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림이의 말을 듣고 꺽정이가 황천왕동이더러 “네가 내일 쌍봉사에 가서 주
장중을 찾아보구 내 말루 법석시킬 중들을 곧 보내달라구 해라.” 하고 말을 일
렀다. “저는 내일 식전에 광복으루 가야겠는걸요.” “왜?” “수의가 여기 있
다구 가지구 오라구 합디다.” “수의는 다른 아이 해보내지 네가 꼭 가지구 갈
거 무어 있니?” “대소렴이 급하다구 오늘루 다녀오라구까지 말하는데요.” “
오두령 내외 미리 짜둔 관이 여기 있을 텐데 관두 네가 지구 갈테냐?” “그걸
누가 지구 가요? 광복서두 그런 말들을 하기에 내가 못한다구 말했세요. 우선
쓸 관은 거기서 박판으루라두 째이구 미리 짜둔 관은 여기 와서 쓴다구 합디다.
” “여기 와서 쓰다니?” “죽은 이가 전번 앓을 때 죽거든 청석골 갖다 묻어
달라구 미리 유언을 했다나요. 그래서 장사는 여기 와서 지내기루 한답디다.”
“오두령이 자기 신후지지 정하기 겸해서 여기 갖다 묻으려구 하는 게지. 굳이
그렇게 하구 싶다면 막을 건 없지만 죽어서 땅속에 묻히는 것만두 상팔잔 줄을
모르는 소리다.”
꺽정이의 서글픈 말끝에 다른 두령들은 모두 회심하여 하는데 곽오주 혼자 데
시근도 않게 여기며 “사람이 한번 죽으면 고만이지 죽은 뒷일을 누가 아우. 달
구질을 하거나 먼가래를 치거나 까막까치 밥이 되거나 죽은 사람이 알배때기가
무어요?” 하고 무뚝뚝한 말소리로 지껄이었다. 꺽정이가 서글프게 웃으면서 “
네 말이 옳다.” 하고 말하니 “형님이 내 말두 옳게 들으실 때가 있네.” 하고
곽오주는 어른에게 칭찬받은 아이들처럼 좋아하였다.
꺽정이가 서울길을 중지하고 청석골 앉아서 광복산 초상 뒷일을 보아주었다.
천신산 쌍봉사 중들을 청해다가 서림이, 배돌석이 두 사람더러 데리고 가라고
하고, 황천왕동이를 수의 갖다 두고 다시 오라고 하여 평안도 박유복이에게 기
별하러 보내고, 김산이를 주장시켜서 장사 때 소입될 물품을 미비가 없도록 미
리 준비하게 하는데, 장삿날 하루는 두령, 두목, 졸개를 죄다 흰옷 입히고 두건
쓰인다고 의차 무명과 두건감 북포를 많이 구해들이게 하였다. 모든 준비에 광
복산 기별을 들어야 할 일도 있고 또 청석골서 기별해 줄 일도 있어서 걸음 잘
걷는 황천왕동이를 두 쪽에 내어도 부족할 판인데, 평안도를 넉넉잡고 닷새에
다녀온다고 말하고 간 사람이 닷새 곱절 열흘이 다 되도록 오지 아니하여 혹시
중로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몰라서 꺽정이가 궁금한 마음을 참지 못하여 두목
중 영리한 사람 하나를 다시 평안도에 보내려고 하던 차에 열흘 되던 날 저녁때
황천왕동이와 박유복이가 동행하여 들어왔다.
황천왕동이가 박유복이 가서 있는 양덕 고수덕을 이틀에 찾아가고 하루를 묵
고 박유복이와 같이 떠나서 이레 만에 들어온 까닭에 내왕 열흘이 걸린 것이었
다. 꺽정이가 황천왕동이더러 먼저 오지 않았다고 꾸지람하는데, 박유복이가 칠
백여 리 먼길을 혼자 오기 심심해서 먼저 오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붙들어서 동
행하였다고 황천왕동이의 발을 빼주어서 꺽정이의 꾸지람이 길지 아니하였다.
박유복이가 평안도에 가서 맹산 두무산에는 삼십여 간 큰 집 한 채와 삼간 초
막 열 채를 지어놓았고, 고수덕에는 큰 집을 방금 짓는 중인데 떠나오던 전날
상량하였고, 성천은 회산에 터만 보아두었었다. 박유복이의 역사시킨 이야기를
꺽정이가 다 들은 뒤에 “네가 없다구 일들을 흥뚱거리지나 아니할까?” 하고
물으니 “다들 제 일루 알구 하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
박유복이가 대답하였다. “회산에 마저 집을 짓자면 앞으루두 달포 넘어 걸리
겠구나.” “한 달 걸리다뿐입니까? 그런데 부비 쓰라구 주신 무명으루 고수덕
역사를 겨우 마치게 되구 회산 부비는 통으루 턱이 없습니다. 그 동안 부비 쓴
하기를 한벌 닦아다가 보시게 할 것인데 총총히 떠나오느라구 못 해가지구 왔습
니다.” “부비야 드는 대루 쓰는 게지. 회산 역사에 쓸 부비가 없으면 보내주든
지 가지구 가든지 네 생각대루 해라, 그러구 네가 가지구 쓰는데 하기는 봐 무
어하겠니? 이 뒤에라두 일부러 하기 닦아올 것 없다.” “형님댁 일두 아니구
도중 일을 그렇게 해서 쓰겠습니까?” “고지식한 사람이다.” “고지식하다시
니 말씀이지만 저의 이종매가 양덕읍 근처에서 사는데 사는 꼴이 망측합디다.
그래서 상목 몇 필 손쓰구 싶은 걸 못 썼습니다.” “네 생각엔 그게 잘한 일인
상싶으냐?” “역사를 다하구 남는 것이면 집어주구 와서 말씀해두 좋겠지만 역
사에 쓸 것두 부족한데 집어줄 수가 있습니까.” “네가 몇 필 손썼으면 그 동
안 역사를 중지하게 되었을까. 그만 변통성이 없으니까 고지식한 사람이란 말이
다. 이 담에 갈 때 한몫 따루 가지구 가서 너의 이종매를 발빈시켜 주어라.” “
집을 지어서 비어두면 못쓸 텐데 그걸 어떻게 하실랍니까? 두무산 집두 지금 비
어 있습니다. 고수덕 집이 다 된 뒤에 저의 이종매를 빌려주어두 좋겠습니까?”
“그건 안된다. 각처 집 있는 데는 아주 졸개들을 십여 명씩 보내둘 테다.” “
그것들 먹구 입을 건 여기서 일일이 대주시렵니까?” “저이들더러 벌이해 먹으
라지, 그걸 누가 귀찮게 대준단 말이냐? 벌이를 할 수 없다면 따비밭이라두 일
구라지.” “두무산에서 일껀 지어놓은 새집을 텅 비어놓구 나오는데 맘에 공연
히 애석한 생각이 나든구먼요. 그래서 고수덕 집이 다 되거든 이종매라두 들여
볼까 생각했었습니다.”
박유복이는 꺽정이와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꺽정이 사랑에서 자고 이튿날 또
다시 황천왕동이와 동행하여 광복산으로 갔다.
오가 마누라의 초상은 광복산에서 입관하고 성복하고 법석하고 그곳에 초빈하
여 두었다가 장삿날 며칠 전기하여 청석골로 운구하여 왔다. 서림이가 날을 볼
줄 알아서 장택도 내고 또 산을 볼 줄 안다고 장지도 잡았다. 초종부터 양례까
지 모든 절차를 서림이가 분별하는데, 아는 것도 있거니와 모르는 것도 알거냥
하여 성복날을 택일하는 것이 좋다고 사일을 늘려서 육일에 시키고 칠월 보름께
초상이 나고 팔월 초승에 장사를 지내서 그 동안이 한 이십 일 될까말까 한데,
유월이장이라니 달만 넘으면 장사지내는 것이 예법이라고 말하고, 명정은 오두
령 부인 원주원씨지구라고 쓰고 관상은 명정같이 갖추쓰지 않아도 좋다고 그저
원씨지구라고만 썼다. 이런 일이 한두가지 아니었으나, 다른 두령들은 모두 서종
사가 어련히 잘 알아하랴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였다.
장삿날 하관시가 사시라 한낮이 되기 전에 평토하고 제 지내고 봉분까지라도
만들 것인데, 오가로 하여 일이 얼마가 늦어졌다. 매사에 뒤스럭스럽고 혼감스러
운 오가의 버릇이 슬픔에도 나타나서 하관하고 횡대를 덮으려고 할 때, 광중에
뛰어 들어가서 관 위에 드러누우며 자기를 함께 묻어 달라고 부르짖었다. 일하
는 졸개들이 뫼셔 내려다 못하여 두령들이 끌어내는데 발버둥이를 쳐서 횡대턱
을 많이 헐었다. 간신히 끌어내 놓은 오가가 횡대를 미처 다 덮기 전에 또 뛰어
들어가서 횡대 위에 누워서 디굴디굴 굴었다. 꺽정이가 오가의 하는 꼴을 보려
고 일하는 졸개들더러 “오두령 소원대루 고려장을 지내 드려라.” 말하고 졸개
들이 주저하는 것을 “왜 빨리 끌어묻지 못하느나!” 하고 호령하였다. 어느 영
이라고 거역하랴. 가래질이 시작되었다. 삼물 반죽한 것이 아랫도리에 떨어질 때
는 오가가 눈을 뜨고 번듯이 누워 있더니 윗도리에 떨어지자 눈을 감고 모로 누
웠다. 박유복이가 차마 보다 못하여 광중에 들어가서 “망령부리지 말구 나가십
시다.” 하고 손을 잡아 일으키니 오가는 순순히 일어나서 박유복이 끄는 대로
못 이기는 체하고 끌려나왔다. 달구질꾼들이 구슬픈 노래를 먹이고 받을 때 벌
써 한낮이 지났었다.
꺽정이는 여러 두령들보다 먼저 산에서 내려와서 사랑에 누워있는 중에 이봉
학이와 서림이가 서로 웃고 지껄이며 사랑으로 들어왔다. 꺽정이가 일어 앉으며
“무어 우스운 일이 있어?” 하고 물으니 “오두령 이야기를 하구 웃었습니다.
” 이봉학이가 대답하였다. “오두령이 또 무슨 해거를 부렸나?” “아니오. 그
저 혼나간 사람처럼 멀거니 앉았습디다.” “그럼 무에 우스워?” “서종사가
실없은 말루 사람을 웃깁니다.” “무슨 실없은 말? 나두 좀 듣구 웃어봅시다.”
꺽정이가 서림이를 보고 말하였다. “남편 죽는 데 따라 죽는 여편네를 열녀
라구 하니 안해 죽는데 따라 죽는 사내는 열남이 아니겠습니까. 오두령이 박두
령의 헤살루 죽지는 못했어두 그만하면 열남으루 치구 정문을 세워 줘두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오두령 집에 정문 세울 공론을 했습니다.”
서림이의 실없은 말을 이봉학이는 되풀이로 듣고도 허리를 잡도록 우스운데
꺽정이는 겨우 빙그레할 뿐이었다. “형님, 열남 정문이란 말이 우습지 않습니
까?” “그 열남이 며칠 가랴. 소첩이나 하나 얻어주면 허겁지겁할 테지.” “오
두령 나이 올에 쉰셋이라두 젊은 사람같이 피둥피둥하니까 앞으루 사람이 있어
야 할걸요.” “십여 년 아래 되는 나버더두 외려 젊어 보이니까.” “젊어 보일
는진 몰라두 이마의 주름살은 형님보다 되려 적을 겝니다.” “내 이마의 주름
살은 노래의 선생님버덤 더했으니까 말할것두 없지.” “형님은 아이 적부터 상
을 찌푸리기 잘하셔서 주름살이 일찍 굳었세요.” “그게 백정의 아들인 표적이
다.” “유복이가 두어 달 객지 고생에 이마의 주름살이 갑지기 많아졌습디다.”
이봉학이가 말을 달리 돌리자, 서림이가 곧 그 말끝을 달아서 “박두령의 고
생을 이두령께서 좀 나눠 하시면 어떨까요?” 하고 꺽정이보고 물었다. “이번
에 평안도를 바꿔 보내란 말이오?” “그랬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당치 않
은 소리요. 일을 시키던 사람이 마저 시켜야지.” “그러면 이두령께서 황주까지
만 같이 가셔두 좋겠습니다.” “좋은 일이 대체 무어요?” “대접받구 공노자
쓰구 여사에 쓸 부비까지두 뜯어가지구 갈 도리가 있습니다.”하고 서림이가 그
도리를 자세히 말하니 꺽정이는 고개를 연해 끄덕거리었다. “유복이 혼자 가선
안될까?”“박두령은 너무 변사가 없어서 일을 잡기가 쉽습니다.” “내가 유복
이를 데리구 가보구 싶소.” “대장께서 가셔두 좋지만 윤지숙이를 보시구 화를
내시면 낭패 아닙니까.” “윤지숙이의 술을 얻어먹으면 화가 있더래두 풀리겠
소.” “그럼 한번 행차해 보시지요.” 이때 마침 다른 두령들이 산에서 내려오
는데 박유복이는 오가를 데리고 가고 오지 아니 하여 꺽정이가 박유복이를 불러
다가 언제 떠날라느냐 물어서 속히 떠나겠다는 말을 들은 뒤 “속히라구 할 것
없이 내일 곧 떠나두룩 하구 그러구 서종사하구 의논해서 행장을 차리게 해라.
”하고 말을 일렀다.
황해감사 전전 등내는 평산 사람 신희복이니 선산과 전장이 평산 사매천에 있
어서 청석골패에게 보복을 받기 쉬운 까닭에, 청석골패가 관하 각군에 횡행하여
도 어름어름하여 덮어두고 지내다가 마침내 대계를 만나서 갈려갔고, 전 등내는
성명이 이탁이니 조정에서 별택하여 보낸 인물인만큼 천품이 관후하되 무능하지
않고 처사가 원만하나 풍력이 있어서 꺽정이도 다소간 기탄하는 마음이 없지 아
니하여 진즉 갈려지기를 바랬는데, 십육 삭 만에 겨우 갈리고 그 때에 유지선이
감사로 난 지 이때 이삭 미만인데 사람은 딱쇠요, 속은 먹통이라고 선성이 나서
관하 이십사관 수령 중에 벌써부터 코아래 진상할 물품을 구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평산부사 장효범이 감영에 가서 연명하고 온 뒤 한번 조용히 이방을 불러가지
고 “이애 이번 관찰사 사또는 무엇이든지 인정으로 드리는 걸 좋아하신다는데
누가 보든지 선뜻 눈에 뜨일 만한 물건이 무엇이 좋겠느냐?”하고 의논성 있게
물었다. “글쎄올시다. 골의 소산이 변변한 게 있어야 합지요.” “그렇기에 너
더러 좀 생각해 보란 말이다.” “보산 청숫돌은 황해도 내에서 나는 데가 여
기 외엔 우봉 뿐이올시다. 귀한 물건입지요만, 그것만 가지구는 안 되겠습지요.
” “그럼 그까지 숫돌이 무어 눈에 뜨일 게 있느냐.” 이방이 고개를 기울이고
한참 생각하다가 “일등 사냥꾼들을 뽑아가지구 호랭이 사냥을 시켜서 호피를
보내면 어떠하오리까?”하고 의견을 내서 부사에게 취품하니 부사는 “그거 좋
겠다.”하고 말한 뒤 “그러면 사냥을 네가 맡아서 시키두룩 해라!”하고 분부하
였다.
이삼 일 지난 뒤 일없는 저녁때 부사가 이방을 불러서 사냥 시키는 이야기를
듣는 중에, 관노 하나가 삼문 밖에서 들어와서 통인방으로 가는 모양이더니 얼
마 만에 수통인이 동헌방에 나와서 “감사 사또의 종제 됩시는 유도사 나리와
감사 사또의 친척 됩시는 박참봉 나리가 평양 구경을 가시는 길에 오늘 읍에 와
서 숙소를 하시는데 밤에 잠깐 들어와 뵈옵겠다구 하인을 보내셨답니다.”하고
부사께 말씀을 아뢰었다. “감사 사또의 사촌과 친척이 읍에 왔단 말이냐?” “
녜.” 부사가 이방을 보고 “네가 친히 가서 전갈을 해라. 원로에 안녕히는 오셨
습니까구, 석후에 내가 나가 뵈입겠습니다구.”하고 말을 일렀다.
이방이 하인을 따라나와서 사처방 앞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라고, 한참 만에
문안을 드리고 부사의 전갈을 옮기었다. 방안의 양반 한 분이 하인을 불러서 가
까이 들어와 섰는 그 집 사람들을 밖으로 내물리고 이방과 한동안 수작하였다.
이방이 다시 관가에 들어와서 부사께 답전갈을 여쭌 뒤 “이번 손님을 잘 대접
해 보내시면 보람이 호피만 못지않을 둣 하외다.”하고 말하니 부사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저녁 전에 다담상 하나를 내보내시는 게 좋을 것 같소이다.” “
빨리 관청색을 불러서 지금 다담 한 상을 차려 내보내구 이따 나 나가 있을 때
주안상 하나를 잘 차려 내보내라구 일러라.” 저녁 전에 다담상을 내보낼 때 부
사가 통인에게 전갈하여 보내고 저녁 후에 부사가 통인 두엇만 데리고 걸어서
사처를 찾아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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