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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24)

카지모도 2023. 6. 5.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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꺽정이의 먼저 얻은 박씨는 한미한 집에서 고생으로 자라난 색시라 진일 마른

일 여편네 일치고 못하는 일이 없는데다가 더구나 어머니가 있어서 남의 사람

열 스물 둔 것보다 나은 까닭에 꺽정이가 바깥 심부름할 아이년 하나만 얻어주

었지만, 새로 얻은 원씨는 손끝으로 물이나 튀겼을 재상가의 딸이라 사람 없이

는 못살 위인인 까닭에 상직 할미 하나와 아이년 두엇을 얻어주려고 생각하고

집부터 간수 적고 방 많은 것을 구하여 정하였다. 동소문 안에 새로 산 집이 꺽

정이가 거처하는 한온이의 집과 흡사하여 안에 안방, 건넌방이 있고 또 밖에 바

깥방이 있어서 건넌방에는 상직 할미와 아이년들을 두고 바깥방에는 행랑 사람

을 들일 수 있었다. 꺽정이가 한온이와 상의하여 상직 할미 하나와 아이년 둘과

행랑 사람까지 다 얻어놓고 원씨를 동소문 안 새집에 가서 들게 하고 원씨가 새

집 든 뒤로 꺽정이는 낮에 흔히 와서 있고 밤에 자주 와서 잤다. 동소문 안에서

자고 남소문 안으로 밥 먹으러 다니기가 불편하여 꺽정이는 한온이 부자에게 말

하고 조석을 동소문 안에서 먹기로 하였는데 한온이가 와서 저녁 한두 끼를 먹

어보고 원씨의 음식 솜씨를 일등이라고 칭찬하였다. 꺽정이가 하루 한두 번씩

한온이에게를 가는 까닭에 자연 박씨도 가서 들여다보았지만 자러 가는 것은 이

삼 일 혹 사오 일에 한 번씩밖에 안 되었다. 꺽정이가 원씨를 얻고 박씨를 박대

하는 것이 아니라 박씨가 속에 냉이 생겨서 꺽정이의 자러 오는 것을 괴로워하

는 눈치가 간간 보이었었다.

동소문 안 거처가 마음에 들고 원씨가 공궤가 비위에 맞아서 꺽정이는 밖에

나가 돌아다니나 집에 들어앉아 있으나 눈살을 찌푸릴 일이 없는 중에 오직 한

가지 불쾌한 것은 담 하나를 격한 홍문집에서 여편네가 하루도 몇 번씩 큰소리

를 지르는데 그 소리가 왕방울로 퉁노구를 가시는 것 같아서 꺽정이는 눈살이

절로 찌푸려질 때가 없지 아니하였다. 어느 날 밤에 꺽정이가 원씨의 이야기책

보는 소리를 듣고 누웠을 때 홍문집 여편네가 계집 하인을 부르다가 대답을 빨

리 안 한다고 연놈이 초저녁부터 끼고 자빠졌느냐고 소리소리 질렀다. 꺽정이가

“저 여편네 또 악을 쓰는군. ” 하고 혀를 낄낄 차니 원씨는 이야기책 보던 것

을 그치고 “여편네가 퍽 사나운가 봐요. ” 하고 말하였다. “저 집에 사내는

씨가 졌나. 어째 사내 소리는 영 들을 수가 없어. ” “저 여편네의 시아버지가

있다는데요. ” “시아비 체것이 사람이 어떻게 못생겼기에 저런 때 소리 한번

못 지르노. ” “소리지르는 게 다 무어에요? 됩다 당합디다. 일전에 손자아이

두던하다가 며느리에게 참혹하게 당하든걸요. 그날 남소문 안 가셔서 못 들으셨

지. ” “시아비를 야단치는 며느리가 어디 있담? ” “그래도 저 여편네가 정

문 받은 여편네랍디다. ” “시아비 야단친다구 정문을 받았을까? ” “불효부

정문이 어디 있어요? ” “그렇기에 말이지. ” “저 여편네가 열녀래요. 정문에

새긴 것을 유의해 보시지 않으셨세요? ” “내가 낫 놓구 기역 자두 모르는 무

식꾼인데 보면 아나? ” “글을 왜 못 읽으셨나요? ” “글은 읽기 싫어서 안

읽었어. ” “그럼 병서를 어떻게 보세요? ” “좋은 선생님한테서 귀동냥으루

더러 들었지. ” “남의 말로 듣는 게 내 눈으로 보는 것만 합디까? 적어도 병

서는 보셔야 할 테니 지금이라도 공부를 시작해 보시지요. ” “사십 늙은이더

러 하늘 천 따 지를 시작하란 말이야. 쓸데없는 소리 고만두구 이야기책이나 봐

들리리구. ” 원씨가 다시 이야기책을 보기 시작할 때 이웃집에서는 계집하인이

방망이찜질을 당하는지 아이구지이구 하는 소리가 났었다.

이튿날 아침 뒤에 동자하는 행랑 사람이 부엌 앞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마루

훔치는 상직 할미를 보고 담 너머집 계집하인의 신세 불쌍한 것을 이야기하였

다. “그 여편네 참 불쌍합디다. 어젯밤에 죽도록 얻어맞았다는데 그래두 식전에

물 길러 나왔겠지요. 일어나서 꿈질거리지 않으면 사정없는 사매질에 더 죽어난

다는구먼요. 상전이 어떻게 망나닌지 하인 기집의 자는 것까지 총찰한답디다. 한

밤중이고 닭 울녘이고 나가 자라고 해서 나가 자야 아무 말이 없지 몰래 나가서

서방하고 자다가 들키기만 하면 언제든지 어젯밤 같은 야단이 난답디다. 그러고

사람이 살 수 있겠세요. 서방이 똑똑하면 양반을 제독을 주든지 기집을 속량을

하든지 무슨 짓이든지 하겠지만 위인이 할 수 없는 반실이래요. 그 여편네가 이

야기하면서 눈물 흘리는 걸 보니 남의 일이라도 불쌍해 못 견디겠습디다. ” 동

자치의 이야기를 상직 할미가 듣고 나서 “그 여편네도 사람이 똑똑진 못한가

베. ” 하고 말하니 동자치는 고개를 가로 흔들며 “아니요, 시굴 생장이라도 사

람만 똑똑합디다. ” 하고 대답하였다. “똑똑한 사람이 왜 그런 집에 붙어 있단

말인가? ” “그 여편네 말하는 눈치가 그 집 씨종인갑디다. ” “씨종은 도망

질도 치지 못한다든가. ” “그렇지 않아도 내가 그런 말을 했더니 그 여편네

말이 서울 온지 삼 년에 아직 친한 사람도 없고 더욱이 나다니지를 못해서 어디

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섣불리 도망질을 치다가 붙들리는 날이면 지질한 목숨이

나마 보전 못할 테니까 엄두가 안난다고 합디다. ” “양반이라면 벌벌 떠는 시

굴뜨기 소릴세. 단비 부리는 무세한 양반의 집에서 단비가 도망하면 무슨 수로

찾겠나? 한껏 해야 장례원에 가서 찾아달란 텐데 장례원에서 무세한 집 일을 대

단히 여기나. 찾아주려고 애쓸 리 없지. 도망할 생각이 있거든 염려 말고 도망하

라게. ” 동자치와 상직 할미의 지껄이는 말을 원씨가 방안에서 듣다가 “공연

히 쓸데없이 그런 말들 하지 마라. 잘못하다가 남의 집 종 꾀어냈단 누명이나

쓸라고 그래? ” 하고 나무라서 둘이 다 말을 그치고 더 지껄이지 못하였다.

며칠 뒤 일이다. 그날 희릉에 능행이 있어서 이 집 저 집에서 거동 구경들을

나가는데 원씨집에서는 아이년들이 구경가고 싶어서 발동을 하다가 주인 아씨가

안 나가는 까닭에 그대로 주저앉았고 담 너머 홍문집에서는 여편네가 식전부터

들싼을 놓아서 시아버지 늙은이와 아들아이와 안팎 세 식구가 다같이 나가는데

비부쟁이는 데리고 가고 계집하인 하나만 집에 남겨서 집을 보이었다.

동자치가 아침을 해서 치르고 담 너머집으로 놀러가는데 상직 할미는 그 집의

사는 꼴을 구경하고 온다고 따라가더니 얼마만에 혼자 돌아와서 꺽정이와 원씨

를 보고 “홍문집 기집하인이 오늘 상전 서방 다 없는 틈에 어디로든지 도망을

시켜 달라고 울면서 매달리는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 하고 물었다. 원씨는

먼저 “부질없는 짓 하지 말게. 나중에 그 집 주인이 알면 이웃간에 시비 나지

않나? ” 대답하고 그 다음에 꺽정이는 “자네 생각에는 어떻게 해주구 싶은가?

” 하고 되물었다. “남소문댁으로 보내주면 어떨까요? ” “자네가 그렇게 해

주구 싶으면 해줘두 좋겠지. ” 상직 할미가 다시 원씨를 보고 “아씨, 그만 일

도 적선이니 그렇게 해주지요. 아씨는 그 집에서 알고 시비할까 봐 염려하시지

만 알 까닭이 없지 않아요. ” 하고 말 한 뒤 곧 건넌방으로 건너가서 나들이옷

을 입고 나오는데 꺽정이가 내다보며 “여보게 할멈. ” 하고 다시 불렀다. “지

금 곧 데리구 갈 텐가? ” “구경터에서 오기들 전에 일찍 데려다 주려고 합니

다. ” “내가 지금 남소문 안에 갈 텐데 내 뒤를 딸려보내면 자네는 안가두 좋

겠네. ” “그렇게 해줍시사고 말씀하고 싶은 걸 어려워서 못했습니다. ” “그

럼, 그 기집을 이리 데리구 오게. ” “녜, 곧 가서 데리고 오겠습니다. ” 상직

할미가 다시 담 너머집으로 가더니 한동안 뒤에 동자치와 함께 그 계집하인을

데리고 와서 꺽정이와 원씨에게 문안을 드리게 하였다. 그 계집하인은 나이 새

파랗게 젊은 아직 애송인데 시골티는 빠지지 않았으나 사람이 똑똑하여 꺽정이

의 묻는 말을 대답할 때도 수줍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꺽정이가 그 계집하인을 뒤에 딸리고 한첨지 집에서 와서 한온이에게 맡기고

난 뒤 그 계집하인의 입에서 열녀의 내력 이야기를 소상히 들었다.

열녀는 충주 김씨의 집 딸로 나이 열일곱 살 때 제천 권씨집 열세 살 먹은 신

랑과 혼인하였는데 맏자란 신랑이 작기가 조막만하여 다 큰 색시에게 대면 어린

동생 폭밖에 안 되었었다. 꼬마동이 신랑이 첫날밤에 색시의 옷도 못 벗기고 저

혼자 쓰러져 자다가 한밤중이 지난 뒤에 홀저에 일어나 앉아서 뒤를 싸겠다고

징징 울며 말하여 색시가 뒷간에 데리고 나와서 바래주는데 어스름 달빛 아래

바라보니 울 밖에 수상한 기척이 있었다. 색시집은 장산 날가지 야산 밑이라 개

호주가 대낮에 집 뒤까지 내려오는 일도 없지 아니하였었다. 색시가 얼른 나오

라고 재촉하여 신랑이 뒷간에서 나오다가 아이구 소리 한번 하고 호랑이에게 물

리었는데 색시가 이것을 보자 곧 호랑이 꼬리를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 호랑이

가 아가리에 한 사람을 물고 꼬리에 한 사람을 달고 산으로 들로 뛰었다. 색시

는 살이 찢어지거나 몸이 으스러지거나 죽자고 꼬리를 잡고 놓지 아니하였다.

날이 훤하게 밝기 시작하여 먼 산 나무꾼이 나가고 들의 여름 일꾼이 나오게 되

었을 때 호랑이가 색시 악지에 져서 아가리에 다 들어온 밤을 토하여 놓았다.

색시가 호랑이 꼬리를 놓고 신랑 목을 얼싸안을 때까지는 정신이 있었지만, 그

뒤로 두메 사람의 집에 와서 신랑과 느런히 누워 있게 된 것은 정신이 돌아서

감았던 눈을 떠볼 때 겨우 알았다고 한다. 색시집에서 첫날밤의 신랑 신부를 잃

고 사방으로 찾는 중에 연풍 땅에서 신랑 신부 찾아가란 기별이 와서 색시의 아

버지가 신랑의 위요와 같이 인마를 데리고 갔는데 신랑은 위요를 맡겨서 바로

제천으로 보내고 신부만 충주로 데려왔었다. 신랑이 호랑이 아가리에 죽을 뻔하

고 그 뒤 일 년 동안 개신개신 살다가 마침내 죽어서 색시는 망문과 다름없는

숫색시 과부가 되었었다. 열일곱 살 먹은 신부가 호랑이 아가리에서 신랑을 뺏

었단 소문이 퍼져서 원근 각처에서 일부러 색시를 보러오는 여편네가 허다하였

었고 희한한 열녀를 표창하여 달라고 선비들이 관가에 등장을 들어서 충주목사

가 감영에 보하고 충청감사가 조정에 장계하여 마침내 조정에서 열녀 정문을 내

리었었다. 열녀의 정문은 바로 제천 권씨집에 와서 붙었었으나 열녀는 과부 된

뒤 칠팔 년 동안 충주서 친정살이를 하다가 기유년에 충주서 역옥이 나서 충주

사람이 많이 죽을 때 역옥 죄인 삼십여 인 중에 열녀의 친정 일가가 하나 끼인

까닭으로 열녀의 집안 여러 집이 통히 망하여 열녀는 비로소 제천와서 시집살이

를 하게 되었었다. 열녀가 시어머니게도 가끔 말썽은 부렸지만 그다지 심하지는

않던 것이 며느리 잘 거느리던 시어머니가 돌아간 뒤로 기탄없이 큰소리를 지르

기 시작하여 시아버지가 멋모르고 타이르다가 여러 번 창피한 꼴을 당하고 마침

내 가래지를 못하였다. 열녀의 성질이 거세고 사나워서 부리는 종은 말할 것 없

고 늙은 시아버지와 양자한 어린 아들을 못살도록 볶는 까닭에 동네에서 뒷손가

락질 안 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을 때, 열녀는 아들아이 가르칠 것을 핑계삼아

대처로 이사가자고 시아버지를 우겨서 서울로 이사온 것이 삼 년 전 일이었다.

열녀의 내력 이야기를 다 들은 뒤에 꺽정이가 박씨집에를 가려고 일어서는데

한온이는 그 계집하인을 큰첩의 집에 데려다 둔다고 꺽정이와 같이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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