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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23)

카지모도 2023. 6. 4.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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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항저방심미기 두우녀허위실벽 규루위묘필자삼 정귀류성장익진.” “진익장성

류귀정 삼자필묘위루규 벽실위허녀우두 기미심방저항각.”

방안에서 이십팔수 별 이름을 바로 외고 거꾸로 외고 하는 중에 꺽정이 는 걸

린 지겟문을 걸리지 않은 것같이 잡아당겨서 열고 방안에 들어섰다. 윗목의 상

직 할미는 자리 속에 누운 채 이불을 폭 뒤집어쓰고 아랫목의 계집아이는 자리

위에 앉았다가 그대로 포 엎드리는데 계집아이의 몸도 떨리거니와 상직 할미의

이불도 떨리었다. 꺽정이가 눈앞에 엎드린 큰 계집아이를 내려다볼 때 죽일마음

도 안 나고 살려두고 갈 마음도 안 나서 어찌할까 주저하는 중에 문득 산 사람

으로 잡아가지고 갈 생각이 났다. 꺽정이는 방안을 한번 돌아본 뒤 아랫목에 외

서 벽에 걸린 세수 수건으로 계집아이의 입을 친친 동이고 발채에 놓인 명주처

네로 계집아이의 몸을 도르르 싸서 한편 어깨에 둘러메고 나오려는데 늙은 할미

가 어느 틈에 앙금앙금 일어나서 떨리는 손으로 옷자락을 붙들었다. 늙은 할미

는 겁이 되우 나서 혀가 굳었던지 소리는 못 지르고 턱만 들까불렀다. 꺽정이가

늙은 할미를 발길로 차서 쓰러뜨린 뒤에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두서너 번 짓

밟아 주고 방에서 나왔다. 후원에 와서 꺽정이는 다시 담을 뛰어넘으려다가 어

깨 위에 계집아이도 메었거니와 담 너머에 노밤이가 어디 있는지를 몰라서 뛰지

못하고 먼저 담 밑에 붙은 뒷간 지붕으로 올라오고 거기서 다시 담위로 올라와

서 굽어 살펴보며 사뿐 뛰어내렸다. 배나무 선데쯤 앉았다 섰다 하던 노밤이가

꺽정이의 뛰어내리는 소리를 듣고 서너 간 좋이 앞으로 쫓아나왔따. “어깨 위

의 것이 뭣입니까?” “기집애다. 업어라.” “송장 아닙니까?” “아니다.” 꺽

정이가 처네에 싼 계집아이를 노밤이에게 업혀 가지고 남소문안으로 돌아오는데

구리개 한중간에 와서 순경 도는 군사들을 만났따. 꺽정이가 군사 두엇을 어떻

게 처치 못할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일이 있을 때 말썽 없이 모면하려고 일부러

가짝 복색을 차리고 나왔던 길이라 군사들이 “그게 무어요?”하고 노밤이의 앞

을 막아설 때 꺽정이는 얼른 나서서 선전관의 표신을 군사들 눈앞에 들이밀면서

“봉명한 사람의 길을 막지 말구 저리 비켜서라!” 하고 기세좋게 말하였다. “

저 군사 등에 동여맨 것이 무업니까?”계집아이 싼 것이 없은 등에 잘 붙어 있

지 아니하여 담 넘을 때 쓰려고 가지고 갔던 밧즐을 띠개비 대신 삼아 위아래로

여러 번 돌려맨 까닭에 군사들 눈에 동여맨 것으로 보이었던 것이다. 꺽정이는

표신 보이고 봉명하였다고 말하면 군사들어 두말 못할 줄 알았더니 의외로 붙잡

고 힐난하려는 눈치가 있는 것을 보고 달리 군사들을 처치할까 생각하다가 우선

한번 호령을 하여 보았다. “표신 물어가지고 나온 것을 보면서 너희들이 붙잡

아 여러 말하느냐? 죽일 놈들 같으니, 냉큼들 비켜나지 못하겠느냐!”

호령이 힘진 데 군사들이 심겁이 났던지 슬몃슬몃 뒤로 물러서서 꺽정이는 곧

노밤이를 가자고 재촉하였다. 뒤를 밟힐 염려가 있어서 자주 돌아보며 오는 중

에 군사들이 과시 뒤따라오는 것을 알고 꺽정이는 노밤이를 한 걸음 앞서 보내

고 어둔 구석에 은신하고 서 있다가 앞에 지나가려는 군사들은 한손에 하나씩

붙잡아서 이손으로 한, 저 손으로 하나 둘을 다 메어꽂은 뒤에 “이놈들 또 뒤

를 밟아봐라.” 으름장까지 놓고 노밤이를 쫓아왔다. 그 뒤는 남소문 안 처소에

까지 오도록 내처 무사하였다. 꺽정이가 방에 들어와서 먼저 춧불을 켜놓은 뒤

에 노밤이의 업고 섰는 계집아이를 밧줄 끄로고 처네에 싸인 체 받아내려서 눕

히었다. 처네를 헤치고 입 막은 수건을 풀고 보니 계집아이의 얼굴은 죽은 사람

과 같았다. 기색이 된 모양이다. 노밤이는 가까이 와서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

제물에 죽었구먼요. 기집애는 아깝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기운이 막힌 게다.

사향소합원이나 한 개 먹여보자.” “어떻게 먹이실랍니까? 제가 씹어서 입에

넣어주리까?” “이눔아, 당치 않은 소리 말고 자리끼나 조금 따라서 데워놔라.

” 노밤이가 자리끼 물을 그릇 뚜껑에 따라서 화롯불에 따끈하게 데우는 동안에

꺽정이는 손그릇 속에 있는 사향소합원을 찾아놓았다. 꺽정이가 따뜻한 물에 소

합원을 개어서 입을 벌리고 흘려넣어주고 또 노밤이를 시켜 두 손바닥을 문질러

주는 중에 계집아이가 긴 숨을 한번 내쉬었다. “이크, 돌렸습니다.” “손바닥

을 고만 문질러라.” “이 기집애를 대체 어떻게 처치하실랍니까? 원수 갚으라

구 내주실 의향이십니까?” “내주든지 어떻게든지 차차 생각해서 처치할 테

다.” “미친 눔 같으니.” “저를 주시면 당장 갖다 요정을 내겠습니다.” “어

떻게 요정을 낼 테냐?” “대가리를 끊어놉지요. 그까짓 게 무어 어렵습니까?”

“미친 소리 작작하구 고만 가서 자빠져 자거라.” “아무래두 선다님께서 딴생

각이 기신 것 같습니다. 그러구 보면 저는 안으서님 한분 모셔다 드리느라고 죽

을 고생만 한 폭입니다.” “고만 지껄이구 가 자거라.” “녜, 저는 가서 혼자

잘 자겠습니다.” 노밤이가 건넌방으로 건너간 뒤에 꺽정이는 계집아이 옆에 누

웠다. 계집아이의 처네가 얇은 것은 고사하고 노밤이 옷에서 지린내가 옮겨배어

서 그대로 둘 수 없는 까닭에 꺽정이가 처네를 빼어내서 윗목에 내던지고 계

집아이를 자기 요에 올려눕히고 자기 이불을 같이 덮었다. 계집아이가 그 동안

에 정신기가 나서 이불 밖으로 튀어나갈려고 애를 쓰는 것을 꺽정이는 웃으며

품안에 끌어안았다.

이튿날 식전에 꺽정이가 노밤이를 보내서 한온이를 청하여 왔다. 전 같으면

오라고 일부러 청하지 않아도 한온이가 으레 꺽정이를 보러 왔겠지만 꺽정이가

많이 새집에 가서 자게 된 뒤로 늦은 아침때 전에는 오지 아니하는 까닭에 일찍

만나려면 보러 가거나 청하여 오는 수박에 없었다. 한온이와 노밤이가 마당에

들어올때 꺽정이는 방에서 마주 나와서 노밤이가 바깥사랑으로 내보내고 한온이

를 데리고 건넌방으로 들어왔다. 꺽정이가 전날 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

온이는 먼저 “밤이에게 지금 대강 이야기를 듣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벌써 들었나? 그러면 이야기는 할 것 없구 뒷일처리나 좀 의논하세.” “원판

서가 딸을 잃구 찾지 않을까요? 찾으러 든다면 일이 크게 벌어질 것 같습니다.

” “찾는단 소문이 있거든 자네가 요전처럼 어디 갖다 잘 숨겨 주게.” “이번

에두 또 장가를 드시렵니까.” “나는 기집애를 밤이에게 내주어 볼까 생각하네.

” “어젯밤에 데리구 주무시기까지 하셨다지요. 양반의 집 딸이 이 사람 저 사

람에게 몸을 맡기겠습니까? 잘못하다가는 죽네 사네하기가 쉽습니다.” “밤이

란 눔이 날 따라 서울 올 때부터 기집 하나 얻어 달라구 조른 눔일세.” “다른

기집 하나 얻어 주시지요.” “그럼 그건 나중 다시 이야기할 셈 잡구 우선 저

기집애를 어디다 두어야 좋게나? 밤이를 바깥사랑으로 내보내구 이 방에 둘까?

” “아직은 이 방에 두어두 좋겠습니다만 처음부터 아주 제 첩의 집 뒷방 같은

으늑한 데 데려다 두면 어떻겠습니까?” “그게 좋겠네. 그런데 오궁골 기집이

알면 원수 갚는다구 와서 야료하지 않을까?” “그건 제가 담당할 테니 염려 마

십시오. 밤이의 입만 막아노면 그 기집이 알 까닭두 없습니다.” “그눔의 입이

사구일생인데 그걸 어떻게 틀어막나?” “그 기집에게 알리면 죄책을 당한다구

어르구 또 좋은 기집이나 하나 얻어 준다구 달래두면 그 기집이 설혹 다른 데서

알구 와서 묻더래도 그놈이 능청맞게 잘 속일 겝니다.” “자네 요랑대루 해보

게.” “어르는 건 선생님께서 어르셔야 됩니다.”

꺽정이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할 즈음에 안방에서 괴상스러운 소리가 났다.

꺽정이와 한온이가 안방에 건너와 보니 계집아이가 수건을 다락문 고리에 꿰어

서 목을 매고 킥킥하였다. 꺽정이는 한온이를 돌아보며 매었다가 죽지도 못하고

죽을 의사가 있는 것만 들키어서 한온이의 첩의 집으로 옮겨간 뒤 늙은 여편네

두엇이 밤낮 옆을 떠나지 아니하였다. 수일 동안은 계집아이와 물 한 모금 입에

넣지 않고 줄곧 누워서 울기만 하다가 “사람의 팔자란 억지루 못하는 게요.”

“꽃 같은 나이에 왜 죽는단 말이오?” “부모도 모르게 죽으면 원통치 않소.”

“부모를 다시 만나볼라면 살아야 하우.”

이런 말로 늙은 여편네들이 달래는데 계집아이 소견에 죽더라도 한번 부모를

만나보고 죽을 생각이 들게 되어서 권하는 미음을 조금씩 받아먹게 되었다.

원판서 집에서는 출가 전 딸이 상직 할미와 같이 자다가 하룻밤사이에 둘이

급사하였다고 상직 할미의 시체는 그 자식들 내 주어서 초상을 치르게 하고 자

기네 딸은 내외가 손수 수시하여 당일로 입관하고 오일 만에 갈장하였다. 원판

서 집 소식을 한온이가 알아다가 꺽정이에게 이야기하고 “일이 의외루 무사하

게 잘됐습니다. 인제 선생님께서 처자를 드러내놓구 데리구 사셔두 아무 탈이

없겠습니다. 원판서의 딸은 죽구 처자는 살았으니 누가 처자를 원판서의 딸이라

구 하겠습니까, 양반의 집에서 원체 남의 이목 수습을 잘하지만 이렇게까지 심

할 줄은 몰랐습니다. 하여튼지 일이 무사하게 돼서 좋습니다.” 하고 웃으니 꺽

정이도 허허허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 동안에 죽은 상노아이의 어미가 어찌 된 하회를 알려고 노밤이를 찾아왔었

는데 노밤이는 꺽정이의 분부와 한온이의 당부를 미리 받은 까닭에 바른 대로

일러주지 않고 “기집애 대가리를 끊지 못했을 뿐이지 원수는 톡톡히 갚았으니

그렇게 아시우. 내 말이 미심스럽거든 차차 소문을 들어보우. 자연 알 일이 있으

리다.” 하고 구렁이 담넘어가는 수작으로 말하여 보냈더니 모교 원판서의 딸이

밤에 자다가 급사하였다고 소무니 난뒤에 다시 와서 노밤이를 보고 원수를 갚아

준 은혜를 죽어도 잊을 수 없다고 눈물 흘리며 치사하였다.

한온이 첩의 집 뒷방에서 생병으로 앓아누웠던 계집아이가 일어앉아서 소세하

세 되었을 때 한온이가 꺽정이와 상의하고 날짜를 가리어서 계집아이의 머리를

얹히었다. 첫날밤은 꺽정이가 색시 있는 뒷방에 와서 자고 그 다음날부터 노밤

이 쓰는 건넌방을 치우고 색시를 데려내다가 재웠다. 꺽정이가 새집에 가고 처

소가 비는 때 색시를 아직 혼자 두기 엄려되어서 한온이의 분별로 늙은 여편네

들이 함께 와서 있었다.

색시는 한번 죽지 못한 탓으로 한되고 욕스럽고 분하고 창피한 마음이 속에

가득하면서도 구경 임선달의 사람이 되고 말았는데 늙은 여편네들의 말을 대강

추려 듣더라도 임선달은 인물이 영특하고 힘이 천하 장사고 칼을 잘 쓰고 말을

잘 타고 기외에 여러 가지 비범한 것이 옛이야기 책에 나오는 영웅호걸과 방불하

였다. 색시가 이야기책을 남유달리 좋아하고 이야기책을 보는데 책 속에 나오는

영웅호걸을 사모하는 마음이 날 때가 많고 자기가 곧 그 영웅호걸의 배필이 된

듯이 근심과 기쁨을 책 속 사람과 같이 할 때도 종종 있었다. 이 까닭에 임선달

이 옛날 영웅호걸과 방불한 것을 은근히 불행중 다행으로 여기었다. 대체 자기

일이 보쌈에서 그릇되기 시작한 것을 알고 팔자를 한탄하고 또 자기가 지금 살

아서도 죽은 사람인 것을 알고 부모에게 욕된 것을 깨달았다. 그 뒤로 오직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임선달이 출장입상하게 되는 날 부모를 만나보는 일이라 몇

해 동안 매두몰신하고 살면서 임선달의 출세하기를 기다리려고 생각하여 임선달

과 서로 말까지 사귀게 된 뒤 한번 옷깃을 여미고 단정히 앉아서 자기의 소회를

숨김없이 말하였다.

꺽정이가 집 사가지고 살림 배치할 것을 한온이와 의논하는데 집은 동소문 안

으로 구하겠다고 말하였다. 동소문 안은 꺽정이가 아이 적에 뛰고 놀던 곳이라

문턱에 있는 산언덕과 산골에서 나오는 시냇물은 말할 것 없고 심지어 일초일목

까지도 다른 데와 달리 눈에 익고 마음에 정다운 까닭에 전날 박씨를 치가할 때

도 동소문 안을 말하였으나 한온이가 우선 가까운 데 정하였다가 나중 보아가며

옮기라고 권하여 남성 밑에 집을 정하게 되었었다. 이번에는 꺽정이가 친히 사

람을 데리고 동소문 안에 가서 집을 구하는데 아무쪼록 갖바치와 이봉학이의 외

가가 살던 근처에 구하려고 여기저기 물어보았으나 그 근처에는 알맞은 집 나는

것이 없어서 차차 아래로 내려오며 물어보는 중에 마침 박유복이 어머니가 행랑

살이하던 심좌랑집 옆에 조그만 집 하나 파는 것이 있어서 그 집을 사기로 작정

하였다. 심좌랑집은 그 동안 주인이 몇번 바뀌었던지 심좌랑이 달던 것은 이웃

에서 아는 사람도 없고 그 집을 홍문집이라고들 부르는데 그 집 문간에는 주홍

칠이 아직 바래지 아니한 홍문 하나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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