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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14)

카지모도 2023. 5. 2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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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가신다면 뫼시구 가다뿐입니까.”“자네가 내개 청하고 싶다는 일이 무

어냐 말일세.”“말씀하기 황송하지만 노인정패에게 분풀이를 한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분풀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나?”“저의가 당한 것처럼 한번 망

신을 시키면 속이 시원하겠습니다.”“이 사람 나를 기생방 매질꾼으로 내세우

고 싶단 말인가.”“천만의 말씀입니다.”“그럼 노인정에 가서 풍파를 내잔 말

이야?”“노인정에 가서는 사정의 기둥뿌리를 솟쳐놔두 분풀이가 못됩니다.”“

그러나 기생방에 가서 매질하잔 말이 아닌가?”“선생님께서 매질해 줍시사구는

말씀하지 않습니다. 노인정패에 장사 하나가 있는데 그 장사 하나만 꿈찍 못하

게 해주시면 그 나머지는 저희들이 능준히 해낼 수 있습니다.”“장사라니 힘이

얼마나 세든가?”“제 눈으로 본 것은 소흥이 집에 큰 청동화루가 하나 있는데

숯불이 가득 담긴 화루전더구니를 한손으로 쥐구 쳐들어서 이리저리 옮겨놓습니

다.”“그게 그리 장한가?”“선생님께서는 그런 힘을 우습게 보실는지 모르지

만 저의 보기에는 그것두 엄청납니다. 제 사람 육칠 명이 다들 힘꼴 쓰는 장정

이건만 꼼짝들 못하구 그놈 한 놈에게 얻어맞다시피 햇습니다.”“기생방에 가

서 힘자랑하는 것이 좀 창피한 일이지만 자네 처음 청이니 한번 들어줌세.”“

인제는 제가 분을 풀게 됐습니다. 벌써부터 선생님께 한번 청하구 싶은 것을 어

려워서 못했습니다. 오늘 저녁에 제가 소월향이 집에를 갔다가 노인정패들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못 들어가고 왓습니다. 소월향이 집 문앞에서 들어설 때 치가

곧 떨립니다.”“그럼 지금 다시 그년의 집으로 가려나?”“지금 늦어서 그 패

들이 그저 있을는지 모르지요. 그러구 이왕 분풀이를 해주실 바엔 꼭 소흥이 집

에 가서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그건 자네 맘대루 하게.” “그럼 그 패들이

소흥이 집으로 몰리는 때를 염탐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무리나 하게.” 한

온이가 꺽정이에게 분풀이해 주마는 허락을 받고 마음이 흐뭇하여 다시 한동안

앉아서 갖은 우스운 이야기를 다 하는데 그 이야긴즉 대개 다 기생방 이야기였다.

이삼 일 지난 뒤다. 날이 아침부터 끄물거리다가 낮에 눈이 시작되어 기왓골

이 형적 없이 묻히도록 쏟아지고 저녁때 뜸하여졌으나 아주 그치지 아니하고 오

다 말다 밤이 된 뒤에 눈이 개고 달이 밝아서 눈 위의 야경과 달 아래 설경이

희한하게 좋았다. 이런 좋은 밤에 꺽정이는 혼자 짬짬하게 앉았다가 의관을 벗

고 팔베개하고 누웠을 때 한온이가 와서 “선생님, 노인정패가 지금 소흥이 집

에 모였답니다.” 하고 말하여 꺽정이가 벗었던 의관을 다시 입는데 한온이의

말을 좇아서 임선달로 행세하려고 출신한 사람의 복색을 차리었다. 꺽정이가 한

온이를 앞세우고 방문 밖에 나설 때 마당 눈 위에 옹긋쫑긋 섰던 십여 명 사람

이 각기 앞으로 나와서 꺽정이게 인사를 하였다. 한온이가 기생방에 데리고 다

니느라고 다년간 골라 모은 젊은 사람들이라 모두 미끈미끈하게 생긴 것이 물고

뽑은 것 같았다. 꺽정이가 한온이를 보고 “저 사람들두 다 데리구 갈 텐가?”

하고 물으니 한온이는 꺽정이의 묻는 뜻은 생각해 볼 사이도 없이 “사람을 모

두 불러모으느라구 한참 걸렸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여러 사람을 데리구

가서 편쌈하려나?” “사람이 많아야 기세가 좋습지요.” “여보게, 성군작당해

가지고 갈 것 없네. 자네하구 나하구 단둘이 가세.” “이왕 불러모았으니 같이

데리구 가는 게 좋습니다.” “그저 내 말대루 저 사람들은 고만두게.” 한온이

는 꺽정이 말에 눌려서 다시 두말 못하는데 여러 사람들중의 한 사람이 꺽정이

를 치어다보며 “저희야 가니 무엇하겠습니까. 가나 안 가나 마찬가집지요. 그렇

지만 저희중의 몇 사람두 전날 가서 몰골 숭한 일을 당했으니 오늘 밤에 뫼시구

가서 기광 좀 부리게 해줍시오.” 하고 솜씨 있는 말로 같이 가기를 청하였다.

꺽정이가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고개를 한두 번 끄덕이고 곧 한온이를 돌아보며

“저 사람들이 가고자 하면 같이 가긴 가더래두 기집의 집에 들어갈 때는 함께

우 몰려 들어가지 말구 우리 둘이만 먼저 들어가서 저편의 하는 꼴을 좀 보세.

” 하고 말하니 한온이는 “밖에서들 기다리다가 부르거든 들어오라구 합지요.

” 하고 꺽정이에게 대답한 다음에 여러 사람들더러 “자네들 다 들었지. 자네

들은 장찻골다리 천변에서 서성거리다가 나중 들어오두룩 하게.” 하고 일렀다.

한온이가 꺽정이와 같이 십여 명 한 패를 끌고 남소문 안에서 영풍교 아래로 나

와서 새다리 수표교로 천변을 끼고 올라왔다. 장통교에 와서 여러 사람은 뒤에

떨어뜨리고 단 둘이 남쪽 큰길로 조금 나오다가 다시 동쪽 실골목으로 꺾여

들어왔다. 이 골목 막다른 집이 소흥이의 집이다. 소흥이의 집 평대문

이 열리어 있는데 노랫소리, 장고 소리가 문 밖에까지 들리었다. 한온이가 꺽정

이의 앞을 서 들어와서 마루에 올라서며 큰기침하고 방에 들어오며 “편안하우

무사한가.” 인사하는데 꺽정이는 벙어리같이 아무 말 않고 한온이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방 한중간에 촛대와 큰 청동화로가 놓이고 화룻가로 한량 오류명이

둘러앉고 그중 의표 선명한 젊은 한량 옆에 주인 기생 소흥이가 장고를 앞에 놓

고 앉았는데 좁은 아랫간에는 발 들여놓을 틈도 변변히 없었다. 좌석을 사양하

는 사람이 없어서 한온이는 꺽정이와 같이 장지 밖 윗간에 자리잡고 앉았다. 소

흥이가 앉은 자리에서 한팔 짚고 인사하는데 ‘안녕하시오’라든지 ‘어서 옵시

오’라든지 으레 하는 인사말도 한마디 없이 머리만 가땍까땍하고 말았다. 한온

이가 좌중에 인사를 청하여 인사수작이 끝난 뒤에 “재미있는 좌석에 불청객이

자리해서 천만 미안하나 우리두 설월 좋은 밤에 흥이 바이없지 아니하여 놀러왔

으니 동락합시다.” 하고 거탈수작을 한번 던져본즉 내색이 좋지 않은 한량들이

빈말로라도 “좋소.” 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소흥이 옆에 가까이 앉은 나

이 젊은 한량이 큰소리로 “여보게 소흥이, 장구 고만 치우게.” 하고 말하니 그

말은 곧 한온이더러 ‘너희하구는 같이 놀지 않겠다.’대답하는 셈이다. 한온이

가 시비를 차리려고 다리를 도사리고 앉는 중에 젊은 한량과 엇비슷 마주 앉은

허위대 큰 사람이 젊은 한량을 보고“새루 들어온 오입쟁이들이 치우신 모양이

니 우리 화로를 내드립시다.” 하고 말한 뒤 한손으로 큰 화로를 번쩍 들어서

한온이와 꺽정이 사이에 내놓았다. 한온이가 믿는 구석이 있는 까닭에 힘자랑하

는 것을 보고도 기운이 죽지 아니하여 그 사람을 똑바로 보면서 “이분 힘꼴이

나 쓰는구려.” 하고 비아냥스럽게 말하였다. “말이라면 다하는 겐 줄 아네.”

“말이란 사람 봐가며 하는 게거든.,”“무엇이 어째!” 그 사람이 주먹을 부르

쥐고 벌떡 일어서는데 살기가 갑자기 방안에 떠돌았다. 다른 한량들은 동무 따

라서 일어서고 기생은 덩달아서 일어서고 한온이는 엉겹결에 일어서고 꺽정이

하나만 일어서지 않고 앉아서 화젖가락으로 화롯불을 쑤시고 있었다. 여러 사람

의 눈이 꺽정이게로 몰리었다. 꺽정이가 화젓가락을 방바닥에 빼농으며 곧 두

손으로 화롯전을 잡더니 양쪽에서 안으로 오그리는데 그 유착한 청동화로를 해

박쪼가리같이 오그려놓았다. 노인정 한량들은 전에 한번 혼뜨검 내놓은 오입쟁

이가 털보 하나를 데리고 단둘이 들어올 때 털보가 벌써 눈에 거치적거리고 털

보의 인물이 영특하고 털보의 기색이 태연한 것을 살펴볼수록 점점 마음이 실찍

하여져서 선뜻 선손을 걸지 못하던 차에 털보가 청동화로 오그려놓는 것을 보고

혀들을 홰홰 내둘렀다. 젊은 한량이 허위대 큰 사람에게 “자네두 저렇게 오그

릴 수 있겠나?” 하는 뜻을 눈으로 물으니 그 사람은 고개를 바로 끄덕이지도

않고 가로 흔들지도 않고 한 옆으로 비틀어 꽂았다. 여러 한량들이 서로 보고

눈짓하는 중에 젊은 한량이 턱으로 밖을 가리키니 허위대 큰 사람 외에는 다들

고개를 끄덕이었다. 방안에 떠돌던 살기가 우습게 사라졌다. "신입구출이라니 먼

저 온 우리는 먼저 갑시다." 한량 하나가 말을 내고 "좋소." 한량 두서넛이 대답

할 때 이때까지 앉아 있던 꺽정이가 일어서서 아랫간을 내려다보며 "내 말 듣기

전에 못 갈 테니 게들 앉아라." 하고 따라지게 해라로 내붙였다. 꺽정이 말 한마

디에 다른 한량들은 모두 찔끔하여 말대꾸를 못하는데 허위대 큰 사람만이 "뉘

게다 함부로 해라야!" 하고 제법 뇌까렸다. "오, 네가 힘꼴이나 쓰는 모양이니 힘

좀 어디 보자." 하고 꺽정이가 아랫간으로 올라오는데 그 사람이 슬그머니 주먹

을 쥐고 있다가 면상을 노리고 내갈겼다. 딩딩한 주먹에 면상을 얻어맞으면 아

무리 천하 장사라도 콧잔등이 으스러지거나 눈두덩이 터지거나 할 것인데 눈이

맑고 손이 잰 꺽정이가 자기의 얼굴을 얼른 뒤로 젖히며 그 사람의 팔목을 덥석

잡고 또 한손으로 올려훑으니 그 사람의 입에서 아이구 소리가 연해 나왔다. "하

잘것없는 놈이구나." 꺽정이가 손을 노으니 그 사람의 팔목에서 붉은 피가 똑똑

떨어졌다. 한번 올려훑은 데 가죽이 벗겨지고 살이 밀리었던 것이다. 꺽정이의

손에도 피가 묻어서 그 사람의 웃옷자락으로 손을 썩썩 씻은 뒤에 여러 한량들

을 둘러보며 "내가 앉으라는데 너희들이 종내 앉지 않구 섰을 테냐!" 하고 소리

를 질렀다. 여러 한량들은 자기네 몸에 손찌검이 돌아올까 겁을 내서 벌벌 떨며

주저앉고 기생은 저의 몸에 손댈 리 없을줄 번히 알건만 공연히 무서워서 쪼그

리고 앉아 발발 떨었다. 꺽정이가 한온이더러 “인제 길에 있는 사람들을 들어

오라게.” 하고 말하여 한온이가 나가서 같이 온 사람들을 데리고 들

어온 뒤에 아래윗간에 앉을 좌석들을 정돈하였다. 꺽정이와 한온이는 주인 기생

소홍이를 데리고 아랫목에 느럭느럭 앉고 노인정 한량들은 방문 맞은편에서 장

지 앞까지 비좁게 앉히고 윗간에는 십여 명 사람이 겹겹이 둘러앉았다. 꺽정이

가 한온이를 가리키고 한량들을 바라보며 “이 사람 패가 너희들에게 당한 것처

럼 너희들을 죄다 성하게 보내지 않을 것이로되 점잖지 못해서 손찌검은 안하겠

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 사과들을 해라. 그래야 놔보낼 테다.” 말하고 나서 “

사과할 테냐, 안할 테냐! 말들 해라.” 하고 뒤를 눌렀다. 여러 한량이 서로 돌아

보며 “사과하세.” “사과를 무어라구 하나?” “아무렇게나 하지.” 하고 가만

가만들 지껄이고 나서 각각 한온이에게 사과를 하는데 “전번 일은 우리가 잘못

했나 보우.” 말하는 사람도 있고 “용서하우.” 말하는 사람도 있는 중에 허위

대 큰 사람은 머리만 숙이고 젊은 한량은 입술만 달싹달싹하였다. 젊은 한량이

교기 부리는 것을 꺽정이가 눈꼴사납게 본 터이라 짐짓 곤욕을 보이려고 “사내

자식이 사과를 하기 싫으면 안하구 할 테면 남이 알아듣게 똑똑히 할 것이지 입

술만 달싹거린단 말이냐! 대체 너 같은 자식은 아직 대가리에 피두 안 마른 것

이 기생방 출입이 다 무어냐. 봐하니 밥술 먹는 집 자식 같구나. 네 아비 할아비

모아놓은 천량 작작 없애라.” 하고 여지없이 낮잡아서 꾸짖고 “똑똑히 요전번

에 잘못했습니다 하구 사과해라. 그렇지 않으면 아가리를 찢어놀 테다.” 하고

얼러대니 얼굴이 새빨개진 젊은 한량이 입술을 악물고 있다가 한참 만에 나직하

나마 알아들을 만한 목소리로 꺽정이 시키는대로 사과하였다. 그 젊은 한량은

시임 우변포도대장 이몽린의 막내아들로 노인정 한량패 중의 출물꾼 노릇하는

사람이요, 허위대 큰 사람은 상가 성을 가진 안변 사람으로 이포장 남병사 적에

한두 번 승안한 것을 연줄삼아 이포장 집에 와서 문객 노릇하는 사람인데 이포

장의 아들이 상가를 데리고 기생방에 다닌 지 수년 동안에 참혹하게 망신을 당

하기가 이날 밤이 처음이었다. 노인정 한량들이 사과를 다한 뒤에 “너희들 인

제 고만 가거라.” 소리를 듣고 소홍이 집에서 몰려나와서 길에 가면서 여럿이

씩둑깍둑 지껄이었다. “별놈의 망신 다 해보네.” “기생방에 와서 사과란 무어

야? 별꼴을 다 보지.” “여보게 방구, 자네 팔목이 얼마나 아픈가. 세상에 기막

힌 놈의 힘두 다 많지. 어쩌면 한번 잡아훑는데 팔목이 그 모양이 되나.” 상가

를 뽕으로 세기고 뽕을 방구로 옮겨서 방구가 상가의 별명이 된 것이었다. “팔

목 원수를 어떻게든지 갚아야겠는데 무슨 도리가 없겠나 생각들 좀 해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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