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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15)

카지모도 2023. 5. 26.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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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털보놈이 대체 왠놈일까?” “남소문 안 젊은 오입쟁이 녀석이 어디 가서

데려온 게지. 우리에게 앙갚음하려구.” “남소문 안 젊은 오입쟁이 녀석이 수상

한 놈의 자식이라든데 그 털보두 역시 수상한 놈이 아닐까?” “포도청에서 도

둑놈이라구 잡아다가 치도곤으로 패주어 내보냈으면 좋겠네.” “그랬으면 방구

의 팔목이 당장에 나을 테지.” “여보게 장래 대장, 자네가 춘부영감께 말씀을

잘 여쭤서 해볼 수 없겠나?” 장래 대장이란 이포장 아들의 별명이다. “무어라

구 말씀을 여쭙나? 기생방에서 망신했단 말이 들쳐나면 아버지와 형님네게 잔소

리나 듣게 되지. 아버지는 노인이시라 잔소리하실 연세나 되셨지만 형님네 잔소

리란 사람이 머리가 실 지경일세. 밤에 놀러다니지 말구 무경을 읽어라, 손이 뜨

면 못쓰니 깍지를 놀리지 마라, 글씨를 배워라, 관방을 익혀라 잔소리가 한이 없

네.” “자네 백중씨가 무슨 염체에 그런 소리를 한다든가. 기생방에 놀러 다니

지 않은 지가 며칠이나 되었다구.” “그렇기에 말이지. 기생방 출입을 고만둘

생각이 나다가두 형님네 잔소리에 도루 들어가네. 그러나 잔소리를 듣구 집에

들어앉았더면 오늘 밤 같은 망신은 안했겠지.” “오입쟁이가 기생방에서 남을

망신주기두 예사구 남에게 망신당하기두 예사지, 그까짓걸 가지구 속썩일 거 무

어 있나.” “암 그렇구말구. 오입장에서 한번 망신한 게 무슨 대산가. 헌갓쓰구

똥누기지. 여보게 방구, 그렇지 않은가?” “망신이라두 오늘밤에 내가 당한 망

신은 죽을 망신일세.” “망신이면 망신이지 죽을 망신 살 망신이 어디 있나.”

“여보게, 장래 대장, 속썩이지 말구 다른 데루 놀러가세.” “아니 나는 고만

집으루 갈라네.” “집에 가서 촛불하구 눈쌈할라나? 우리 소월향이 집으루 가

서 새판으루 놀아보세.” “옳지, 소월향이게루 가세. 장래 대장이 소월향이를

좋아하지그려.” 여럿이 소월향이게 놀러가기로 의논이 된 뒤에 한량 하나가 상

씨 성 가진 사람을 보고 “장래 대장이 가는데 방구가 안가지 못할 텐데 어디

그 팔목 가지구 술 마시러 갈 수 있겠나.” 하고 말하니 그 사람이 “팔목은

걱정이 아니라두 피묻은 옷을 어떻게 하나.” 하고 대답하였다.

다른 한량 하나가 그 사람 앞으로 나서며 “내 옷이 자네게 얼추 맞을 테니

나하구 웃옷을 바꿔입세.” 말하고 곧 웃옷을 벗어주었다. “피묻은 옷을 누가

입든지 마찬가지 아니야?” “아따 남의 걱정까지 하지 말구서 날 벗어주게.”

그 한량이 피묻은 웃옷을 돌돌 말아서 옆에 끼면서 “요렇게 하면 됐단 말이야.

” 하고 자기의 의사스러운 것을 자랑하듯이 혼자 웃었다. “그걸 내가 옆에 끼

구 가지.” “고만두게. 이건 내가 집에까지 가지구 가서 빨아 고쳐다 줌세.”

“나는 객지에 있는 사람이니까 후의를 싫단 말 안하구 받을 테여.” “자네 팔

목을 정한 수건으로 다시 잘 동이세.” “나는 콧수건밖에 없는데.” “내가 인

심쓰는 김에 수건 하나까지 마저 인심 씀세.” 그 한량이 새 명주손수건으로 그

사람의 상한 팔목을 다시 동여준 뒤에 여럿이 함께 소월향의 집으로 몰려갔다.

꺽정이가 노인정 한량들을 한온이에게 사과시키고 놓아보낸 뒤에 한온이더러 “

우리두 차차 가보세.” 하고 말한즉 한온이가 “남의 자리를 뺏어가지구 바루

일어서면 재미있습니까? 여기서 한참 놀다 가시지요.” 대답하고 나서 곧 데리

고 온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네네 몇 사람이 핑 집에 가서 술상을 차려달래서

아이놈들 이어 가지구 오게. 술 못 먹는 사람두 먹을 것이 있어야 할 테니 만두

빚어논 것이 있거든 있는 대루 다 삶아달라게. 그러구 서사더러 사랑 다락에 있

는 청동화루에 그중 크구 좋은 것을 한 개 골라 달래서 가지구 오게.” 하고 말

을 일렀다. 십여 명 사람이 잠시 동안 너미룩내미룩하더니 나중에 네댓이 같이

갔다온다고 일어서들 나갔다. 술상을 차려 오러 간 동안에 한온이는 남아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지껄이고 기생은 꺽정이에게 맡겨서 꺽정이가 기생을 옆에 가

까이 앉히고 수작하게 되었다. “자네 이름이 소홍이라지?” “네, 그렇습니다.

” “나는 임선달이란 사람일세.” “녜, 그렇습니까!” “자네가 소리두 잘하고

풍류두 잘한다데그려.” “공연한 말씀 맙시오.” “내가 서울 있는 동안 종종

놀러와두 좋겠나?” 소홍이가 그 말은 대답 않고 “시굴댁이 어디십니까?” 하

고 물었다. “나는 먼 시굴 사람일세.” “보입기엔 서울 양반 같으신데요.” “

서울 양반이라면 내가 듣기 좋아할 줄 아나?” “아니 참말 서울 양반 같으세

요.” “무엇이 서울 양반 같은가?” “사투리 없는 말씀을 듣든지 제도 맞는

의복을 보든지 다 서울 양반 같으십니다.” “의복은 얻어 입구 말은 배웠네.”

“그러신 줄은 몰랐습니다.” “이후에 놀러올 때 시굴 쌍놈이라구 푸대접이나

하지 말게.” “천만의 말씀을 다하십니다.” “자네는 어디 사람인가?” “제

고향은 송도올시다.” “송도야? 진이 난 곳일세그려.” “제가 아이 적에 소리

를 그에게 배웠습니다.” “자네가 당대 명기라더니 연원이 있네그려.” “선생

은 명기지요만 제야 무슨 명깁니까.” “자네 나이 몇인가?” “나이 몇 살이나

되어 보입니까?” “글쎄, 몰라서 묻지 않나.” “눈어림으로 말씀을 해보십시

오.” “스무남은 되었을까.” “스물다섯이올시다. 나이 많습지요?” “날 같은

사십객 사람하구 놀기 꼭 좋은 나일세.” 한온이가 여러 사람과 지껄이다가 말

고 소홍이를 돌아보며 “여보게 소홍이, 저 어른이 우리 선생님이신데 소시적부

터 오입 안하시기루 유명한 어른이니 자네 수단으루 한번 오입길을 터 드려보

게.” 하고 말한 뒤에 다시 소홍이 귀에 입을 대고 몇마디 소곤소곤 말하니 소

홍이가 “그런 소리 누가 듣구 싶다오? 저리 가시우.” 하고 몸으로 한온이를

떠밀었다. “무슨 소릴 하기에 골이 났나?” 꺽정이가 소홍이더러 묻는데 소홍

이는 대답을 아니하고 한온이가 웃으면서 “선생님 힘 좋으신 것이 팔뿐이 아니

라구 말해 주었더니 공연히 쌀쌀스럽게 굽니다.” 하고 대답하여 “실없은 사람.

” 하고 꺽정이도 역시 웃었다. 꺽정이가 술상 오는 동안이 지루한 줄을 모르고

앉았는 중에 남소문 안에 갔던 사람들이 돌아오는데 화로와 술병 같은 것은 자

기네가 들고 술상과 밤참 목판은 아이들 시켜서 이어 가지고 왔다. 소홍이가

처음에 꺽정이를 흉악한 귀신만 여겨서 옆에 가까이 가는 것도 마음에 끔찍스러

워하다가 서로 수작도 해보고 다시 인물도 살펴보는 중에 사내다운 사내로 생각

이 들기 시작하며 친할 마음까지 나서 나중에는 꺽정이가 손을 만지는 것도 싫

게 여기지 아니하였다. 아이들이 간 뒤에도 한식경이 좋이 지나서 겨우 일어서

게들 되었는데 소홍이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몰밀어서 “안녕히 갑시오.” 하

고 인사한 뒤 특별히 한온이에게 와서 “자주 놀러오세요.” 하고 다정스럽게

당부하니 한온이가 짓궂게 소홍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자네가 나더러

자주 오랄 때가 다 있으니 별일일세. 아마두 나를 조방꾼이 노릇 시키구 싶은

게지. 아따 그러게. 내가 선생님 뫼시구 자주 옴세.” 하고 깔깔 웃었다. 여러 사

람들이 한온이를 따라서 웃는 중에 꺽정이도 역시 빙그레 웃으면서 소홍이를 보

고 “우리 또 만나세.” 하고 인사하였다. 밤이 깊으니 달은 더 밝은 것 같고

눈이 쌓여서 밤은 차지 아니하였다. 한온이와 꺽정이가 느런히 서서 장통교와

수표교 사이 천변을 내려올 때 뒤에 오던 여러 사람이 “오늘 밤 같은 좋은 밤

엔 자지 말구 돌아다녔으면 좋겠네.” “우리 단골 술집에 가서 밤새두룩 술타

령해 볼까.” “누가 마대?” 하고 지껄이는 것을 듣고 한온이도 집에 들어갈

마음이 적어져서 꺽정이보고 “선생님, 이와 나서신 길에 소월향이 집에까지 가

보시렵니까?” 하고 물었다. “지금 너무 늦지 않았나?” “늦으면 대삽니다.”

“기생 자는 걸 가서 깨운단 말인가?” “저 혼자 자거나 제 서방하구 자는 건

깨워두 좋지요.” “소월향이 집이 예서 멀지 않은가?” “혜민골이라 가는 길

에 그리 돌아갈 수두 있습니다.” “그리 가긴 가더래두 자거든 깨울 건 없네.”

“소월향이 집 안방 뒤들창이 행길루 났으니까 자는지 안 자는지 밖에서 알 수

있지요.” 한온이가 뒤에 오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소월향이 집으루 가세.” 하

고 말하니 여러 사람이 여출일구로 “좋습니다.” 하고 대답들 하였다. 혜민골

소월향이 집에 뒤들창으로 불빛이 보이고 방안에서 여러 사내의 목소리가 나는

데 목소리들을 가만히 들어보니 갈데없이 노인정 한량패라 한온이가 펄펄 뛰다

시피 하고 집 앞으로 돌아와서 지쳐놓은 일각문을 기세좋게 열어붙였다. “평안

하우 무사한가?” 방문을 열고 “신입구출합시다.” 방안에 들어서는데 꺽정이

만 한온이의 뒤를 이어서 들어서고 여러 사람들은 방 밖에 둘러섰다. 노인정 한

량들이 꺽정이를 한번 치어다보고는 곧 부지런히 벗어놓은 옷들을 주워 입고 도

망하듯이 몰려나갔다. 노인정 한량패의 노는 자리를 하룻밤에 두번째 뺏고 한온

이는 한없이 좋아서 꺽정이가 고만 일어서자고 말하여도 “조금만 더 놀다 가시

지요.” 하고 잘 일어서지 아니하다가 소월향이가 잠에 부대껴 못 견디어할 때

비로소 일어섰다. 남소문 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온이가 소홍이와 소월향의

우열을 물어서 꺽정이가 소월향의 약한 것을 타박하고 소홍이의 투덕투덕한 것

을 칭찬하였더니 뒤에 오는 여러 사람들이 듣고 “임선달님이 소홍이게 반하셨

네.” “소홍이두 맘에 있어 하는 모양이데.” “소홍이년이 코 큰 사내를 고르

거든.” 이런 소리들을 지껄이며 낄낄거렸다. 한온이가 꺽정이의 힘을 빌려서

노인정 한량패에게 톡톡이 분풀이한 뒤 사오 일이 지나갔다. 이 동안에 꺽정이

는 소홍이의 투덕투덕한 모양이 마음에 잊히지 아니하여 다시 놀러갈 생각이 없

지 아니한 터에 하루 아침 한온이가 와서 식전 인사를 마치고 “어젯밤에 소홍

이에게 놀러갔다 왔지요.” 하고 공연히 웃으니 꺽정이가 “왜 웃나?” 하고 웃

는 까닭을 물었다. “소홍이에게 무안을 당했습니다.” “무슨 무안을 당했어?”

“선생님을 안 뫼시구 왔다구 거짓말쟁이라구요.” “그런 무안은 당해 싸지.”

“선생님까지 저렇게 말씀하시네.” “나를 따구 갔으니 내가 그렇게 말 안하겠

나?” “선생님, 오늘 밤에 같이 가십시다.” “봐서 같이 가세.” “봐서가 아

니라 꼭 가셔야 해요. 만일 안 가시면 제가 소홍이게 무안버덤두 망신을 당하게

됩니다.” “그건 또 어째서?” “제가 꼭 뫼시구 온다고 말하구 왔습니다.” “

내 말두 안 들어보구 그런 말 한 사람은 망신을 당해두 좋아.” “선생님 안 가

실 말씀입니까?” “자네가 미리 허락하구 온 게 미워서 안 가겠네.” “선생님

이 제자의 수구를 몰라주시니 야속합니다.” “무슨 수군가?” “오늘 밤에 가

보시면 아실 겝니다.” “어쨌든지 가잔 말일세그려.” “제 청을 한번 또 들어

주시는 셈 잡구 가십시다.” 이날 밤에 꺽정이와 한온이가 아이놈 하나를 앞세

우고 소홍이 집에를 놀러왔다. 한번 보면 초면이요, 두번 보면 구면이라 안면도

익숙하려니와 대접도 다정하였다. 소홍이가 멀리 앉아서는 추파를 보내고 가까

이 앉아서는 아양을 부리는데 그것이 모두 꺽정이 마음속에 스며드는 것 같았

다. 한온이가 방을 가리키며 “전날 밤과 어떻습니까?” 하고 물어서 꺽정이가

“무에 어떻단 말인가?” 하고 무심히 본 것을 다시 살펴보니 밤에 병풍과 보료

도 전날 밤에 없던 것 같거니와 소홍이의 의복과 단장도 전날보다 몇 배 더 고

운 듯하였다. “소홍이가 선생님 맞으려구 정성을 이렇게 피우는데 저의 수구두

적지 않습니다.” 하고 웃으니 꺽정이는 빙그레 할 뿐이요 소홍이는 곱게 눈을

흘겼다. “여보게, 눈 흘기지 말게. 신정은 여구하구 구정은 여신해야

쓰는 법일세.” “신정은 무어구 구정은 무어요, 지각 좀 차리시오.” “이 사

람이 이러다가 욕하지 않겠나.” “말이 빠져서 이가 헛나갔으니 용서하시오.”

“자네가 어느새 선생님 세를 믿나? 아직 좀 일네.” “예, 여보시오.” “한다

할수록.” “술상이나 내오리까?” “내가 술 못 먹는 줄을 자네가 아직 모르네

그려.” “술을 못 잡숫거든 안주나 잡숩시오.” 소홍이가 사람을 불러서 술상을

들이라고 이르더니 계집아이 하나가 뻔찔 날라들이는데 안주가 굉장히 많았다.

그러나 꺽정이가 혼자 먹다시피 하는 술이라 많이 먹지 아니하여 술상이 오래

가지 아니하였다. 상을 물려낸 뒤 한동안 지나서 한온이만 아이놈을 데리고 돌

아가고 꺽정이는 소홍이 집에 머물러 자게 되었다. 이 뒤로 소홍이가 장학원에

서 찾는 날 탈하는 일이 이따금 있었으니 이는 대개 꺽정이가 놀러오는 날이요,

왈짜들이 오는 밤 문을 닫고 받지 않는 일이 종종 있었으니 이는 대개 꺽정이가

자러 오는 밤이었다. 소홍이는 사내를 놀리는 수단이 좋고 꺽정이는 계집을 거

느리는 힘이 좋아서 둘의 사이가 찰떡과 같고 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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