤의 약1시간 남짓, 그 시간의 리듬을 새로 Adjusting하라.
효율적인 성경읽기, 효율적인 기도, 효율적인 독서, 효율적인 음악듣기.
6시.
아직 깜깜한 어둠, 멀리 뱃고동소리 들린다.
어둠.. 고요의 소리.
14856 1987. 10. 11 (일)
회사 나가지않다.
어제는 취하도록 맥주, 쓰린 뒷꽁무니.... 지지리도 약해빠진 의지의 소유자.
"인간은 사랑 받아야 한다. 태어나기 위해서- 태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사랑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가기 위해서- 인간은 사랑받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한다. 참된 자기가 되기 위해서- 오랜동안 사랑에 젖어 있을때에만 비로서 참된 자기가 된다, 자기실현이 가능하다.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인간은 사랑하기 전에 우선 사랑받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깊은 사랑을 받은 사람일수록 그만큼 깊이 사람을 사랑할수 있다. 도대체 누가 나를 사랑해 줄것인가?라는 절실한 명제야 말로 아득한 옛날로부터 이 지상에 존재하였던 모든 사람들의 물음이다. 이것은 인간을 괴롭히는 가장 큰 물음인 것이다." -윌리암 에버레트-
성경도, 기도도 없는 일요일.
무엇인가 나를 둘러 싼 상황에서 탈출하여야 함.
그것은 직장인가? 가정의 분위기인가? 나의 불성실한 의지인가?
현장에 내려와서의 음주의 지나침은 확실히 문제이다.
내일 새벽 경건하리라.
14857 1987. 10. 12 (월)
새벽 4시, 그러나 이틀전에는 이미 5시다.
다소의 회색수면 증후군. 머리 속은 그다지 맑지 못하다.
톨스토이 '참회록'.
"들에서 맹수를 피하여 물없는 우물 속으로 뛰어든 사나이. 우물 바닥에는 뱀이 그를 삼키기 위해 커다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우물 밖으로 나가면 맹수의 밥이 될 것이고 우물 속으로 떨어지면 뱀의 밥이 될 수 밖에 없는 그는 가냘픈 나뭇가지를 붙잡고 매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손은 점점 힘이 빠지고 있다. 그런데 검고 흰 쥐 두 마리가 나타나더니 그가 잡고 있은 나뭇가지를 쏠기 시작했다. 그는 곧 나뭇가지가 잘려서 자기는 뱀의 밥이 되리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의 죽음이 불가피한 숙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주위의 나뭇잎에 꿀이 묻어있는 것을 보자 서슴치 않고 그 꿀을 핥는다."
이 톨스토이 이야기의 비유를 절실한 자신의 인생에 대입하여 느낄떄의 고통.
인생의 진리는 과연 이러하다.
과연 내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피할길없는 저 죽음에 의해 멸망되지 않는 어떤 의의가 내 인생에, 내 생활 속에 있는가?라는 끊임없는 물음과 '없다'는 확신에 찬 대답.... 그 절망감.
신을 부르짖어 찾지 않는다면 그는 자살할수 밖에는 어떤 길도 없다.
No Way Out!!
14858 1987. 10. 13 (화)
새벽기상.
참회록읽고, 시편 주해서와 함께 읽는다.
아버지 나의 하나님 나를 하나님의 말씀의 구렁텅이로 밀어 떨어뜨려 주십시오.
톨스토이-
"인간은 본질적으로 신앙인이다. 아니, 살고자하는 인간은 누구나 신앙인이다. 신앙은 자기를 멸망시키지 않고 살아갈수 있은 인생의 의의를 깨닫는 지식이다. 삶의 원동력이다. 삶의 가능성이다. 신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입증해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계시도 아니며 또한 신이 나에게 알려준 일에 대한 화답도 아니다. 신앙은 유한한 인간에게 무한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인간을 절망으로부터 구원하는 것. 자실치 않게 하는 것. 막연하지만 실존하고 있는 긍정. 숨쉬고 있다는 것. 생활한다는 것. 이성은 결코 도달할수 없는 세계. 이성은 자살케 하지만 신앙은 살게 하는 것."
톨스토이는 단순한 언어로 본질을 직시하는구나.
풍선만한 뺨. 뺨에 살이 오른 게 아니고 부풀어 오른 것만 같다.
한달 남짓 사이 더 부푼 것 같다.
외모에 신경쓰임.
모든 걸 훌훌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바다로 풍덩 뛰어들기에는 나는 아직 너무도 많이 갖고 있다. 외모에 신경쓰임 따위를.
벗어던질수 없는 것, 그걸 벗어 던져야 도달할수 있는 세계. 자아를 포기한후의 행복.
나는 이것을 느낌으로 알거 같은데, 어떤 향수와 같은 그리움으로 이걸 알거 같은데..
오토의 개념.
누미노제...
설명할수 없는 느낌... 어떤 거룩한 느낌의 개념...
모든 종교의 궁극은 결국 같을까?
범신론의 세계, 부처님의 세계, 마호멧의 세계.
계시의 구체성.. 지금도 역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부처님은 얼마나 인간적인가? 인간의 고뇌를, 실존을 그대로 안고 뒹구는...
난삽한 나의 사설은?
창녀의 얼굴, 아래는 벌려놓고 얼굴에는 흰 됫박을 쓰고있는.
불가지론자의 얼굴....
14859 1987. 10. 14 (수)
英이 요즘 시험중, 신경이 날카롭다. 조심. 조심.
俊이 정리 정돈하는 습관. 기특. 기특.
J는 요즘 부쩍 온유, 그 온유함만 유지된다면 어디 한점 나무랄데 없는 여성. 감사. 감사.
퇴근하여 어둠을 헤치며 도달한 집.
투명한 소주 한병 책상위에 놓여 있는 이 밤은 행복하다.
14860 1987. 10. 15 (목)
숙직.
바람불고 흐린 아침.
아침 식탁에서 들려주는 J의 얘긴즉슨, 어머니- 무척 운영이 어려운 보생의원, 김선생 봉급도 주지못할 형편, 형네의 다소 좁은 성품, 많은 식솔 거느리신 부담, 어머니가 기댈 듬직한 나무 한그루없음의 쓸쓸함...
나나 J 역시 아주 가는 나무조차 되지 못하고.
그러나 J의 마음 씀은 나같은 거 보다 훨씬 웃길이다.
형과 자주 만나라는 J의 충고, 자주 형네를 찾아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자꾸만 나누라는 J의 충고는 옳고도 옳다.
계획- 어떤 목표를 정해 놓고 그것을 향한 치밀한 계획과 행동력, 이런 것들의 결핍은 어머니나 형이나 나나 피차일반. 지금 당장 따뜻하고 안온하면 그만 거기에 안주해버리고 내일의 추움은 생각지도 않으려는, 일종의 감각주의자들.
현실적인 내 무능력- 그건 그저 안타까움일 뿐이다.
14863 1987. 10. 18 (일)
어제 형과 함께 소주.
형과의 대화는 늘 진부한 주제에 머물고 마는 까닭은 왜일까?
내가 왜소하여 그런가, 형이 용렬하여 그런가.
신실한 대화를 이루기 위하여 나의 적극적인 어프로치가 필요하다.
노동조합 체육대회.
건강하고 건실한 노동자, 나의 부하들아.
어제의 소주는 갈증을 불러오고 그 갈증은 다시 맥주를 부른다.
"우리의 깊디깊은 인간으로서의 의무는 신의 행진의 리듬을 설명하거나 밝히는 것이 아니라, 급히 지나가버리는 우리들의 보잘것없는 삶의 리듬을 그 분의 리듬에 잘 맞추는 것." -카잔차키스-
14864 1987. 10. 19 (월)
일과중에 마음먹는다. 퇴근하여 집에 가면 고요한 마음으로 경건을 되찾아 성경을 읽으며 명경지수와 같은 연혼의 안정을 누리리라 하고.
그러나 막상 어두운 밤길을 달려 집에 도착하면 밥을 먹고난후 이것을 누리기가 참으로 어렵다. 무언지 모를 초조함, 많은 것을 해야겠다는 욕심은 앞서는데 그에 대한 강박이 있고, 영혼을 하나님 세계에 붙들어매기가 이토록 어려워서야...
그러다가 결국운 다 내팽겨치고 쾌락으로 돌아서고 만다.
TV에 눈을 붙들어 둔채.
그러므로 새벽의 청정함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그런 새벽도 자주 맞이하는 것은 아니고.
이 일기의 기록 자체도 건조해 지며, 타성처럼 하루도 빠지지 않으려고 급급한 꼴이다.
하나님의 편달을 빌어야 한다.
내일 새벽은 경건하리라.
14865 1987. 10. 20 (화)
英이 소풍 날.
김밥 만드느라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J의 기척.
일찌감치 목욕마치고 책상의 스탠드 불 끄고 어둠에 잠겨 기도.
방황하는 정신을 올곧게 잡아주소서. 하나님의 세계에 중심을 잡아 벗어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내 가정을 빛의 세계로 가게 하소서. 형네와의 신실한 교통으로 그것이 어머니의 기쁨이 되게 하시고...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우리의 모든 관계들이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아무일에나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기쁨을 충만케 하소서.
입속은 헐고, 귀속에서는 진물... 육체는 곤비하나 기도드린 영혼은 맑다.
14866 1987. 10. 21 (수)
육신은 잠든 듯 하나 어느 부분의 의식은 은화처럼 깨어있다.
입안의 헐음은 잠 속까지 파고들어 쓰라리다. 가끔 뒤척이며 가려운 목덜미를 만질때마다 느껴지는 섬득한 징그러움, 살 찐 목덜미.. 돼지를 만지는 것 같은 추한 느낌이다.
새벽 기상. 지끈거리는 머리속과 헐어 쓰라린 입안을 다독이며 마태복음 공부하다.
"아침과 저녁에 이 세상은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아침에 당신은 신선하게 보인다. 아침에 당신은 잠에서, 깊은 잠에서, 잠 속에서의 꿈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무의식 속에서 초월적인 어떤 것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에는 모든 것이 신선하게 보인다. 사람들은 보다 더 인정있고 사랑스러워진다. 사람들은 아침에 보다 더 순수하게 보인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사람들은 더 오염되고, 현명하지 못하고, 교묘하고, 추하고, 폭력적이고, 기만적인 사람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아침에는 초월적인 것에 가까웠다. 그것이 저녁이 되면 속되고 세속적이고 육체적인 것으로 변하게 된다." -라즈니쉬-
나의 저녁은 실로 라즈니쉬의 말 그대로다.
그러나 이 새벽 나는 라즈니쉬의 말과 같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가?
오늘 새벽- 지금의 나는 육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육체의 불편부당함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가장 속되고, 추하고, 폭력적이고, 기만적이며, 우매하고, 교활한 상태이다. 기도까지도...
오늘 하루를 견뎌내야 할 일상이 아득할 뿐이다.
14867 1987. 10. 22 (목)
어제 업체의 사장과 음주.
비싼 접대를 받다.
나이트 여자의 춤- 관능.
여자의 외면적인 아름다움은 어쨌던 모두 다 Sex와 연관되어 있다.
어떠한 여성미에서도 쉽게 성을 연상할수 없다면 그것은 여성다운 미가 아니다.
성을 연상할수 없는 아름다움은 여성을 초월한 아름다움이다.
"귀염성있고, 아름답게 보이는 모습은. 무심한 모슴, 노그러진 모습, 들 뜬 모습, 우월의 모습, 의지적인 모습, 심술궂은 모습, 뻔뻔스런 모습, 차가운 모습, 깁숙이 안을 들여다 보는듯한 모습, 병색 돋은 모습, 고양이다운 모습, 어리광과 무십함과 심술이 서로 엉킨 모습." -보들레르-
14868 1987. 10. 23 (금)
일찍 목욕 마치고 마태복음.
밖이 훤해 진후 기도.
차이코프스키가 흐르는 아침.
" 한 명령이 내 안에서 울려온다. <파헤쳐 보라! 무엇이 보이는가?><사람과 새들, 물과 돌들><조금 더 깊이! 무엇이 보이는가?><생각과 꿈들, 환상과 번쩍이는 섬광들!><좀 더 깊이! 무엇이 보이는가?><아무것도! 오직 죽음처럼 두려운 침묵위 밤만이.><좀 더 깊이!><아, 나는 결코 저 캄캄한 간막이를 뚫을수가 없다! 목소리와 울음소리는 들려오네, 저 쪽 기슭에서 날개들이 펄럭이는 소리도 들려오네.><울지말라! 울지말라! 그것들은 저 쪽 기슭에서 들리는게 아니다. 그 목소리들, 울음소리와 날개짓 소리들은 모두 네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이성 저 너머, 마음의 성스러운 낭떠러지 끝에서 떨며, 나 나아간다. 한 발은 안전한 땅을 딛고, 다른 한발은 끝모를 심연에 가로 누워있는 어둠 속을 더듬어 대며."
"모든 겉 모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본질을 나는 점쳐 본다. 그것과 하나되고 싶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14869 1987. 10. 24 (토)
새벽, 톨스토이 '참회록' 완독.
기도.
"신앙 속에 내포되어 있는 온갖 불합리한 점은 내 앞에 여전히 남아있지만, 나는 신앙만이 인류에게 생존의 의의에 대한 해답을 주고, 아울러 생존의 가능성을 허용해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모든 대중, 무식한 대중은 말없이 살아가며, 고뇌를 달게 받아들이고 죽음에 다가간다. 즉 그들 대다수는 기꺼이 고죄를 받아들이고 평안히 죽어가는 것이다."
"신에 대한 이러한 탐구는 이성에 의한 주장이 아니라 분명한 감정의 작용이었다고 나는 거침없이 말할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심장에서부터 솟아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고립된 경지를 두려워하는 심정이었으며, 나 자신과 상관이 없는 모든 것 속에서 느끼는 고독감인 동시에 무엇인가에 도움을 청하는 심정이었다."
"종교를 좀 더 높은 차원에서 분석할수 없을까? 진실한 신앙에는 교파, 교리의 구별을 해소시킬수 있은 좀 더 고상한 해결방법이 없을까?"
"신앙 속에 진리가 있다는 사실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속에 거짓이 섞여 있다는 사실도 역시 의심할수 없다. 다시 말하면 거짓이나 진실이나 모두가 교회라고 침하는 것에 의해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톨스토이 '참회록'-
14870 1987. 10. 25 (일)
일요일 오전 현장 잠시 나갔다 오다.
며칠째 금주하고 있으나 뒷꽁무니 쓰리고 하혈, 변이 굳은 모양.
대통령을 향한 치열한 다툼.
왜 두 김씨는 단일화하지 못하는가.
불과 수개월전만 하더라도, 오직 민주화를 위하여 신명을 바치겠다고, 어떠한 개인적인 영광은 생각지도 않는다고 그토록 떠벌리더니.
소인배의 무리들, 이러다 엉뚱한 놈에게 그 자리를 가져다 바치지.
만일 끝내 단일화에 실패한다면 나는 차라리 김종필을 택하련다.
군사혁명의 정통성, 정당성, 그의 행적등 과거가 무슨 상관인가. 이 판국에.
가장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민주화의 역량을 갖고 있는, 과거의 전철들을 무수히 경험한 개건된 의식의 그가 오히려 낫지 않을까.
이 나라에, 현금의 이 나라에 지사는 없다.
권모술수의 속성이 필경 있어야하는 정치판에서 지사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겠으나.
제3의 인물이 나설 길은 없는가보다. 이 정치 시스템에서는.
정치적 환상은 그저 환상일뿐. 저 놀음들이 내게는 그저 피안의 불꽃놀이.
답답한 현실이다.
14871 1987. 10. 26 (월)
실로 나에게는 절제의 미덕이란 없다.
모든 욕망에 대하여 참으로 속수무책이다.
하고 싶으면 해야하고, 병적인 강박은 아닌지...
절제의 기쁨- 그 기쁨을 나는 충분히 상상할수 있건만.
금식,금욕,가난,청결,복종.... 이러한 단어들이 갖고있는 심오한 희락을 나는 상상할수 있다.
이 현대의 산업사회의 세속은 온갖 욕망의 각축장이다.
그런 욕망은 오히려 미덕이 된다.
욕망과 욕망이 부딪처 일종의 다이나미증을 번쩍거리면서 자본주의사회의 활력을 이루기도 할테지.
그 속에서 어디 절제의 미덕따위를 기릴수 있을까보냐.
기도.
거칠고 거칠며, 기이하고 기이하고, 행복하고 행복한 그 세계- 나는 요즘 그 세계로부터 사뭇 멀리 서있음을 깨닫고 흠찟 놀라 다시 쫓아가지만,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는듯한....
14873 1987. 10. 28 (수)
새벽 기도.
술취함, 음란함, 나약함- 용서하소서.
"내 마음과 내 혀로 당신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내 모든 뼈로 하여금. 주여, 당신과 같으신 이가 누구입니까?라고 부르짖게 하옵소서. 그처럼 부르짖게 하시고 당신께서 나한테 대답하시며 내 영혼더러 '내가 네 구원이다'고 말씀하옵소서. 나는 누구였고 어떠한 자였습니까? 내 행위에서 악하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 내 행위에서, 아니면 내 말에서, 내 말에서도 아니면 내 의욕에서 악하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 주여, 그러나 당신은 선하시며, 자비로우십니다. 당신의 오른 손이 나의 깊은 죽음에서 감찰하시고, 무수한 파멸을 내 마음의 밑바닥에 닿기까지 퍼내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원치 말고, 당신이 원하는 것을 원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여러 해동안 나의 자유의지가 어디에 있었으며, 어떻게 깊은 오지에서 일순간에 내 구속자와 구속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드러운 멍에 에 내 목을 굽히고, 당신 어깨에 가벼운 짐을 지우도록 나의 자유의지가 불러내어 졌습니까? 허망한 낙을 누리지 않고도 단번에 나는 복락을 누리게 되었으니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 했었으나 그 세상 낙을 버리는 것이 내게는 이제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
14874 1987. 10. 29 (목)
새벽 기도.
치솟는 눈물. 거친 통성의 기도. 모처럼 정화되는가.
기도의 말이 미사여구가 되지 않게 하십시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드리는 기도가 되게 해 주십시오.
죄악을, 죄에 대하여 무력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존재를 절감하는 기도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세상을 두려워하거나 혹은 경멸하는 마음이 나의 불면의 씨앗이라면, 그것은 사랑하는 마음, 용서하는 마음, 관대한 마음이 전혀 없는, 사이비 신앙인의 마음을 갖고 있는 까닭입니다.
천박한 인격을 참아내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하나님, 아내의 영혼을 인도하여 주십시오.
14876 1987. 10. 31 (토)
새벽 기도.
내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느낄수 있도록 신비한 하나님의 체험을 원합니다.
"만일 내가 이상한 언어로 기도한다면 기도하는 것이 내 심령뿐이고 내 이성은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나는 심령으로 기도하는 동시에 이성으로도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심령으로 찬미의 노래를 부르는 동시에 이성으로도 찬미의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바울 '고린도전서 14장'-
감정위주로 나가는 주정주의를 경계하는듯한 바올이지만 하나님은 영적인 분이시지 않는가?
나는 그 분으로부터 오는 직접적이고 신비한 은사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아, 참으로 타산적이고 뻔뻔스런 요구,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을 고개 빳빳이 처들고 당당하게 요구하다니.
"방언이란 쉽게 말해서 무리 안에 맺혀있는 한, 즉 우리 이성으로서는 이해할수 없는 언어의 형태로 응어리가 풀려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응어리들을 우리의 말로 억지로 표현해 놓으면 어쩐지 어색해 지는 경우를 종종 경험합니다. 내가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이게 아닌데 하면서 말이라는 것의 불완전성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조성기 '야훼의 밤'-
<밤>
'황실 피아노 학원'의 음악회.
거의 英이의 무대이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오케스트라 파트를 英이의 피아노가 맡는다. 쇼팽은 또 어떤가? 섬세한 피아니시모의 표정과 포르테의 강렬한 터치의 뛰어난 음악성의 우리 英이...
俊이 역시 생각 밖의 솜씨. 국민학교 급에서는 단연 제일의 솜씨이다. 유연하게 운지를 하면서도 터치는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피아노는 그렇다치더라도 또 英이의 플롯과 俊이의 리코오더는 또 하나의 금상첨화..
자랑스런 내 아이들.
처제들도 아파트의 할머니들과 와주었고, S형 어머니도 와 주셨는데 인사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