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왈자패가 험한 산길에 발버둥이치는 여자를 억지로 끌고 가느라고 빨리 가
지 못하여 김억석이 아들이 곧 뒤를 쫓아오게 되었다. 그자들이 송악산의 수풀
속 시냇가 으슥한 곳을 다 버리고 멀찍이 부산동까지 와서 어느 산모롱이 구석
진 곳으로 들어갔다. 산모롱이를 돌아 얼마 아니 들어가서 나지막한 언덕 아래
편편한 잔디밭이 있는데 아늑하기가 방안과 같았다. 미리 자리를 잡아놓은 듯
잔디밭에 기직이 서너 닢 깔려 있었다. 김억석이 아들이 아이들 마음에 그자들
하는 짓을 보고 가려고 산모롱이에 선 큰 소나무 뒤에 와서 은신하고 바라보았
다. 아무리 약한 여편네라도 죽기 한정 날뛰는 것이란 무서워서 여러 사내의 힘
으로 좀처럼 주저앉히지 못하였다. 죽이라고 악쓰며 날뛰는 황천왕동이의 안해
를 중간에 넣고 왈자들이 둘러서서 “아무리 악을 써두 소용없다.” “목청 떨
어질라.” “납뛰지 말구 가만 있거라.” “지랄발광 네굽질 다 해봐라.” 이런
말을 제가끔 지껄이는 중에 어떤 자가 저와 마주 선 얼굴 곱살스러운 자를 가리
키며 “저 양반이 이아의 아자제이시다. 이아 아자제께 수청을 들면 네게는 큰
호강이다.” 말하고 나서 “이아 아자제란 말을 너 알겠니? 지금 송도 도사 나
리 자제란 말이야.” 말하는데 황천왕동이의 안해가 기진맥진하여 악도 못 쓰고
가만히 있는 것을 도사 나리 자제의 위풍이 떨친 줄로 알았던지 얼굴 곱살스러
운 자가 앞으로 나와서 허리를 끼어안으려고 하였다. 황천왕동이의 안해가 그자
의 뺨을 찰싹 치면서 “이놈아, 나 죽여라!” 전보다도 더 모질게 악을 썼다. “
죽일 년 같으니, 양반의 뺨을 치구.” “죽여 달라구 지다위하는 년 죽여버리지.
” 그자들이 곧 죽일 것같이 서두르는 것을 보고 김억석이의 아들이 비로소 가
서 일을 생각하고 줄달음쳐서 오는데 “어 어디 갔다오느냐?”하고 붙드는 사람
이 있었다.
배돌석이가 편쌈터를 찾아갔더니 편쌈판이 한참 어울려드는 모양이나 큰 편쌈
판에서 전고에 없는 편쌈꾼으로 유명하던 배돌석이 눈에는 편쌈이라고 아이들
장난 쇰직하여 구경할 흥치가 없었다. 그리하여 도로 산 위로 올라가려고 오는
길에 처남아이가 정신없이 달음박질하여 오는 것을 보고 어디 갔다오느냐고 붙
들고 물었다.
김억석이 아들이 가쁜 숨을 돌린 뒤에 전후 사단을 얼추 다 이야기하였다. 배
돌석이가 듣고 나서 “산 위에 갈 것 없이 나하구 같이 부산동으로 가자.” 말
하여 처남아이를 앞세우고 오는 길에 팔매질하기에 알맞은 조약돌을 주워서 소
매에도 넣고 손에도 들었다. 김억석이 아들이 소나무 선 산모롱이를 가까이 왔
을 때, 뒤에 오는 자형을 돌아보며 “인제 다 왔세요. 요기만 돌아서면 고만인데
어떻게 하실 텝니까? 저 소나무에 가 붙어서서 엿보실랍니까? 그 동안에 그놈들
이 사람을 죽여놓구 내빼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하고 말하니 배돌석이는
“가만히 있거라.” 대답하고 나서 소매 속에 든 조약돌을 따로 떠내놓고 소매
달린 거추장스러운 웃옷은 벗어서 “이 옷은 저기 어디 풀섶에 갖다 놔두구 돌
멩이는 네가 적삼 앞에 싸들구 내 뒤를 따라오너라.”하고 처남아이에게 맡기었
다. 배돌석이가 조약돌을 바른손에 한 개, 왼손에 댓 개 골라서 쥐고 소나무 선
곳에 와서 구석진 안침을 들여다보니 한 놈이 방장 황천왕동이 안해를 겁탈하려
고 서두는데 네 놈은 조력을 들고 대여섯 놈은 대가리들을 한데 모으고 낄낄거
리고 있었다. 배돌석이의 바른손이 번쩍 들리며 겁탈하려는 놈의 뒤통수를 돌이
들어가 맞았다. 그놈이 한손으로 뒤통수를 만지며 뒤를 돌아보자, 잼처 쏜살같이
들어가는 돌이 양미간을 때려서 그놈은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황천왕동이 안해
의 사지를 각각 잡고 있던 네 놈이 일시에 우 일어서는데 여기서 딱, 저기서 딱,
두 놈은 앞이마들이 깨지고 한 놈은 망건 뒤가 끊어졌다. 배돌석이가 처남아이
에게 손을 내밀어서 적삼 앞에 싸든 돌을 집을 때에 여닐곱 놈이 소리들을 지르
며 쫓아나왔다. 김억석이 아들은 겁이 나서 들고 뛰고 배돌석이는 일변 뒤로 피
해나오며 일변 돌팔매를 쳤다. 팔매질 댓번에 번번이 한 놈씩 맞았건만, 그중에
설맞은 놈이 있어서 쫓아오는 놈은 너댓이나 남고 손에 돌은 하나도 없어서 배
돌석이가 장달음을 놓아 처남아이를 쫓아왔다. 돌을 달라고 손을 내미니 처남아
이가 적삼 앞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적삼 앞섶을 붙잡았던 손이
뛰어오는 도중에 제풀로 놓여서 돌을 떨어뜨려도 몰랐던 것이다. 길에 돌이 많
더라도 박힌 것을 빼내거나 더욱이 손에 알맞은 것을 고르자면 자연 동안이 걸
려서 쫓아오는 놈에게 잡히기가 쉬운데 우거진 풀 속 외자욱길에 돌이 눈에 띄
지 아니하여 쫓아오는 놈들과 맨주먹으로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돌이 열 개 있
으면 열 사람을 대적할 수 있고 돌이 백 개 있으면 백 사람 대적할 수 있지만,
돌 없이 맨주먹으로 대적하기는 너댓 사람도 힘에 벅차서 배돌석이가 도망질을
치러 들었다. 그 동안 쫓아오는 놈들이 벌써 가까이 다가와서 “이놈, 어디루 내
빼느냐!” “이놈, 게 있거라!” 소리들이 곧 등뒤에서 들릴 즈음에 배돌석이는
별안간 돌쳐서서 “이놈들, 돌 받아라!” 소리를 크게 지르며 빈손으로 팔매질치
는 시늉을 내었다. 그놈들이 벌써 돌팔매의 무서운 줄을 알아서 납작납작 풀 속
에 엎드렸다. 배돌석이와 김억석이의 아들이 이 틈을 타서 도망질을 하여 부산
동서 송악산으로 올라가는 원길까지 나왔다. 배돌석이가 길바닥에서 조약돌을
여러 개 주워 쥐고 한참을 기다려 보았으나 뒤쫓던 사람들이 그림자도 보이지
아니하여 되짚어 쫓아오려고 생각하고 처남아이더러 “너는 빨리 산 위에 올라
가서 너의 아버지더러 안식구 하나를 데리구 내려오라구 말해라.”하고 일러서
산 위로 올려보내고 배돌석이 혼자 차츰차츰 다시 오면서 앞을 바라보니 너댓
놈이 헛팔매에 속은 자리에 멀지 아니한 곳에 모여서서 무슨 공론들을 하는 모
양이었다. “어따, 인제 돌 받아라!” 배돌석이가 소리지르고 쫓아들어가며 팔매
질을 다시 시작하였다. 한 놈은 그 자리에 엎드러지고 한놈은 몇 걸음을 달아나
다가 쓰러지고 두 놈은 꿩의 병아리같이 기어서 풀 속으로 들어갔다. 황천왕동
이 안해가 어찌된지 궁금하여 배돌석이가 앞으로 더 들어오는 중에 풀 속에 가
뭇없이 숨었던 두 놈이 눈결에 뛰어나와서 바짝 가까이 대들었다. 배돌석이는
손에 남은 돌을 내던지고 주먹다짐과 발길질로 두 놈과 마주 싸웠다.
김천만이가 배돌석이의 오고 안 온 것을 알아보려고 먼저 음식 목판 지워가지
고 갔던 일꾼을 산 위에 올려보냈더니 그 일꾼이 내려와서 “자리에는 아무두
없구 옆에 사람들에게 물어보니까 아낙네 한 분이 건달패에 붙들려 갔다고 합디
다.”하고 말하여 청석골 사내 세 사람이 모두 술자리를 마치지 못하고 급히 산
위로 올라오는데, 세 사람 중의 황천왕동이는 원래 빠른 걸음을 더욱 빨리 걸어
서 한달음에 올라왔다. 대왕당에 와서 김억석이를 부르니 마루방에서 배돌석이
안해가 뛰어나왔다. 자기 안해가 건달놈들에게 붙들려 가지 않았나 의심먹고 온
것이 틀림없는 사실임을 알고는 가슴이 내려앉으며 눈앞이 캄캄하였다. 자기 누
님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것을 보고도 울지 말란 말 한마디 못하고 그대로
돌아설 때, 배돌석이 안해가 “제 동생이 그놈들 간 곳을 알고 올 테니 여기서
좀 기다리시지요.” 말하는 것을 고개 외치는 것으로 대답하고 바로 나와서 층
층대를 몇 층 내려오다 말고 되올라가서 김억석이를 찾았다. “환두 좀 주게.”
“환두는 드리기 어렵지 않지만 환두를 가지고 가시는 게......” “못 주겠단 말
인가?” “드리긴 드리겠습니다.” 김억석이가 집안에 들어가서 환도를 가지고
나왔다. “혼뜨검들만 시키지, 아예 인명은 상하지 맙시오.” “잘 알았네. 이리
내게.” 김억석이 손에서 환도를 뺏듯이 받아서 손에 든 채 돌쳐서는데 김억석
이가 소매를 붙들었다. “왜 붙드나?” “여러 사람들 보는데 손에 들구 가시는
게 부질없습니다. 철릭 속으루 허리끈에 질르십시오.”하고 철릭 자락을 쳐들어
주기까지 하였다. 환도를 몸에 지닌 뒤에 조금도 지체 않고 나는 듯이 내려오다
가 길막봉이와 서림이를 오며가며 만났다. 길막봉이가 먼저 “어댈 가우?”하고
물었다. “예편네 찾으러 가.” “여편네를 찾으러 가다니?” “내가 여편네를
잃었어.” 서림이가 그 다음에 “어디루 간 것을 아셨소?”하고 물었다. “모루.
” “간 곳을 모르구 어떻게 찾을 작정이오?” “억석이 자식이 뒤를 밟아갔다
니까 가다가 만나면 데리구 가겠소.” “그럼 우리 셋이 같이 갑시다.” “뒤에
천천히들 오우. 나 먼저 가우.” 두 사람이 같이 가자고 붙들어서 더 지체시킬까
저어하여 일변 말을 하며 일변 걸음을 떼어놓았다. 빨리 걸으면서도 김억석이
아들이 어디서 나올까 연방 살펴보았으나 만나보지 못하고 산밑에까지 다 내려
왔다. 어디로 갈까 잠깐 망설이다가 입속의 침을 돌려서 왼손바닥에 뱉어놓고
바른손 지가락으로 한번 톡 쳐서 침이 많이 튀는 방향을 잡았다. 으슥한 곳과
후미진 곳을 유심히 보살피면서 구융바위 동네 근처까지 내려갔다가 송악산 속
에 숨어 있는 것을 못 찾고 지나 내려온 듯 생각이 나서 다시 되쳐 산을 향하고
올라오는 중에, 길막봉이와 서림이가 김억석이 아들을 만나서 데리고 산밑으로
내려오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달음질로 쫓아왔다. 서림이가 앞으로 나서서 “
어디루 가신지 몰라서 한시름이 되더니 잘 만났소.” 말한 뒤에 와서 귀에 입을
대고 “저애가 그놈들 가는 데까지 가보구 오다가 천우신조루 배두령을 만나서
같이 갔다는구려. 배두령 돌팔매에 여러 놈이 다 꺼꾸러지구 너덧 놈 남았는데
돌이 없어져서 쫓겨나오다가 배두령은 돌을 주워 가지구 도루 가시구 저애는 산
위에 말하러 가는 것을 우리가 바루 요 위에서 만나서 길라잡이루 데리구 오는
길이오. 배두령이 일찍 가신 까닭에 아주머니가 욕은 당하지 않았다니 불행중
다행이오.” 김억석이 아들의 소전을 대강 이야기하였다. 황천왕동이는 비로소
적이 안심이 되어서 숨을 한번 길게 내쉬었다. “내가 저애를 데리구 한 걸음
앞서 가보겠소.” 서림이더러 말하는 것을 김억석이 아들이 듣고 “달음박질을
어떻게 했든지 인제는 다리가 아파서 달음박질할 수 없세요.”하고 말하여 황천
왕동이도 먼저 갈 생각을 그만두고 두 사람과 같이 김억석이 아들을 앞세우고
부산동으로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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