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사람이 길을 비키느라고 길 옆 수풀 아래 와 서서 수군수군들 지껄이는
중에 행차가 앞으로 지나가는데, 진사립 쓰고 남철릭 입고 안장마 위에 높이 앉
아서 거드럭거리는 양반은 원인 것 같고, 갓을 숙여 쓰고 반부담을 타고 뒤에
떨어져 가는 사람은 신연 이방인 것 같았다. 서림이가 김산이더러 봉산 신연 행
차인가 물어보라고 하여 김산이가 길로 나와서 반부담 뒤에 따라가는 군노를 보
고 “이 행차가 봉산 신연행차 아니오?” 하고 물으니 군노는 말없이 고개를 끄
떡하였다.
혜음령으로 장맞이하러 가는 봉산군수를 중로에서 만나서 예정하고 온 일이
다 틀리게 되니 다른 다섯 사람이 서림이만 치어다보는 것은 고사하고 서림이까
지도 별로 좋은 계책이 생각나지 않아서 눈살을 찌푸리고 쓴입맛을 다시다가 다
섯 사람을 보고 “봉산 일행이 오늘 장단 가서 중화하구 송도 가서 숙소할 것이
요, 봉산으루 바루 갈 것 같으면 내일 청석골서 일을 톡톡히 할 수 있지만 해주
루 간다면 오늘 송도 가기 전에 일을 색책으루라두 해야 할 텐데, 심복골패를
불러내서 대추포 근처에서 해보거나 어룡포패를 모아 가지구 널무니 안에서 해
봤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다 불급될 테니 소용없는 말이구 하는 수 없이 우리
임진 가서 배탈 때 흔단을 내서 봉산군수를 망신이나 한번 시키는 수밖에 없겠
소.” 하고 말하였다. 다섯 사람 중에 배돌석이가 "그러면 일이 싱겁지 않소." 말
하고 또 신불출이가 "대장께 죄책을 당하지 않을까요?" 말하는 것을 서림이는
“일이 벌써 짭짤하게 되기 틀린 걸 하는 수 있소. 그러구 우리가 잘못해서 일
이 예정대루 안 됐을때 죄책을 당하지.” 하고 두 사람의 말을 함께 대답한 뒤
“봉산군수를 아주 놓쳐버리면 닭 쫓던 개 울 쳐다보게 될 테니 얼른들 뒤쫓아
갑시다.” 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나섰다. 여섯 사람이 봉산군수를 멀찍이 뒤
따라오는 중에 서림이가 김산이를 보고 “김두령, 한 걸음 앞서 가서 혹시 봉산
으루 바루 가나 좀 물어보시우.”
말을 일러서 김산이가 봉산 행차 뒤를 바짝 가까이 쫓아가서 맨뒤에 가는 군
노와 느런히 같이 가며 서로 접어하는데, 이방이 말위에서 뒤를 돌아보며 군노
를 꾸짖어서 군노는 달음질하여 앞으로 나가고 김산이만 뒤떨어졌다가 일행과
같이 섞이게 되었다. “물어봤소?” 서림이 묻는 말에 김산이는 “해주 감영으
루 간답디다.” 하고 대답하였다.
봉산군수 행차가 임진나루터에 다 와서 군수는 말을 세우고 강색을 바라보고
이방은 말에서 내려와서 이것저것 보살피고 사령과 군노들은 먼저 와서 배 기다
리는 행인들을 모두 뒤로 몰아내었다. 여섯 사람이 나중 와서 한옆에 짐들을
벗어놓고 웅긋쭝긋 서 있다가 배가 떠나게 되자마자, 봉산군수보다 먼저 배에
오르려고 각각 짐짝들을 치켜들고 쫓아들어갔다. 사령, 군노 들이 일변 소리질러
야단치며 일변 가로막고 떠다밀었다. “이놈들아, 눈깔이 없느냐?” “다리 뼉다
귀들을 퉁겨놓기 전에 얼른 저리 나가거라!”
일부러 흔단을 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곱게 오지 않는 말을 곱게 받을 리가 만
무하다. “너눔들이 임진 나룻배 도차지냐?” “양반 떼세 작작 해라, 이놈들아.”
그중의 서림이는 봉산군수의 골을 한껏 지르려고 “쇠뿌러기가 천신만고해서
원 맛을 보니까 맘에 곧 대국천자나 한 상싶은 게지. 되지 못하게 기광두 부린
다.” 하고 큰소리로 떠들었다. 배 탈 준비로 말에서 내려섰는 봉산군수 윤지숙
이 서림이의 떠드는 소리를 듣고 과연 화가 충천하게 나서 “그놈들, 모두 잡아
묶어라!” 하고 호령하니 이방이 원님 뒤를 받아서 “그놈들을 잡아묶으랍신다.
빨리 거행해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사령, 군노 들이 여섯 사람을 붙들려고
달려드는데, 길막봉이가 짐짝을 땅에 놓고 다섯 사람 앞에 나서서 달려드는 관
속들을 가로막았다. 서림이가 자기 짐을 내던지고 길막봉이 짐을 들어다 놓고
잽싸게 묶은 것을 풀고 덮은 것을 열어젖혔다. 짐 속에 병장기가 가득 든 것을
윤지숙이 내려다보고 장사치들이 도둑놈의 패인 줄을 짐작하고 하인 손에서 고
삐를 뺏듯이 잡아채서 말을 칩떠 타며 곧 혼자 오던 길로 도망질을 쳤다.
봉산 관속들이 원님의 도망하는 것을 보고 모두 각각 들고뛰었다. “배두령,
빨리 군수놈을 쫓아가서 혼뜨검을 내구 오시우.”
서림이가 말하여 배돌석이는 장달음을 놓아서 윤지숙의 뒤를 쫓았다.
윤지숙이 어마지두 놀란 바람에 정신 없이 말을 놓아 도망하다가 놀란 마음이
조금 가라앉으며 곧 도망하는 것이 창피한 생각이 나서 처음에 말을 천천히 걸
리고 나중에 말을 아주 멈추고 나루터로 도로 갈까말까 망설이는 중에 “이놈,
게 있거라!”
호통 소리가 뒤에서 들려서 고개를 돌이키고 쫓아오는 놈을 돌아보는데 한쪽
광대뼈에서 딱 소리가 나며 정신이 잠시 아찔하였다. 어느 결에 고개는 앞으로
돌아왔고 한손은 올라가서 광대뼈는 눌렀었다. 뒷덜미와 등줄기와 양쪽 어깻죽
지가 뜨끔뜨끔할 때 비로소 광대뼈에도 돌팔매를 얻어맞은 줄 짐작하였다. 안장
위에 납작 엎드려서 한손으로 말갈기를 움켜잡고 또 한손으로 말고빼를 잡아채
었다. 말이 별안간 뒤를 솟치며 냅다 뛰어서 하마터면 떨어질 것을 말 잘 타는
덕으로 겨우 면하였다. 닫는 말에 태질을 할텐데 채찍이 없어 성화가 났었다. 돌
팔매 치는 놈이 뒤쫓아오지 않는 것도 모르고 엎드린 채 오는 중에 몸이 거북하
여 꼿꼿이 일어앉아서 허리를 재며 둘러보니 서작포 동네가 바로 지척에 있었
다. 동네 앞에 박힌 샘물가에서 푸성귀를 씻는 여편네들이 “아이구 저거 웬일
이야?” “아까 지나가시든 원님인데 어디서 저렇게 되셨을까?” “피투성이가
되셨네, 아이구 가엾어라.”
지껄이는 소리들을 듣고 자기 앞을 살펴본즉 손바닥에도 피요, 철릭 앞섶에도
피요, 말갈기에까지 핀데 갈기의 피는 손에서 묻은 모양이었다. 얼굴이 보기 흉
악할 것을 생각하고 말을 세우고 샘에 내려와서 손을 씻고 손수건을 물에 적시
어서 아픈 광대뼈만 빼놓고 얼굴을 닦고 철릭 앞섶을 대강 문지르는데, 여편네
들이 물도 뻔질 떠주고 얼굴에 닦을 데도 가르쳐 주고 철릭 앞섶도 문지르기 좋
도록 잡아당겨 주었다. 샘물 흘러가는 도랑에 와서 물을 먹는 말이 저도 씻겨
달라는 듯이 뒤를 돌려대는데 보니, 한편 뒷다리 불그러진 마디에 돌팔매를 맞
아서 피가 비쳤었다.
윤지숙은 한 시각이라도 빨리 파주목사를 찾아보고 말하려고 서작포에서 잠깐
지체하고 바로 파주읍으로 달려갔다.
봉산군수 도임 행차와 장사치로 변장한 적당 사이에 시비 나는 광경을 임진나
루 진군 수십명이 목도들 하였건만, 관원도 무섭고 적당도 무서운 까닭에 말썽
스러운 일에는 참견 않는 것이 제일이란 듯이 슬슬 다 피하고 더구나 다른 행인
들은 나루터 근처에도 오지 아니하였다.
서림이 등 다섯 사람이 나루터를 차지하다시피 하고 있다가 윤지숙이를 쫓아
갔던 배돌석이가 돌아온 뒤에 강을 건너가려고 사공을 부르니 사공들이 다 어디
가서 숨었는지 대답이 없었다. 여섯 사람 중 김산이가 조금 배를 저을 줄 안다
고 하여 그대로 어떻게 건너가 보려고 배들을 타고 김산이 시켜 배를 띄우게 할
즈음에, 언덕 위에서 배를 가만 놓아두라고 부르짖는 소리가 나서 쳐다들 본즉
건너올 때 무명 한 필 받은 사공이 거기 서 있었다. 내려오라고 손짓하여도 내
려오지 아니하여 서림이가 쫓아올라갔다. “칼을 가지구 와서 겨누면서 가자구
하면 내가 건너다주리다.”
사공의 말이 뒤에 발뺌거리 장만인 줄 서림이는 선뜻 짐작하고 사공을 붙들고
서서 배를 내려다보며 “신시위 곽시위, 환두 하나씩 가지구 이리들 올라오.”
하고 소리쳤다. 사공이 서림이더러 “이번에두 선가는 후히 내야 하우.” 하고
말하여 서림이는 웃으면서 건너올 때의 곱절로 무명 두 필을 주마고 허락하였
다. 신불출이와 곽능통이가 올라와서 서림이 시키는 대로 날이 번쩍번쩍하는 환
도들을 빼어들고 사공을 양쪽에서 잡아 끌고 내려왔다.
여섯 사람이 임진나루를 건너서 장단길로 오다가 길에서 심복골 패의 괴수 노
릇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에게 술대접을 받게 되었는데, 술 먹으며 이야기
들 하는 동안에 해가 저물어서 그날 밤 심복골서 자고 이튿날 청석골로 돌아오
는 길에 봉산군수가 장단읍에 와서 숙소하고 간 것과 파주 병방이 장교, 사령
삼사십 명을 영솔하고 장단까지 배행한 것을 장단읍내 사람에게 이야기 듣고 알
았다.
여섯 사람이 청석골 떠난 지 사흘 만에 되돌아왔다. 이렇게 빨리들 올 줄 생
각 못한 꺽정이는 여섯이 사랑 앞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안에서 내다보고 “웬일
들이야?” 하고 괴이쩍게 물었다. 여섯 사람 중 두 시위는 마루에 서고 네 두령
은 방에 들어와서 각각 꺽정이에게 문안을 한 뒤, 서림이가 전에 앉던 자리에
와 앉아서 날짜 불급으로 일이 예정과 같이 되지 못한 사연을 말하니 꺽정이가
화가 나서 서림이의 말을 끝까지 다듣지도 않고 “대신 간다구 주적대구 가서
일을 그 따위루 하구 왔어!” 하고 큰소리로 꾸짖었다. “날짜 불급이야 어떻게
하는 수 있습니까?” “중로에서 만났으면 만난 데서 해볼 게지 날짜가 무슨 놈
의 날짜야!” “졸지에 중로에서 만나서 일을 어떻게 할 수가 있어야지요.” “
관속들은 후두둘겨 쫓아버리구 윤가놈을 말께서 끌어내려서 대번에 쳐죽이든지
쳐죽이지 않으면 어디 한 군데 병신이라두 만들어 보내지 그걸 못해!” “백주
대로에 그런 일 하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하기 어려우면 숫제 고만두지 임
진까지 무어하러 따라와?” “배 탈 때 시비를 붙어가지구 망신을 주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을 줄루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윤가놈이 얼뜬 게 도망질을 쳐서
제가 제 망신을 했지 만일 임진 진군들하구 합력해 가지구 잡으러 들었으면 어
떻게 할 뻔했소? 어디 말 좀 해보라구.” “하여튼 이번에 윤가가 망신두 톡톡
히 했지만 배두령 돌팔매에 혼두 단단히 났을 줄 압니다.” “그래두 잘했다구
하는 말인가?” “잘했단 말씀은 아니올시다.” “담당하구 간 일을 잘못하구
왔으면 석고대죄라두 할 것이지 뻔뻔스럽게 무슨 말인고!”
꺽정이의 언성은 처음보다 낮아져서 예삿말 소리와 거의 다름이 없으나 기색
은 점점 더 험하여 바로 보기가 어려웠다. 꺽정이의 화가 꼭뒤까지 난 때는 이
러하였다. 만일 기색을 살피지 않고 언성만 듣고 화가 가라앉은 줄로 알았다가
는 큰코 다치는 수가 많다. 서림이는 이것을 잘 아는 까닭에 꺽정이의 말대로
석고대죄를 하는 것이 화받이가 덜 될 줄 생각하고 “이번 일이 잘못된 건 모두
제 죄올시다. 다른 사람은 죄가 없습니다. 이것만은 통촉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말하고 곧 일어나 밖으로 나와서 공석을 갖다가 계하에 깔고 공석위에 꿇어
엎드렸다. 서림이가 대죄를 드리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든지 다른 사람들도
모두 계하에 내려가서 서림이와 같이 굴복들 하였다. 여섯 사람이 대죄하는 것
을 보고 꺽정이의 기색이 비로소 적이 풀리었다. “서종사는 도중에 유공한
사람이라 서종사루 봐서 모두 용서하니 그리 알구 다들 일어나거라.”
꺽정이가 여섯 사람의 일 잘못한 것은 곧 용서하였으나 윤지속에게 분풀이 톡
톡히 못한 것은 끝내 마음에 불쾌하였다. 불쾌하게 며칠 동안 지내는 중에 소홍
이를 보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이 나서 또다시 서울을 올라가려고 내일쯤 떠나겠
다고 여러 두령에게 말까지 하였을 때, 황천왕동이가 광복산에서 와서 오두령
부인이 오늘 새벽에 상사 났다고 흉보를 전하였다.
오두령의 마누라가 서체로 몹시 앓고 난 뒤 지위가 져서 병병하는 중에 오두
령이 토끼 한 마리를 붙들어와서 점심에 토끼고기를 볶아먹었는데, 그것이 체하
였던지 저녁때부터 토사를 시작하여 밤중까지 쉴 새 없이 토하고 사하고 진기가
다 빠져서 새벽에 숨이 지는데 마치 거품 잣듯 하였다 하고, 허생원이 처음에
보고 곽란에 땀난 것이 좋지 않다고 꺼리면서 약 몇 첩 쓰다가 나중에는 맥의
위기가 떨어져서 구할 수 없다고 약도 쓰려고 하지 아니하여 오두령이 허생원의
멱살을 잡고 날치기까지 하였고, 오두령이 마누라의 송장을 뻗쳐놓고 갖은 넋두
리를 다하며 몸부림을 쳐서 수시도 할 수 없는 까닭에 여러 사람이 다른 방으로
끌고 와서 붙들고 있다시피 하고 박두령 부인이 친모녀와 다름없다고 머리를 푸
는데 배두령 부인도 수양딸은 일반이라고 박두령 부인과 같이 발상을 하였다고,
황천왕동이가 초상 전후의 듣고 본것을 꺽정이 이하 여러 두령에게 대강 이야기
한 뒤 꺽정이를 보고 “이두령 형님이 형님께 여쭈라구 하는 말이 있습디다. 우
리 중 초종 치르는 절차를 잘 알 사람이 서종사니 서종사를 곧 보내주셨으면 좋
겠구, 또 박두령이 의루 맺은 사위래두 남과는 다르니 장전에 오두룩 기별해 주
셨으면 좋겠구, 그러구 법석을 차릴래두 광복서는 중을 청할 수 없으니 여기서
청해 보내주셨으면 좋겠다구 합디다.” 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였다. “법석 벌일 중을 속히 보내주셔야 할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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