꺽정이가 건넌방 문을 듣고 한온이와 같이 방에 들어와 앉은 뒤에
“산리뭇골에 사람을 보내봤나?” 하고 물으니 한온이는 고개를 가로 흔들며 “
사람을 보내지 않구 제가 갔다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화재 난 데 가 보
았나?” “선생님 큰일을 내셨습니다. 세력이 충천하는 윤원형이 집 사람이 십
여 명씩 죽었으니 뒤가 조용할 것 같지 않습니다.” “일이 감쪽같이 되었으니
까 뒷염려 없을 줄 아네.” “글쎄요, 일이 앞으루 어떻게 벌어질는지 아직은 모
르겠습니다.” “이번에 일을 저지른 건 내 본의두 아닐세.” “그놈들의 뒤를
밟아서 쫓으러 가셨다더니 어떻게 집에다가 몰아놓구 태죽이셨습니까?” 꺽정이
가 여러 사람을 집에 몰아넣은 것부터 대강대강 이야기 하는 중에 방문이 열리
며 순이 할머니의 얼굴이 나타났다. 한온이가 순이 할머니를 보고 “내가 선생
님 뫼시구 조용히 의논할 일이 있으니 자네는 잠깐 건넌방에 가 있게.” 하고
말하여 순이 할머니가 방문을 도로 닫고 건너방으로 건너간 뒤에 꺽정이는 하던
이야기를 마저 다하고 한온이는 산림골 사람들의 지껄이던 소리를 들은 대로 옮
기었다. “과부 모녀는 불에 타죽은 줄루 알구 향나무는 절루 뽑힌 걸루 친다면
뒤는 만사태평일세.” “포교놈들이 나번드기게 될것은 정한 일인데 그놈들이
어리무던하게 그런 말을 믿겠습니까?” “순이 할미가 번설할 염려는 없겠나?”
“선생님께서 상급이나 후하게 주시구 그 위에 제가 잘 단속을 시키면 염려없습
니다.” “상급 후하게 주지. 순이 할미만 말조심하면 탄로날 구석이 없을 줄 아
네.” “언 땅에 백힌 생나무를 뽑을 장사가 어디 세상에 많습니까. 그것을 꼬트
리루 잡아가지구 수탐할는지 모르지요.” “그런 생각은 못하구 공연히 부질없
는 짓을 했네 그려.” “아니하신 이만 못하나 그건 지금 와서 어떻게 할 수 없
는 일이구 색시 모녀나 잘 숨겨두도룩 하시지요.” “여기 두기가 조심스럽거든
광복으루 보내세.” “차차 봐가며 하십시다.” 한온이는 목소리가 본래 굵지 않
은 사람이라 말할 것 없고 꺽정이도 말소리가 건넌방에 들리지 않을 만큼 나직
나직하였다. 한온이는 꺽정이의 일이 조심되어서 한첨지와 부자간 의논한 뒤에
순이 할머니와 집안 사람들을 일체로 말조심하라고 단속하고 이목을 늘어놓아서
윤형원의 집 동정을 알아오게 하고 또 심복을 시켜서 좌우포도청 소식을 날라오
게 하였다. 우포청에서는 건정으로 염탐하나 좌포청에서 염탐하는 줄을 알고 한
온이는 꺽정이와 의논하고 과부 모녀를 광복산으로 치송하려다가 길에서 잡힐
염려가 불무하여 파의하고 꺽정이 있는 처소에서 다른곳으로 데려다가 깊이 은
신시켜 두었다. 어느 날 윤원형의 집에서 부정풀이굿을 시키려고 날짜 받아놓았
다는 말을 듣고 한온이가 윤원형의 집 단골 무녀를 뒤로 불러다가 말을 일러서
무녀가 굿을 할 때 죽은 차지의 말로 모든 것이 저의 죄요, 과부 모녀의 탓이
아니라고 의수하게 꾸며서 공수를 주게하였다. 윤원형의 집 정경부인 마님 난정
이가 그 무녀는 신통히 여기고 죽은 차지는 불쌍히 여기지 않는 까닭에 무녀의
공수가 난정이의 입을 거쳐서 윤원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수일 후 상
참날 윤원형이 예궐을 늦게 하여 궐문안에서 퇴궐하는 남치근을 만났는데 남치
근이 앞에 와서 문후하고 난 끝에 과부 모녀 수색하는데 별반 방침이 있어야 할
것을 말하니 윤원형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 말 없이 빈청으로 가다가 중간에서
다시 남치근을 불러서 너무 요란하게 수색할 것은 없다고 말하였다. “요란하게
수색하지 말랍시면 잡을 가망이 적사온데 어찌하오리까?” “잡히거든 잡구 안
잡히거든 고만두게 그려.” “안 잡힌다구 고만두어두 좋소이까?” “내가 좋다
구 해서 잡을 걸 이때까지 안 잡았나.” “황송하오이다.” 남치근이 궐내에서
윤원형에게 미안한 말을 듣고 그날 밤으로 곧 사제에 대령하여 윤원형의 눈치를
살피는 중에 과부 모녀 잡기를 윤원형이 그다지 조이지 않는 줄 알고 슬그머니
비위가 틀려서 우포장 이몽린과 같이 우물쭈물도 하지 않고 내놓았던 포교들을
곧 다 거두어들이게 하였는데, 남소문 안에서는 남치근이 밤에 윤원형의 집에
왔다간 것을 알 뿐 아니라 궐내에서 윤원형과 만나서 수작한 것까지 모르지 아니
하였다. 좌포청의 엄탐이 그친 뒤에 꺽정이와 한온이는 순이 할머니를 불러다가
색시 성례시킬 것을 공론하여 성롓날까지 정해놓고 있는 중에 의외의 다른 일이
한 가지 생기었다. 꺽정이 앞에서 심부름하는 상노아이가 꺽정이에게 상급받은
상목 한 필을 오궁골 사는 저의 부모에게 갖다 주러 간 뒤 이틀이 지나도록 돌아
오지 아니하였다. 저의 집에 가서 병이 났으면 그 부모가 기별이라도 할 것인데
아무 기별이 없었다. 한온이가 오궁골로 사람을 보냈더니 그 사람이 돌아올 때 그
아이의 부모가 다 같이 따라와서 "그날 저녁밥을 먹여서 댁으루 보냈는데 댁에 안
오구 어디를 갔을까요?" "그애가 저녁을 먹구 난 뒤 전에 없이 집에서 자구 싶
다구 하는 것을 댁에서 기다리신다구 저의 어른이 쫓아보내다시피 했답니다." 하
고 내외가 받고채기로 말하였다. 나이 열예닐곱 된 큰 아이놈이 방향 모르는 어
린아아 같이 길 잃어버릴 리도 없을 것이고 사내아이놈을 계집아이처럼 누가 붙들
어갈 리도 없을 것이라 혹시 무슨 횡액에 걸려서 포도청 같은 데 잡혀가 갇히지
않았나 한온이는 이리저리 생각하여 보다가 우선 그 부모를 안심시키려고 "내가
사람들을 사방 내놔서 찾아봄세. 어디서든지 나오겠지." 하고 말하여 아이의 부
모를 돌려보내고 꺽정이에게 와서 아이의 일을 이야기하였다. "그놈이 어디루 도
망한 건 아니겠지?" "도망할 까닭이야 없겠지요." "자네 짐작에는 어디를 갔을
것 같은가?" 짐작이 잘 나서지 않습니다. 혹시 횡액으로 포청에 때어가지 않았나
의심이 들 뿐입니다." "만일 포청에 때어갔으면 당치 않은 일까지 횡설수설하지
않을까." "그놈이 위인은 똑똑하지만 경난이 없어서 포교들 손에 걸리면 횡설수
설할는지두 모르지요." "포청에 얼른 알아보게." "저의 집에 닥치는 일이 있으면
미리 통기해 줄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만 믿구 있을 일이 아닐세." "오늘 밤으
루 알아볼라구 생각합니다." "오늘 밤이니 무어니 할 것 없이 지금 당장 알아보
게." "선생님 산리뭇골 일이 염려되시는가 보니다그려." "저런 사람 보게. 내가
내 일 때문에 염려하는 줄 아나. 향일에 남치근이 포교들을 뻔질 내돌릴 때두
자네 집에 누를 끼칠까 봐 염려는 했지만 내 몸을 염려한 일은 없네. 나는 언제
든지 한몸 떨구 일어서면 고만일세." "저두 잘 압니다." "잘 아는 사람이 그 따위
소리를 한단 말인가?" "선생님께서 하두 재촉하시기에 실없이 한마디 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첫째 아이놈 일이 궁금하지 않은가. 속히 알아보게." "지금 나가
서 곧 알아보두룩 하겠습니다." 좌우포청 여러 간에 상노아이놈이 없는 것은 한
온이가 그날로 즉시 알아보았고 이튿날부터 여러 사람을 각처로 내놓아서 아이
놈의 종적을 찾는데 노밤이는 상노아이와 정든 까닭에 저대로 큰길에 나가서 아
무나 붙들고 키가 얼마쯤 되고 얼굴이 어떻게 생긴 아이놈을 못 보았느냐고 묻
다가 가끔 핀퉁이까지 맞으면서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돌아다니었다.
사흘 동안 사방 찾아도 종적이 없어서 아이놈이 죽지 않았는가 의심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사흘 되던 날 저녁때 한온이가 꺽정이에게 와 앉아서 아이
놈의 일이 괴상한 것을 말하는 중에 홀제에 여러 사람의 신발 소리가 들려서 방문
을 열어보니 여편네 하나가 진둥한둥 앞서 들어오고 그 뒤에 사내 너댓이 따라
들어왔다. 여편네는 상노아이의 어미요, 사내들은 상노아이의 아비와 사랑에 있
는 부리는 사람인데 상노아이의 아비도 죽을 상이거니와 상노아이의 어미는 얹
은머리가 흐트러지고 입은 옷이 흘러져서 평일에 머리 곱게 엊고 옷매무새 얌전
히 하던 여편네와 딴사람 같았다. 한온이가 방에서 "웬일들인가?" 하고 묻는 것
을 대답 안할 뿐이라 그 서방이 뒤에서 "어디루 들어가나. 밖에서 말씀 여쭙구
가세." 하고 이르는 것도 들은 척 안 하고 상노아이의 어미는 방안에 들어와서
한온이 앞에 주저앉으며 목쉰 소리로 "우리 아들 찾아주시우." 하고 지다위하듯
말하였다. "대체 웬일인가?" 하고 까닭을 물어도 "우리 아들 찾아주시우." 가 대
답이요. "찾아줄테니 염려 말게." 하고 위로조로 말하여도 "우리 아들 찾아주시
우." 가 대답이라 한온이는 어이가 없어 물끄러미 상노아이의 어미를 바라보는
동안에 꺽정이가 밖에 섰는 그 서방을 내다보며 "아들의 종적을 알았나?" 하고
물었다. "그놈이 보쌈에 잡혀간 것 같습니다." 꺽정이가 다시 자세한 말을 묻기
전에 한온이가 "보쌈에 잡혀갔어?" 하고 소리를 지르며 밖을 향하고 돌아앉았다.
"녜, 그런 듯한 의심이 듭니다." "의심 드는 걸 자세히 좀 이야기하게." "그날 저
녁 땅거미 지난 때 아이놈 하나가 야주게 큰길루 내려가는데 장정 몇 놈이 어디
서 뛰어나와서 제답잠하구 홑이불 같은 걸루 싸서 승교바탕에 담아가지구 모전
뒷길루 갔답니다. 저의 동네 사는 의녀가 병가에 갔다오다가 이것을 보구 와서
이야기하더라기에 저의 내외가 가서 자세 물어본즉 그 말하는 아이놈이 제 자식
놈과는 같지 않은 데두 많습디다. 우선 키부터 자식놈버덤 훨씬 큰 양으루 말하구
의복이라든지 걸음걸이라든지 모다 자식놈과 틀리게 말합니다. 그러나 날짜가
맞구 시각이 근사해서 의심이 듭니다." 하고 말을 한번 끊었다가 다시 이어서
"그것의 어미는 오늘 식전에 의녀에게 가서 이야기를 듣구 오는 길루 이때까지
께께 울다가 왔습니다. 꼴을 좀 보십시오. 영락없이 상성한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는 중에 방안에 계집은 한숨을 터지게 쉬더니 방바닥을 치면서
"아이구 이놈아 어딜 갔느냐? 살았느냐 죽었느냐, 네가 죽었거든 날 마저 데려
가거라." 하고 넋두리를 하는데 목이 가라앉아서 넋두리도 잘하지 못하였다.
꺽정이가 한온이를 보고 "전에 내 자형 되는 사람이 보쌈에 죽을 뻔한 일이
있었거니." 하고 말을 내어서 한온이가 "죽을 뻔했으면 죽지는 않았습니다그려."
하고 뒤를 달았다. "죽지 않구 살아왔었네." "그건 희한한 일입니다."
"사람의 명이란 알 수 없는 것일세. 보쌈에 들어가서 죽지 않을 수두 있지." "옛
이야기루는 보쌈에 잡혀갔다가 아주 장가를 들어가지구 잘 산 사람두 있답디다."
상노아이의 어미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또 먼저와 같이 "우리 아들 찾아
주시우." 하고 한온이에게로 바짝 대어들었다. 한온이는 선뜻 계집더러 "찾아줌
세." 하고 말한 뒤에 곧 고개를 밖으루 돌리고 "모전 뒤루 가는 건 누가 봤다든
가?" 하고 물으니 "그 의녀가 얼마 동안 뒤를 쫓아가 봤더랍니다." 하고 상노아
이의 아비가 대답하였다. "내가 잘 탐지해 볼 테니 자네 내외는 집에 가 있게."
"제가 말씀을 여쭈러 오려는데 그것의 어미가 먼저 앞질러 뛰어왔습니다." 계집
과 같이 온 것을 발명한 뒤 계집더러 가자고 나오라고 하여도 계집은 잘 일어나
려고 하지 아니하였다. 한온이가 이것을 복 먼저 "너희들은 왜 죽 들어와 섰느
냐. 무슨 구경이 났느냐!" 하고 부리는 사람들을 꾸짖어서 내보내고 그 다음에
상노아이의 어미를 살살 달래서 그 서방과 같이 돌려보내었다. 보쌈이란 대개
기구 있는 집 안부인네가 자기의 딸이나 손녀의 과부 될 팔자를 미리 때워준다
고 남의 집 자손을 잡아다가 혼인하는 시늉을 내고 곧 귀신 모를 죽음을 시키는
일이니 안팎 하인 몇 사람만 입을 봉하면 한 집안에서도 알지 못하는 수가 많
다. 이런 일이 뉘 집에서 난 것을 알자면 먼저 의심나는 집을 점찍어 놓고 그
다음에 그 집 속내를 파보아야 할 것이다. 한온이가 꺽정이와 의논한 뒤 자기
집에 다니는 매파 수모 무당 판수 상쟁이 사주쟁이 들을 하나씩 둘씩 꺽정이 처
소에 불러다 놓고 남북촌과 중바닥에 큰집 지니고 당혼감 규수 두고 그리고 내
주장인 집을 물어보다가 서울 안에서 유수한 양반의 집에 그런 집이 의외로 많
은 것을 알고 모전 근방을 지정하고 물어보는 중에 모교 북쪽 천변에 사는 원계
검 원판서집이 어느 매파의 입에서 들쳐났다. 그 매파는 원판서집 일을 잘 알아
서 한온이가 캐어묻는 말을 상세하게 대답하였다. "원판서의 딸이 나이 몇 살인
가?" "지금 갓스물이오." "시색 좋은 재상가에서 어째 딸을 과년하두룩 두었을
까?" "당자의 팔자가 험한 건 인력으로 하는 수 없는 모양입디다." "색시가 어디
병신인가?" "병신이 다 무어요? 아주 이쁘게 잘생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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