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밤이가 이야기를 마친 뒤에 다시 한온이를 보고 “복니를 몸에 올려두시지
않구 잡아 없애실 테면 저를 줍시오. 제가 얼마 동안 이 건너방에 들어와서 자
겠습니다.” 하고 말하니 한온이가 노밤이의 말은 대답 않고 상노아이에게 문서
궤, 세간궤, 보료, 이부자리 등속은 다른 데로 치우라고 이르고 나서 “이는 떨
어 버리든지 죽여 없애든지 맘대루 해라.” 하고 일렸다. 한온이가 상노아이에게
이르는 말이 노밤이에게 반 허락하여 주는 폭이라 노밤이는 곧 “복니를 제게
내주시니 황감합니다.” 하고 허리를 두세 번이나 굽실굽실하였다. 이날 밤부터
노밤이가 드러내놓고 건넌방에 들어와서 자게 되었는데 상노아이더러 “인제는
너두 같이 들어가 자자.” 하고 말하니 상노아이가 “나는 복니 싫소.” 하고 도
리머리를 흔들었다. “네가 싫다면 복니라두 잡아 없애마.” “그 이가 대체 노
서방 몸에서 퍼진 것 아니오?” “내가 이꾸러긴 줄 아느냐? 거기는 내 이두 있
구 네 이두 있구 또 다른 사람의 이두 있다. 새벽마다 불 켜놓구 앉아서 잡아모
은 것이다.” “이를 잡아서 옷속에 넣었다가 밤에 건넌방에 들어가서 퍼쳐놨
소?” “왜 남의 이까지 내 옷에 넣는단 말이냐? 종이 봉지에 모았다가 새벽에
건넌방에서 나올 때 이봉지를 보료 위에두 떨어좋구 또 궤 위에두 떨어놨지.”
“별 궁흉스러운 짓을 다 하는구려.” “어른더러 궁흉스러운 짓이라니 버릇없
는 고연 놈이로구나.”
노밤이가 상노아이를 데리고 건넌방이 들어와 자게 된 지 수일후에 한온이가
노밤이를 보고 웃음의 말로 “복니를 많이 올렸나?” 하고 물으니 노밤이는 천
연덕스럽게 “제가 복이 없는지 이가 차차루 없어져 갑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한온이가 이마 다친 것이 다 나은 뒤에 꺽정이에게 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한온이는 성질이 물건이고 일이고 무엇에든지 물리기를 잘하고 싫증을 쉬이 내
는 대신 처음에 탐도 잘 내고 재미도 쉬이 붙여서 물건이면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하고 일이면 당장에 끝을 낼 것같이 서두는 사람이라 한동안 열일 스
무일을 다젖히고 칼에만 골똘하여졌다. 치고 찌르는 여러 가지 법을 배우고 익
히는데 한온이가 꺽정이를 어렵게 알아서 가르쳐 내라 마라 무람없이 하진 못하
건만 그래도 많이 꺽정이를 성가시게 하였다. 어느 날 밤에 한온이가 그 아버지
에게 붙들려서 도중 일을 여러 가지 결처하고 스무날께 달이 높이 올라온 뒤에
꺽정이 처소에 와서 보니 안방 건넌방에 모두 불이 꺼졌었다. 한온이가 그대로
나가려다 말고 안방 머리맡 창 앞에 와서 “선생님, 벌써 취침하셨습니까?” 하
고 소리하여 보았다. 칼을 배우기 시작한 뒤로 꺽정이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방안의 꺽정이가 막 잠이 들었다가 깨었다. “어째 이렇게 늦
게 왔나?” “달이 밝은데 어느 새 주무십니까?” “일없이 오래 앉았기 심심해
서 일찍 누웠네.” “약주 좀 잡수시렵니까?” “아까 밤참을 먹었는데 또 무슨
술을 먹어?” “밤참 잡숴올 때 제가 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별말을 다하
네. 좀 들어오려나?” “선생님께서 곤하시지 않거든 낮에 가르쳐 주신 남의 칼
막는 법을 좀 익히게 해줍시오.” “우선 들어와서 불이나 켜놓게.” “덧문을
안 거셨습니까?” “안 걸었네.”
한온이가 방에 들어와서 화로에 묻힌 숯불덩이를 파내 가지고 촛불을 붙여놓
는 동안에 꺽정이는 일어나서 허리띠 대님을 다시 매었다.
“달이 밝다니 마당에 나가서 한바탕 뛰어볼까.” “주무시다가 찬 데 나가셔
서 감기 드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나이 사십에 아직 감기 고뿔이란 건 모르
네.” “그럼 마당에 나가서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게, 나가세.”
한온이가 꺽정이의 뒤를 따라서 방 밖에 나오며 곧 마루구석에서 나무로 칼
모양 만든 것을 두 자루 찾아 내오는데 꺽정이가 보고 “그거 하나는 날 주구
자네는 방에 들어가서 내 환두를 가지구 나오게. 내가 그걸루 환도를 막아 보여
줌세.” 하고 말하였다.
날이 서리 같은 환도를 빼어든 한온이가 목도를 든 꺽정이와 달 아래 마주섰
다. “자네 재주껏 쳐보게.” “칼날이 혹시 몸에 스치기라두 하면 어떻게 합니
까?” “그런 사정 두지 말구 나는 죽일 것같이 치게.”
한온이가 내리치고 후려치고 치다 못하여 찔러 보고 찌르다 못하여 다시 쳐서
치고 찌르는 법을 배운 대로 다 하였건만 칼이 한번도 꺽정이 몸에 범접하지 못
하였다. “이제 막는 묘득을 대강 짐작하겠나? 자, 내가 치께 자네 막아보려나.”
꺽정이가 목도를 치어들어 세로 치고 비껴들어 가로 치고 하는데 세로 내려올
듯 가로 나오고 가로 나올 듯 세로 내려와서 한온이가 더러 막아내기도 하였지
만 많이 얻어맞았다. 꺽정이가 아무쪼록 힘들이지 않고 살짝살짝 건드리듯 치건
마는 한온이는 얻어맞을 때마다 입이 딱딱 벌려지고 아이쿠 호리가 저절로 입에
서 나왔다.
건넌방에서 자던 노밤이와 상노아이가 어느 틈에 일어나 나와서 댓돌 위에 서
서 구경들 하였다. 꺽정이의 목도를 받지 못하고 얻어맞을 때 구경하는 노밤
이가 여러 번 아이구 소리를 질러서 한온이는 자기 흉내를 내는 줄로 생각하고
꺽정이더러 “선생님, 저자 좀 보십시오. 흉내를 자꾸 냅니다.” 하고 고자질투
로 말하니 꺽정이가 댓돌 위를 향하고서 청천벽력 같은 큰소리로 “이눔아 네가
뉘 숭내를 내느나!” 하고 호령을 내놓았다. 아무 죄도 없는 상노아이는 노밤이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을까 겁내는 것같이 얼른 뒤로 들어서는데 노밤이 당자는
댓돌 아래로 내려오며 “저희들은 숭내낸 일 없습니다.” 하고 발명하였다. “아
이구 소리는 숭내가 아니구 무어냐!” “아니올시다. 주인양반께서 자꾸 얻어맞
는 게 보기에 딱해서 아이구 소리가 절루 나왔나 봅니다.” “무엇이 어째, 이놈
아 네가 좀 얻어맞구 싶으냐!” “저더러 좀 받아보란 말씀입니까. 저야 설마 주
인양반같이 얻어맞기만 할라구요.” “저눔이 사람인가 무언가.”
한온이가 꺽정이를 보고 “저자가 칼쓸 줄을 압니까?” 하고 물어서 꺽정이는
노밤이를 꾸짖다 말고 한온이를 돌아보며 “저깐 눔이 무슨 칼쓸 줄을 알겠나.
” 하고 대답하였다. “저와 어떻습니까?” “그건 모르겠네.” “제가 한번 데
리구 시험해 볼까요?” “그래 보게나. 자네가 만일 창피 볼 지경이면 내가 거
들어 줌세.”
꺽정이가 노밤이더러 마루에 있는 목도를 가지고 오라고 이르고 자기의 가졌
던 목도는 한온이를 주었다. 한온이와 노밤이는 목도를 들고 마주 서고 꺽정이
는 환도를 집에 꽂아서 한손에 뒤고 한온이 곁에 가까이 섰다. 꺽정이 입에서
자 소리가 한범 떨어지며 한온이와 노밤이의 목도가 서로 어울렸다. 노밤이의
칼쓰는 법이 맹랑치 않아서 서투른 한온이보다 훨싼 낫건마는 한온이 옆에 섰는
꺽정이가 노밤이 몸에 빈구석이 나는 것을 노려보며 더깨니 다리니 칠 곳을 뚱
겨주어서 노밤이가 한온이보다 훨씬 더 많이 얻어맞았다.
이 뒤에 한온이가 수차 노밤이와 같이 칼쓰는 법을 익히는데 꺽정이가 보지
않을때는 노밤이가 흉물을 피워서 일부러 많이 지는 까닭에 한온이는 노밤이를
호락호락한 적수로 생각하여 꺽정이에게 배우는 것을 노밤이 데리고 익히게 되
었다. 노밤이가 한온이와 친근하여진 뒤 바깥방 여러 사람들 틈에서 더욱 코가
우뚝하여졌다.
한온이가 칼을 배우기 시작한 지 한 보름 되었을 때 성천 기생 소월향이가 서
울 와서 이름이 났었다. 한온이는 소월향이 집에 다니느라고 칼 배우던 것을 잊
어버릴 뿐 아니라 꺽정이 처소에 오는 것까지 번수가 드물어졌다. “자네 요새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꺽정이가 물으면 한온이는 “도중에 일이 좀 있습니다.
” 대답하고 “밤저녁에는 어디 가는 데가 있지?” 하고 꺽정이가 넘겨짚어 물
으면 한온이는 “요새 웬일인지 저녁때만 되면 신열이 나서 초저녁부터 자리 보
전합니다.” 핑계로 대답하였다. 얼마 동안 밤에는 현형도 아니하던 아니하던 한
온이가 어느 날 밤에 왔는데 꺽정이보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은 눈치를
보이었다.
꺽정이가 한온이의 눈치를 보고 “자네 무슨 할 말이 있나?” 하고 물으니 한
온이가 입으로는 “아니오.” 하고 대답하면서도 눈치로는 여전히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이든지 할 말이 있거든 어려워 말구 하게. 혹시 내가 와서
묵는데 비편한 일이 생겼나?”
꺽정이가 의심쩍어 하는 말에 한온이는 펄쩍 뛰다시피 하며 “천만의 말씀이
올시다.” 대답하고 한참 있다가 상글상글 웃으면서 "선생님, 전에 더러 기생방
에 가보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건 왜 묻냐?“ ”글세, 혹 가보신 일이 있
나 말씀이올시다.“ ”기생들 데리구 놀기는 했지만 기생방에 가본 일은 없네.“
”선생님이 소시때 서울 기셨다며 기생방에두 한번 못 가보셨단 말씀입니가?“
”자네 알다시피 내가 천인 대접받던 사람으루서 무슨 주제에 기생방 출입을 했
겠나.“ ”기생방에 한번 가보실랍니까? 가신다면 제가 뫼시구 가겠습니다.“ ”
한 나이라두 젊을 때 같으면 혹하구 가겠네만 지금 나이 사십에 기생 오입이 당
한가.“ ”나이 오십,육십 된 건달두 수두룩합니다.“ ”나이 많은 건 고만두구래두
내가 지금 상제 몸일세.아무리 상제 노릇은 옳게 안 하지만 기생방에는 갈
염의가 없네.“ ”상제님 복색을 안하셨기에 저는 단상하신 줄루 알았습니다.“
”내 복색은 말할 것이 없네. 집에 있을 때는 혹시 두건두 쓰구 베중단두 입지만
밖에 나올 때는 진사립에 남철릭으루 관원 복색을 차리기두 허구 벙거지에 군복
으루 군사 복색을 차리기두 하구 기외에두 갖은 복색을 다 차리네.“ ”하여튼
지 선생님께서 색에는 범연하신가 봅니다.“ ”기생방에 안 가면 색에 범연한
가?“ ”만약 색을 좋아하시면 첩두 두시구 오입두 하실 것 아닙니까.“ ”이때
까지는 그런 데 유의할 처지두 못 되구 겨를두 없었지만 앞으루야 누가 아나.“
”우선 요새만 하더래두 긴긴 밤에 혼자 주무시기 고적하지 않습니까?“ ”고적
하니 어떻게 하나?“ ”저는 나이 젊은 탓인지 몰라두 무슨 변통이든지 하지
선생님처럼 여러 날 혼자 자진 못하겠습니다.“ ”자네가 나 위해서 무슨 변통
을 해줄 맘이 있나?“ ”꾸중만 안 하신다면 논다니구 들어앉은 게구 얌전한 걸
루 얼마든지 끌어다 드리지요.“ ”자네 덕에 내가 기집복이 터지는가베.“ ”기
집 보는 눈두 다 각각인데 선생님은 어떤 기집을 좋아하십니까?“ ”기집이란
허리 아래는 무비일색이라네.“ ”그렇게 말씀하시면 선생님하구는 기집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여보게, 지금 서울 기생 중에 옛날 송도 황진이나 성주 성산
월이나 평양 옥매향이 같은 절등한 미인이 혹시 있나?“ ”성천 기생 소월향이
가 근래 이름이 높습니다. 옛날 명기에 대면 어떨는지 모르지만 당세 인물루는
절등하다구 할 만합니다.“ ”한번 불러다가 데리구 놀 수 없을까?“ ”소월향
이를 불러다가 놀게까지 되자면 한번 틀개를 단단히 놔야 할 판입니다. 그러지
않아두 선생님께 청을 해볼까 생각하는 일이 한 가지 있는데.“ 한온이가 잠깐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서 ”말씀할게 들어 주시렵니까?“ 다지기부터 하고 꺽
정이의 기색을 살피면서 말하기 시작하였다. ”선생님 오시든 때 저 머리 싸맨
것 보셨지요? 제가 기생방에 다니다가 그런 소조를 전에두 수차 당했지만 지난
번같이 분한 꼴을 본 일은 처음입니다. 전에는 대개 저의 패의 실수로 시비가
났었구 또 서루 치는 판에 다른 패 사람두 깨어지구 터지구 해서 피장파장이나
되었지만 지난번에는 저의 패만 난장개가 되두룩 얻어 맞았는데 그나마 시비두
저편 패 사람이 일부러 실수해 가지구 낸 시빕니다..그나 그뿐인가요. 그날 밤에
부서진 기생의 방안 세간을 제가 하루 새루 해보냈더니 기생년이 받지 않구 돌
려보냈습디다. 그때 기생년이 세간 영거해 간 사람을 불러들여서 방안의 새 세
간을 보이면서 노인정 활량패에서 이렇게 먼저 해보내서 받았으니까 두벌씩 받
을 염의가 없다구 하구 받지 않더랍니다. 제 꼴이 무슨 꼴이 됐습니까. 화가 어
떻게 나든지 깨진 앞이마가 아픈 것두 잊어버리구 그 세간 한 벌을 모두 제 손
으루 깨두들겨 부셔버렸습니다. 그러구 홧병을 겸해서 며칠 동안 앓아 누웠다가
선생님께서 오시던 날 비로소 기동을 하기 시작햇습니다. 그날 밤 일은 이야기
하기두 창피하지요만 선생님께서 심심풀이루 들으시겠다면 이야기를 한번 자초
지종 다하겠습니다. 장찻골다리 이편에 장악원 시사하는 소흥이란 기생이 있는
데 풍류 잘하구 소리 잘하기루 지금 서울 안에서 첫째 꼽는 기생입니다. 제가
그날 밤에 사람 오륙 명 데리구 놀러 나섰다가 소흥이게를 갔었습니다. 마침 밤
이 조용해서 기생을 데리구 허튼수작을 하는 중에 노인정 활량패들이 우 몰려들
어옵디다. 전에두 더러 마주친 일이 있어서 안면들은 대개 짐작하는 터이지요.
노인정 활량패에는 무장대가의 자질두 더러 끼여서 세력 있구 재물 있구 힘꼴
쓰는 장사까지 있는, 서울 안 기생방을 주름잡구 돌아다니는 왈짜패인 까닭에 저
의는 이런 패하구 시비를 내지 않으려구 처음부터 조심들 했습니다. 기생방에서
다른 패 사람하구 같이 합석할 때는 일언일동을 맘대루 하는 법이 없이 반
드시 말을 먼저 좌중에 돌려야 합니다. 이것이 기생방 격식입니다. 저편 사람들
은 기생에게 말두 붙이구 앉았던 자리두 옮기구 번찔 말을 돌리는데 이편 사람
은 가만히 앉은 대루 앉아서 말두 별루 돌리지 않았습니다. 저편에서 처음부터
트집잡구 싶어 애쓰는 눈치가 보였지만 워낙 이편에 실수가 없으니까 무슨 트집
을 잡을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자리가 무사했으나 제가 이런 자리에 오래 앉았
기 재미없어서 같이 간 사람들을 데리구 차차 일어서려구 하는 중에 저편 사람
이 발론해서 토막돌림으루 시조 하나씩을 부르게 됐습니다. 저편 이편에서 두서
넛이 점잖은 시조들을 부르구 난 끝에 제가 세사금삼척을 불렀습니다. 초장을
시작할 때 저편 사람들이 벌써 서루 눈짓하고 웃습디다. 이건 다른 까닭이 아니
지요. 종장에 가서 동각의 설중매 디리고 완월자취라구 부르기만 하면 시조루
트집잡잔 생각이지요. 저두 다 아는 장단입니다. 누가 그렇게 부르나요. ‘설중
에 다리고’를 ‘설중매 피었으니’루 고쳐 불렀습니다. 저편에서 헛다리를 짚
었지요. 제 다음에 저편의 젊은 놈 하나가 부를 차례가 되었는데 기탄없이 ‘옥
으로 함을 파고’를 내놓습디다. 이런 드러운 시조를 부르는 건 좌중에 있는 다
른 사람 얼굴에 침을 뱉는 것버덤두 똥을 칠하는 셈입니다. 하두 괘씸해서 제가
시비를 걸어가지구 구경 소조를 당했습니다. 선생님, 생각 좀 해보십시오. 일이
분하지 않습니까?“ ”옥으로 함을 파는게 어째 드러운가?“ ”선생님, 시조를
모르십니다그려. ‘옥으로 함을 파고 너와 나와 너놓은 뒤 금거북 자물쇠를 어
쓱비쓱 잠겨놓고 창천이 우리 뜻 받아 열쇠 없이 ’라는 시조가 잇습니다. 그
사의가 드럽지 않습니가?“ ”사의가 좋은데 왜 드럽다나?“ ”그런 시조는 점
잖게 노는 자리에서 부르지 못하는 법입니다. 시조 이야기는 고만두구 저의 남
은 이야기나 마저 들어 주십시오.“ 한온이가 정작 청할 말은 하지 않고 또다시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여 노인정 한량패에게 분풀이하기 전에는 다시 놀러다니지
않기로 마음에 작정하고 달포 동안 기생방에 발을 끊었다고 이야기하고 소월향
의 인물 칭찬이 하도 굉장하기에 작정한 마음을 깨뜨리고 소월향에게를 가보았
다고 이야기하였다. 한온이가 저녁때마다 신열이 나서 앓았다고 전에 거짓말한
것을 엄적하려고 칠팔 일 동안 매일 놀러간 것을 바로 말하지 않고 흡사 한두 번
보러 간 것처럼 말하였다. "대체 내게 청할 일은 무엇인가. 소월향이게를 같이
놀러가잔 말인가?”꺽정이가 한온이의 긴 이야기를 중간에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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