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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8권 (9)

카지모도 2023. 7. 3.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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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돌석이의 돌팔매를 맞은 왈자들이 모조리 죄다 면상을 맞아서 혹은 이마가

깨지고 혹은 볼이 터지고 혹은 입술이 짜개진 위에 앞니까지 부러지고 처음에

뒤로 설맞아서 망건 뒤만 끊어진 자도 나중에 앞으로 쫓아나가다가 삭은 코를

맞아서 코피로 옷을 물들이었다. 그러나 얼마 동안 지난 뒤에는 고꾸라지고 엎

드러진 자들이 거진 다 정신을 수습하고 일어나서 상처들을 서로 보아주고 만져

주고 하였다. 그중의 영수격인 도사의 아들만은 뒤통수에 한번, 양미간에 두번

되게 맞고 고꾸라질 때 까물친 채 이내 깨어나지 아니하여 여럿이 모두 와서 구

원들 하였다. 반듯이 눕혀놓고 띠, 옷끈 다 풀고, 버선, 행전 다 벗기고 중간에서

가슴을 문지른다, 갈빗대를 문지른다, 옆에서 손바닥을 비빈다, 발바닥을 비빈다,

한동안 좋이 애들을 쓴 뒤에 도사의 아들이 겨우 사람을 알아보게 되었다. 인제

는 빨리 부중으로 내려가자고 공론들 하였으나 이아 아자제가 걸어갈 가망이 도

저히 없으므로 준비를 차리러 한 사람이 먼저 부중에 내려가기로 작정하였다.

황천왕동이의 안해는 여러 왈자가 억지로 자빠뜨리고 사지를 지지누를 때 어

진혼이 다 나가서 수족을 마음대로 놀리게 된 뒤에도 한동안 자빠진 채 꼼짝 아

니하다가 어떻게 정신이 돌아서 일어나려고 움직이는 것을, 먼저 기신을 차린

왈자 하나가 발길로 몇 번 차서 못 일어나게 하고 그 뒤에는 여럿이 이놈 와서

걷어차고 저놈 와서 걷어차서 이리저리 굴리고 그리고 또 위아랫도리를 함부로

짓밟았다. 그자들 하는 짓이 보기 좋은 꽃을 꺾어서 내던지고 그것도 부족하여

짓밟아 망가지르는 것과 같았다. 이런 몹쓸 짓을 돌팔매 맞은 분풀이로 한 자도

있었을 것이고, 또 남이 하니 덩달아 한 자도 있었을 것이나 대개 속에 불 같은

욕심이 있는데 경황 없어 욕심을 풀지 못하고 배짱 없어 욕심을 채우지 못하여

못 먹는 감 찔러 보는 심사로 한 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먼저 부중으로 내려가

려고 나가던 자가 즉시 도로 뛰어들어오며 “팔매질하던 놈 저기 잡혔으니 어서

들 나오게.”하고 소리를 쳐서 운신을 못하는 도사의 아들 외에는 모두 다 뛰어

나갔다. 배돌석이가 왈자 두 놈과 싸워 한 놈은 다시 대들지 못하도록 꺼꾸러뜨

리고 한놈은 마저 해내려고 힘을 갖은것 다 쓰던 중에, 예닐곱이 전후좌우로 에

워싸고 달려드는데 돌팔매 원수에 눈들이 발갛게 뒤집혀서 작은 환도만한 큰 장

도로 찔러 죽이려고 덤비는 놈까지 있었다. 배돌석이는 당차고 다부진 사람이지

만 형세가 도망 못하면 죽을 판이라 그중 만만하여 보이는 놈을 발길로 동가슴

을 내질러 자빠뜨리고 에워싼 속에서 뛰어나올 즈음에 어떤 놈이 눈결에 발을

걸고 덜미를 짚어서 자빠뜨린 놈 옆에 와서 엎드렸다. 배돌석이가 목숨이 위태

하게 되었을 때 “이놈들!” 난데없는 큰소리가 들리더니 황천왕동이가 큰 환도

를 빼어들고 비호같이 달려와서 닥치는 대로 내리찍었다. 서너 놈은 칼 맞고 꺼

꾸러지고 네댓 놈은 칼 무서워 들고 뛰었다. 배돌석이가 일어나는 것을 황천황

동이가 와서 거들어 주었다. “다친 데 없소?” “나는 괜찮으니 아주머니나 어

서 가보게.” “어디 있소?” “저 안에.” 배돌석이가 산모롱이 안을 가리켰다.

황천왕동이가 안해를 와서 보니 참혹한 꼴이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었다. 다 죽

은 사람인데 이따금 코로 나오는 안간힘 쓰는 소리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표이

었다. “나 여기 왔어.” “눈 좀 떠보오.” 황천왕동이가 안해의 몸을 만지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흐르는 눈물을 씻어가며 들여다보고만 있는 중

에, 김억석이 아들이 앞서 들어오고 그 뒤에 서림이와 길막봉이와 배돌석이가

다같이 들어왔다. 서림이가 약낭에서 사향소합원을 꺼내서 황천왕동이를 주며

씹어서 입속에 흘려넣으라고 하고 또 무엇을 한참 생각하다가 한 옷고름에 한

갓모를 끌러서 김억석이 아들을 주며 갓모로 물을 떠오라고 하여 찬물을 얼굴에

끼얹게 하였다. 얼마 간에 황천왕동이의 안해가 감았던 눈을 떠서 남편을 한참

보더니 웃는 듯 마는 듯 웃고 다시 얼마 만에 손으로 입을 가리켜서 찬물을 한

모금 받아마시고 남편의 손을 더듬어 만지면서 모기소리만한 목소리로 “이게

저승이오?” 묻고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안해가 완구히 정신을 돌린 뒤에 황천왕동이가 비로소 안해 옆을 떠나서 배돌

석이를 와보고 다시 새삼스럽게 “겉이구 속이구 다친 데 없소?”하고 물으니

“더러 살 터진 데두 있구 멍든 데두 있지만 아무렇지두 않아.” 배돌석이가 대

답하고 나서 한옆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도사의 아들을 가리키며 “저놈이 아

주머니를 겁탈하러 덤비든 놈일세.”하고 말하자, 김억석이 아들이 말끝을 달아

서 “저 사람이 송두 도사 나리의 아들이랍디다.”하고 말하였다. 황천왕동이가

칼집에 꽂아놓았던 환도를 다시 빼서 손에 들고 도사의 아들 옆에 와서 발끝으

로 찍신찍신 건드렸다. 도사의 아들이 감고 있던 눈을 슬며시 뜨고 보더니 힘없

이 두 손을 마주 붙여서 비는 뜻을 보이었다.“봐하니 버릇은 톡톡히 배운 모양

인즉 만일 네가 부중 장사치의 자식이라면 그대루 용서해 주겠다. 그렇지만 도

사의 자식은 용서할 수 없다. 너같이 못된 놈이 이 다음에 네 아비처럼 도사가

되거나 어디 원이 되거나 하면 백성에게 갖은 못된 짓을 다할 테니 너 같은 놈

은 진작 없애는 게 좋다.” 황천왕동이의 불호령이 끝난 뒤, 그 사람이 “나는

도사 아들 아니오.”하고 말하는데 말소리는 똑똑치 못하나마 알아들을 만하였

다. 그 거짓말에 의심이 생긴 황천왕동이가 멀리 섰는 김억석이 아들을 가까이

오라고 불렀다. “이놈이 분명히 도사의 자식인 줄 너 아느냐?” “다른 사람이

이 사람을 도사 나리 자제라고 말하구 아주머니더러 수청을 들면 호강이라구까

지 말합디다. 이 사람이 아주머니를 끼어안으려구 하다가 보기좋게 뺨을 얻어맞

았습니다. 아주머니께 물어보십시오. 내 말이 거짓말인가.” 황천왕동이가 다시

그 사람을 내려다보며 “인제두 도사의 자식이 아니라구 할 테냐! 어디 또 말

좀 해봐라!”하고 꾸짖으니 도사의 아들이 눈을 감고 부들부들 떨기만 하였다.

황천왕동이 손에 든 환도가 한번 번쩍하며 도사의 아들은 머리가 몸에서 떨어졌

다. 이 동안에 서림이는 배돌석이, 길막봉이 두 사람과 같이 청석골로 나갈 일을

공론하였는데 배돌석이는 사내 네 사람을 둘씩 두 패로 나누어서 한 패는 황두

령의 안해를 번갈아 업어가며 먼저 나가고 또 한 패는 산 위에 올라가서 한식구

들을 데리고 뒤쫓아 나가자고 말하였으나, 서림이가 말하기를 두 패로 나누는

것보다 한데 모여 가는 것이 좋을 뿐 아니라 산 위에서 북성문 밖으로 나가 달

리골로 내려가면 길에서 군관을 만날 염려가 없어서 좋다고 다같이 산 위로 올

라가자고 하고, 산 위로 올라가는 데는 길두령이 황두령의 안해를 업고 가는 게

좋겠다고 하여 길막봉이는 말할 것도 없고 배돌석이도 자기 말을 고집하지 않고

서림이의 말대로 작정들 하였다. 황천왕동이는 나중에 세 사람의 작정한 것을

서림이가 말하여 듣고 바로 좋다고 찬동하였으나, 황천왕동이의 안해가 남의 사

내에게 업히려고 하지 아니하여 하릴없이 황천왕동이가 안해를 업고 길막봉이가

뒤에 붙어가며 거들어 주기로 하였다. 안해 업는 황천왕동이와 길막봉이가 앞서

간 뒤 또 배돌석이는 잔디밭에 벗어놓는 왈자들 갓을 하나 골라서 자기의 부서

진 갓과 바꾸어 쓰고 나오다가 풀섶에 놓아둔 웃옷을 찾아 입어서 찢어진 적삼

을 엄적하였다. 배돌석이가 의관을 차리는 동안 서림이와 김억석이의 아들이 기

다리어서 어른 아이 세 사람이 같이 오는데, 앞서 간 사내 여편네 세 사람은 벌

써 어디만큼 갔는지 송악산을 한참 올라오도록 눈에 보이지도 않더니 산중턱을

다 못 와서 위에 올라가는 것이 멀리 바라보이고 중턱을 지나온 뒤 얼마만에는

뒤를 바짝 따라오게 되었다. 뒤떨어졌던 어른, 아이 세사람이 앞서 올라와서 대

왕당 마루방에서 안식구들과 이야기를 일장 늘어지게 하는 중에, 사내, 여편네

세 사람이 겨우 올라오는데 황천왕동이는 땀을 어떻게 흘렸던지 고의 적삼이 물

에 담가낸 것 같았다.

백손 어머니와 그외의 다른 안식구들이 황천왕동이 안해를 보고 눈물을 흘리

며 반기는 동안에 사내들은 마루방 밖에 모여앉아서 걸어가지 못할 안식구 세

사람을 어떻게 데리고 가면 좋을까 공론들을 시작하였는데, 김억석이더러 사람

을 몇만 얻어달래서 번갈아 업고 가는 수밖에 없다고 의논이 될 때에 안해를 업

고 오는 데 진력이 난 황천왕동이가 승교바탕과 교군꾼을 얻어달래서 태워 가지

고 가자고 극력 주장하였다.

무당과 박수들은 거지반 굿판에 내려가 있고 일보는 사람들은 저녁밥들을 준

비하느라고 한뎃솥 걸린 곳에 나가 있고 혹간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도 볼일 보

고 곧 도로 나가고 가외의 다른 사람은 당집 문안에 발을 들여놓지 아니하여 청

석골 안팎 식구가 대왕당을 차지하다시피 한 까닭에 공론들을 마음놓고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황천왕동이의 승교바탕 주장을 길막봉이는 대번에 좋다고 찬동하고 배돌석이

는 승교바탕을 한 채도 아니요, 세 채씩이나 김억석이 수로 얻지 못할 테니 부

탁해야 쓸데없다고 우기다가 김천만이더러 부탁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황천왕동

이 자기가 청석골 나가서 가져온다고 말하는데 그러면 될 수 있다고 굽히었으나

유독 서림이가 내처 고개를 외치면서 “지금 천만이를 찾아서 부탁해야 천만이

가 여기저기서 얻어서 장안에서 이 산 위루 올려보내자면 동안이 얼마나 오래

걸리며, 또 청석골을 나가신다니 나가시는 동안은 얼마 안 되겠지만 교군꾼들

들어오는 동안이 있지 않소. 그 동안에 금도군관이 우리 뒤를 밟아서 여기를 들

이치면 낭패가 아니오. 늦잡도리다가는 낭패 볼 테니 한 시각이라두 바삐 나갈

도리를 차립시다.”하고 이승하게 말하여 황천왕동이도 자기 주장을 더 고집하

지 못하게 되었다. 이때 마침 김억석이 아들이 밖에서 들어와서 보은리 사는 사

람이 밖에 왔다고 연통하여 황천왕동이가 반색하고 쫓아가서 김천만이를 맞아들

이었다. “자네 지금 어디서 오나?”하고 서림이가 먼저 말을 물었다. “여러분

올라오신 뒤에 보낼 사람 보내구 치울 것 대강 치우구 여기를 쫓아올라왔더니

한 분두 안 기십디다. 그래서 공연히 이리저리 바장이다가 집으루 내려가는 중

에 부산동서 살인이 났단 말을 듣구 여러분 일이 궁금해서 집에두 못 가루 도루

올라온 길이오.” 김천만이 말이 끝나자, 곧 황천왕동이가 부산동서 일 저지른

것을 대충 이야기한 다음에 걸어가지 못할 안식구가 세 사람인 것을 말하고 승

교바탕 세 채를 교군꾼 껴서 얻어달라고 부탁하였다. “교군바탕은 세 채 아니

라 여섯 채라두 얻어 드릴 수가 있지만 나중에 발설이 나면 나는 송두서 못살게

되지 않소.” “송두서 못살게 되거든 청석골루 들어오지.” “가만히 기시우.

내가 집에 내려가서 어떻게 잘 해보리다. 그러구 나는 다시 안 올 테니 그리 아

시우.” “교군꾼 보내면 우리를 찾아올 수가 있을까?” “이 대왕당 앞마당에

교군바탕 세 채가 와 놓이거든 어디서 왔느냐 누가 보냈느냐 묻지두 말구 그대

루 태워 가지구 가시구려.” 김천만이가 총총히 돌아서 나갈 때, 서림이가 뒤를

따라나오며 늦어서는 소용 없으니 그저 아무쪼록 속히 보내달라고 신신당부하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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