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할 텐가?” 길막봉이 다그쳐 묻는 말에 정상갑이는 “글쎄요.” 하고
대답한 뒤 “자네 어떡허면 좋겠나?” 하고 최판돌이를 돌아보았다. “우리 사
람을 청석골 대장이 쓰실 데 있다구 오라시는데 안 갈 수 있나.” “불르러 오
신 길두령 낯을 뵙더래두 안 간달 수는 없지만 변변치 못한 놈들을 몰아가지구
가서 일을 잘못해서 낭패를 시켜 드리면 우리가 되려 미안스럽지 않은가.” “
일은 잘못하더래두 몫이나 많이 노놔 줍시사구 말씀하세그려.” “그런 뻔뻔스
러운 소리는 자네나 하게. 좌우간 가긴 가야 할 테니 내일 아침밥들 일찍 먹구
이리 모이라구 밤에 돌아다니며 일러두세.” 정상갑이는 길막봉이 대접한다고
가지 않고 최판돌이만 혼자 돌아다니며 일러서 이튿날 아침에 바눌티로 모아들
인 사람이 겨우 한 삼십 명 되었다. 사람수가 적어서 길막봉이는 마음에 좀 시
원치 못하나 최판돌이 말이 올 만한 사람은 거의 다 왔다고 하는 것을 더 모아
오라고 말할 수 없어서 그대로 데리고 오는데, 삼십여명이 성군작당하여 한테
몰려오는 것은 불길하므로 셋씩 넷씩 따로 떨어져 오게 하였다. 길막봉이가 정
상갑이, 최판돌이와 같이 맨앞에 오는 중, 홍제원 조금 못 미쳐서 정상갑이와 최
판돌이의 잘 아는 젊은 사람 하나를 만났다. 정상갑이가 먼저 “자네 오래간만
일세. 인제 벌이터에 나가나!” 젊은 사람이 미처 대답도 하기전에 최판돌이가
연달아서 “요새 벌이 좋은가?” 하고 물었다. 젊은 사람의 벌이터는 녹번이고
개요, 벌이는 단신행인의 보따리와 주머니를 발리는 것이었다. “그 동안에 두
분이 다 저승 행차하신 줄 알았더니 사자가 아직두 뫼시러 오지 않았구려.” 젊
은 사람 농담 인사에 정상갑이가 웃으면서 “이놈아, 악담 마라!” 하고 꾸짖었
다. “두 분 다 연만하신 터에 혜음령같이 되우 가파른 고개를 하루 몇번씩 오
르내리시자면 숨이 가쁘실 테지요. 내 벌이 자리를 바꿔 드릴까요?” “오, 네가
혜음령이 욕심이 나서 우리가 죽기를 바라는 모양이다만 틀렸다. 너는 그저 녹
번이서 산골이나 파먹어라.” “대체 어디들 가시는 길이오?” “서울 간다.”
“궁시서다리에서 망나니가 오시라구 부릅디까.” “이놈아, 그 따위 주둥이 놀
리면 입살에 주먹덩이 같은 정이 부릍는다.” 젊은 사람이 방수 꺼리는 말 하는
것을 길막봉이는 불쾌하게 생각하여 정상갑이더러 실없은 소리 고만하고 어서
가자고 재촉하였다. 젊은 사람이 정상갑이의 소매를 붙잡고 "참말루 서을 가시
우? " 하고 다진 뒤에 "문안에 들어가기 어려운 건 고사하구 이 앞의 모래재두
넘어가기가 쉽지 않소. 실없은 말씀 아니오. " 하고 말하여 "어째서? “ 정상갑
이가 까닭을 물었다. "오늘 식전에 내가 볼일이 있어서 문안에를 들어가는데 서
대문 턱에서 포교들이 기찰을 하두 어마어마하게 하기에 나는 문안에 무슨 큰일
이 난 줄 알았더니, 포청 속내 잘 아는 친구를 만나서 물어본즉 다른 별일은 없
구 청석골 대장 임꺽정이가 서울 안에 와 파묻혀 있단 소문이 있다나. 그래서 어제
저녁때부터 좌우포청 포교들이 임꺽정이 종적을 알려구 나와서 발동을 한답디다. 그
러나 종적을 알면 무엇하겠소? 임꺽정이같이 귀신 찜쪄먹을 친구가 그렇게 어리
무던하게 포교 손에 잡히겠소. 요 전자에 장통방에 와 있는 것을 철통같이 에워
싸구두 잡지 못하구 놓친 주제들이 또 인제 잡으러 가서 칼 맞구 화살 맞구 놓
치구 와서 매맞구 곤장맞구 그렇구 그렇지 별수 있겠소. 그런 건 딴 이야기구
포교들이 개싸대듯 하는 판에 잘못 걸리면 경이니까 맥없이 돌아다닐 까닭 있습
디까. 부리나케 볼일 보구 바루 나오는데 나올 때 기찰은 들어갈 때버덤 더 심
합디다. 묻는 말을 고분고분 대답해두 으르딱딱거리구 쥐어박구 치구 차구 갖은
짓을 다합디다. 나을 때는 모래재에두 포교들이 나와 앉아서 쌀자루 걸머진 촌
뜨기까지 열나절씩 세워놓구 기름을 내리구 보냅디다. 두 분이 다 아시다시피
내가 못 생긴 겁쟁이는 아니건만 오늘 문안에 한번 갔다오는데 십 년 살 건 감
수했소. " 젊은 사람의 수다스러운 말을 정상갑이가 다 듣고 나서 길막봉이를 돌
아보며 "우리가 모르구 모래재에까지 갔던들 봉변할 뻔했구먼요." 하고 말한
다음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하고 물었다. 정상갑이는 꺽정이 세력에 눌리
고 또 길막봉이 안면에 끌려서 오기 싫은 것을 억지로 참고 오는 길이라 핑곗모
가 좋은 김에 중로에서 돌아갈 생각이 없지 아니하였다. 길막봉이가 정상갑이의
묻는 말은 대답 않고 인사도 아니한 젊은 사람더러 "실없은 거짓말 아니오? ”
하고 묻는데 말투 거센 품이 얼러대는 것과 같았다. 젊은 사람이 정상갑이에게
로 가까이 가서 귓속말로 길막봉이를 누구냐고 묻는듯 정상갑이가 "참말 자네
인사 여쭙게. 청석골 길두령이실세. " 하고 길막봉이도 다 듣게 말하였다. 젊은
사람이 길막봉이 앞에 와서 "저는 여기 사는 최가올시다." 하고 절을 너푼 하는
데 정상갑이가 옆에서 웃으면서 "녹번이 최까불이라면 요 가근방에선 다들 알지
요." 하고 말하니 최가는 "점잖은 사람더러 까불이가 무어요?“ 하고 정상갑이에
게 말대꾸한 뒤에 비로소 "아까 말은 실없은 말이 아닙니다. 기찰이 참말루 여간
심하지 않습니다. " 하고 길막봉이의 말에 대답하였다. 길막봉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느라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중에 "임대장께서 과연 서울 와 기
십니까? " 하고 최가가 묻는 것을 길막봉이는 그러니 아니니 긴말 하기가 싫어
서 고개를 한두 번 끄덕이었다. "문안에를 꼭 들어가실라면 길을 돌아서 창의문
으루 들어가 보시지요. 창의문에서두 기찰은 할는지 모르지만 서대문같이 심하
진 않을 듯하구 설혹 심하더래두 모래재 한 번은 비키지 않습니까." "동행이 여
럿이니까 서루 의논해서 작정하겠소." 그 동안에 뒤에 오던 서너 패가 멀찍이 와
서 길가애서 쉬면서 앞에 동행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앉아 있는 여러분두
같은 동행이십니까? ” “그렇소. " "아이구 한두 분두 아니구 십여 분이 들어가
시자면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어야겠습니다. " "그렇기에 서루 의논해 봐야겠
소." "그럼 저는 볼일 보러 가겠습니다. 이 담에 또 뵙지요." "그럽시다. " 최가가
정상갑이와 최판돌이에네도 다시 만나자고 인사하고 녹번이길로 활개치며 간 뒤
에 길막봉이가 정상갑이, 최판돌이를 보 고 "모래재를 넘지 않구 돌아갈 수 있겠
지? ” 하고 물으니 정상갑이는 잠자코 있고 최판돌이는 선뜻 "있다뿐이에요. "
하고 대답한 뒤 "여기서 연희궁 쪽으루 내려가다가 서강, 삼개 가는 길루 꺾어서
공덕리를 가서 고개 하나 넘으면 용산이구 용산서 강을 끼구 돌면 서빙고서 왕
시미루 가면 고만 장수원 가는 길이 나서지 않습니까." 하고 서울길 잘 아는 것
을 자랑하듯 이렇게 이렇게 간다고 지형을 손으로 공중에 그리기까지 하였다.
길막봉이가 혜음령패를 데리고 바눌티서 떠날 때 장수원 팔십 리길을 해 있어
올 요량 잡았더니 서울을 꿰어 뚫고 지나오지 못하고 멀리 안고 돌아서 백리길
이 넘어 되는데다가, 홍재원서 최가의 이야기 듣고 노정을 고쳐 정하고 또 일행
이 모여서 인절미로 점심 요기를 하느라고 지체를 좋이 한 까닭에 해가 져서 깜
깜 어둔 때 겨우 장수원을 들어왔다. 저녁 전에 와야 할 것인데 밤이 되고, 사람
을 오십 명 가량 잡은 것인데 삼십 명이 와서 꺽정이는 화가 났었다. 혜음령패
의 문안을 받으며 잘들 왔느냐 말 한마디를 않고 길막봉이의 발명을 듣기 싫다
고 끝까지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이봉학이가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를 불러서 분
부하여 온 사람들에게 즉시 저녁밥을 공궤하는데, 정상갑이, 최판돌이 두 사람은
길막봉이와 같은 방에서 상 받치고 먹게 하고 기외의 삼십 명은 화톳불 놓고 멍
석 깐 마당에 둘러앉아서 바가지로 각기 퍼먹게 하였다. 오십 명 가량 먹도록
시켜놓은 밥이라 다들 허리띠를 늦춰 가며 실컷 먹고도 함통이와 소래기에 밥이
많이 남아 나갔다. 방과 마당의 저녁밥들이 다 끝난 뒤에 정상갑이가 꺽정이를
향하고 꿇어 앉아서 "저이 같은 변변치 못한 것들을 무슨 일을 시키실라구 부르
셨습니까? " 하고 묻는데 꺽정이는 도무지 말이 하기 싫어서 서림이를 바라보고
턱을 한번 추색하여 대신 말하란 뜻을 보이었다. "오늘 밤은 곤할 테니 일찍들
자구 내일 이야기를 들으시우. 일을 워낙은 오늘 밤에 할 작정이었는데 여러분
이 늦두룩 아니 오는 까닭에 할 수 없이 내일 밤으루 기일을 물렸소. " 서림이의
말끝에 정상갑이가 서림이를 보고 "하루 전기해서 말씀하시기루 어떻습니까. 저
이가 다른 데 누설할까 봐 말씀 안 하십니까? " 하고 물었다. "그럴 건 아니오."
"그러면 지금 말씀해 주십시오." "무슨 일인지 몰라서 궁금하겠지만 궁금한 것두
한 재미루 알구 더 좀 참았다가 내일 대장께 말씀을 듣좁구려." "대장 앞에서 말
씀하시면 대장께서 말씀하시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 "정히 그렇게 듣고자 하
면 내가 지금 이야기하리다. ”
서림이가 신불출이를 불러서 방 근처에 다른 사람을 오지 못하게 하라고 이른
뒤에, 정상갑이와 최판돌이를 번갈아 보면서 서울 안에 불지르고 그 틈에 전옥
깨치려는 계획을 이야기하니 최판돌이는 눈이 휘등그래지고 정상갑이는 머리를
절레절레 내흔들었다. "왜 일이 잘 안될 것 같소? “ "안되구말구요. 여느때두
잘 안될 일인데 지금 포교들 눈이 빨갛다는데 될 뻔이나 한 말입니까? ” "일이
좀 어렵긴 하지만." 하고 서림이가 정상갑이의 말을 꺾으려고 다시 말을 낼 즈음
에 "되구 안 되구 내가 하기루 결심한 일이야. 딴소리는 소용없어! “ 호령기 있
는 말이 꺽정이 입에서 떨어져나왔다. 정상갑이가 서울 안에 불지르러 가는 것
보다 꺽정이의 비위를 거스르는 것이 당장 더 무서운 일인 줄을 생각 못하고 "
딴 말씀 더할 것 없이 저희는 못하겠습니다. ” 하고 불쾌스럽게 말하였다. 꺽정
이가 정상갑이 않으로 버쩍 가까이 나와앉았다. "무어야! 한번 다시 말해 봐!" "
저희는 겁이 많아서 그런 대담스러운 일을 못하겠단 말씀입니다. “ 정상갑이의
말기 듣기에 비꼬아 하는 말같이 들리었다. 꺽정이의 손길이 번개같이 앞으로
나가며 정상잠이 뺨에서 딱 소리가 나고 정상갑이 입에서 아이쿠 소리가 나왔다.
꺽정이가 힘껏 친 것도 아니건만, 정상갑이의 한쪽 위아래 어금니가 다 빠졌다.
정상갑이가 피묻은 이를 뱉으면서 "사람을 일부러 오래서 이게 무슨 행악이람."
하고 우는 소시로 중얼거렸다. "행악? " 하고 뇌며 꺽정이가 벌떡 일어서니
"소인이 저놈 대신 빌겠습니다. 용서합시오." 하고 최판돌이가 한편 소매에
매어달리고 “형님 참으십시오. " 하고 길막봉이가 한편 손목을 잡아당겼다. 꺽정이가
최판돌이와 길막봉이를 뿌리치며 발길로 정상갑이를 걷어찼다.
"행악? 오냐 행악한다. " 하고 두서너 번 연거푸 발길질하였다. 정상갑이는 첫 번에
나가동그라진 뒤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사지를 족 뻗쳤다.
최판돌이가 정상갑이를 와서 붙들고 "여보게 이 사람, 왜
이러나 정신 차리게." 하고 자는 사람 잠 깨우듯 몸을 흔들어야 정상갑이는 콧구
멍에서 끙끙 소리가 나올 뿐아고 그나마도 차차로 가늘어졌다. 길막봉이는 와서
들여다보다가 꼬개를 뚝 숙이고 이봉학이와 배돌석이는 바라보며 눈살들을 찌푸
리는데, 서림이가 신불출이를 불러서 찬물을 떠오라고 하고 또 더운물을 얻어오
라고 한 뒤 약낭에서 청심원과 옥추단을 꺼내주어서 더운물은 청심원을 개어 입
에 흘려넣고 찬물은 옥추단을 갈아 머리에 들어붓게 하였다. 그러나 명문뼈가
무서운 발길에 걷어채여서 안의 홍근이 이미 끊어진 것을 청심원이나 옥추단으
로 다시 이을 수가 있으랴. 정상갑이는 눈 뜨고 입 벌리고 마지막 숨을 지었다.
꺽정이가 정상갑이를 걷어찰 때 죽거나 말거나 불계하였지만, 급기 죽어자빠진
것을 보고는 어이가 없어서 "응. " 하고 혀를 찼다. 최판돌이가 송장을 끌어안고
"상갑이 상갑이! " 부르다가 별안간 벌떡 일어나 꺽정이게로 와락 달려들며 "나
까지 마저 죽여라, 이놈아. 네가 우리하구 무슨 원수냐, 이놈아 이놈아." 하고 부
르짖었다. 꺽정이가 처음에는 몸에 손만 못 대도록 밀막다가 버럭버럭 달려드는
것이 성가시어서 나중에 한번 왈칵 떠다 밀었다. 최판돌이가 맞은편 벽 밑에 가
서 자빠지는데 뒤통수 투닥뜨린 곳에 벽의 맥질한 흙이 떨어지고 외얽이가 드러
났다. 자빠진 채 일어나지 못하는 최판돌이를 길막봉이가 와서 일으켜 앉혀보니
눈은 감기고 고개는 가누는 힘이 없어 건드렁건드렁하였다. "이 사람마저 탈났나
보우. 서종사 좀 와보시우." 서림이가 와서 최판돌이를 반듯이 눕혀놓고 길막봉
이와 둘이서 허리띠 대님을 끄르고 버선을 벗기고 손바닥 발바닥을 비벼주는데,
발바닥의 용천혈을 화끈화끈 달도록 억센 손으로 비벼야 좋다고 고린내나는 발
은 길막봉이를 맡기었다. 한동안 지난 뒤에 최판돌이가 눈을 번쩍 뜨고 사람을
보다가 다시 슬며시 감으며 아이구 소리를 한숨 섞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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