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이름 출처가 무엇입니까?” “달래나 보지 달래나 보지 하구 여편네가
넋두리하며 통곡한 이야기를 들은 일이 없나?” “그런 이야기 들은
일 없습니다. ” “그 이야기두 모르면 새원 사람 행세를 말게. ”
이봉학이 박유복이 배돌석이 세 두령이 서림이의 얼굴들을 바라보며
“그게 무슨 이야기요?” “여편네가 달래나 보지 하구 넋두리
를 했다니 이야기가 재미있을 것 같군.” “이야기하우. 들읍시다. ” 하고 이야
기하라고들 졸랐다. “옛날에 어떤 연상약한 젊은 남매가 여름 소낙비 잦을 때
이 재를 넘어가다가 재 밑 무인지경에서 소낙비를 만나서 한줄금을 오지게 맞았
드라우. 여름 흩것이 함씬 젖었으니 몸에 착 들러붙을 것 아니오? 그 사내가 여
편네의 남동생인데 앞서 가는 누님의 볼기짝이 울근불근하는 것을 보구 음심이
났드라우. 사내가 음심을 참지 못해서 누님 나 먼저 올라가우 하구 곧 달음박질
을 쳐서 재위에 올라와서 신과 신랑을 바위 위에 내놓구 돌루 짓찧구 죽었더라
우. 여편네가 뒤에 올라와서 남동생의 죽은 꼴을 보구서 대번 죽은 속을 짐작하
구 아까 말과 같은 넋두리를 하며 통곡을 해다우. 그 넋두리한 말에서 재 이름
이 생긴 까닭에 이 재가 원래는 달내나잰데 입에 순하게 부르느라구 다르냇재라
구 한다우. ” 서림이의 이야기라 끝난 뒤에 죽은 사내가 사람이 무던하니 못하
니 여편네의 넋두리한 말이 인정에 그럴 듯하니 안 하니 여러 사람이 씩둑깍둑
지껄이느라고 너무 오래 되어서 길이 늦었다. 너더러(널다리)를 왔을 때 해가 저
물었는데 배돌석이는 많은 일행이 잘 데도 없고 단 십리라도 앞길을 줄이는 게
좋으니 발길을 걷자고 하고, 서림이는 발김이 남의 눈에 수상하니 촌가에
들어가서 떼를 써서라도 자고 가자고 하여 다른 두령들이 두 사람의 말을 가지
고 공론할 때 신불출이가 꺽정이 앞에 나와서 “제가 새원 살때 친한 동무가 하
나가 여기서 사는데 구차치 않게 삽니다. 그 사람의 집으루 들어가실까요?” 하
고 의향을 물었다. 꺽정이가 여러 사람을 보고 “불출이의 친구가 여기서 산다
니 그 집에 들어가서 자구들 가세.” 하고 말하여 너더리서 자기로 작정되어서
불출이를 먼저 들여보내는데 서림이가 불출이에게 “그 사람이 자네하구 아무리
친하더라두 우리 본색은 알리지 말게. ” 하고 당부하니 불출이는 녜녜 대답하
고 갔다. 한동안 지난 뒤에 불출이가 저의 친구를 데리고 큰길에 나와서 일행을
맞아가지고 마을로 들어왔다. 불출이의 친구는 불출이가 양주땅에서 남의 집 사
는 줄로 알고 청석골 화적패의 작은 두목 된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불출
이가 주인의 어물짐을 지고 청홍도 가는 길이라고 말하는 것을 거짓말로 알 까
닭이 없었다. 어물장사 일행 열 사람을 하룻밤 재워 달라고 불출이가 청할 때
방이 넉넉치 못하다고 불출이 하나만 와서 자라고 말하다가 불출이의 주인과 그
동무가 손이 커서 하룻밤 재우면 재운 값이 톡톡히 있으리란 말을 들은 뒤에 비
로소 친구의 낯을 내어준다고 일행을 마중까지 나왔던 것이다. 건넌방에서 자는
주인은 안방으로 가고 아랫방을 쓰는 머슴은 동네 사랑으로 갈 작정하고 건넌방
과 아랫방을 치워주어서 방이 큰 까닭에 두령 여섯 사람은 아랫방에 들고 작은
두목 네 사람은 건넌방에 들게 되었다. 두령들은 방에 들어 앉고 작은 두목들은
짐짝을 자리잡아 놓을때 안방에서 “응애 응애. ” 갓난애의 울음소리가 났다.
불출이가 곽오주를 생각하고 애를 울리지 말라고 당부하려고 주인을 불렀다. “
지금 우는 갓난애가 누군가?” “지난달에 난 자식일세. ” “우리 일행 중에
애 우는 소리를 들으면 병이 나는 사람이 하나 있네. 아무쪼록 울리지 않두록
해주게. ” 주인이 부엌에 있는 안해를 불러서 말을 이르니 그 안해는 젖은 손
을 치맛자락에 씻으면서 “세상에 별 사람도 다 많다. ” 하고 종알거리고 방에
들어가서 우는 애에게 젖을 물리었다. 불출이가 아랫방에 와서 어린애 울리지
않도록 당부한 것을 이야기하니, 다른 두령들은 혹 고개도 끄덕이고 혹 잘했다
고 칭찬도 하는데 정작 곽오주는 불출이에게 목자를 부라리며 “하필 어린애 있
는 집을 왜 지시했느냐, 이 망할 자식아. ” 하고 야단을 쳤다. 무정지책한다고
이봉학이가 핀잔하고 또 박유복이가 나무라서 오주는 고개를 한번 숙이었다가
다시 치어들고 “나는 이 집에서 밥만 얻어먹구 동네 머슴방에 가서 잘 테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열퉁적은 말을 곧잘 하는 곽오주가 혼자 따로 가서 자는
것을 부질없게 생각들 하여 그리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방 하
나 가보구 오겠소.” 하고 오주가 일어서는 것을 “여기서 같이 자지 않구 어디
가서 잔다구 그러느냐? 쓸데없는 소리 말구 게 앉았거라. ” 하고 꺽정이가 꾸
짖어서 오주는 한참 우두커니 섰다가 “오늘 밤에 잠은 다 잤소. 하룻밤 잠 못
자서 설마 죽겠소. ” 하고 도로 주저앉았다. “양짝 귀를 잔뜩 틀어막구 자게그
려. ” “귀를 막으면 고만이라구 말까지 하지 않았어. ” “불출이가 주인보구
당부했다니까 다시 울리지 않겠지. ” 이 사람 저 사람이 말들 하는데 오주는
손을 내저으며 “고만들 두우. 듣기 싫소. ” 하고 볼멘 소리를 하였다. 저녁밥
을 먹고 자리에 누울 때까지 어린애가 한번 울지 아니하여 오주 당자는 말할 것
없고 다른 사람들까지도 오주를 위해서 다행한 일로 여기었더니, 이 방 저 방에
서 다들 잠든 한밤중에 어린애가 우는데 어른이 자느라고 몰라서 울어도 몹시
울었다. 오주가 어린애 울음소리에 놀라 잠이 깨어서 뻘떡 일어나며 곧 방문 열
고 밖으로 나갔다. 방문 소리와 발짝 소리에 여러 사람이 모두 눈을 떴다. “지
금 나간 것이 오주 아닌가?” “애 우는 소리에 잠이 깨었군. ” “어디를 나갔
을까?” “울음소리 안 들릴 데루 나갔는가 보우. ” “일어나서 좀 내다보세.
” 아랫방에서 일어들 앉을 때 오주는 벌써 안방으로 뛰어와서 우는 어린애를
움켜잡았었다. “애그머니 좀 내다보세. ” “이놈아, 남의 자식 왜 죽이느냐?”
여편네가 새된 소리를 지르고 “이것이 미친 놈 아닌가. ” “어린애 이리 내라.
” 사내가 큰소리를 질렀다. 사내는 어린애 움켜잡은 오주의 팔에 매달리고 여
편네는 움켜잡힌 어린애를 받쳐들고 악들을 쓰는 중에, 꺽정이와 유복이가 다른
두령들보다 한 걸음 앞서 쫓아올라왔다. 꺽정이가 안방에 들어서며 “오주. ”
하고 이름 한번 부르는데 오주는 움켜잡은 어린애를 맥없이 놓았다. 오주가 얼
빠진 사람같이 멍하니 섰는 것을 유복이가 와서 “이게 무슨 짓이
냐! 얼른 내려가자. ” 하고 어깻죽지를 잡아끌었다. 나중 와서 방 밖에 섰던 두
령 중의 봉학이와 돌석이는 유복이와 같이 오주를 데리고 아랫방으로 내려가고
서림이는 뒤늦게 잠들이 깨어 뛰어나온 작은 두목 중의 불출이와 같이 안방으로
들어왔다. 꺽정이가 주인 내외를 보고 “그 사람이 다른 때는 멀쩡하지만 애 우
는 소리만 들으면 당장에 미치우. 거짓말 같은 괴상한 병이오. ” 하고 말한 뒤
에 불출이가 사내 주인더러 “그렇기에 내가 미리 당부하지 않던가. ” 하고 말
하니 사내 주인은 “그게 곽쥐 같은 사람일세그려. ” 하고 어이없는 웃음을 웃
고 여편네 주인은 젖 물린 어린애를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서림이가 앞으
로 나서서 어린애를 가리키며 “저애가 놀라서 경풍이 되기 쉬울 게요. 내가 환
약을 줄테니 젖이든지 물에 조금씩 개어서 젖꼭지에 발라서 빨리게 하우. ” 하
고 약낭에서 소합향원 한 개를 꺼내서 사내 주인을 주었다. 꺽정이가 서림이더
러 “그 환약 한 개만 먹으면 다른 약은 안 먹여두 좋겠소?” 하고 물으니 서림
이가 고개를 비틀면서 “나중에 혹시 간기 기운이 있더래두 우황포룡환이나 한
두 개 먹이면 되겠지요. ” 하고 대답하였다. “그런 환약을 가졌거든 아주 두어
개 주인을 주시우. ” “포룡환은 가지구 오지 않았는걸요. 어린애 약이 소용 있
을 줄이야 누가 알았나요. ” 꺽정이가 주인을 돌아보며 “우리가 내일 떠날 때
약값을 두구 갈 테니 나중에 사다가 먹이우.” 하고 말하니 주인이 속에는 당길
마음이 있겠지만 겉으로는 “무얼 그렇게까지 하실 것 없습니다. ” 하고 체면
을 차렸다. 꺽정이가 불출이더러 고만 건너가 자라고 이르고 곧 서림이와 같이
아랫방으로 내려왔다. 여러 두령이 그 뒤에 이내 잠을 잃어서 반밤을 앉아들 새
우고 이튿날 식전에 짐을 끄르고 서른대자 무명 한 필을 꺼내 두었다가, 떠날
때 꺽정이가 주인을 불러서 약값과 밥값이라고 말하고 내어주니 주인은 너무 후
한 데 놀라서 선뜻 받지 못하였다. 일행이 너더리에서 떠나서 양성 와서 또 하룻
밤 자고 청석골 떠난지 닷새 되던 날 아침때 안성을 들어왔다. 안성읍내서 점심
들까지 사먹으며 슬금슬금 막봉이의 소식을 알아보니 서울 포청의 조처가 더디
어서 아직도 안성옥에 갇혀 있는데, 부러진 다리는 그대로 디디고 설 만큼 나았
으나 사흘돌이로 치도곤을 맞아서 볼기짝과 넓적다리에서 구데기를 파낸다는 말
이 있었다. 관속들이 개쏘대듯 하는 읍내바닥에서 일행이 오래 지체하는 것은
부질없기 짝 없는 일이라 외촌에 나가서 어물장사 행세하고 돌아다니며 일을 꾸
미자고 의논들 하고 읍에서 점심 먹은 뒤에 곧 촌으로 나오는데, 막봉이 잡힌
곳을 와볼 생각들이 있어서 먼저 가사리로 나왔다. 가사리 동네 안침에 있는 큰
초가집이 막봉이 고발한 박선달의 집인 줄을 안 뒤에 “그놈의 집에 불을 푹 질
렀으면 좋겠다. ” 하고 곽오주는 주먹을 부르쥐고 “집에 불만 지르구 고만두
어! 사람의 새끼까지 씨알머리를 없애지. ” 하고 배돌석이는 이를 갈아붙이는데
꺽정이가 두 사람을 돌아보며 “막봉이를 빼내온 뒤에 막봉이하구 같이 와서 분
풀이하지. ” 하고 말하였다. 일행이 가사리서 구사리를 지나 구브내 앞 냇가에
나왔을 때, 좋은 버드나무숲이 있는 것을 보고 사람 없는 곳에서 일 꾸밀 것을
의논들 하려고 숲속에 와서 앉아 쉬었다. 막봉이를 구할 방책에 대해서는 일행
이 청석골서 떠나기 전에 벌써 두 가지 의논이 났었다. 하나는 양주 전례대로
안성옥을 깨치고 갇힌 것을 빼내자는 의논이요, 또 하나는 혜음령 전례와 같이
서울 길목에서 압상하는 것을 빼앗자는 의논이었다. 두 가지 의논을 한 가지로
정하려고 여러 두령들이 분분히 지껄일 때 서림이가 안성 가서 형편을 보지 않
고는 정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여 방책을 미리 정해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안성 와서 말들을 들어보니 안성군수가 파옥을 겁내서 옥 근처에 밤낮 파수를
보이되 파수 보는 장교들이 어느 때든지 급한 나발로 군호만 하면 관속은 말할
것 없고 읍내 장정들까지 일제히 나서도록 짜놓았다고 한즉 파옥하자면 한바탕
큰 접전을 안할 수 없는 형편인데, 사람 열이 안성 일읍 관민을 대적삼아 접전
하는 것은 승산이 적다고 파옥은 파의하자고 서림이가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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