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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12)

카지모도 2023. 5. 22.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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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첨지의 주량이 꺽정이를 당하지 못하여 꺽정이가 아직 술 먹은 것도 같지

않을 때 한첨지는 벌써 거나하게 취하였다. “내가 소시적엔 며칠씩 밤을 새워

가며 술을 먹어두 끄떡없던 사람인데 되지 못한 낫살을 먹은 뒤루 술이 조금만

과하면 술에 감겨서 배기질 못하우.” “우리게 오두령은 나이 육십 줄이건만

지금두 가끔 젊은 사람들하구 술타령으루 밤새임을 하우.” “그자가 계양산 괴

수의 심부름으루 우리게 다닐 때 나이 이십 남짓했었을까. 그런데 벌써 오십이

넘었단 말이지.” “장인의 심부름으루 서울을 자주 왔었다구 오두령두 말합디

.” “그때 우리는 계양산 졸개 개도치루만 알았었소.” “개도치가 오두령의

이름이오?” “같이 기시면서 이때것 이룸두 모르셨소?” “자기가 말 안 하는

걸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소.” “그러면 그자의 행적두 모르시겠구려.” “

슨 행적이오?” “그자가 계양산 괴수의 딸 원씨 여편네와 해로한다지요. 그 원

씨 여편네가 내 숙모 되었던 사람이오. 나버덤 나이 적은 삼촌 하나가 있었는데

그 삼촌이 이십 안에 돌아가서 숙모가 청춘과부로 친정에 가 있는 것을 개도치

가 달구 도망했다구 했는지 그 속은 모르지요. 그때 우리 아버지는 죽은 삼촌의

뒤를 이어주려구 양자할 아이를 물색하던 둥인데 계양산 기별을 듣구 화를 내기

시작하더니 얼마 동안은 매일같이 화를 내서 집안 사람들이 모두 들들 볶였었

.” “과부는 임자가 없으니까 설혹 꾀어냈대두 행적이 나쁠 건 없소.” “

렇지요. 나는 그때두 숙모 일이 잘됐다구 말했었소.” 한첨지가 옛날 이야기를

하는 끝에 꺽정이더러 이장곤 이찬성하구 어떻게 되시지 않소?” 하고 물었

. “이찬성 부인이 우리 아버지하구 이성사촌이오.” “그러면 이찬성이 이성

오촌 고모부가 되니까 그 자제들하고 육촌이시구려.” “촌수를 따진다면 그렇

게 되겠지요.” “상종이 없으시오?” “없소.” “이찬성의 유모의 아들 삭불

이란 사람을 아시우?” “그 사람을 보진 못했지만 말은 많이 들었소. 우리 부

모의 혼인중매두 그 사람이 하구 우리 선생님의 소실 중매두 그 사람이 했답디

.” “외조 되시는 분은 양주서 푸주하구 선생님 되시는 분은 동소문 안에서

갖일하셨지요?” “그렇소.” “외조는 우리 아버지 수하에 있던 이구 선생님의

소실은 우리 아버지하구 같이 살던 이요.” “그럼 삭불이란 사람이 그 여편네

를 빼돌렸더란 말이오?” “아니오. 그 사람이 그 여편네를 빼돌렸더란 말이오?

” “아니오. 그 사람이 우리 아버지께 신임을 받던 사람인데 그런 짓을 할 리

가 있소. 우리 아버지가 노래에 첩이 맣아서 귀찮다구 하나만 남겨두구 그 나머

지는 다 내보냈었는데 그이두 내보낸 사람이오.”

한첨지의 옛날 이야기에 술판이 식어서 꺽정이가 한첨지더러 술을 그만두자고

말하여 한온이가 사람을 불러서 주안상을 치우게 하였다.

꺽정이가 거처할 처소로 작정된 작은집 안방은 한온이가 사랑으로 쓰는 방이

라 방 치장이 재상의 사랑과 같아서 병풍 방장이 둘러치고 보료 방석이 들이깔

리고 놋요강, 놋타구 등속이 늘어놓였었다. 한온이가 문서궤, 세간궤 궤 몇 개반

건넌방으로 옮겨가고 그 나머지 방 치장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꺽정이

에게 내어주었다.

한첨지 부자가 꺽정이를 칙사 대접하듯 하는데 당세 호걸을 공경하는 뜻도 있

으려니와 일등 물주를 후대하는 뜻이 없지 않았으니 남소문 안에서 청석골 재물

을 팔아서 이를 나누는 까닭이었다.

꺽정이가 졸개는 서울 구경을 대강 시켜 광복산으로 돌려보내고 노밤이만 수

하에 머물러 두었는데 노밤이는 주인집의 부리는 사람들과 바깥방을 같이 썼다.

노밤이가 언죽번죽 이야기를 잘하고 익살맞게 우스운 소리를 잘하고 더욱이 천

하만사를 무불통지로 잘알아서 여러 사람이 보름보기라고 웃지 못하고 시골뜨기

라고 깔보지 못하여 거연히 바깥방에서 영위 노릇을 하게쯤 되어서 여러 사람의

출물로 식전에 팥죽집과 저녁에 모주집을 하루도 빼지 않고 다니었다. 꺽정이의

심부름은 노밤이 아니라도 할 사람이 많아서 노밤이가 조석 문안 외에 별로 꺽

정이 앞에 들어오지 아니하여 어느 날 아침 꺽정이가 노밤이의 문안을 받고 나

낮에는 너를 꼴두 볼 수 없으니 날마다 낮잠 자느냐?” 하고 꾸짖듯이 물

으니 노밤이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제가 낮잠속이 술명합니다. 봄에는 노곤해

서 낮잠 자구 여름에는 해가 길어서 낮잠 자구 가을에는 볕이 따거워서 납잠 자

구 겨울에는 밖이 추워서 낮잠 잡니다. 이렇게 사시사철 잘 자는 낮잠으루 서울

온 뒤는 아직 한번 자지 못했습니다.” 하고 길게 늘어놓아서 대답하였다.

지껄이기 입아귀두 안 아프냐? 그래 낮잠을 안 자면 무어하느냐?” “구경

하러 돌아다녔습니다.” “무슨 구경이냐?” “서울 안을 돌아다녔으니 서울 구

경입지요.” “서울 구경이 좋드냐?” “겉구경만 하구 속구경을 못 해서 아직

은 좋은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겉구경이란 게 다 무어냐. 별눔의 소리를

다 듣겠다.” “술집 앞에 달린 용수만 보구서야 서울 술맛이 단지 쓴지 알 수

있습니까. 또 기생집 앞에 매인 말만 보구서야 서울 기생 낯바대기가 이쁜지 미

운지 알 수 있습니까. 제 말이 거짓말 아닙지요.” “수다스럽게 지껄이지 말구

고만 나가거라.” 노밤이는 각골하인 본새로 녜 소리를 길게 하고 밖으로 나갔

. 한온이의 부리는 사람들이 노밤이를 둘러싸고 대장 존전에서 말대답을 막

농판으루 하네그려.” “청석골 대장이 성미가 무섭다다니 거짓말이군.” “우리

집 젊은이는 말할 것두 없구 사람 좋은 영감이라두 우리가 그런 말대답을 하면

당장 초죽음을 시킬걸.” 하고 이 사람 한마디 저 사람 한마디 지껄이는데 노밤

이가 틀을 짓고 자네네들이 아직 문리가 안 났네. 내게 강미를 바치구 글을

배우게. 남의 부하 노릇두 좀 편히 하려면 대장이구 괴수구 길을 잘들여놔야 하

.” 하고 말하였다. “대장을 어떻게 길들인담.” “무서운 호랭이 새끼두 길

들일 수 있는데 사람의 자식을 길들이지 못한단 말인가?” “길들이는 묘득이

있거든 우리들 좀 가르쳐 주게.” “묘득이란 말루 가르치기 어려운 것이야.

하는 것을 보구들 매두게.” “우리 집 젊은이를 한번 길들여 보겠나?” “어렵

지 않지. 이거 마찬가지야.” 하고 노밤이가 손바닥을 여러 사람 앞에 내밀고 한

두 번 뒤집어 보이었다.

한온이가 낮에는 도중 일을 보느라구 큰집 사랑에 많이 가 있고 또 밤에는 첩

재미를 보느라고 첩들의 집으로 돌아다니고 꺽정이 있는 집 건넌방은 명색 자기

방으로 쓴다고만 하였지 밤에 와서 자는 일이 통히 없을 뿐 아니라 낮에 와서

앉는 일도 별로 없었다. 밤낮 비어두는 방에 화롯불을 담았다 파냈다 하고 촛불

을 켰다 껐다 하고 이부자리를 깔았다 개었다 하는 것이 공연한 군일 같아서 상

노아이는 성가시게 생각하여 노밤이더러 건넌방을 아주 폐방하두룩 해보겠소?

하고 물으니 노밤이는 상노아이의 얼굴이 반반한 데 욕심이 없지 아니하나

여러 사람과 섞여 자는 까닭에 욕심을 풀지 못하는 터이라 폐방하두룩 하느니

우리 둘이 써볼라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누가 우리더러 쓰랍디까?” “

리가 쓰면 쓴느 게지.” “청석골 대장께서 말씀하시면 혹시 쓰게 될까 그 외엔

누가 말하든지 어림없소.” “너의 주인양반의 허락은 나중 받을 셈 잡구 우리

둘이 오늘밤부터 건넌방에 들어가서 자자.” “들키면 경칠라구요.” “밤중 지

난 뒤 들어가 자구 어뜩새벽에 일어나 나오면 들킬 까닭이 없지 않으냐?” “

가 그 따위 구차스러운 짓을 한단 말이오? 나는 싫소.” “싫거든 고만둬라.

혼자 들어가 잘 테다.”

이날 밤부터 안방의 꺽정이가 취침한 뒤에는 노밤이가 슬그머니 건넌방에 들

어와서 한혼이의 이부자리를 깔고 덮고 자다가 새벽녘이면 바깥방으로 나가서

개잠을 잤다. 며칠 지난 뒤 어느 날 아침에 한온이가 건넌방에 와서 무슨 문서

를 꺼내려고 하다가 문서궤위에 이 한 마리가 기는 것을 보고 다시 살펴본즉 기

는 놈 외에 엎드린 놈도 있는데 마릿수가 하나둘이 아니라 한온이는 이도 잡지

않고 궤도 열지 않고 큰소리로 상노아이를 불렀다. 상노아이가 밖에서 들어오자

한온이가 곧 궤 위를 가리키며 이리 와서 이거 좀 봐라. 이게 무어냐?” 하고

소리질렀다. “이올시다.” “누가 이를 몰라서 묻느냐? 이놈아, 이 이가 대체

어디서 퍼진게냐?” “모르겠습니다.” “모르다니, 너 외에 또 이 방에 드나드

는 사람이 누구냐?”

상노아이는 여짓 노밤이를 대려다가 영이 되거든 대려고 아무소리 아니하였

. “이가 궤 위에까지 올라왔으니 다른 데 없을 리가 있나.” 하고 한온이가

가만히 보료를 들여다보더니 이거 봐라. 여기 전판 이로구나.” 하고 벌떡 일

어섰다. 왕니 가랑니가 보료 바닥에서 슬슬 기고 또보료 가장자리에 주줄이 맺

혔었다. 한온이가 온몸이 군실거리며 눈앞에 해끔해끔한 것이 모두 이로 보였다.

누가 이를 갖다 방에다 뿌렸단 말이냐! 이게 대체 웬일이냐!” 하고 한온이는

옷자락을 떠느라고 한참 정신이 없었다. 건넌방 이소동에 꺽정이는 안방에서 내

다보고 노밤이와 다른 아랫사람들은 바깥방에서 들어왔다. 노밤이가 한온이를

보고 사람 없는 빈방에서 사는 이는 복니올시다. 죽이지 말구 가만둡시오.”

하고 말하는 것을 한온이가 볼멘소리로 복니란 게 다 무어야?” 하고 핀잔 주

듯 말하니 노밤이는 다시 상노아이를 보고 복니를 죽이라시거든 잡아서 나를

다구. 내가 취종하겠다.” 하고 말하였다.

노밤이의 이를 취종한다는 말이 하고 우스워서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 한온이

까지 싱긋 웃었다. 노밤이가 여러 사람의 웃는 것을 보고 뒤변덕스럽게 곤댓짓

을 하며 한온이를 보고 이에 복니가 있는 것을 모르십니까. 저는 복니 서 되

서 흡 가진 사람하구 같이 자본 일이 있습니다.” 말하고 이야기하라기를 바라

는 모양으로 한참 있다가 제풀에 다시 이야기하께 들어봅시오.” 하고 이야기

하기 시작하였다.

제가 십여 년 전에 황해도 재령 제홍원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다른 행인 두

엇하구 같이 잤습니다. 그때 제 옆에서 자던 사람이 새벽 일찍 남버덤 먼저 일

어나서 봇짐에서 솔 하나 되 하나를 끄내더니 바지 저구리를 벗어놓구 이를 솔

루 쓸어모아서 되르 되는데 이가 서 되가 넘겠지요. 끔찍끔찍합디다. 그 사람이

이를 되어 보구 나서 서 되 서 홉 이가 밤새 두 홉 가량이나 축났다구 혼자 중

얼거리다가 저를 돌아보구 내 이가 임자의 새 옷 냄새를 맡구서 많이 옮아간 것

같으니 미안하지만 옷을 좀 보게 벗어주시우 하구 말합디다. 저는 몸이 한참 군

질군질해서 옷을 벗어보구 싶은 판이라 두말 않구 얼른 벗어주었습니다. 제 옷

에서 쓸어 낸 이가 한 옴큼 착실히 됩디다. 거지 도회청에 가서 누데기옷들을

벗겨놓구 이를 잡히드래두 하루에는 그만큼 많이 모으기 어려울 겝니다. 나중에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본즉 그 사람이 어디 손으루 갔다가 오래 비어두었던 방에

서 그 이를 올렸는데 복니라구 잡아죽이지 말라구 일러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대

루 내버려 두었더니 과연 그 이를 올린 뒤루 우환이 없구 재난이 없구 집안 형

세가 불일 듯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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