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Books/Reading Books

임꺽정 6권 (36)

카지모도 2023. 4. 24. 05:56
728x90

 

"녜, 일심정력을 다 들여서 일을 할 테니 염려 마십시오." "그럼 오늘부터라두

곧 일을 시작하우." 젊은 중이 꺽정이더러 "이 절 대중에게 초벌 공론은

돌렸지만 절의 막중 큰일을 그렇게 경선히 하는 수 있소. 일 시키는 건

내게 맡기시우.“ 하고 말하여 꺽정이가 ”하여튼 우리는 모레 다시 올 테니

그 안에 다 되두룩 일을 시키우.“ 하고 당부하는데 불상 파는 사람이 고개를

가로 흔들며 ”일을 지금 시작한대두 오늘은 반나절 일이라 모레 다 될는지

모르겠는걸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면 하루 물려서 글피 올 테니

글피는 손이 떨어지두룩 하우.“ ”녜, 글피 저녁때 첫불공을 드리시두룩 하리다.“

”첫불공이라니!“ ”새 부처님을 뫼신 뒤에 첫불공을 드리셔야지요.“

”옳지, 그렇겠소.“ 하고 꺽정이가 젊은 중을 돌아보며 ”첫불공 드리는데 두비두

우리가 가지구 온 무명에서 쓰두룩 하우. 불상 수공 모자라는 건 나중에 가지구

오리다.“ 하고 말을 일렀다.

꺽정이 외 네 사람이 칠장사에서 달골로 돌아오는 길에 유복이가 불상 장인의

수공 줄 것을 걱정하여 꺽정이를 보고 “우리 행중에 가져온 무명은 몇 필 안

남았을걸요.” 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어떻게 되겠지.” 하고 걱정 없는 대답을

하였다. “어떻게 된다니 무슨 턱이 있소?” “무슨 턱이 있어 아무 턱두 없지.

” “그럼 준다구 하구 안 줄 작정이오?” “별소리를 다하는구나. 안 주다니

될 말이냐.” “없는 걸 주는 수가 무어요?”“능통이더러 금은붙이 가지구 변

통해 보라지.” “능통이가 변통한다면 좋지만 변통 못하겠다면 탈 아니오.” “

여기서 줄 수 없으면 청석골 데리구 가서 주지 걱정인가?” “그 사람이 우리를

따라올는지 누가 아우?” “제가 안 와서 못 받는 게야 제 잘못이지.” 불상 수

공을 못 주면 주마고 허락한 꺽정이가 제일 창피를 볼 것인데, 꺽정이는 도리어

조금도 걱정하지 아니하였다.

네 사람이 달골 능통이 집에를 와서 보니 읍에 가 있던 신불출이가 와 있었

다. 꺽정이가 불출이의 인사를 받고 “누가 데리러 갔든가?” 하고 물으니 불출

이가 옆에 섰는 두목 하나를 가리키며 “이 사람이 여기 사람들을 데리구 와서

여기 사람들은 읍에 남아 있구 저희만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는데 능통이가

나서서 “안성읍에 가서 관가 동정을 알아오는 데는 본곳 사람이 난데 사람버덤

나을 것 같아서 제 사람을 보내두기루 했습니다.” 하고 말하여 꺽정이는 능통

이의 등을 툭툭 치며 “잘했소.” 하고 칭찬하였다. 네 사람이 방에 들어앉아 마

침맞게 술상이 나와서 여러 두령이 함께 술들을 먹는 중에 꺽정이가 능통이를

보고 “나를 무명 이십 필 변통해 줄 수 있소?” 하고 물으니 능통이가 “무명

을 그렇게 많이 무엇에 쓰시렵니까?” 하고 되물었다. 꺽정이가 새 부처님 뫼실

작정한 것을 이야기하고나서 “불상 수공 외에 상급까지 주자면 한 이십 필 더

있어야겠소”하고 말한즉 능통이는 망건 뒤를 긁으면서 “글피 쓰실 것을 갑자

기 어디 거서 변통하나.”하고 혼잣말하다가 “꼭 될는지는 몰라두 말해볼 데는

한 군데 있습니다.” 하고 꺽정이에게 대답하였다. “어디요?” “제 외사촌이

지금 진천 이방인데 거기나 가서 말하면 혹시 될는지 그외에는 별루 말해 볼 데

두 없습니다.” “내가 금은붙이를 줄 테니 그것을 가지구 가서 바꾸어 달래 보

면 어떻겠소?” “그러면이야 꼭 되지요.” “그럼 그렇게 좀 해주우.”

꺽정이가 능통이에게 무명 변통할 것을 부탁한 뒤에 주머니 속에 든 유서 쪽

지를 꺼내서 서림이를 주며 “이것이 우리 선생님의 유서요. 무슨 말인가 좀 보

우.” 하고 말하여 서림이가 쪽지를 받아서 펴보니 칠언절구 한 수가 쓰이어 있

었다. 서림이가 한문 문리는 난 사람이나 두보의 시를 많이 보지 못한 까닭에

이 글이 대개 두시를 모은 것인데 글자 몇 자 변통하였을 뿐인 것을 알지 못하

고 “유서가 아니라 시를 지어 주신 게로구먼요.” 하고 말하였다. “시라니 귀

글 말이오?” “녜, 귀글이 한수요.” “귀글 뜻이 무어요?”“삼년 저소리 속에

관산달이요, 구월 병장기 앞에 초목바람일러라.” “관산의 달이 무슨 달이오?”

“관산달이란 게 변방달이란 말이겠지요.” “또 그 아래는 무어요?” “부상

서편 가지가 단석을 봉하니 천자의 기가 안중에 있더라.” “부상은 무어구 단

석은 무어요?” “부상이란 큰 뽕나무요, 단석은 나두 모르겠는걸요.” “대체

그 글뜻이 무어요?” “나두 그 밖엔 모르는걸요.” “고만두구 이리 내우.”

꺽정이는 서림이에게서 쪽지를 뺏듯이 달래서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술 먹은

후에 또 점심으로 밀국수들을 눌러먹고 뿔뿔이 밖에 나와서 거닐 때 서림이가

꺽정이에게 와서 “잠깐 방으루 들어갑시다.” 하고 말하여 꺽정이는 서림이를

따라서 건넌방으로 들어왔다. 서림이가 입을 꺽정이 귀에 가까이 대고 한동안

소곤소곤 지껄이는데, 꺽정이가 연해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나중에 “그거 꾀가

됐소.” 하고 칭찬하였다. “그럼 그대루 속히 서둘러 보지요.” “그래 봅시다.

” “그러면 주인더러 사람을 속히 모아 달라구 말하시우.”

꺽정이가 능통이와 여러 두령을 불러들여서 서림이의 꾀를 대강 말한 뒤에 능

통이더러 사람 모을 것을 부탁하니 “기일을 언제루 정하셨습니까?” 하고 능통

이가 물었다. “기일은 속할수록 좋소.” “이 동네와 용머리 아이들은 오늘이라

두 불러 쓸 수 있지요마는 메주고개 아이들을 불러오자면 하루이틀 걸리겠습니

다.” “그거야 그렇겠지만 진천길을 어떻게 하우? 다른 사람을 보내서 되겠소.

” “진천은 제가 가야 합니다.” “그럼 진천을 갔다와서 메주고개를 갈 테요?

” “메주고개는 사람을 보내지요. 제 몸 받아 일보는 자가 거기 하나 있으니까

그자에게 기별하면 일을 낭패없이 할 겝니다.”“그럼, 오늘이라두 곧 서둘러 해

주우.” “녜, 그럽지요.”

이날 점심때 지난 뒤 능통이는 메주고개에 사람을 보내고 자기가 진천 갔다오

기 전에 메주고개서들 오면 뉘집에 갈라 재울것까지 지휘해 놓고, 꺽정이가 주

는 금은붙이를 받아서 몸에 지니고 졸개 두엇을 데리고 진천길을 떠나갔다. 다

음날 해질 무렵부터 어둡기까지 메주고개 사람이 두셋씩 패를 지어서 띄엄띄엄

오는데 사람이 수십 명이 오고 또 그 다음날 점심때 지나서 능통이가 진천서 돌

아오는데 무명 이십 필을 졸개들에게 나누어 지워 가지고 왔다. 능통이가 가지

고 갔던 금은붙이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꺽정이에게 도로 주면서 진천 갔던 이

야기를 시작하였다. “그저께 가다가 광혜원서 자구 어제 아침때 진천읍내 외사

촌 큰집에 가 앉아서 길청에 사람을 보내서 외사촌을 불러내다가 보구 무명을

부탁했습니다. 관가에 바쁜 일이 있다구 총총히 도루 들어가면서 점심때 봐서

나올 테니 기다리라구 하더니 점심때는 고사하구 저녁때두 지나서 캄캄하게 어

둔 뒤에야 겨우 나오는데 무명을 변통하느라구 늦었다구 합디다. 어젯밤에 그

집안 건넌방에서 내외종 형제 단둘이 술잔을 먹으며 담화하는 중에 임두령 말씀

이 났었습니다. 외사촌 말이 내가 월전에 양주 사람 하나를 만나서 임아무개 이

야기를 들었는데 이야기만 들어도 무서운 사람입디다. 그 동류 길가란 자가 지

금 안성에 잡혀 갇혔다니 안성 원님이 양주 원님같이 소조나 당하지 않을는지

모르겠소. 형님은 임아무개처럼 크게 해볼 생각이 없소? 내가 전에 일껀 가르쳐

까지 주었는데 그대루 못한단 말이오? 형님은 담보가 작아서 천생 졸때기짓밖에

못할 사람이오 하구 저를 비웃습디다. 연전에 제기 잠깐 피신을 한할 수 없이

되어서 외사촌의 첩의 집에 가서 한 보름 동안 숨어 있었는데, 그때 외사촌이

저더러 이왕 도적질을 할 바엔 놋박재 같은 데서 촌 장꾼을 못살게 하지 말구

새재 같은데 가서 경상도, 청홍도 관원들이 건드리지 못할 만한 대적 노릇을 하

라구 권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외사촌에게 비웃음을 받구 무류한 바람에 바

꾸러 온 무명이 너 말하는 임아무개 소용이라고 말했더니 외사촌이 깜짝 놀라며

안성 큰일났다구 하구 뒤에 무슨 말썽이 날는지 모르니까 무명을 못 주겠다구

합디다. 그래 쌈쌈해서 뺏다시피 해서 가지구 왔습니다. 금은붙이는 주니까 한사

하구 받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도루 가지구 왔습니다.” 능통이의 이야기가 끝난

뒤 밀것에 탈이 나서 복통으로 두웠던 서림이가 반몸을 일으키고 “진천서 안성

으루 기별이나 하지 않겠소?” 하고 능통이를 바라보았다. 능통이가 서림이 말

을 듣고 자기 발명겸 외사촌을 두둔하여 “외사촌이 사람이 믿을 만합니다. 다

른 사람이 말한 것두 아니구 내가 말한 것을 말낼 리가 없습니다.” 하고 말하

니 서림이가 고개를 외치며 “사람이 작사청 물을 먹으면 부지중 심장이 달라지

는 법이오. 그런데... .” 하고 말하다가 복통이 나서 배를 움켜쥐고 속에 끌려들

어가는 소리로 “더구나 작청 상주즘 되면 등치구 배 문지르는 수단이 영롱할게

요.” 하고 지껄였다. “어떻든지 진천서 일부러 안성으루 기별할 리는 없습니

다.”“기별 안 하면 작히 좋겠소. 그렇지만 무명을 한 줄라구 하구 금은붙이를

안 받은 것이 수상하우.” 꺽정이가 서림이를 보구 “내일 낮에 칠장사 갔다오

구 내일 밤에 일을 합시다.” 하고 말하니 서림이가 복통이 그 동안 너누룩하여

움켜쥐었던 배를 놓고 “내일 밤두 늦어요. 오늘 밤을 넘기지 맙시다.” 하고

말하였다. “하루 동안 늦어서 설마 낭패되겠소.”

꺽정이가 다른 두령들을 돌아보니 어떤 두령은 막봉이가 나오는 길로 곧 떠나

가는 것이 좋으니 아주 내일 밤에 빼내오자고 말하고, 또 어떤 두령은 오래 갇

혀 있던 사람을 적어도 하루쯤은 편히 쉬게 하는 것이 좋으니 오늘 밤에 빼내오

자고 말하는데 배돌석이가 좌중을 돌아보며 “준비가 다 못 되어서 날짜를 늦춘

다면 할 수 없지만 다른 일 땜에 하루라두 옥중 고생을 더 시킨다는 건 안될 말

이오.” 하고 말한 다음에 “내가 공론할 일이 한 가지 있소. 길두령을 데려내온

뒤에 우리가 모두 함께 칠장사에 가서 새 부처님 앞에서 의형제를 맺었으면 좋

을 것 같은데 여러분 의향이 어떻소?” 하고 공론을 내었다. 돌석이는 꺽정이와

봉학이와 유복이가 서로 형님 동생 하는 것을 속으로 부럽게 여겨서 이런 공론

을 내게 된 것이었다. 서림이가 맨 먼저 좋다고 말하고 그 뒤에 다른 두령들도

모두 “좋지.”“좋겠지.” 하고 말하는데 곽오주는 좋다 싫다 말이 없어서 돌석

이가 오주더러 “자네는 왜 말이 없나?” 하고 물었다. 이면 없는 오주가 서림

이를 빤히 바라보며 “서장사가 끼이면 나는 빠지겠소.” 하고 대답하여 서림이

는 한동안 얼굴을 붉히고 있다가 “내가 빠질 테니 염려 마우.” 하고 어이없는

웃음을 웃었다. 결의할 공론이 끝나기 전에 안성읍에 가 있는 사람들이 돌아와

서 “읍에 기찰이 버쩍 심해져서 자칫 잘못하면 장채 손에 들려가겠습디다. 요

새 청석골패가 하나씩 둘씩 안성으루 모여든다구 소문이 났답니다.” 하고 능통

이에게 말하는 것을 여러 두령이 다같이 듣고 하루라도 시일을 늦추는 것이 불

리하겠다고 생각들 하여 이날 밤에 일을 버르집기로 작정하고 준비를 차렸다.

꺽정이 이하 여러 두령은 짐짝에 든 병장기들을 꺼내서 손모아놓고, 능통이는

사람들을 내놓아서 달골 사람은 어디 가지 못하게 이르고 용머리 사람은 저녁

전에 달골로 모이도록 일렀다.

이날 밤, 밤이 이윽한 뒤 박선달 사는 가사리 동네에 화적이 들었다. 동네 개

들이 요란하게 짖을 때 화적떼는 벌써 박선달 집을 들이쳤다. 환도 든 두령이

한 패를 데리고 사랑에 들어와서 사랑식구를 결박지우고 또 활 가진 두령이 한

패를 끌고 안에 들어와서 안식구를 동이는데, 사랑 식구의 철없는 사람은 항거

하려다가 칼을 맞고 정작 박선달이 어디 가고 없어서 환도 든 두령이 일각문으

로 안을 들여다보며 “늙은 주인놈이 안에 있나?” 하고 물으니 활 가진 두령은

일각문 앞에 쫓아와서 “안에 사내라구는 어린아이들밖에 없소.” 하고 대답하

였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꺽정 6권 (38)  (0) 2023.04.27
임꺽정 6권 (37)  (0) 2023.04.25
임꺽정 6권 (35)  (0) 2023.04.23
임꺽정 6권 (34)  (0) 2023.04.22
임꺽정 6권 (33)  (0) 2023.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