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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9권 (8)

카지모도 2023. 8. 8.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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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천현감은 새로 도임하여 절도사에게 현신하러 온 길이요, 운산군수는 군오에 관한

중요한 일을 절도사에게 취품하러 온 길인데 우연히 한때 와서 모이게 된 것이

었다. 영변부사가 운산군수와 태천현감을 위하여 운주루에서 자그마하게 잔치를

하는데 주식은 전주국에서 진배하고 기악은 전례서에서 지휘하였다. 운산군수가

기악을 듣다가 “초향이의 가야고는 사또께서 두구 혼자만 들으십니까? ” 하고

웃음의 말로 초향이의 가야금 듣기를 청하여 부사가 행수 기생을 불러서 “초향

이는 어째 안 왔느냐. 그년 또 병탈이냐? ” 하고 물었다. 행수 기생은 초향이를

못 잡아먹어 뭄살하는 계집이라 “그년이 어떤 서울 양반을 따라서 향산으로 유

산하러 가는데 말미도 받지 않고 갔답니다. ” 고 초향이의 뒤를 발기집어 내었

다. “무엇이야. 말미두 안 받구 출타하다니 그런 발칙한 년이 어디 있단 말이

냐? ” 부사가 화를 내서 말하고 곧 좌우에 뫼셔 섰는 통인들을 돌아보며 “수

노 불르래라. ” 하고 일러서 긴 대답 소리가 난 뒤 수노가 누 아래에 와서 대

령하였다. 부사가 누 아래를 내려다보며 “관기가 수유 않구 임의루 출타해두

좋으냐? 그러다가는 어디루 도타해두 모르겠구나. 초향이란 년이 향산을 갔다니

지금 곧 관노를 보내서 내일 해전으루 잡아오게 해라. ” 하고 수노에게 분부를

내리었다. 부사 자리에 가까이 앉았던 판관이 “초향이를 데리구 간 서울 양반

이란 게 누군가 알아보시지요. ” 하고 말하여 부사는 수통인더러 서울 양반이

누구인 것을 알아올리라고 일렀다. 수통인이 주 아래 내려가서 여러 토관들에게

물어보는 중에 전례서 섭사가 종실 단천령이라고 말하여 주었다. 수통인이 올라

와서 그대로 아뢰니 부사는 듣고 판관을 돌아보며 “단천령이 어느 틈에 왔군.

” 하고 말하였다. “온단 선성이 있었습니까? ” “향일 관찰사 사또 하서에

단천령이 가거든 극진 보호하란 부탁이 기셨는데 왔단 말이 없기에 아직 안 온

줄만 알았네. ” “단천령이 음률을 잘 안다지요? ” “피리를 썩 잘 분다데. ”

“초향이란 년이 지음해 주는 데 반해서 향산까지 쫓아간 겝니다 그려. ” “그

런 게지. ” “단천령의 안면을 보아주시자면 초향이를 잡아오란 분부는 도루

거두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판관의 말을 부사는 옳게 듣고 수노를 다시

불러서 초향이가 오거든 치죄할 셈 잡고 잡으러 보내진 말라고 고쳐 분부하였

다. 운산군수가 단천령과 친분이 있어서 부사를 보고 “단천령 주경이가 여기

오긴 의왼데요. ” 하고 말하니 “단천령과 친하시우? ” 하고 부사가 물었다.

“녜, 친합니다. ” “그럼 여기서 며칠 묵어서 만나보구 가시구려. ” “한만하

게 유산 나간 사람을 언제 올 줄 알구 기다립니까. ” “친한 친구 사이면 운산

까지 가기가 쉽겠소. ” “그 사람이 맘이 내키면 천리두 멀다 않구 찾아다니지

만 맘이 내키지 않으면 과문불입두 예사루 합니다. ” 운산군수와 부사 사이에

이런 수작이 있은 뒤 판관과 태천현감이 번갈아가며 단천령의 인물을 물어서 운

산군수는 단천령이 시속사람과 다른 것을 한동안 입에 침이 없이 이야기

하였다. 단천령과 초향이가 묘향산에서 돌아온 지 이삼일 된 뒤 단천령이 초향

이 집에 와서 있을 때 사령들이 어깻바람나게 들어와서 바로 안방문을 잡아 열

어젖히다가 방안에 양반 한 분이 앉은 것을 보고 무춤하고 뒤로들 물러섰다. 초

향이가 내다보며 “웬일들이오? ” 하고 물으니 사령 하나가 초향이더러 나오라

고 손길을 쳤다. “글쎄 무슨 일이오? ” “무슨 일인 걸 알아야 나오겠나? 사

또께서 자네를 보자구 부르시네. 어서 이리 나오게. ” 초향이의 어미가 마침 동

네집에 간 것을 아이년이 쫓아가 불러서 허둥지둥 밖에서 들어왔다. 사령 하나

는 눈 한번 흘낏 떠보고 아무 말도 않고 초향이와 말하던 사령은 인사성으로 “

어디 갔다오시우? ” 하고 물었다. “자네들 오래간만일세. 초향이가 또 무슨 일

에 걸렸나? ” “그런가 보우. ” “저 건넌방으루들 들어가서 이야기나 좀 속

시원하게 해주게. ” “언제 들어앉구 있겠소. 얼른 가야지. ” “아무리 잡혀가

더라두 옷이나 좀 바꿔 입어야지 이 사람들아. ” “얼른 바꿔 입으라시우. ”

“그 동안 잠깐이라두 좀 들어앉게그려. ” 사령들끼리 두어 마디 수군수군 지

껄인 뒤 초향이 어미의 뒤를 따라서 건넌방으로들 들어갔다. 초향이의 어미가

사령들을 앉혀놓고 밖에 나와서 아이년더러 술을 사오라고 이르고 안방에 들어

와서 단천령을 보고 “나리께서 어떻게든지 잡혀가지 않두룩 해주시우. ” 하고

말하였다. “부사가 잡아오란다는 걸 내가 무슨 수루 잡혀가지 않두룩 하나? ”

“서울 양반님네가 그만 수두 없단 말씀이오? ” “자네 말 따라 내가 서울 양

반이니까 서울 가면 양반 자세를 더러 할 수 있지만 영변서는 하는 수 없네. ”

“저애가 지금 잡혀가면 등으로 업어 내올른지 거적으로 말아 내올른지 생사가

어찌 될지 몰라요. 그게 뉘 탓인데 뱃심 좋게 실없은 말씀을 하구 기시우? ”

초향이의 어미가 단천령에게 곧 시비를 하러 대드는데 초향이가 눈살을 잔뜩 찌

푸리고 “어머니 왜 이러오? ” 하고 나무랐다. “왜 이러다니 내가 못할 말 했

느냐? ” “어머니는 건넌방에 가서 술대접이나 하시우. ” “네 일로 온 사람

이니 네가 가서 대접하렴. ” “어머니 그예 나 죽는 꼴을 보고 싶소? ” “그

게 늙은 어미 위로하는 말이냐? ” “나는 어머니를 위로하고 어머니는 나를 위

로해야 하지 않소. ” 초향이 눈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고 그 어미는 쓴입맛

을 다시며 일어나서 건넌방으로 건너갔다. “내가 자네 매를 벌어 준 모양이니

자네 어머니가 나를 책망 안하겠나. ” “나리 때문에 매를 맞게 되면 하루 열

두 번 맞아도 달게 맞겠세요. ” “자네 어머니야 어디 자네 맘과 같은가. ”“

제가 잡혀들어가서 나리 말씀을 해도 좋겠습니까? ” “좋다뿐인가. 내게 밀어

붙일 만 한 일이거든 죄다 밀어붙이게. ” “지금 제 요량에는 말미 안 받고

향산 간 것을 누가 고자질해서 잡힌 모양인데 나리께서 별안간 가자고 끌어 내

세우셔서 말미받을 새도 없었다고 발명해 볼까요? ”“자네 구변껏 발명하구 무

사히 나오기만 하게. ” “나리와 친쫍게 지내게 된 것을 묻거든 멍석잠 주무시

려던 것까지 다 이야기할까요? 이야기해도 창피하지 않으시겠세요? ” “나는

그걸 창피한 일루 알지 않네. 우리들 그 동안 지낸 일이 우러러 하늘두 부끄럽

지 않구 굽어 땅두 부끄럽지 않은데 사람 앞에서 이야기 못할 게 무어 있나. ”

안방에서 단천령과 초향이가 이런 수작을 하는 동안에 건넌방의 사령들은 두어

차례나 간다고 서둘렀다. 초향이가 옷을 바꾸어 입고 건넌방에 가서 사령들 술

을 권하여 먹인 뒤에 사령들에게 붙들려서 관가로 들어갔다. “초향 잡아들였소.

” 사령의 외치는 소리를 급장이 댓돌 위에서 받고 형리가 방문 밖에서 받았다.

부사가 닫혔던 방문을 열어젖히고 댓돌 아래 쪼그리고 앉힌 초향이를 내려다보

며 “네가 관기의 매인 몸으로 자행자지를 하니 너는 관장두 두렵지 않구 법두

무섭지 않으냐? ” 하고 호령을 내놓았다. “친쪼운 서울 양반 한 분이 묘향산

을 같이 가자고 끄시옵기에 매인 몸으로 수유 않고 갈 수 없다고 고사하였솝더

니, 그 양반께서 말씀이 묘향산이 타도 타군도 아니요, 영변 경낸데 경내에 잠깐

갔다오는 것을 수유 안하면 어떠냐 핑계를 말라 하시며 화를 내셔서 할 수 없이

그 양반을 뫼시고 갔다 왔소이다. ” 하고 초향이가 요요하게 발명하였다. 부사

가 단천령의 안면을 보아서 초향이의 수유 않고 출타한 것을 덮어두고 싶었으나

중인 소시에 잡아오라 말라 하고 체면에 그대로 두기 어려워서 꾸중이나 한번

하려고 잡아들인 까닭에 초향이를 댓돌 위에 올라서라고 명한 뒤 “네가 뫼시구

간 서울 양반이 종실 단천령 나리시라지? ” 하고 예삿말 소리로 물었다. “녜.

그렇소이다. ” “단천령 나리가 여기를 무어하러 오셨다더냐? ” “묘향산

구경 겸 제 가야금을 들으러 오셨다고 하십디다. ” “네 가야금이 소문이 굉

장히 났구나. ” “그 중씨 나리께서 올 봄에 평양 오셨다 가셔서 말씀하셨답디

다. ” “그 나리의 피리 선성은 너두 전에 들었겠지? ” “녜, 익히 듣조왔었소

이다. ” “그 나리 피리가 과연 용하시더냐. ” “용하시다뿐이오니까. 이 세상

에는 짝이 없을 줄로 아옵니다. ” “그 나리께서 여기 도착하시던 날 저녁때

바로 찾아오셨는데 과객 모양을 차리고 오셔서 모르고 농락을 받았소이다. ”

“네가 그 나리께 농락은 받았단 말이냐? ” “녜. ” “농락받은 이야기 좀 해

봐라. ” 단천령이 한데 마당 멍석자리에 누워서 피리로 농락하던 것을 초향이

가 일장 다 이야기하여 부사가 듣고 웃으며 “풍류남아의 일이다. ” 하고 말한

뒤 다시 정색하고 “네 이번 소행은 단단히 치죄해야 마땅하되 단천령 나리의

안면을 봐서 특별 용서하니 일후에는 그런 일이 다시 없도록 하렷다. ” 하고

일렀다. 초향이가 잡혀올 때 매는 면부득 맞을 줄로 알았는데 다행히 매 한 개

안 맞고 용서를 받았다. 초향이의 어미는 딸을 잡혀보낸 뒤 도무사의 전사로 있

는 먼촌 일가를 찾아가서 딸이 무사히 놓여 나오도록 주선하여 달라고 백번 천

번 부탁하고 관문 앞에 와서 동정을 살피려고 기웃거리고 있는 중에 전사가 관

문 안에 들어갔다 나와서 “어떻게든지 주선해서 무사히 나가게 할 테니 집에

가서 기다리시우. ”하고 말하여 그 말을 태산같이 믿고 집에 와서 있었다. 별안

간 삽작 밖에서 “어머니. ”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나며 초향이가 웃고 들어와서

초향이의 어미는 버선발로 쫓아나오며 “네 무사히 나왔구나. 아이구 고맙다. 전

사 아재 신세를 무얼루 다 갚는단 말이냐? ” 하고 지껄였다. “전사 아저씨 신

세라니 무어요? ” “네가 무사히 나오게 된 게 전사 아재 주선한 덕이다. ”

“천만 도섭스러운 소리 고만하시우. 사또께서 단천령 나리 안면을 봐서 용서하

신다고 말씀하시던데 누가 무슨 주선을 했단 말이오. ” “사또께서 단천령 나

리 안면을 보시도록 주선했는지 누가 아니? ” “내가 잡혀들어가기 전은 몰라

도 잡혀들어간 뒤에는 전사 아저씨 그림자가 사또 앞에 얼른 하는 것도 못 보았

소. ” “이애 그래도 네가 한번 찾아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해두어라. ” “고맙

다고 인사하면 전사 아저씨 낯이 간지러우라고요. ” “사람이 무슨 일이든지

뒷길을 두어야 하는 법이다. ” “뒷길 이야기는 두었다 하고 우선 단천령 나리

께 나 나왔다고 기별이나 하시우. ” “그건 그리 급할 게 무엇 있니? ” “궁

금해 여기실 텐데 얼른 알려 드리는 게 좋지 않소. ” “마당에 서서 긴 이야기

하지 말고 방으로 들어가자. ” “어머니가 기별 안 해준다면 내가 가서 보입고

오겠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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