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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8권 (21)

카지모도 2023. 7. 1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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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가 통인 하나를 먼저 들여보내서 연통하여 사처방에 파탈하고 앉았던 양

반들이 분분히 의관을 정제하고 부사를 나와 맞았다. 선후를 서로 사양하다가

유도사는 부사의 앞을 서고 박참봉은 부사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와서 각각

좌정한 뒤 초면인사들을 하였다. 감사의 종제 유일선은 나이 사십 세요, 감사의

척제 박대중은 나이 삼십구 세라 부사의 연배들이었다. 인사 수작을 마치고 부

사가 방안을 둘러보며 “방이 대단 비좁구려.”하고 말하니 “그래두 이 집에선

이 방이 제일 크다는갑디다.” 유도사가 대답하였다. “어째 이런 집에 사처를

정하셨소?” “사처를 빌려준다니까 아무 데나 들었지요.” “내게루들 들어가

서 주무시는 게 좋겠소.” “하룻밤 자구 갈 텐데 번폐스럽게 옮길 것 없소.”

“주무실 때 다시 나오시더래두 내게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십시다.” 부사가 유

도사와 박참봉을 끌고 도로 관가로 들어왔다. 동헌방 아랫목에 널찍널찍 자리를

잡고 앉은 뒤에 부사가 유도사를 보고 “평양 구경을 가시는 길이라지요?”하고

물었다. “녜, 그렇소.” “해주서 평양을 가자면 재령이나 봉산으루 나가는 게

직로인데 어째 이리 작로들이 되셨소?” “해주서 가는 길이 아니구 서울서 가

는 길이오.” “어째 해주를 안 가시구 평양을 가신단 말씀이오?” “종형 도임

할 때 따라가서 해주는 구경했소.” “평양을 가실 테면 해주서 바루 가시지 왜

서울을 올라갔다 다시 가시우? 해주 평양간은 불과 삼백 리 길인데 해주서 서울

삼백팔십 리, 서울서 평양 오백오십 리, 근 천리길을 둘러가신단 말이오? 길 다

니기를 매우 좋아하시는 모양이구려.” “해주 갔을 때는 평양 구경이 염두에두

없었소. 서울을 올라간 뒤에 평안감사의 놀러 내려오란 서간을 받아보구 불현듯

이 구경갈 생각이 나서 저 사람을 끌구 나선 길이오. 저 사람이 해주를 가지로

라구 하니까 평양 구경하구 해주루 갈까 생각하우.” “평양감사와 친하시우?”

“녜, 우리 동네 어른이오.” 부사와 유도사 사이에 이런 수작이 있은 뒤 주인

손 세 사람이 여러 가지 세상 이야기들을 하였는데, 세 사람이라야 박참봉은 간

간이 한두 마디씩 말참례를 할 뿐이었다.

왕세자 관례가 가까웠는데 세자빈 간택은 말썽없이 되었는지 서원부원군이 자

기 딸의 시누이 황씨가 색시를 억지로 간택에 뽑히게 하느라고 색시의 사주를

협작으로 고쳤다는 소문이 낭자하나 정말 그런 짓을 하였을까, 하여간 서원부원

군 까닭으로 간택에 말썽이 생긴 모양인데 예조 거행이 태만하다고 예조의 판서

이하 여러 관원이 모두 대계를 만났으니 일이 우습다고 서울 소문도 이야기를

하고, 금년 한재가 심하여 팔도가 다 흉년인 모양이나 양서는 연년 흉년에 백성

이 살 수 없을 지경이라고 시골 연사도 이야기를 하고, 또 칠월 이후로 꽁지 달

린 별이 자주 보이던 중에 사오 일 전 팔월 초하룻날 밤 사경 오경에 별똥 누는

것이 사방에서 비오듯 하였으니 이것이 필시 좋지 못할 징조라고 재변도 이야기

를 하였다. 어느 사이에 밤이 들었다. 부사가 통인을 불러서 주안상을 들이라고

분부하였다. 한동안 지난 뒤에 떡벌어지게 차린 주안상을 통인들이 맞들어 들여

왔다. 처음에는 통인들이 술잔을 부었으나 송도 순배로 잔을 연해 돌려서 여남

은 잔 돌려먹은 뒤부터는 술잔을 친히들 부어서 서로 주고받고 하였다. 부사가

술이 엔간히 취하였을 때 유도사와 박참봉을 돌아보며 “여보게, 우리 서루 허

교들 하세.”하고 말하니 사람이 진득해 보이는 박참봉은 되려 선뜻 “좋은 말

일세.”하고 대답하는데 호걸 남자로 생긴 유도사는 허허 웃기만 하고 대답이

없었다. “노형은 나하구 허교하기가 싫소?” 부사의 뇌까리는 말도 유도사는

대척 않고 또 허허 웃기만 하여 부사가 성이 나서 “말이 말 같지 않소? 어째

웃소?”하고 시비를 차리었다. 유도사가 천연덕스럽게 “호반 친구가 좀 창피하

지만 터줌세.”하고 말하여 부사는 더욱 성이 나서 “창피라니 봉변이로군.” 볼

멘소리를 하며 술자리에서 뒤로 물러나 앉았다. “우리더러 술을 고만 먹으란

말인가? 주인 된 도리에 그럴 수가 있나. 이 사람 이리 들어앉게.” “홍당지쪽

들이 호반을 업신여기드니 남행뿌스러기까지 차차루 못된 본을 떠가거든. 아니

꼬운 일두 다 많지.” “자네 속시원하게 말할까? 나두 투필한 사람일세.”“무

어야? 그럼 호반 친구란 웬 소린가?” “자네 성내는 게 우스워서 그런 소리를

해봤지.” “그러면 내가 벗하자는 데 왜 웃었나?” “우리들이 황해감사의 결

찌가 아니라면 평산부사가 초면에 벗을 하자겠나? 그래서 웃었네.” “에 이 사

람, 알 만한 처지면 일면여구지 초면 구면이 왜 있을까.” 성이 났던 부사가 그

동안에 석연하게 풀리어서 “자, 술이나 더 먹세.”하고 다시 술자리로 들어앉았다.

술이 식어서 다시 데워 오고 또 술이 없어져서 새로 들여왔다. 주인과 손이

권커니잣거니 술들을 먹는 중에 밤이 깊어져서 시중드는 통인들 눈에 잠이 가득

하였다. 통인들이 손님을 민주고주만 여길 때에 술상이 겨우 끝이 났다. 부사가

유도사더러 “여기 볼 건 별루 없지만 이삼 일 놀다 가게.”하고 말하니 박참봉

이 먼저 “아니야, 내일 가야 해.” 대답하고 유도사는 그 다음에 “앞으루 갈

길이 머니까.”하고 박참봉 대답에 주를 달았다. “그래 내일 꼭 떠날 텐가?”

“떠나겠네.” “그럼 아침들이나 나하구 같이 먹구 느직해서 떠나게.” 유도사

가 그럴듯이 하다가 “여기서 늦게 떠나면 내일 숙소참이 없을걸요.”하는 박참

봉의 말을 듣고 “아침까지 같이 먹으나마나 마찬가지니 그대루 일찍 떠나겠네.

”하고 부사에게 대답하였다. “자네들이 일찍 떠나면 나는 식전 조사 까닭에

나가 보기두 어려우니 그건 너무 섭섭하지 않은가?” “이담에 서울서 만나세그

려.” “앞으루 만날 날이야 많겠지만 이대루 작별하기가 섭섭하단 말일세. 평양

서 어느 때쯤 해주루 오겠나? 해주 올 때를 알면 하인이라두 하나 보냄세.” “

평양 가서 며칠 묵게 될지 그건 가봐야 알겠나.” “기생 놀이채 줄 건 자네가

뒤대려나?” “어렵지 않은 일일세. 그 대신 해주 와서 종씨 영감께 공송이나

잘 해주게.” “평산 술값을 해주 가서 낼 테니 염려 말게.” 부사와 유도사가

마주 보고 웃는데 박참봉도 옆에서 따라 웃었다.

유도사와 박참봉이 사처에 나와 자고 이튿날 식전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통

인 하나가 나와서 밤 사이 안녕히들 주무셨느냐 부사의 전갈로 묻고 가고, 소세

하고 조반들 먹을 때 관노 하나가 상목 열 필 묶은 것을 지고 나오는데 이방이

따라나와서 약소하나마 객지 비용에 보태 쓰라고 부사의 전갈을 옮긴 뒤 따로

은근히 원로에 조심들 하라고 당부하고 가고, 떠날 임시에 장교 둘이 부사의 몸

을 받아가지고 전송하러 나와서 멀리 보산역말까지 배행하였다.

보산역말에 사는 사냥꾼 들이 호랑이를 잡으려고 성악산 기슭에 함정을 파놓

았었는데, 이날 식전에 함정을 가서 본 뒤 호랑이 발자국을 찾으려고 산속으로

한동안 돌아다니다가 집으로들 돌아오는 길에 양반의 행차를 만나서 길을 비키

었다. 행차의 기구는 장할 것이 없어서 안장마 하나, 반부담 하나, 마부 둘, 하인

둘 뿐이나 마부와 하인들의 길을 휩쓰는 것과 말탄 양반들의 거드럭 거리는 품

이 무슨 별성 행차만 못지아니하였다. 사냥꾼들이 그 행차를 지내놓고 오면서

“나는 꼭 속았네.” “나두 처음엔 서울 양반들로 알았어.” “안장말 타구 앞

에 가는 게 대장이지?” “대장이 친히 나갈 젠 무슨 큰일 하러 가는가베.” 이

런 말들을 서로 지껄이었다. 사냥꾼들이 보산역말을 다 와서 주막거리를 지나가

다가 안면 있는 장교들이 주막 마루에 앉았는 것을 보고 한 사람이 먼저 인사성

으로 “어째들 나오셨소?”하고 묻자, 다른 한 사람이 곧 그 뒤를 대어서 장난

조로 “누구를 잡으러 나왔소?”하고 물었다. 장교 한 사람이 눈을 흘겨 뜨고

바라보며 “자네가 걸렸다네.”하고 말하는데, 말하는 것이 조금도 거짓 같지 아

니하여 그 사냥꾼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나타났다.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걸려요?” “자네 어떤 양반님네게 발악한 일이 있나?” “그런 일은 꿈에두 없

소.” “그래두 어떤 양반이 자네를 치죄해 달라구 원님께 청한 모양이든데 ”

“그 눈깔 빠질 놈의 양반이 대체 누구요?”“그건 몰라.”“읍내 싸전 고샅 신

생원댁 아니오?” 그 사냥꾼이 한참 생각해 보다가 물었다. “신생원께 무슨 작

죄를 했나?” “신생원이 이월 초생에 장끼 한 마리 사먹은 값을 이때까지 안주

기에 요전에 가서 말 몇 마디 한 일은 있소.” “필시 불공설화를 한 겔세그려.

” “아주 떼먹을 테냐구 말한 것밖에 불공스럽게 한 말이 없소.” “양반들 앞

에 기침 한번 크게 한 것두 죄루 몰면 죄가 되니까 장끼 값 조른 것이 죄가 되

어 잡혔는지두 모르겠네.” “그만 일에 잡아갈 것 무엇 있소? 인정으루 모면을

좀 시켜 주구려.” “자네 대신 우리더러 넙치가 되란 말인가? 그건 안 되겠네.

” “공연히 그러지 마시우.” “공연히라니 자네가 예사루 걸렸으면 우리가 둘

씩 나오겠나 생각해 보게.” “술 한턱 낼 테니 인정 좀 쓰시우.” “글쎄, 안

된다니까 그래.” “집에 산저담이 두 보 있는데 신발값으루 한 보씩 드리리다.

” 이때껏 손으로 입을 막고 앉았던 다른 장교가 입에서 손을 떼고 그 사냥꾼더

러 “나는 자네가 꽤 약은 줄 알았더니 얼뜨기가 짝이 없네그려.”하고 웃음 반

말 반으로 말하는데, 먼저 장교가 동무 장교 어깨를 툭 치며 “입아귀를 닳려서

간신히 얻어놓은 산저담을 자네가 터쳐버리네그려.” 말하고 둘이 함께 껄껄 웃

었다. 잡혀 갈까 겁이 났던 사냥꾼이 장교에게 놀림받은 줄을 깨닫고 “예 여보,

사람을 그렇게 속인단 말이오?” 하고 책망하니 “인사 잘못하면 더러 속아 싸

지.” 그 장교가 대꾸하였다. “내가 무얼 인살 잘못했소?” “무얼 잘못했느냐

가르쳐 줄까? 우리를 보구 안녕히 나오셨습니까 인사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루 나오셨습니까 인사할 것이지, 누구를 잡으러 나왔소가 무언가? 우리는 사

람만 잡으러 다니는 사람인가?” 동무 일을 염려하여 가지 않고 섰던 다른 사냥

꾼이 장교들 앉은 마루 끝에 와서 걸터앉으며 “참말 무슨 일루들 나오셨소?”

하고 물으니 “서울 손님 전송하러 왔네.” 사람 순직한 장교가 대답하였다. “

서울 손님은 어디 갔소?” “지금 자네네들 오는 길에 말타구 가는 양반들을 만

났겠지. 그 손님들일세.” “그 손님들이 누구요?” “새 감사의 지친들이라네.

” 놀림받은 사냥꾼이 마루 앞에 와 서 있다가 이 장교의 말을 듣고 하하 웃고

서 “잘 속았소. 잘 속았어. 남을 속이드니 잘코사니요.” 놀리던 장교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빈정거리었다. “무어야 속다니?” “그게 서울 손님 아닙디다.” “

서울 손님이 아니라니 무슨 소린가?” “청석골 대장입디다.” “꺽정이란 말인

가?” “두번 말할 거 있소.” “거짓뿌렁 아니지?” “나는 누구처럼 거짓뿌렁

할 줄 모루.” “자네두 적당과 한통속일 겔세그려.” “누굴 죽일라구 그런 말

을 하시우? 나하구 저사람하구 금교역말 아는 친구를 찾아갔을 때 두석산 속에

사냥을 나갔다가 적굴에 잡혀가서 그날 사냥한 토끼 두 마리, 노루 한 마리 다

뺏기구 목숨만 살아나온 일이 있소.” 장교들이 사냥꾼의 말을 듣고 보산서 즉

시 읍으로 들어오고 읍에 들어오는 길로 바로 관가에 들어가서 부사께 이 사연

을 아뢰었다. 부사는 어이가 없어서 한참 동안 말을 못하다가 급하게 전인을 띄

워서 서흥부사에게 기별해 줄까 생각하고 이방을 불러서 의논하니 이방의 말이

사냥꾼의 종없는 말을 준신할 수도 없거니와, 설혹 준신할 만하더라도 도적

괴수가 평산 왔을 때 잡지 못하고 서흥이나 봉산에 가서 잡히게 되면

공은 남에게 밀어주고 우세는 혼자 차지하시게 되는 셈이니 숫제 서흥, 봉산, 황

주 각군에서는 어떻게들 하나 두고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여 부사가 이

방의 말을 옳게 듣고 감사의 사촌이 도적의 괴수란 말을 쓸어 덮어두고 말았다.

유도사의 일행은 평산서 떠나던 날 서흥 와서 숙소하였다. 사처 잡고 들어앉은

뒤, 평산서와 같이 하인 하나를 관가에 들여보내서 석후에 부사를 찾아본다고

선성을 놓았더니 부사가 그 하인을 불러들여서 여러 가지 말을 물어본 뒤 “내

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 나가 뵈입든 못하나 석후에 들어들 오시면 만나 뵈입겠

다구 가서 말씀해라.” 일러보내고 따로 통인 하나도 내보내지 않는 것이 벌써

평산 같은 후대는 바라기가 어려웠다. 하인이 관가에 다녀나와서 부사가 여러

가지 말을 묻더라고 말할 때, 무슨 말을 묻더냐고 유도사가 물어보았다. “택호

가 무엇이냐, 나리들 연세가 얼마시냐, 어디를 가시느냐, 감영에서 오시느냐, 서

울서 오시느냐, 서울댁 동명이 무었이냐 별 걸 다 묻습디다.” “그래 다 대답했

느냐?” “묻는 대루 다 대답했습지요. 서울댁 동명을 물을 때 남소문 안이라구

대답했솝드니 부사가 남소문 안을 잘 모르는지 남소문 안이야 하구 고개를 비틀

어 꽂습디다.” “밖에 나가 있거라.” 하인을 내보낸 뒤 유도사는 박참봉을 보

고 “하인들이 제멋대루 수습 없이 지껄이지 못하게 조용히 한번 일러두게.”

하고 말하였다. 저녁밥들 먹고 한동안 지난 뒤 유도사와 박참봉이 부사를 만나

러 관가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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