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Books/Reading Books

임꺽정 8권 (6)

카지모도 2023. 6. 30. 06:20
728x90

 

청석골 일행이 그네터에서 멍석자리로 돌아왔을 때, 자리를 보라고 한 김억석

이의 아들은 어디 가고 없고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일어나지

아니하여 황천왕동이가 “이것이 임자네들 자리요?”하고 시비조로 말을 붙이니

그 중의 한 사람이 “빈 자리에 누구는 못 앉겠소.” 말대꾸를 하였다. “빈 자

리엔 앉아두 좋겠지만 주인이 왔으면 내놔야지.” “앉았는 사람이 주인이지 또

따루 주인이 어디 있단 말이오?” 말하는 꼴이 문문히 자리를 내놓을 것 같지

않더니 “임자들두 한 번씩 꺼꾸루 치어들려 보구 싶소?” 황천왕동이의 으름장

한번에 말대답하던 사람과 앉아 보던 사람이 모두 흘낏흘낏 눈치를 보며 슬금슬

금 일어나서 다른 데로 가버렸다. 한동안 지난 뒤에 김억석이의 아들이 와서 “

자리 안 보고 너 어디 갔었느냐?” 그 누이 배돌석이의 안해가 나무라니 “혼자

앉았기가 심심해서 굿자리에 갔었소.”하고 발명하였다. “아버지 거기 기시드

냐?” “아버지는 점심밥 짓는 데서 일 보시우.” “어기 대왕당 안에?” “아

니오. 대왕당 밖에 솥 걸어논 데가 있소.” “굿은 지금 몇 거리째냐?” “굿은

다시 시작한 뒤 한 거리 하구 지금 두 거리째 하우. 그런데 이번 거리 끝나면

점심들 먹을라구 또 쉰답니다.” “벌써 점심때가 다 됐나?” 배돌석이의 안해

가 해를 치어다보았다. “참말 해가 한나절이 다 되었구나. 열두거리굿에 겨우

네 거리하고 점심 먹으면 여덟 거리를 해 지기 전에 다 할까.” “다 하는 게

무어요? 밤까지 걸리겠답디다. 그래서 서울서 온 상궁마마란 이가 유규사또께

대초를 보내라구 기별하구 대왕당 성관이 홰하구 광솔을 많이 준비시키라구 이

릅디다.” “상궁이 어느 틈에 굿자리에를 내려갔든가?” “아까 살인났다구 떠

들 때 내려갔소.” “너는 그 전에 먼저 갔드냐?” “그래서 사람 공기놀리는

구경을 못했소.” “누가 사람 공기를 놀려?” “사람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구

공기를 놀렸다며 저기선 모두 그렇게들 이야기합디다.” 여러 사람이 일시에 길

막봉이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이애 우리 점심은 어떻게 하실라나 아버지께

가서 좀 여쭤 보구 오너라.” “그러리다.” 김억석이의 아들은 앉지도 못하고

바로 대왕당으로 내려갔다. “그네를 뛰어 그런가, 나는 벌써 배가 고파.” “그

네 안 뛴 우리두 속이 출출하우.” “우리가 조반을 설쳐서 그런 거야.” “그

대신 여기 와서 떡 먹지 않았소?” “그까짓 군음식 잠깐 요기밖에 더 되나.”

이와 같이 시장하단 말들이 나온 끝에 “이애가 가더니 오지 않네.” “이놈이

해망쩍게 또 어디 구경을 가지 않았나.” “점심 올 때 같이 오려고 기다리고

있는 게요.” “점심이 미처 인 됐으면 먼저 와서 말이라두 해야지.” 김억석이

의 아들이 오래 오지 않는 것을 말들 할 때 아이놈이 아니꼽게 뒷짐을 지고 아

실랑거리며 올라오더니 뒷짐진 채 자리 앞에 와 서서 “엿들 좀 잡수실랍니까?

”하고 뒷손에 들었던 큰 엿조각을 자리에 내놓았다. 황천왕동이가 자살궂게 “

이걸루 점심 요기하라드냐?”하고 물으니 김억석이의 아들은 시뜻하면서 “아버

지가 보낸 줄 아시네. 내가 사온 건데.”하고 대답하였다. “네가 무얼루 샀어?

” “공거예요.” “공거라니 엿장사한테 공히 얻었단 말이야?” “아니오.” “

그럼 훔쳤구나.” “별소리 다하시네. 저기 굿당 앞마당에서 땅에 떨어진 장두

하나를 주웠세요. 임자를 찾아줄 수 없구, 나는 가지기 싫구 그래서 엿을 샀지

요.” 여러 사람이 저고리 옷고름에 찬 장도가 있나 없나 보는 중에 서림이가

겉옷 위로 바른편 젓가슴께를 만지더니 부지런히 겉옷 자락을 헤치고 보며 “이

애 내 장두가 없어졌다.”라고 말하여 김억석이의 아들은 저더러 훔쳤다는 것처

럼 눈이 휘둥그래졌다. “너 주운 것이 칼집이 어떻드냐?” “새까만 나뭅디다.

” “끈은 무엇이드냐?” “다 해진 명지끈입디다.”“그게 틀림없이 내 것이다.

그 엿장수 어디 있느냐?” “엿을 다 팔구 빈 목판 가지구 내려갔는걸요.” “

내려간 지가 오래지 않거든 엿 가지구 쫓아가서 장두를 물러오너라.” “글쎄,

벌써 갔는데 지금 쫓아가서 될까요?” 김억석이의 아들이 머리 뒤를 긁적긁적하

였다. 황천왕동이가 어느 틈에 엿을 떼어서 먹어보고 “그 엿 맛나다.”하고 깔

깔 웃었다. “지금 물르긴 어디 가 물르우. 내가 벌써 호닥했으니 고만 그대루

먹읍시다.” “자, 엿을 이리 내시우. 엿임자는 내니까 내가 노느리다.” 서림이

가 엿을 갖다가 사람 수대로 몫을 지어 나누는데 김억석이의 아들을 한 몫 주면

서 “옛다 이놈아. 이담엔 너의 아버지 장두 훔쳐다가 엿 사먹어라.”하고 우스

갯소리 하였다. 엿들을 다 먹고 난 뒤에 김억석이가 일꾼 한 사람과 같이 점심

국밥 열 그릇을 두 목판에 갈라 담아가지고 올라왔다. 서림이가 김억석이

를 보고 바로 정색을 하고서 “자네 아들이 내 장두를 갖다가 엿을 사먹었으니

자네가 물어내게.”하고 말하는데 다른 사람들도 웃거니와 아들까지 픽픽 웃어

서 김억석이는 어리둥절하다가 장도로 엿 사먹게 된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웃으

면서 “저는 장두가 없으니까 환두루 대신 드릴까요?”하고 서림이의 말대꾸를

하였다. “그러면 내가 대리를 보게. 그렇지만 장두 대신 선선히 내놓는 달 젠

환두는 다 봤네. 내던져두 주워갈 사람이 없는 게지.” “참말 제가 이번에 여기

와서 환두 한 자루를 샀는데 물건이 제법 좋습디다.” “자네두 또 땅에 떨어진

걸 줍지 않았나?” “실없는 말씀이 아닙니다. 가을에 벼 닷 말 주기루 하구 샀

습니다.” “자네가 지금 환두는 무엇에 쓸라구 샀나?” “전에 몸에 지녀보든

물선이라 공연히 탐이 나서 샀습지요. 여러분 숙소하신 집 주인이 들구 나는 것

이 있다구 살라느냐구 묻기에 실없이 가져오라구 말했더니 가져왔는데 물건이

탐나길래 그대루 차지했습니다.” “그럼 그 환두는 내 겔세.” “벼 열 말 주신

다면 드립지요.” “저런 욕심쟁이 보게. 앉아서 곱장사할 셈이야.” 서림이 말

끝에 황천왕동이가 손을 내저으며 “환두 흥정은 나중 하구 점심이나 먹읍시다.

” 말하고 국밥을 먼저 먹기 시작하였다.

점심이 끝난 뒤에 배돌석이가 사내들끼리만 편쌈을 구경하러 가자고 발론하였

더니 황천왕동이는 편쌈 구경 재미없다고 싫다고 하고, 서림이는 김천만이가 찾

아온다고 하였으니 다른 데 가지 말고 기다리자고 하고, 길막봉이는 처음에 갈

듯이 하다가 안식구들이 편쌈 구경은 무엇하러 가느냐고 말리는 데 쏠리어서 마

침내 고만둔다고 자빠졌다. 배돌석이는 동무 없으면 혼자 간다고 분분히 옷을

떨어뜨리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배돌석이 간 뒤 남은 사내 세 사람이 근처에서

돌아다니자고 말들 하고 함께 나서서 이리저리 다니는 중에 매로바위 뒤 한뎃솥

걸린 곳을 와서 보니 김억석이 부자가 그제사 점심을 먹는 중이었다. 마침 다른

사람보다 한 걸음 앞을 섰던 서림이가 먼저 “자네 부자는 인제 점심 먹나?”하

고 소리치니 김억석이가 한번 치어다보며 곧 밥그릇을 손에 든 채 일어섰다. “

어서 먹게.” “어째들 오십니까?” “왜 못올 데를 왔나. 자네 보러 왔네.” “

무슨 시키실 일이 있습니까?” “자네가 자랑하던 환두 좀 구경할라구.” “그

건 못하겠습니다.” “어째? 여기 없나?” “여기 있는 제 보퉁이 속에 들었지

만 안 보여 드릴랍니다.” “장두 대신 뺏을까 봐 겁이 나나?” “구경하신다구

아주 차지하시면 저만 낭패 아닙니까.” “안 먹을 의심은 먹지 말구 먹을 밥이

나 먹게.” 서림이가 김억석이와 실없는 수작을 하는 동안에 황천왕동이와 길막

봉이는 매로바위 밑에 와서 바위를 치어다보며 서너 길 되느니 못 되느니 눈어

림을 다투고 있었다. 서림이가 와서 치어다보고 “이 바위 높이쯤은 긴 바지랭

대두루 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잴 수 없다구 치더래두 망해도 법만 알면 대번

바위 높이를 알 수가 있소. 그 아는 법은 조그만 나무때기를 바위와 같은 방항

으로 세우구 그림자 길이를 재어보구 그 다음에 바위의 그림자 길이만 재어보면

바위 높이는 자연 알게 되우. 지금 가령 한 자 되는 나무때기의 그림자가 두 자

가 되었는데 바위 그림자는 스무 자라구 하면 바위 높이가 열 자가 아니겠소.”

수리를 알거냥하고 한바탕 잘 지껄이었다. 김억석이 부자가 먹던 밥을 다 먹고

옆에 와서 섰는데, 서림이의 수리 자랑이 끝난 뒤에 김억석이가 새삼스럽게 “

참말 환두 구경들 하러 오셨습니까. 지금 이리 갖다 드리리까?”하고 물어서 서

림이는 미처 대답하기 전에 황천왕동이가 웃으면서 “누가 환두 구경하러 왔단

말인가? 자네두 꽤 어리숙한 사람일세. 그런 말을 다 곧이듣나.”하고 말하였다.

“실없는 말씀인 줄 알면서두 혹시를 몰라서 여쭤봤습니다.” “사람을 한번 들

었다 놔두 살인났다구 야단치는 판에 환두를 번쩍번쩍 내둘러 보게. 송도부 군

관들이 줄달음박질하네.” “그럴 염려두 없지 않지요.” “환두 이야기는 고만

두구, 여보게 이 바위 위가 편편한가 어떤가?” “올라가 보지를 못했으니까 모

르겠습니다.” “여기 올라가 본 사람이 없나?” “아마 올라가 본 사람이 없을

걸요. 연전에 초군 하나가 동무들과 술내기하구 올라가다가 떨어져 죽었답니다.

” “내가 올라가께 자네 술 한턱을 낼라나?” “술은 달라시면 드릴 테니 위태

한 일 마십시오.” “이까지 데가 무에 위태하단 말인가?” 황천왕동이가 바위

위를 올라가 본다고 갓과 옷을 벗어서 김억석이 아들에게 맡기었다. 황천왕동이

는 백손 어머니와 두 남매가 백두산 속에서 자랄 때에 층암절벽에도 다람쥐같이

다니던 사람이라 매로바위쯤 여반장 올라가려니 생각하였더니, 수십 년 동안 팔

다리를 편히 놀린 까닭에 생각과 달라서 바위 위를 올라오는 데 힘이 들었다.

그러나 올라올 때 힘이 든 만큼 올라온 뒤 마음이 더 상쾌하였다. 이 세상이 혼

자 우뚝 높은 듯도 하고 또 이 세상에 홀로 외로이 남은 듯도 하였다. 편편치

못한 바위 위에 꼿꼿이 서서 휘파람을 휙휙 불었다. 이것이 남매 같이 산속에서

돌아다닐 때 서로 잃어버리고 서로 찾는 군호로 불던 휘파람이다. 휘파람 소리

크기가 여간 피리소리만 못지아니하였다.

매로바위에 사람이 올라간다고 여기저기서 바위를 바라볼 때 청석골 안식구들

도 죽 일어나서 바라보았으나 바위가 대왕당에 가려서 보이지 아니하여 다들 다

시 앉았는데 휘파람 소리가 풍편에 들려왔다. 백손 어머니가 홀저에 깜짝 놀라

면서 “그게 내 동생이야.” 소리를 지르고 벌떡 일어나서 마주 휘파람을 불었

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꺽정 8권 (8)  (0) 2023.07.02
임꺽정 8권 (7)  (0) 2023.07.01
임꺽정 8권 (5)  (0) 2023.06.29
임꺽정 8권 (4)  (0) 2023.06.28
임꺽정 8권 (3)  (0) 2023.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