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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21)

카지모도 2023. 6. 2.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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꺽정이가 색시 장가를 들어서 새로 살림까지 차렸건만 전과 같이 한첨지 집에서 유숙

하고 식사하였다. 꺽정이는 새집으로 아주 옮겨갈 의사도 없지 않았으나 거처 음식이

불성모양일 것을 염려하여 한온이가 지성으로 붙들어 못 가게 한 것이었다. 그러

나 꺽정이가 매일 밤에 가서 자고 올 뿐 아니라 낮에 가서 앉았다 오는 까닭에

처소에 있을 때보다 없을 때가 더 많았다. 한온이가 계집에게 성화를 받다 못하

여 색책으로 말하는 것을 계집은 짜장 좋은 도리를 일러주는 것으로 듣고 즉시

꺽정이의 처소로 쫓아왔다. 꺽정이가 마침 처소에 없는 때라 계집이 빈 안방문

을 열어보고 방에 들어가 앉아 있을까 집에 갔다가 다시 올까 주저하는 중에 건

넌방에 혼자 들어 엎드렸던 노밤이가 소리없이 방문을 열고 내다보며 “아주머

니 왔소?” 하고 말을 붙여서 계집은 곧 건넌방 앞으로 다가섰다. “선다님이

어디 출입하셨소?” “우리 선다님이 요새는 밤낮 번찔 가시는 데가 있다우.”

“가시는 데가 어딘지 좀 여쭤올 수 없소?” “조금 있으면 오실 게니 여기 들

어와서 기다리시구려.” 계집이 싫단 말 않고 건넌방에 들어와서 문 앞으로 앉

으니 노밤이가 앞에 있는 화로의 불을 헤쳐놓으며 “이리 와서 불 쪼이시우.”

하고 화로 가까이 오라고 권하였다. “나는 불 쪼일 생각이 없소.” “칩지 않으

시우?” “녜.”“오늘 같은 치운 날 치운 줄을 모르면 장사시우.” “자식 잃은

뒤로 종일 밖에서 살아야 별로 치운 줄도 모르고 두세 끼 밥을 굶어야 배고픈

줄도 모르우.” “지금은 속에 불덩이가 들어앉아서 모르지만 뒤에 해가 날 테

니 몸조심하시우.” “몸조심해서 오래 살고도 싶지 않소.” “살고 싶지 않다구

산 목숨을 어떻게 억지루 끊소. 내가 일전 밤꿈에 그애를 만나봤는데 꿈이 하두

영절스러우니 이야기 좀 들으실라우?” “내 자식을 꿈에 만나봤단 말이오?”

“녜, 이리 와서 불 쪼이며 이야기를 들으시우.”계집이 화로 옆으로 다가앉았

다. “아주머니두 아실는지 모르지만 내가 거의 두 달 동안 그애하구 한이불 속

에서 뒹굴었소. 저두 내게 정이 들구 나두 제게 정이 들었는데 죽은 뒤루 꿈에

두 한번 보이지 않아서 사람이 죽구 보면 이렇게 매정스러운가 나는 혼자 한숨

지은 때가 많았소. 그랬더니 엊그제 밤 꿈에 그애가 왔겠지요. 꿈에두 생시의 먹

은 맘이 있어서 붙들구 매정스럽게 사살하니까 그애가 저승 일이 끝나거든 오려

구 그 동안 안 왔다구 말하구 오늘 염라대왕께서 저를 불러서 너는 인도환생을

시킬 텐데 원통하게 죽은 것이 불쌍해서 특별히 생각하구 사흘 동안 세상에 나

가 돌아다닐 기한을 줄 것이니 사흘 안에 네가 태어나구 싶은 집을 맘대루 골라

서 가게 해라 분부하셨다구 말합디다.” “어째 내게는 와서 그런 말을 아니했

을까요?” “그렇지 않아두 그애가 말합디다. 우리 어머니가 하두 나를 못잊어

하는 모양이라 다시 아들루 태어나려구 집에를 갔다가 아버지의 끙끙 앓는 소리

가 듣기 싫어서 들어가지 않구 노서방보구 부탁하려구 바루 쫓아오는 길이오,

하기에 무슨 부탁이냐구 묻지 않았겠소? 그애 말이 내가 사흘 안에 어떻게든지

다른 사람 없는 때 우리 어머니를 이리 뫼시고 올 테니 내 이야기를 자세히 하

시우 하구 지재지삼 부탁합디다. 나는 꿈을 허사루만 여기구 믿지 않았더니 지

금 아주머니가 오신 걸 보니 가슴이 뜨끔하우. 꼭 그애가 뫼시구 온 것 같구려.

” 계집이 어리석은 탓으로 노밤이의 꿈 이야기에 속아서 죽은 자식의 환생 부

탁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노밤이에게 한번 몸을 허락하였다. 계집이 노밤이와 같

이 앉았기가 새삼스럽게 서먹서먹하고 마주 보기가 갑자기 면난스러워서 가려고

일어섰다. “선다님 안 보구 가실라우?” 노밤이의 묻는 말을 변변히 대답도 않

고 건넌방에서 나와서 신발을 신는 중에 꺽정이가 들어왔다. “자네가 어째 왔

는가?” “선다님을 보이러 왔습니다.” “나를 보러 왔어? 무슨 할 말이 있나?

” “조용히 보입구 청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럼 방으루 들어가세.” 계집이

꺽정이의 뒤를 따라 안방에 들어가서 앉은 뒤에 꺽정이가 먼저 “자네 남편 일

어났나?” 하고 물으니 계집은 “웬걸요. 아직 일어 앉지두 못합디다.” 하고 대

답하였다. “참말 몹시 맞은 겔세그려.” “맞기두 몹시 맞았지만 사람이 워낙

약해서 그래요.” “의원은 보겠지?” “동네 있는 의녀가 와 봐줍니다.” “의

녀가 아무래두 사내 의원만 못할 테니 고명한 사내의원 하나를 청해다 보이게.

” “그 의녀는 한동네서 살구 저의를 불쌍히 여겨서 공히 봐주다시피 하지만

다른 의원이야 어디 그렇게 됩니까?” “치료에 드는 부비는 내가 젊은 주인하

구 의논해서 넉넉히 보내줌세.” “황송합니다.”“지금 곧 젊은 주인께 가서

내가 오시란다구 말하게.” “선다님께 청할 일이 한 가지 있는데 말씀하오리

까?” “치료 부비 말구 무슨 다른 청이 있나?” “치료 부비를 줍시사구 청하

러 온 게 아니올시다.” “그럼 내게 청할 일이 무언가?” “죽은 자식의 원수

를 갚아주십시오.” “원수를 갚아달라니 어떻게 갚아달란 말인가?” “원가놈

의 집을 통이 도륙내 주시거나그렇지 못하면 그 집 딸년 하나만이라도 죽여 주

십시오.” “내가 아직은 사람을 죽이라구 형조나 포청에 분부할 힘이 없네. 이

다음에 혹시 그런 힘을 가지게 되거든 그때 와서 말하게.” 꺽정이가 껄껄 웃었

다. “선다님 같은 양반이 그까지 기집애년 하나를 못 죽이시겠습니까. 죽이실라

면 죽이실 수 있는 걸 제가 다 알고 와서 청하는 게올시다.” “죽일 수가 있구

없구간에 그 청은 못 듣겠네.” 꺽정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원통하게 죽은 놈

이 불쌍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불쌍해두 그 청은 못 들어.” “제발 한번만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쓸데없이 잔소리 말게.” 꺽정이가 눈을 곱지 않게

떴다. “선뜻 허락하시면 잔소리를 할리가 있습니까?” “고만 가게.” “허락하

시는 말씀을 들어야 가겠습니다.” “무엇이 어째!” 꺽정이가 언성을 높이었다.

계집이 앉은 자리에 엎드려서 울음을 내놓기 시작하니 꺽정이가 일어나서 반짝

들어 방문 밖에 내놓았다. 노밤이가 건넌방에서 나와서 계집을 울지 말라고 말

리는데 “임자나 내 자식의 원수를 갚아줄라우?” 하고 계집이 징징거리니 “갚

아 드릴 테니 염려 마우.” 하고 노밤이는 희떱게 허락하였다. 꺽정이가 방안에

서 “미친 눔, 쓸데없는 아가리 놀리지 마라!” 하고 소리질러서 노밤이가 움찔

하는 것을 계집이 보고 악이 나는 바람에 방문을 열어젖히며 “당신이 못 해주

거든 가만히나 있지 왜 남이 해준다는 것까지 헤살이오?” 하고 방자스럽게 말

한즉 꺽정이 입에서 벼락 같은 호령이 나오지 않고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꺽

정이가 말 한마디 않고 한참 동안 있다가 예사 말소리로 노밤이를 불러서 젊은

주인을 청하여 오라고 일렀다. 계집이 방문 밖에 퍼더거리고 앉아서 넋두리를

해가며 울며불며 하는 중에 한온이가 와서 나무라고 타일러서 울음을 그쳐놓고

방으로 들어오는데 “아주 보내구 들어오게.” 하고 꺽정이가 말하였다. 한온이

가 다시 계집에게 가서 조용히 할말이 있다고 문밖으로 끌고 나가더니 쉽사리 보

내고 들어왔다. “그 기집에게 나는 오늘 봉변했네.” 꺽정이 말에 한온이가 대

번에 “제가 선생님께 미안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자네가 시켰나?” “그

기집이 하두 성화를 바치기에 우리 선생님께나 가서 청해 보라구 실없이 한마디

했습니다. 제가 곧 쫓아올 것인데 아버지께서 셈 맞춰 볼 것이 있다구 붙들어서

못 왔습니다.” “그럼 자네가 날 봉변 준 셈일세.” “죄송합니다.” “그 기집

이 날 욕하구 가든가?” “욕이 무업니까. 내일 와서 석고대죄한다구 말하구 갔

습니다.” “그것두 자네가 시킨 게지. 자꾸 오면 성가신 걸 그렇게 시킨단 말인

가? 그 서방 치료시킬 부비나 내 셈속으로 보내 주구 다시 오지 말라게.” “오

지 말래두 제 발루 오는 걸 어떻게 합니까?” “자네두 내가 그 기집의 청 들어

주기를 바라는 모양인가?” “아니올시다. 상성한 기집의 청을 들어줍시사구 할

리가 있습니까.” “그럼, 그 기집이 오더래두 자네가 맡아서 쫓아보내게.” 꺽

정이와 한온이의 수작하는 말을 노밤이가 밖에서 다 들었다. 이튿날 식전 꺽정

이가 새집에서 자고 오기도 전에 계집이 공석 한 닢을 가지고 와서 마당에 깔고

엎드리는데 노밤이가 보고 쫓아나왔다. “아주머니 찬 땅에 이게 무슨 짓이오?

” “선다님께서 청을 들어주시두룩 내가 종일이라두 여기 엎드렸을테요.” “

고만두구 일어나시우. 어제 선다님하구 젊은 양반하구 이야기 하는 걸 들으니까

청을 들어주긴 썩 틀렸습니다.” “젊은 양반이 권해두 선다님은 일향 못 들어

주겠다구 말합디까?” “그럴 리가 있소?” “내 귀루 들었는데 그럴 리 있소가

무어요.” “그럼 나를 속였군. 가서 한번 대판 씨름을 해야겠다.” 계집이 일어

나서 한온이의 큰집으로 쫓아가려고 하는 것을 노밤이가 붙들었다. “나만 공연

히 새중간에 찍혀 들어가지 아주머니에겐 조금두 잇속이 없을 테니 고만두우.”

“내가 젊은 양반을 끌구 와서 같이 선다님을 조르겠소.” “떡 줄 사람은 생각

두 않는데 김찻국만 헛마시지 마시우.” “노서방 대체 어떻게 하면 좋소? 참말

노서방두 할 수 있소?” “나두 불쪽이 둘이지 하나 아니오. 그만 일을 못하구

야 어떻게 갓철대를 이마에 붙이구 다니겠소.” “그럼 다 고만두고 노서방을

믿고 있을 테니 속히 해주시겠소?” “ 그런데 내가 원가의 집안 지현을 잘 몰

라서 좀 어렵소.” “지형이 무어요?” “문이 어디루 나구 방이

어디루 붙구 더욱이 기집애 자는 처소가 어디 있는 걸 자세히 알아야 하지 않

소.” 이때 바깥방을 쓰는 사람들이 한첨지에게 아침 문안을 갔다가 돌아와서

“오궁골 아주머니 식전에 웬일이오?” “노서방 죽집에 안 갈라나?” “이 공

석이 웬게야?” 이 사람 한마디 저 사람 한마디 지껄이는 주에 노밤이는 계집을

보고 “선다님이 지금 안 기시니 갔다가 다시 오시우.” 하고 말하며 외눈을 끔

적끔적하였다. 이른 아침때가 지난 뒤에 꺽정이가 새집에서 왔었다. 노밤이가 계

집의 석고대죄하러 왔던 것을 이야기하고 “선다님께서 어디 가셨다구 말해서

쫓아보냈습니다. 어제 저녁 때 시골서 급한 기별이 와서 총총히 떠나셨는데 언

제 오실지 아직 모른다구 의수하게 꾸며 말했더니 곧이 들으면서 그래두 미심한

지 이따 낮에 다시 한번 와본다구 말하구 갑디다. 다시 올 테면 말을 말아야지

말까지 하구 가니 선다님께서 낮에 출입만 하시면 고만 아닙니까. 계집이란 도

대체 오장육부에 구멍이 덜 뚫린 것들이에요.” 하고 수월수월 지껄였다. 노밤이

가 허무맹랑한 꿈이야기로 계집을 농락하기는 견물생심으로 흉측한 마음이 난

것이요, 원수 갚아 준다고 계집에게 장담하기는 배냇병신인 실답지 못한 천성이

시킨 것인데 실답지 못한 장담을 미끼삼아 다시 흉측하게 농락할 생각이 나서 계

집은 다시 오라고 하여 놓고 꺽정이는 출입하도록 하려고 거짓말을 참말같이 지

껄인 것이었다. 이날 낮에 모든 일이 노밤이의 소원대로 되어서 꺽정이는 나가

고 다른 사람은 오지 않고 계집은 와서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노밤이가 죽은

상노아이를 남달리 생각하여 원수를 갚아 줄 마음까지 없지 않지만 제 역량으로

재상가의 규중 처녀를 살해할 엄두가 나지 않는 까닭에 그 어미에게 말은 선선

히 하고도 뒤가 나서 원계검의 집 지현 알아볼 것을 핑계삼고 한 번 두 번 밀어

오는 중에 그 어미가 어디 가서 지형을 샅샅이 알아가지고 와서 자세히 일러주

고 오늘 밤으로 곧 가달라고 백번 천번 간청하여 노밤이는 하릴없이 그리 하마

고 대답하였다. 계집이 간 뒤에 노밤이는 혼자 갖은 궁리를 다하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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