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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6권 (34)

카지모도 2023. 4. 22.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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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장사 서쪽 산기슭 편편한 땅에 새로 세운 소도바가 한 개 있으니 이 소도바

에 들어 있는 한 줌 재는 팔십오 세 일생을 이 세상 천대 속에서 보낸 사람이

뒤에 끼친 것이다. 그 사람이 초년에는 함흥 고리백정이요, 중년에는 동소문 안

갖바치요, 말년에는 칠장사 백정중이라 천인으로 일생을 마쳤으나, 고리백정으로

는 이교리의 처삼촌이 되고 갖바치로는 조정암의 지기가 되고 백정중으로는 승

속간에 생불 대접을 받았었다. 생불이 돌아갈 때 목욕하고 새옷 입고 앉아서 조

는 양 숨이 그치었는데, 그날 종일 이상한 향내가 방안에 가득하고 은은한 풍악

소리가 공중에서 났다고 소문이 자자하였다. 이생의 복을 빌고 후생의 원을 세

우는 어리석은 사내, 어리석은 여편네들 중에 대웅전의 부처님을 두고 산기슭

소도바 앞에 와서 치성하는 사람이 벌써 하나둘이 아니었다. 밥술 먹는 촌사람

하나가 자식을 비느라고 내외같이 와서 절에서 묵어가며 사흘 동안 치성하는데,

사흘 되는 마지막날 아침 노구메를 올리려고 소도바 앞을 정하게 쓸어놓았을 때

, 속인 셋이 젊은 중 하나를 데리고 소도바 있는 곳에 와서 중은 서고 속인들은

쓸어놓은 자리에 느런히 꿇어 엎드렸다. 촌사람 내외가 노구메를 짓다가 쫓아와

서 남이 쓸어놓은 자리에 먼저 와서 치성들 한다고 사설하니 젊은 중이 나서서

치성하는 사람이 아니니 염려 말라고 타일렀다. 세 사람은 엎드려서 다같이 굵

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다가 한참 만에 일어들 났다. 촌사람 내외가 아들을 낳

으려고 치성하는 것을 젊은 중이 이야기하여 세 사람 중에 얼굴 해사한 사람이

촌사람 내외를 보고 “임자네들 쓸어놓은 자리에 우리가 와서 엎드린 것이 노구

메 진상버덤 못할 것 없소. 우리 선생님이 알음이 기시면 영락없이 아들 하나

점지해 주시리다.” 하고 말하니 그 촌사람 내외 얼굴에 현연히 기쁜 빛이 나타

나며 여편네가 사내에게 귀뜸하여 사내는 세 사람 앞에 나와서 인사를 청하였

다. 먼저 말하던 해사한 사람은 “이서방이오.” 하고 수염 많은 무서운 사람은

“나는 임가요.” 하고 나중 한 사람은 “나는 박서방이오.” 하고 통성들 하였

다. 인사가 끝난 뒤에 젊은 중이 세 사람을 보고 “고만 들어들 가십시다.” 하

고 말하여 세 사람은 젊은 중을 따라 절로 들어갔다.

꺽정이와 봉학이와 유복이가 대사의 상좌이던 젊은 중을 데리고 소도바 있는

곳을 나가 보고 들어와서 대사의 거처하던 별당채 마루에 둘러앉은 뒤에, 젊은

중이 들어가서 조그만 편지봉 하나를 가지고 나와서 “스님께서 두었다 주라구

말씀하신 유서요.” 하고 말하며 꺽정이를 내주었다. 두 손으로 편지봉을 받아서

속을 뜯어본즉 쪽지 종이에 진서 몇 줄이 쓰이었는데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

은 글씨라 진서 좀 아는 봉학이와 젊은 중더러 보아 달라고 하니 글이 어려워서

뜻을 알 수 없다고 체머리들을 흔들었다. 꺽정이가 유서 쪽지를 주머니에 집어

넣고 나서 마루 끝에 놓인 짐을 가리키며 “저것이 상목이오. 우리가 오다가 들

은즉 선생님의 사십구일재가 멀지 않다니 그때 써주우.” 하고 그 젊은 중더러

말하였다. “재가 인제 한 열흘 남았으니 묵어서 보구 가시구려.” “우리는 바

쁜 일이 있어서 오늘 곧 가야겠소.” “저 무명이 몇 필이오?” “열 필이오.”

“그러면 저것을 재에 쓰지 말구 스님 불상을 하나 뫼십시다.” “불상을 뫼시

다니?” “지금 마침 불상을 잘 파는 사람이 절에 와서 있소, 그 사람더러 스님

목상을 하나 파래서 아주 부처님으루 뫼시잔 말씀이오.” “좋소. 저것으루 부족

되지나 않겠소?” “그 사람이 수공을 얼마나 달랄는지 모르지만 만일 부족되면

이절 대중과 의논해서 보태어 주지요.” “그럴 것 없소. 우리가 나중에 다시 와

서 부족한 것을 채워놓을 테니 우선 일을 시키시우.” “불상을 뫼시구 사십구

일재를 지내구룩 일을 시키리다.” 꺽정이와 봉학이와 유복이는 서로 돌아보며

다같이 좋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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