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사가 군수의 말을 바꿔 타고 혼자 달려오는데 길을 몰라서 마산 가는 길
로 얼마를 오다가 길가의 농군에게 물어서 길 잘못 든 줄을 알고 길을 자세히
배워가지고 오느라고 지체도 많이 하고 길도 많이 돌았건만, 휴류성에 올 때 뒤
에 떨어졌던 일행과 어금버금 같이 왔다. 휴류성은 신라 적에 쌓았다는 옛성이
라 석축이 태반이나 무너졌었다. 성자리를 대강 둘러보고 신룡담으로 향하려고
할 때 군수가 유도사더러 “이번에는 빨리 달리지 말고 천천히 걸려보게.” 취
재보듯 말하는 것이 유도사 마음에 아니꼬웠으나, 말을 빌릴 욕심에 군수의 말
대로 천천히 걸리었다. 빨리 가려고 애쓰는 말을 빨리 가지 못하게 제어하는데
수단이 익숙하여 순하지 않은 말이 순한 말같이 잘 복종하였다. “자네 말타는
것이 법수가 있네. 내 말을 빌려줄 테니 닷새 기한은 넘기지 말게. 내가 말을 하
루 한번 못 보면 맘이 한구석이 빈 것 같애.” “나두 말을 사랑하는 까닭에 자
네가 사랑하는 말을 빌려준다는 것이 조만 정분이 아닌 줄 짐작하네.”
유도사와 군수는 길이 좁고 넓은 것을 따라서 말을 앞으로 세우기도 하고 또
나란히 세우기도 하며 신룡담까지 같이 왔다.
용추의 물 깊이는 으레 명주실이 몇 꾸리씩 풀리는 법이라 침침한 물 밑에 잠
겨 있는 용을 사람의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더러운 물건이 용추에 빠질 때 물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용의 조화라고 한다. 이것은 어느 용추든지 도항정 매일
반이나 신룡담의 용은 다른 데 이무기와 달라서 신통을 부리고 영검을 보인다고
신룡담사란 사당집까지 지어놓고 일군 백성이 모두 위하는 것이 다른 용추에는
별로 없는 일이었다. 일행이 신룡담에서 지체한 뒤에는 바로 봉황대로 나오는데
관하인들을 앞에 내세워서 길을 치우며 나왔다.
봉황대는 이름이 높이 난 가량하면 경치가 실상 하치않으나 서흥강과 은파천
의 여러 줄기가 얼기설기 얽혔다가 재령강과 합하여 굽이쳐서 흐르는 곳에 넓은
들이 봉산, 재령 두 골에 걸쳐 열리어서 대 위에 높이 서서 사방을 바라볼 때,
눈앞을 가로막는 것이 없어 시원하였다. 시원한 맛에 박참봉은 주저앉는 것을
유도사와 군사가 다같이 내려가자고 재촉하여 물가에 차일 치고 자리 깔아놓은
곳으로 내려와서 기생들의 소리도 듣고 기생들과 우스개도 하다가 고기잡이들이
그물질로 잡아낸 펄펄 뛰는 생선을 회 만들어서 술안주도 하고 지지미로 밥반찬
도 하여 점심밥들을 달게 먹었는데, 그중 유도사는 군수나 박참봉보다 몇 곱절
많이 먹었다. 군수가 유도사를 보고 “자네 원력이 세지?” 하고 물으니 유도사
는 웃으면서 “글쎄, 장정 한둘은 거느릴 수 있겠지.” 하고 대답하였다. “자네
신익 신첨사를 아나?” “나는 안면 없어. 그건 왜 묻나?” “그가 원력이 장사
지.” “기운꼴이나 쓰면 세상에선 으레 장사라구 하느니.” “아니 신첨사는 참
말 장사야.” “그가 장산 것을 자네 눈으루 본 일 있나?” “내 눈으루 본 일
은 없지만 그가 장사루 발신하게 된 것은 다들 잘 아는 일이니까.”
유도사는 신첨사의 내력을 알지 못하지만, 군수가 다들 잘 아는 일이라고 말
하는 것을 묻기가 창피하여 말을 더 하지 아니하는데 박참봉이 군수더러 “다들
안대두 나는 모르니 어디 신첨사 이야기 좀 들어보세.” 하고 말하였다. “신첨
사가 일개 무명씨 신선달루 청파 배다리 옆에서 살 때 어느 날 병판 행차가 나
오는데, 신선달이 길에 나섰다가 벽제 소리를 듣구 길을 비킨다는 것이 미처 잘
비키지 못해서 전배 기수에게 욕을 보구 분하니까 그 기수를 번쩍 들어서 개굴
창에다 처박았더라네. 다른 병판 같았다면 신선달을 초죽음시켰겠지. 그때 병판
유전 유판서는 호기 있는 양반이라 신선달을 일부러 불러보구 문안에 들어오는
길루 위에 아뢰구서 바루 선천을 터주었다네. 그래 신선달이 선전관을 얻어 했
네. 그런데 또 작년 재작년 오월인가베. 위에서 농사짓는 걸 보시려구 서교에 거
둥합셨는데 별안간 광풍이 일어나며 위에서 앉아 기신 막차의 차일끈이 끊어져
서 차일이 한편으루 넘어백히는 것을 신선전이 마침 가까이 있다가 끊어진 끈을
붙잡아 캥겨서 넘어백히지 않았다네. 그래 벼슬이 자꾸 올라서 지금 어디 첨사
루 있네. 위에서 장사루 압셔서 특별히 발탁해 줍시니까 얼마 안 가서 병수사를
할 겔세.” “그까지 힘이 무에 장사란 말인가?” “저 사람 보게. 장정 하나 번
쩍 들어서 동댕이치는 것두 그리 쉽지 않지만 바람이 쓰러뜨리는 차일을 한손으
로 붙들어서 바루 세우는 게 여간 기운 가지구 될 줄 아나? 더구나 궐내 차일이
어디 이 따위 차일인가. 유착스럽게 크지.” “우리 형님에게 대면......” “이 사
람들아.” 유도사가 박참봉의 말을 물질뜨리고 “경치 구경 하러 와서 이야기하구
앉았는 건 기생 데리구 떡먹는 거나 마찬가지 운치 없는 짓일세. 밖에 나가서
시원한 바람이나 쏘이세.” 하고 먼저 일어서니 박참봉도 따라 일어섰다.
군수가 손들과 같이 물가에 와서 거니는데 기생, 통인들도 뒤를 따라다니었다.
다시 그물질을 시키고 고기 잡는 구경을 하다가 저녁때 다 되어서 읍으로들 들
어왔다.
이날 밤에 군수가 또 술을 먹자고 동헌으로 청하는데, 박참봉은 곤하다고 초
저녁부터 수청 기생을 데리고 자기의 침소인 작은방에 건너가서 일찍 자고 유도
사만 혼자 술대접을 받았다. 군수가 술을 여남은 잔 대작한 뒤부터 연해 하품을
하더니 마침내 앉아 배개지 못하고 술상 옆에 드러누워 코를 곯아서 유도사는
기생들만 데리고 술을 먹다가 나중에 술 한 병, 마른 안주 한두 접시 기생들에
게 들려 가지고 자기 사처방으로 내려와서 한 병 술을 마저 들어낸 뒤에 기생들
과 그대로 같이 잤다. 이튿날 유도사와 박참봉이 봉산서 떠나는데, 유도사가 군
수의 말을 빌려 타게 된 까닭에 박참봉 타고 온 말은 반부담 위에 하인의 걸며
졌던 짐들을 주워얹어서 아주 복마를 만들었다. 군수가 마부까지 주며 데리고
가서 말을 주어 보내라고 하는 것을 유도사가 하인 하나를 서울집에 올려 보내
는 순기편에 말을 돌려보낼 테니 염려 말라고 마부는 고만두게 하였다.
봉산읍에서 이십 리 사인암을 지나오니 여기는 황주땅이라 황주 관속들이 마
중을 나와서 등대하고 있었다. 봉산 통방에서 전날 방위사통을 놓아서 감사의
사촌이 오는 줄을 황주서 미리 알았던 것이다. 관속들이 말머리에 느런히 서서
일제히 문안을 드린 뒤에 그중의 안전 하나가 유도사를 쳐다보며 “마침 사또
안 기신데 행차합셔서 재미가 없으시겠소이다.” 하고 말하였다. “너의 사또 어
디 가셨느냐?” “서울댁에 행차하셨소이다.” “판관 나리는 기시겠지?” “네,
기십니다.” “그럼 판관 나리나 잠깐 만나보구 가겠다.”
유도사와 박참봉이 황주 관속들을 전후로 늘여세우고 황주 성안에 들어와서
판관을 만나본즉, 할 수 없는 고리삭은 샌님이라 데리고 말할 잡이도 못 되고
국물을 우려낼 건덕지도 없으므로 점심 한 끼만 얻어먹고 황주읍에서 삼십 리
구현원 와서 숙소하였다. 여기는 평안도 중화 땅이니 평안감사 새로 올 때 신구
감사가 교대하는 곳이다.
유도사와 박참봉은 밤중까지 이야기를 하느라고 잠을 별로 안잤건만 그 이튿
날 첫새벽에 일어났다. 조반을 재촉하여 먹은 뒤에 길들을 떠나는데, 박참봉은
하인, 마부 네 사람을 다 데리고 평양길로 가고 유도사는 말을 자견하고 혼자
황주길로 도로 왔다.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황주 근방 양반이 먼길 하는 정분
좋은 친구를 평안도 초입까지 같이 와서 작별하고 돌아가는 것과 같았다. 유도
사가 황주읍에를 왔을 때, 전날 사인암으로 마중나왔던 사령 하나가 길거리에
섰다가 깜짝 놀라는 것을 곁눈으로 보았지만 사령이 와서 알은 체할 사이 없이
말을 달려 지나왔다. 동선역에 와서 해를 쳐다본즉 점심때는 아직 멀었으나, 말
의 배를 채워 주려고 길가집 앞에 말을 세우고 주인을 불러내서 상목으로 셈할
테니 점심 한 끼 해주겠느냐 물어보았다. 사람 양식과 말먹이를 통히 안 가지고
두자 상목 십여 필만 견대에 넣어서 말안장 뒤에 달고 온 까닭이다. 주인이 묻
는 말은 대답 않고 “어제 황주루 가시던 손님 아니십니까?” 하고 되물었다.
“그래.” “어째 도루 오십니까?” “급한 볼일이 있어 도루 오네.” “네, 급
한 볼일루 도루 오세요? 점심때가 상기 멀었는데 어느새 점심을 잡수시렵니가?
” “조반을 설치구 왔어.” “읍이 얼마 안 되는데 읍에 들어가셔서 잡수시지
요.” “점심을 못 해주겠단 말인가?” “아니오. 해달라시면 해드립지요만 찬이
없어 놔서.” “찬은 장진건이만 해두 좋구, 그러구 사람버덤두 말을 잘 먹여주게.”
유도사가 그 집에서 상목 두어 끗을 주고 말, 사람이 다같이 배를 든든히 불
린 뒤에 먹은 것이 자위 돌 동안 밖에 나와서 말을 가찰하여 몸뚱이도 긁어주고
갈기도 쓰다듬어 주고 하다가 다시 타고 봉산읍으로 달려왔다.
유도사가 봉산 장터 한바닥을 꿰뚫고 나오며 좌우를 돌아보아도 관속 하나 눈
에 뜨이지 아니하였다. 서흥 가는 길목까지 거의 다 나오다가 홀저에 말머리를
돌이켜서 관가를 향하고 들어왔다. 말이 눈에 익은 홍살문을 바라볼 때 대가리
를 치켜들고 으흥 소리를 질렀다. 작청 앞에 박힌 등구나무 아래 사령 서넛이
앉아 있다가 말소리를 듣고 부지런히들 쫓아나가니 유도사는 말을 세우고 사령
들 오기를 기다리었다. 사령들이 말머리에 와서 허리들을 굽실굽실한 뒤 “나리
웬일이십니까?” “어째 도루 오셨습니까?” “평양 행차를 고만두시기루 파의
하셨습니까?” 제각기 한마디씩 묻고 다같이 유도사를 쳐다들 보는데 “이눔들
아, 이 눈깔 없는 눔들아!” 유도사 입에서 까닭 없는 호령이 나와서 사령들은
어리둥절하였다. “나를 유도산 줄루 아느냐? 이눔들아, 내가 임꺽정이다, 임꺽
정이야!” 꺽정이란 이름이 마른 하늘의 벼락치는 소리만 못지 아니하여 사령들
의 얼굴이 당장 마전한 것같이 되었다. 그 중의 하나는 겁을 잔뜩 집어먹어서
두 어깨를 귀밑에 닿도록 추키고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였다. “너의 원님한테
내 말 좀 전해다우. 이틀 동안 특별한 후대를 받아서 내가 치사하더라구 하구,
그러구 말은 두구 가야 옳지만 다시 생각해 본즉 전 군수 박응천이 때 내 말 한
필이 여기 와 있으니까 그 대신으루 타구 간다더라구 해라. 똑똑히들 들었느냐!
” 사령들이 눈을 멀뚱멀뚱하게 뜨고 달려가는 말 뒤를 바라보고 섰다가 겨우
입들이 떨어져서 “안전께서 올에 망신살이 뻗치셨네.” “구관 같으시면 허무
하게 속지 않으셨을걸.” “꺽정이가 하여튼 담보 큰 놈일세.” “나는 그놈이
우리를 죽이는 줄 알았네.” “얼른 관가에 들어가서 말씀이나 아뢰세.” 서로
지껄이고 흥살문 안으로 몰려들어왔다.
군수가 사령들의 아뢰는 사연을 듣고 처음에는 기가 막히고 나중에는 분통이
터져서 펄펄 뛰었다. 방에서 일어섰다 앉았다 하다가 대청으로 나와서 발을 구
르며 사령들을 호령하였다. “너이놈들이 힘이 모자라서 그놈을 못 잡으면 말이
나 뺏을 게지 말까지 타구 가게 가만두었단 말이냐! 말고삐를 잡구 매달려서 아
우성들을 지르면 그놈이 아무리 담대한 도둑놈이라두 말을 내버리구 도망할 거
아니냐? 이놈들, 내 말을 찾아놔라.” 군수가 옆에 나와 섰는 통인들을 돌아보며
“형틀을 들이래라!” 하고 이르고 곧 다시 “아니다, 수교를 먼저 부르래라.”
하고 고쳐 일렀다. 통인 하나가 대청 마루 끝에 나서서 “급장아.” “네이!”
“수교 부르랍신다.” “네이!” 급장이 삼분 밖을 향하고 서서 “사령.” “네
이!” “수교 부르랍신다.” “네이!” 긴 대답 소리가 끝난 뒤 얼마 아니 있다
가 수교가 들어와 대령하였다. “꺽정이란 놈이 유도사루 행세하구 와서 내 말
을 훔쳐갔다. 지금 서흥길루 내뺐다니 오늘 해에 검수나 서흥밖에 더 가겠느냐.
장교 오륙 명 걸음 잘 걷는 아이를 뽑아서 곧 그놈 뒤를 쫓아 보내라. 그놈이
검수서 묵거든 역졸들의 조력을 받구 서흥까지 갔거든 서흥 관속과 합력해서 그
놈을 잡으면 좋구 그놈을 놓치더래두 말은 꼭 찾아오게 해라. 그러구 그놈이 혹
촌가에 들어가서 묵을는지 모르니 연로에 잘 알아보며 가라구 신칙해라.” 수교
가 군수의 분부를 드디어서 장교 다섯을 뽑아서 쫓아보냈는데, 그 장교들은 서
흥까지 밤길 걷고 이튿날 돌아와서 애매한 매들만 맞았다. 사령 셋이 전날 매를
죽도록 맞은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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