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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껑정 8권 (33)

카지모도 2023. 7. 27.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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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막봉이가 곽오주더러 오는 놈들이 바짝 가까이 오도록 숨어 있다가 별안간

내닫자고 말하여 바위 뒤와 덤불 속에 은신들까지 하였으나 포교 복색 같은

것이 눈에 보이게 되자마자, 곽오주가 쇠도리깨를 높이 치켜들고 뛰어나가며

“너놈들이 웬놈들이냐!” 하고 소리를 벼락같이 질렀다.

더 가까이 오도록 기다려도 좋을 것을 곽오주가 지레 뛰어나가니 길

막봉이도 마저 큰소리를 지르며 쫓아나가고 졸개들도 아우성을 치며 쫓아나갔

다. 여러 놈들은 다 도망가고 오라진 놈 하나가 남아 있다가 쇠도리깨를 들고

달려드는 곽오주를 보고 “곽두령 아니시우?” 하고 알은 체하였다. “네가 누

구냐? 나는 너를 모르겠다.” “내가 노밤이오.” “노밤이? 성명은 귀에 익다.

” “서울 있는 노밤이를 모르시겠소?” “옳지, 네가 영평 도덕여울 있던 애꾸

냐? 어디 눈 좀 보자. 참말 보름보기구나. 네가 노밤이면 서울 있지 여기를 왜

왔느냐? 그러구 같이 온 놈들은 웬놈들인데 도망질을 치느냐! ” 길막봉이가 와

서 곽오주 옆에 섰다가 “뉘게 잡혀왔느냐, 어째 묶였느냐?” 하고 덧붙였다. “

서울서 야단이 났소. 대장께서 장통방 소흥이 집에 가서 노시다가 포교들에게

하마트면 붙잡힐 걸 요행으루 빠져 도망하셨소. 서울 오실때 데리구 오신 졸개

두 놈하구 나하구 셋이 먼저 잡히구 서울 있던 부인네 셋이 나중 잡혀서 다같이

전옥에 가서 갇히었는데,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죽는 것두 까닭이 있지 그렇

게 얼뜨게 죽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대장 어머님이 청석골 산속에서 혼자 따

루 사시니 잡아다 바치마구 멀쩡한 거짓말루 속이구 이꼴을 하구 여기를 왔소.

같이 온 놈들이 금부 나장에 나졸 들이오.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면 책 한 권두

만들 만하니까 창졸간에 다 말할 수 없소." 곽오주가 옆에 와 둘러서서 노밤이의

이야기를 듣는 졸개들더러 "빨리 가서 홰들을 가지구 오너라." 하고 호령하여 졸

개들이 홰를 가지고 온 뒤에 홰들을 잡히고 도망한 나장 나졸 들을 두루 찾아

보았으나, 원체 너무 오래 지체되어서 하나도 잡지 못하고 다 놓치었다.

장통방 사건에 앉아 벼락맞은 사람이 박씨와 원씨와 김씨와 한온인데, 한온이

는 잡히지는 아니하였으나 삼대 내려오는 지정이 하룻밤 사이에 흔들리었다. 포

교들이 처음 한온이를 잡으러 가가던 날 밤에 한온이가 작은첩의 집에 가서 자

는 것을 큰집 건넌방 사랑에서 자다가 붙들려 나온 서사가 능통하게 주인 상주

는 구산하러 나갔다고 거짓말하고 포교들의 신발차를 후히 주어 보냈었다.

이튿날 저녁때 포교 한패가 다시 나와서 한온이의 형과 안해를 잡아가고 또

그 뒤에 포교 두엇이 따로 나와서 서사 쓰는 사랑을 차지하고 들어앉았다.

한온이가 아비 궤연이도 오지 못하고 첩의 집에도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숨어다니며 뒤로 포청일을 알아보니 노밤이와 박씨 원씨 김씨 세 여편네가

붙지 않아도 좋은 말 을 다 불어서 꺽정이의 와주로 몰리었는데,

이름이 위에까지 입문되어서 자하로 빼놓지도 못하게 되고 일이 인왕산만큼 벌

어져서 포청에서 우물쭈물하지도 못하게 된 것이었다. 한온이는 강도 와주란 죄

명을 벗으려고 재물을 아끼지 않고 뇌물을 쓰며 길 닿는대로 여러 군데 청질을

하였으나 자기의 죄명은 벗지 못하고 겨우 형과 안해만 포청에서 놓여나왔다.

꺽정이의 와주는 비록 초범이라도 다른 강도 와준의 삼범과 같이 처교되기 쉬운

데, 유력한 사람들이 뒤에서 힘을 써서 가장 경하게 처벌되면 강와라고 자자를

받고 귀양가게 될 것이 거의 의심이 없었다. 서사가 한온이 숨어 있는 처소에

와서 여러 가지 일을 상의하는 중에 “전가사면이면 어렵지만 그런 염려가 없거

든 귀양을 한번 갔다오실 작정이구 자현해 보시오.”하고 권하니 한온이는 골을

내며 “그래 나더러 이마에 자자를 받구 귀양 가란 말인가? 나중에 귀양이 풀

린다니 그 이마를 가지구 어디를 나서겠나. 차라리 죽는 신세가 낫지.” 하고 푸

푸하였다. “그럼 어떻게 하실라우?” “아무리 생각해 봐두 청석골루 가는 게

제일 상책이야. 온 집안식구 다 끌구 청석골루 갈라구 작정했네. 가벼운 세간이

라든지 귀한 물건은 슬금슬금 손모아서 먼저 실려보내구 그 다음에 식구들을 죄

다 쓸어보내구 구러구 내가 갈 테니 자네는 뒤에 쳐저서 방매할 것 방매하구 추

심할 것 추심해 가지구 나중 오게. 액내사람 중에 따라오구 싶어하는 사람은 다

데리구 와두 좋겠지.” “선대 적부터 내려오는 지정을 일조에 내버리기 아깝지

않소?” “아까운들 어떡하나?” “청석골을 가실라면 혼자나 가보시우.”"나 없

으면 집안일이구 도중일이구 다 엉망될 것은 정한 일인데." "이번 바람이 얼마나

오래 갈라구. 바람 자거든 도루 오시지." "도루 와두 좋거든 그때 와서 다시 수

습하면 고만 아닌가." "서울 살림을 아주 파산하면 다시 와서 차리기가 어디 쉽

소." "이번 일이 귀정날 때 적몰은 당하지 못할 텐데 아까운 천량을 왜 속공하게

둔단 말인가?" "이사두 큰일이지만 빈소를 어떻게 하실라우?" "포교들 몰래 관

을 뫼셔낼 수 있을까?" "관은 빈소방 뒷문으로 가만히 뫼셔낼 수 있겠지만 양례

절차야 어떻게 몰래 차릴 수 있소." "이런 때 절차가 왜 있겠나? 우리 어머니 산

소에 합폄만 해드려두 무던하지." "그럼 곧 장택을 내서 양례를 잡숫두록 합시

다." "장택을 내다가 만일 합당한 날이 없다면 어떻게 하나. 볼복일이 좋겠네." "

더구나 그럴 바엔 오늘 밤에라두 관을 뫼셔내다가 다른 데 뫼셔놓구 속히 양례

잡술 준비를 차립시다." "그렇게 하세." 한온이와 서사가 이런 의논을 하던 다음

날, 한첨지의 상행은 마주잡이로 수구문 밖을 나갔다. 한온이가 초조하게나마 그

아비의 장사를 지내고 난 뒤 큰집 사랑 세간만 아직 가만두고 대소가 여러 집

세간의 알짬을 뽑아내서 짐들을 만들려는데, 사랑에 와서 있는 한온이가 마음놓

고 큰집 안에까지 왔었다. 세간은 워낙 많고 짐은 몰래 싸자니 자연 날짜가 걸

렸다. 짐 싸기 시작한 지 사흘 되던날, 한온이가 저녁때까지 짐 싸는 것을 보살

피다가 작온첩의 집에서 저녁밥을 먹고 숨어 있는 처소로 자러 가려고 나오는데

문간을 나서자마자 어떤 사람이 손목을 꽉 붙들었다. 한온이는 붙드는 사람의

복색이 포교 아닌 것을 뻔히 눈으로 보면서도 포교인 줄만 여겨 소스라쳐 놀랐

다가 "왜 이렇게 놀라나?" 웃는 말소리를 듣고 다시 보니 황천왕동이었다. "자넨

가?" "어디 가나?" "나하구 같이 가세." "어디를?" "어디든지." 한온이가 황천왕

동이를 끌고 잘 처소로 같이 왔다. "자네 저녁을 어떻게 했나?" "안 먹었네." "여

기 나 먹을 밥이 있을 테니 자네 먹게." "자네는 어떡허구?" "나는 집에서 먹구

왔네." 한온이가 방 밖에 와 섰는 주인더러 저녁상을 내오

라고 일렀다. "이 집 주인이 어떤 사람인가?" "내 집안 사람이야." "여기서 아무

이야기나 다 해두 괜찮겠나?" "내 집 사랑이나 별루 다름없으니 그렇게 알구 이

야기하게." 저녁상이 나와서 황천왕동이가 밥을 먹으며 장통방에서 도망하던 날

밤에 풍파 겪은 것을 대강 이야기하고 끝으로 그 뒤에 서울을 두번째 온다고 말

하였다. "먼젓번 와서는 어째 나를 안 찾아보구 갔나?" "요전 왔을 때 서사 방에

있는 젊은 사람을 자네 집 골목 밖에서 만났는데 그 사람이 자네 소조당한 것을

대강 이야기하구 자네는 어디루 피신했는지 집안 사람두 모른다고 하데. 이야기

나 더 좀 자세히 듣구 가려구 서사를 만나볼라구 했더니 서사는 포교들 술대접

하는 중이라지. 그래서 남성밑골 동소문 안 빈집들만 한 바퀴 돌아보구 그대로

내려갔네." "저런 놈 보게. 나중에라두 내게 말을 해야지. 나는 통히 몰랐네." "정

신 없는 중에 잊은 게지." 황천왕둥이가 밥을 다 먹고 상을 물린 뒤에 "대체 이

번 일이 어디서 꿰져 났는지 자네는 알았나?"하고 물었다. "노밤이하구 졸개 두

놈하구 술집에 가서 술들을 쳐먹구 술값을 못 내서 붙들렸는데 술집 여편네의

친정 조카가 좌포청 포교더라네 . 그 포교가 수상한 인물들루 간파하구 세놈을

모짝 포청으로 잡아가지구 가서 내려조겼는가 부데.김씨는 졸개 한놈의 입에서

튀어나오구 원씨는 김씨가 끌구 들어가구 박씨는 노밤이가 불어넣은 모양인데,

나는 노밤이놈이 와주라구 불 뿐 아니라 여편네 셋이 살림을 차려줬다. 시량을

대어줬다. 갖은 소리를 다 불어서 입이 백이구 천이래두 와주 아니라구 발명할

도리가 없이 됐네." "우리가 소홍이 집에 있는 건 노밤이놈이 불었다든가?" "그

건 알아보지 못했지만 노밤이나 졸개들 입에서 나왔겠지" "포청 일이 어떻게 될

모양인가?" "어떻게 끝이 났어?" "장통방에서 봉패한 것이 포장들의 잘못이라구

사간원에서 들구 일어나서 좌우변이 다 갈렸네. 좌변 남치근은 책임을 지울 만

두하지만 우변 이몽린은 공연히 휩쓸려들어가서 늙은이가 가엾게 됐지." "포청에

갇힌 사람들이 어떻게 될 모양이냐 말이야." "김순고란 사람이 새루 좌변대장으

루 제수되어서 첫번 들청하던 날 바루 사내 셋을 전옥으루 넘겨버렸네. 여섯이

다 살아나올 가망은 없는 모양이데. 그중의 노밤이는 일전에 금부에서 넘겨갔단

말을 들었는데 그 속은 알아보지 않아서 모르겠네." "자네 백씨하구 부인이 포청

에 잡혀갔단 말은 요전에 듣구 갔는데 어떻게 되었나?" "그 동안에 놓여나왔네."

"자네 일은 무사타첩이 될 모양인가?" "무사타첩이 다 무언가? 나는 포교 손에

들리는 날이 신세를 조지는 날일세." "그럼 언제까지든지 이렇게 서울 안에서 피

해 다닐 텐가?" "식구를 끌구 청석골루 얻어먹으러 갈 텔세." "오게. 자네 도중

사람을 다 끌구라두 오게." "짐을 오늘까지 사흘째 묶었는데 내일 하루는 더 걸

릴 모양일세." "실없은 말이 아니구 참말 청석골루 올 텐가?" "실없은 말이 무언

가. 내가 지금 실없은 말을 할 경황이 있는 사람인가." "크나큰 살림을 졸제 어

떻게 거둬치우나?" "되지 못한 세간이 많아서 성가시어 못 견디겠네." "포교들이

사랑을 지키구 있다니 짐두 드러내 놓구 묶지 못하겠지?“ “우리 서모집 한 채

를 통히 치워놓구 물건을 날라다가 짐을 묶이네.” “짐이 갈 때 중로에서 혹시

작경하는 사람이 있거든 청석골루 가는 짐이라구 말하구 군호를 산하거든 천하

구 초하거든 목하구 대답하라구 영거해 가지구 가는 사람들에게 이르게. 그러구

짐은 띄엄띄엄 보내는 게 좋을겔세.” 황천왕동이는 한온이와 이런 이야기를 하

다가 그 집에서 같이 자고 이튿날 바로 광복산으로 회정하였다. 황천왕동이가 서

울을 먼젓번 갔다와서 두 졸개와 세 여편네가 포청에 잡히고 한온이의 집이 난

가되었단 소식을 전하고, 두번째 갔다와서 두 졸개와 세 여편네는 전옥에 가서

갇히고 노밤이는 전옥에서 금부로 넘어가고 한온이는 청석골로 철가도주하여 온

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꺽정이는 세 여편네가 불쌍하여 뇌물을 써서 빼내올 도

리가 있으면 재물은 아끼지 않고 들이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법을 법대로

켜면 관비나 박히게 될 것을 엄청나게 교에 처하게 되리라고 하니 더구나 모른

체하고 가만둘수가 없었다. 뇌물과 청질로는 빼내올 가망이 없은즉 전옥을 깨치

고 꺼내오는 수밖에 없는데, 전옥은 시골 옥과 달라서 깨칠 엄두가 잘 나지 아

니하였다. 꺽정이가 황천왕동이의 전하는 소식을 들으며부터 입을 일자지도록

꽉 다물고 말을 하지 아니하여 그 앞에서 감히 먼저 말을 걸 사람도 없었다. 때

마침 점심이 되어서 신불출이가 졸개 계집의 말을 받아가지고 “안에서 진지 여

쭈십니다.” 하고 말하다가 대답이 없어서 두번 말하지 못하였다. 안에서는 점심

상을 벌여놓고 기다리다 못하여 애기 어머니가

백손이더러 “너 나가서 너의 아버지 진지 좀 여쭤 봐라.” 하고 이르니 “난

싫소.” 백손이는 도리 머리를 흔들었다. 애기 어머니가 이날 아침밥을 설치어서

시장하다고 점심을 재촉까지 한 까닭에 애기가 어머니의 시장한 것을 생각하고

또 외삼촌의 귀염을 믿어서 “내가 뒷문 밖에 가서 여쭤 보지요.” 자청하고 나

갔다. 애기가 꺽정이 있는 바깥방 뒷문께 와서 나직이 기침 소리를 낸 뒤에 “

아저씨 점심 진지 안 잡수세요? 어머니가 시장하시대요.” 하고 말하며 속으로

‘오냐, 들어간다. 저년 제가 배가 고파서 어머니를 팔지.’ 외삼촌은 이런 대답

을 하려니 예기하였는데 의외에 대답이 없어서 “녜, 아저씨?” 하고 대답을 재

촉하니 “웬 수선이냐!”하고 꺽정이가 소리를 꽥 질렀다. 외삼촌이 저에게 소리

지르는 것은 거의 없다시피 드문 일이라 애기가 처음에는 놀라고 나중에는 부끄

러워서 고개를 푹 숙이고 풀기 없이 걸어들어왔다. 백손 어머니가 이것을 보고

졸개 계집들을 시키지도 않고 자기 손으로 상을 들어다가 애기 어머니 앞에 놓

으며 “형님, 우리나 먼저 먹어치웁시다. 살찐 놈 따라 부어 죽겠소.” 하고 말

하였다. 백손 어머니가 애기 어머니와 시누이 올케 겸상하여 밥을 먹는 중에 밑

도끝도 없이 송악산 대왕당 그네터 이야기를 꺼내었다. 대왕당 그네를 뛴 보람

으로 서울 세 계집이 떨어지게 되거니 생각하는 백손 어머니의 속을 애기 어머

니는 꿰뚫고 들여다보듯이 아는 까닭으로 “그 따위 이야기는 다시 입밖에 내지

말게.” 하고 나무랐다. 꺽정이가 반 나절 동안 혼자 앉았다 누웠다 하다가 승석

때가 거의 다 되었을 때 “밖에 아무두 없느냐?” 하고 소리를 쳐서 신불출이가

녜 하고 쫓아들어가니 “황두령 어디 가셨느냐. 빨리 오시라구 해라.” 하고 말

을 일렀다. 황천왕동이가 이봉학이와 같이 밖에 나가서 거닐다가 신불출이에게

불려서 들어왔다. “너 지금 청석골 좀 가거라. 가서 한온이 집 식구가 내려오거

든 치워놓은 초막들에 전접시키라구 하구 배돌석이, 길막봉이, 서림이 세 사람을

새 달 초사흗날 장수원으루 오라구 해라. 너는 곧 되짚어서 이리 오너라.” “오

늘은 벌써 해가 다 져가니 내일 식전 일찍 떠나가면 어떨까요?” “오늘 가라거

든 두말 말구 곧 가거라.” 황천왕동이가 하릴없이 녜 대답하고 나와서 불불이

행장을 차려 가지고 청석골로 떠나갔다. 꺽정이가 이봉학이, 배돌석이, 길막봉이

세 사람을 데리고 밤에 오간수 구멍으로 성안에 들어가서 전옥을 깨치고 세 여

편네와 두 졸개를 꺼내오려고 결심하고 구월 초사흗날 장수원에 모여서 거사하

려고 계획을 세웠다. 모일 처소를 장수원으로 정한 것은 전번 도망하여 나온 길

을 뒤쪽 들어가 생각이요, 모일 날짜를 구월 초사흗날로 정한 것은 황천왕동이

청석골 내왕에 사흘 넉넉, 광복산서 장수원을 가는데 나흘 넉넉 낭패 없도록 넉

넉히 잡은 셈이었다. 꺽정이가 황천왕동이를 떠나보낸 뒤 이봉학이를 보고 전옥

깨칠 계획을 말하니 이봉학이가 한참 생각하여 보다가 “어려운걸요.” 하고 고

개를 가로 흔들었다. “다들 어렵다구 할 줄 아네. 그렇지만 일을 해보면 어렵지

않을 걸세. 생각할 때 아주 못될 것 같은 일두 하면 되거든. 그렇기에 무슨 일이

든지 하는 게 장사니.” “십만 장안 한복판에 있는 전옥을 단 넷이 가서 어떻

게 파옥합니까. 아무래도 안될 일 같습니다. ” “그럼 몇이 가야 되겠나? 한 사

십 명 가면 될 것 같은가?” “글쎄요. 지 생각에는 삼사십 명 사람 가지구두

안될 것 같은걸요.” “그렇기에 숫제 우리 넷이만 가잔 말이야. 일이 여의하면

다시 더 말할 것 없구 혹시 여의치 못하더래두 피신하게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 “겁이 나서 못 가겠나?” “아닙니다. 아무리 사지라두 형님이 같이 가자시

는데 싫단 말을 하겠습니까. 그렇단 말씀이지.” “그럼 염려 말구 나만 따라올

작정하게.” “서종사는 어째 오라셨습니까?” “파옥하는 데 혹 좋은 꾀가 있

나 물어보려고 오라구 했네.” “아무리 꾀가 많기로서니 워낙 되기 어려운 일

을 되두룩 만들수야 있겠습니까.” “우리가 미처 생각 못한 것을 뚱겨만 주더

래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은가.” “그거야 그렇지요.” 이봉학이는 꺽정이의

계획을 섶 지고 불로 기어드는 것과 같은 무모한 일로 알지마는 언제든지 한번

당할 일을 미리 당할 뿐이거니 생각하여 마음이 태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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