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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20)

카지모도 2023. 6. 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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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째 나이 이십이 되두룩 여위지 못했을까?" "처음에 용인 이승지 영감

의 손자하고 혼인을 정했다가 신랑감이 툭 죽어버려서 까막과부가 되고 그 다

음에 다시 함춘동 황참의 영감의 아들하고 혼인을 정했는데 황참의 영감 상사가

나서 지금 대삼년하는 중이라오." "까막과부에 대삼년에 참말 팔자 험한 색시로

군." "그뿐만이면 오히려도 좋지만 아직 두 번이 더 남았다오." "무에 두 번이 더

남았단 말인가?" "색시의 팔자가 어떻게 험한지 세 번 과부 된 뒤에라야 잘 살

수 있으리라고 한다오. 개가를 큰 험절로 치는 양반의 댁 따님으로 세 번씩 과

부 될 수 있소. 그러니까 까막과부로 팔자 때움을 하는 모양인데 세 번 과부가

팔자에 매였다면 아직두 두 번이 더 남지 않았소." "원판서 내외가 기막히겠네."

"원판서 대감은 어떠신지 몰라도 그 댁 정부인 마님은 노상 시름 속에 묻혀 지

내시지요." "원판서집에서 근래 보쌈을 한 일이 있다더니 참말인가베." "당치 않

은 말씀 하지 마시오. 댁에 있는 상노놈이 보쌈에 죽었다고 말들 합디다. 그러나

나는 믿지 않소. 전부터 사내 하나가 어디로 가서 종적이 없어지면 잡혀갔다고

떠듭니다. 호랭이에게 물려간 것도 보쌈, 제 발로 도망간 것도 보쌈, 보쌈이 흔

하기도 하지요. 사람 모인 구경터에 아이 안 낳는 때 있습디까. 그나 마찬가지에

요. 고래적 같으면 모르지만 지금같이 밝은 세상에 섣불리 그런짓 하다가 집안

을 망하게요? 혹시 하고 싶은 사람이 있더래도 좀처럼 엄두를 내지 못할 줄 아

오." "자네 말두 근리하나 이번 원판서집에서 엄두를 낸 모양이데. 자네는 그래

소문두 못 들었나?" "그런 소문 못 들었소." "소문이 참말인가 아닌가 자네 그

집에 가서 눈치를 좀 보게." "눈치 보긴 어렵지 않지만 내 생각에는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소. 그 댁 마님이 따님 때문에 하도 성화를 하시니까 누가 그런

말을 지어낸 게지." "그런지두 모르지." 한온이가 그 매파를 보낸 뒤에 꺽정이를

보고 "원계검의 집이 의심쩍지요?" 하고 의견을 물으니 꺽정이는 "의심쩍은 게

다 무언가? 영락없이 그눔의 집에서 한 짓일세." 하고 잘라 말하였다. "인제 속

내를 파봐야 할 텐데 어떻게 파보면 좋을까요?" "그눔의 집 하인을 멧 놈 잡아

다가 족쳐보세." "글쎄요, 그러자면 너무 왁자할걸요." "왁자할 것두 별루 없지

만 설혹 좀 왁자하기루 어떤가?" 한온이는 왁자하게 하지 않을 도리를 생각하느

라고 고개를 숙이고 말대답이 없었다. 한온이가 한참 만에 고개를 치어들고서

“그 집 하인을 주식이나 재물루 꾀어서 말을 시켜보지요. 이것이 잡아다가 족

치는 것버덤 나을 것 같습니다.” 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 흔

들며 “내 생각엔 나을 것 같지 않은데.” 하고 시원치 않게 대답하였다. “왁자

하지 않을 테니 낫지 않습니까?” “여간 꾀임에 빠져서 그런 말이 나올까?”

“말이 나오두룩 꾀일 만한 사람을 골라서 시키지요.” “정이 친한 사이면 그

런 말두 혹시 나올는지 모르지. 그렇지만 친한 친구를 꾀임에 빠뜨릴 눔이 어디

있을까.” “주식과 뇌물이 들면 서름서름한 사이라두 친하게 만들거든요.” “

그러자면 시일이 많이 걸리겠네.” “술잔이나 나눌 만한 터수면 시일두 별루

걸리지 않을 겝니다. 지금 제가 생각하기는 원계검이가 이량이와 가깝게 지내는

처지라 하인들끼리두 자주 만날 터이니까 이량의 집에서 구종 노릇하는 사람을

불러다가 시켜볼까 합니다.” “아무리나 자네 생각대루 해보게.” “이래 봐서

잘 안 되거든 잡아다가 족치지요.” “그래두 좋겠지.” 한온이가 이량의 집에

들어가 있는 부하를 불러다가 상노아이가 모교 원판서집 보쌈에 죽은 형적이 있

는데 시체나 찾았으면 좋겠으니 그 집 하인 중에 그런 심부름할 듯한 사람에게

주식과 뇌물을 먹여서 시체 버린 곳을 알아오라고 이르고 상목을 십여 필 주어

보냈다. 불과 수일 후에 그 부하가 다시 와서 원판서집 하인 서너 사람을 붙들

고 삶는데 상목이 부족하다고 말하여 한온이는 그 부하의 남용하는 줄까지 짐작

못하지 않으면서 상목을 아주 반 동으로 채워주었다. 꺽정이가 산림골 색시와

초례를 지내고 또 남성 밑에 조그만 집 하나를 사서 새살림을 차리는데 한온이

가 모든 것을 주선하여 주느라고 날마다 분주하여 그 부하가 두번째 상목을 가

져간 뒤 칠팔 일이 지나도록 재촉 한번 아니하고 상노아이의 부모가 아들의 일

을 물으러 오면 번번이 “가만 있게. 조금만 더 참게.” 하고 말하여 돌려보냈었

다. 어느 날 다 저녁때 그 부하가 와서 원판서집 보쌈에 죽은 아이가 모랫말 우

사장 이러이러한데 묻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원판서집 하인의 입에서 이 말을

파내느라고 이만저만하게 애쓰지 않았다고 이야기하였다. “어째 하필 모래에

갖다 묻었을까. 거짓말이 아닐까?” “거짓말은 아닌 줄 압니다

. 얼음에 구멍을 뚫구 강에 집어넣으려구 갔었는데 동이 환하게 터서 얼음 위에

낚시꾼이 여기저기 보이는 까닭에 강에까지 나가지 못하구 모래사장에 파묻구

왔다구 말합디다.” “말 들은 사람이 같이 가야 자리를 찾기 쉬울 테니 내일

낮에 틈 좀 내가지구 내게루 오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튿날 낮에 한온이

와 꺽정이가 이량의 집 구종과 노밤이와 그외의 몇 사람을 데리고 모랫말 우사

장에 나와서 시체를 찾는데 이러이러한 데라고 말 들은 것이 있건만 사장의 목

표가 분명치 못하여 한동안들 헤매는 중에 한 곳에 꽉꽉 밟은 발자국이 남아 있

어서 그곳을 시험삼아 파보았다. 한 자 깊이쯤 들어가서 괭이질하는 사람이 괭

이 끝에 맞치는 것이 있다고 말하더니 거미구에 옷이 내다보이고 뒤미처 시체가

드러났다. 그 시체를 파내놓으니 한온이는 외면하고 꺽정이는 언짢아하고 노밤

이는 외눈에서 닭의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상노아이의 부모가 아들의

시체 찾았다는 기별을 듣고 강변으로 쫓아오는데 그 아비는 한 걸음이라도 빨리

오려고 지름길로 올줄까지 알았지만, 그 어미는 어디로 어떻게 오는지도 모르고

먼줄만 알아서 먼 길로 끌고 온다고 붙들어 주는 서방을 핀잔하였다. 그어미가

사장에 와서 시체를 보고는 곧 펄썩 주저앉아서 몸부림을 치며 울었다. 여러 사

람이 붙들고 말리는데 적이 정신을 차려서 죽은 자식 얼굴이나 보겠다고 시체

옆에 가서 덮어놓은 것을 치어들고 들여다보더니 바로 고개를 딴데로 돌리고 슬

몃슬몃 뒤로 물러나왔다. 눈 뜨고 입 벌린 얼굴을 보고 고만 정이 떨어진 것이

었다. 그 뒤에는 별로 울지도 못하고 넋 잃은 사람같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시

체를 문안으로 들여오지 못하고 문밖에서 집을 잡고 치상하여 아주 매장은 안

하고 우선 초빈하여 두는데 한온이와 꺽정이가 각각 우후하게 부의를 주어서 훌

륭한 수의로 염도 하고 좋은 판재로 관까지 썼다. 그 어미는 한번 정이 떨어진

뒤로 시체 근처에 가기를 싫어하여 염하는 것도 보지 않고 입관하는 것도 보지

않고 초빈하는 데도 따라가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슬픈 것은 창자 굽이굽이 맺

히고 원통한 것은 뼈 마디마디에 박혀서 원수를 못 갚고는 못 살 것같이 날뛰었

다. 그 아비 역시 불쌍히 죽은 자식의 원수를 갚고 싶은 마음이 속에 가득한 중

에 더욱이 계집에게 부대껴서 정장질을 해보려고 작정하고 한온이에게 와서 조

력하여 달라고 청하였다. “셋줄이 든든한 시임 형조판서를 걸어가지구 정장해

서 일이 될 것 같은가? 일두 안 되구 욕만 보기 쉬웨. 내가 조력해서 일이 될것

만 같으면 자네가 와서 청하기를 기다리구 있겠나. 벌써 정장질 하라구 가르쳐

주기두 했지.” 사내는 한온이의 말을 옳게 듣고 가서 정장질 안 하려고 하는

것을 “정장질 안 하면 칼 가지구 원수를 갚을 테요. 죽는 놈도 있는데 욕볼 것

이 겁난단 말이오? 겁나거든 고만두오, 내가 하리다.” 계집이 사살을 퍼부어서

마침내 정장질을 하게 되었다. 사내가 소지를 들고 먼저 포청으로 갔더니 포청

에서는 형조로 가라고 받지 않고 형조에는 가야 받아 줄 리 없어서 나중에 대사

헌이 거리에 나왔을 때 노상에서 바치었다. 대사헌 이감이 이량의 패로 원계검

과 사이가 막역인 것을 모르고 무슨 좋은 처분이 내릴까 바라다가 흑의 자락에

바람이 나는 사헌부 나장들에게 끌려가서 소지의 사연이 주작부언이라고 초사를

올리기까지 매를 죽도록 얻어맞고 멀쩡한 사람이 병풍상성한 놈이란 소리를 듣

고 등밀려 쫓겨나왔다. 사내가 정장질하다가 볼기만 얻어맞은 뒤에 계집은 한온

이에게 쫓아와서 덮어놓고 자식의 원수를 갚아내라고 부득부득 졸랐다. 한온이

가 계집더러 “어떻게 하면 원수를 갚을 수 있겠나? 원수 갚을 도리를 자네가

가르쳐 주게.” 하고 말하니 계집은 서슴지도 않고 “원가의 집안을 도륙내 주

세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건 내 힘으루 할 수 없네.” “집안을 도륙낼 수

없으면 그 기집년 하나만이라도 죽여 주세요.” “그것두 내 힘으루 할 수 없구.

” “원수를 갚아주실 맘이 없는 게지 어째 할 수 없어요?” “내가 원판서집

안에 뛰어들어가서 색시를 죽이구 올 만한가. 자네는 나를 퍽 대담한 사람으루

봤네그려.” “누가 친히 가줍시산 말입니까. 댁 문하에 드나드는 사람이 작히

많습니까?” “그런 일 할 만한 사람부터 물색해 놓구 이야기하세.” 한온이가

섣불리 뒤에 이야기하자고 말 한마디 한 탓으로 계집에게 성화를 받게 되었다.

계집이 연일 오기도 하고 하루 걸러큼 오기도 하는데 한온이가 하루는 계집을

조용히 불러가지고 “이 사람 저 사람 생각해 봐야 내 집 사람 중에는 그런 큰

일을 한만하 사함이 없구 우리 선생님 임선다님이 만일 하시러 들면 하실 수가

있는데 내 말만 듣구서는 움직이실 것 같지 않으니 자네가 먼저 정성스럽게 졸

라보게.” 하고 말하여 성화거리를 슬그머니 꺽정이에게로 떠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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