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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9권 (9)

카지모도 2023. 8. 9.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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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기별 않는다나 아이년을 보내자꾸나. ” “아주 보내고 방으로 들어갑시다.”

초향이의 우김 대로 계집아이년을 단천령 하처에 보내고 비로소 모녀 같이 방으로

들어갔다. 단천령이 기별하러 간 아이년과 같이 왔다. 초향이가 단천령을

보고 부사와 문답한 말을 저저히 다 옮기고 끝으로 “사또께서 수이 한번

만나보입자고 말씀을 여쭈라십디다. ” 하고 말하였다. “부사가 나를

찾아나온다든가 나더러 관가루 들어오라든가? ” “그런 말씀 저런 말씀 없이

그저 만나 보입자고만 말씀하십디다. ” “자네가 잡혀 갇히구 못 나오게 되었

더면 부사를 찾아봤을는지두 모르지만 인제는 부사를 찾아볼 일이 없네. ” 옆

에서 듣던 초향이의 어미가 입을 실쭉하고 “영변부사를 찾아보면 종반 지체가

떨어지시우? ” 하고 말참례하여 단천령은 마음에 불쾌한 것을 억지로 참고 내

색하지 않았다. 단천령이 초향이와 친하게 지낸 뒤로 아직껏 쌀 한 말 상목 한

자 주지 아니하여 초향이의 어미는 대접을 차차로 전만 못하게 하였다. 초향이

집에서 숙식을 하는 때가 많은데 조석상의 찬만 가지고 말하더라도 처음에는 아

무쪼록 먹도록 해주는 정성이 반상에 가득하더니 그 정성은 어느 결에 없어지고

찬 없다는 빈 입인사만 남았다가 종내는 그 인사마저 없어졌다. 단천령이 하처

에 가고 없을 때는 딸이 어미의 심장을 나무라고 어미가 딸의 심사를 뒤집어서

초향이 모녀간에 말다툼이 자주 났었다. 초향이가 관가에 잡혀갔다 나오던 날

낮부터 이튿날 다 저녁때까지 단천령 옆에서 먹고 자고 웃고 놀고 별로 건넌방

에도 건너가지 아니하였다. 초향이의 어미가 마당에서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데 초향이가 안방에서 내다보고 “어머니 저녁 곧 시키시우. 나리께서 아침 진

지도 얼마 안 잡수셨소. ” 하고 말하니 초향이의 어미는 단천령더러 귀 있거든

들으라는 듯이 “거리 없는 저녁을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이냐? ” 하고 소리를

질렀다. 초향이가 일어나서 마당으로 내려가더니 안방에서 보이지 않는 구

석에 가서 그 어미를 불러가지고 한바탕 말다툼을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단천령이 웃으면서 “자네 집엔 저녁이 없는 모양이니 나는 사처루 가겠네. ”

하고 곧 일어나려고 하니 “굶더라도 같이 굶으셔야지 그런 인심이 어디 있세

요? ” 하고 초향이가 붙잡고 놓지 아니하였다. 방안이 어두워서 등잔불을 켜놓

은 뒤에 거리 없다는 저녁밥이 어떻게 되어서 단천령이 밥을 먹긴 먹었으나 마

음에 가시 먹는 것과 같았다. 밤에 초향이 집에서 자면 자연 이튿날 조반까지

먹게 되는 까닭에 단천령은 볼일이 있다 하고 하처로 자러 왔다. 단천령 생각에

일면부지 영변부사를 찾아보고 사정을 하더라도 괄시는 아니할 것이요. 친분 있

는 운산군수를 가서 보고 이야기를 하면 당장 변통이 될 것이지만 객지의 용쓸

것을 서울 집에서 보내줄 터인데 꾸태여 남에게 구차한 소리 할 까닭이 없으므

로 서울서 전인이든지 환이든지 오는 동안 초향이 집에를 조석으로 놀러갈지라

도 숙식은 아니하려고 작정하였다. 이튿날 단천령이 아침밥을 먹은 뒤에도 한동

안 하처에 있다가 초향이 집에 와서 싸리문 안에 들어서니 방문들을 닫고 들어

앉아서 사람은 보이지 않고 말소리만 나는데 안방의 초향이와 건넌방의 그 어미

가 얼굴도 서로 보지 않고 말소리만 나는데 안방의 초향이와 건넌방의 그 어미

가 얼굴도 서로 보지 않고 말다툼을 하는 듯 “금지옥엽 귀한 양반을 건달 율객

이라니 그게 말이요 무어요? ” 안방에서 나는 초향이의 말소리는 독살스럽고

“허울 좋은 하눌타리 다 봤다. 고만둬라. ” 건넌방에서 나는 그 어미의 말소리

는 느물느물하였다. 단천령은 싸리문 밖으로 도로 나갔다가 다시 돌쳐서서 들어

오며 에헴 큰기침하고 뚜벅뚜벅 신발 소리를 내었다. 건넌방에는 쥐죽은 듯 아

무 소리가 없고 안방에서는 버스럭 소리가 나며 곧 초향이가 마루로 나와서 “

왜 인제 오세요? ” 하고 늦게 온 것을 매원하는데 모녀간 말다툼할 때 난 독살

이 갑자기 다 풀리지 못하여 진정으로 매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디 좀 가

네. ” “어딜 가세요? ” “운산을 잠깐 갔다오겠네.” “저하고 같이 가세요.

” “자네 매맞는 꼴 그예 나더러 보란 말인가?” “며칠이나 되시겠세요?” “

가봐야 알지만 늦어두 사오 일밖에 더 안될 테지.” “왜 올라오시지 않고 거기

서셨세요?” “지금 곧 떠날 테니까 올라갈 새두 없네. 갔다와서 만나세.”

단천령은 초향이의 집 마루 앞에 잠깐 섰다가 바로 하처로 돌아와서 하인더러

나귀 안장을 지우라고 이르고 주인에게 운산을 갔다온다고 말하고 무슨 급한 일

이나 생긴 것처럼 총총히 운산으로 떠나갔다.

운산군수가 단천령을 반갑게 맞아서 후하게 대접하고 서울 가서 갚는다고 쌀

열 섬과 상목 열 필을 변통하여 달라는 것도 두말 않고 허락하였다. 단천령은

운산서 하루 묵고 떠나오려고 하였더니 군수의 말이 운산에는 초향이 같은 명기

도 없고 묘향산 같은 명산도 없으나 천리 타향에 고인을 만나서 그렇게 홀홀히

작별하고 갈 법이 있느냐고 책망으로 만류하여 오륙 일을 묵게되었는데 쌀과 상

목은 그 동안에 먼저 영변 초향이의 집으로 실려 보내었다.

단천령이 영변으로 돌아오던 날 하처에서 저녁밥을 먹고 석후에 초향이를 보

러 온즉 초향이의 어미가 초향이보다 더 반가워하며 갖은 너스레를 다놓았다.

기생 어미의 염량이 으레 그러하려니 셈을 치면서도 너스레 놓는 꼴이 우습기도

하고 밉살스럽기도 하였다. 초향이가 오륙 일 그런 정희를 탐탐하게 이야기하는

중에 “나리 안 기신 동안에 사또께서 저를 부르셨겠지요?” 하고 부사에게 불

린 것을 말하여 단천령이 “왜?” 하고 불린 까닭을 물엇다. “사또께서 밤저녁

에 한번 저의 집에를 나오시겠다고 말씀하세요.” “자네 아버지 무덤 위에 꽃

이 피었는가?” “나리를 만나러 나오신단 말씀이에요.” “나를 만나려면 사처

루 전갈이라두 하구 나올 것이지 어째 밤 저녁에 자네 집으루 나온단 말인가?”

“나리께서 와서 노실 때 뒤로 기별해 드리면 미복으로 나오셔서 하룻밤 같이

노시겠단 말씀입니다.” “우리들 정답게 노는 것을 발가리노러 나온단 말인 겔

세.” “제 가야고에 나리 피리 어우르시는 걸 들으러 나오신대요.” “부사가

나를 율객으로 아는 모양일세그려. 내가 여기 더 있다간 무슨 망신을 할는지 모

르니까 곧 떠나야겠네.” “나리가 제게 와서 기실 때 기별해 드리지 않으면 고

만이지요.” “그러지 않아두 수이 떠날 생각이 있던 차이니까 하루 이틀 미룰

것 없이 내일 바루 떠나겠네.” “어떻게 그렇게 속히 가세요?” “속히라니 여

기 온 지가 벌써 이십여 일인데 속히야.” “아주 한 달이나 채우고 가시지요.”

“한 달 있으면 떠날 때 섭섭하지 않은가. 내일 내가 안 오거든 떠난 줄루 알게.

” “가시더래두 그렇겐 못 가세요.” “갈 때는 자네를 작별 안 하구 갈는지

모르니 그쯤만 알아두게.” “참말 내일 떠나실 테요?” “참말이구 아닌 건 내

일 보면 알겠지.” “난 싫어요. 난 어떻게 하란 말씀이에요?” “내년 봄쯤 서

울서 다시 만나두룩 해보세.” “내일 하루만 더 있다 가세요. 그것도 못 하시겠

세요?” “하루 더 있으나마나 매한가지 아닌가.” “제 손톱이 빠지도록 실컨

이별곡이나 뜯고 이별하겠세요.” “그것두 좋겠지만 지금 우리 한 곡조 어울러

보세.” 밤이 이슥하도록 피리와 가야금을 어울다가 단천령은 행역 끝에 피곤하

다고 풍류를 그치고 자리를 보게 하였다.

이튿날 단천령이 초향이 집에서 조반을 먹고 눌러앉아 있다가 별안간 무슨 잊

은 일이 있는 것같이 말하고 하처에를 와서 운산군수가 객지의 잔용을 쓰라고

준 상목 두 필에서 한 필은 주인을 내주고 납머지 한 필은 노수로 가지고 영변

서 도망하듯이 떠났다. 첫날은 안주 와서 숙소하는데 초향이가 쫓아와서 내버리

고 도망하였다고 매원하는 꿈을 꾸고 이튿날은 냉정 와서 숙소하는 데 꿈에 초

향이의 어미가 멱살을 들러 대들어서 호령하다가 잠이 깨고 그 이튿날은 평양을

들어왔는데 이때 평안감사 유강이 벼슬이 내직으로 옮아서 새 감사와 교대하기

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찾아보고 벼슬 갈린 인사하고 하룻밤 자고 바로 떠났

다. 평양서 늦게 떠난 까닭으로 그 날은 중화 와서 숙소하고 그 다음날은 봉산

참을 못 대고 동선역에서 숙소하고 그 다음날은 서흥 와서 숙소하고 또 그 다음

날은 평산 와서 숙소하였다. 평산서 백십 리 송도를 숙소참 대려고 길을 조여오

다가 금교역에 와서 중화하는데 하처잡은 집 주인이 송도로 가는 줄을 알고 “

탑고개가 요새 버쩍 더 험해져서 행차가 무사히 지나가시기 어렵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탑고개가 요새 험하다니 도적이 자주 난단 말인가?” “자주 여부

가 없습니다. 매일 난답니다.” “그럼 탑고개루 사람이 못 다니나?” “다니기

야 다닙지요만 꺽정이에게 세를 바치구 다닙니다.” “그래 행인 한 사람에 세

를 얼마큼씩 받는다던가?” “근처 장꾼에게는 대개 십일조를 받구 여느 행인에

게는 들이없이 받는답니다.” “인명은 살해하지 않는다던가?” “웬걸요. 선심

이 내키면 물건만 뺏구 선심이 들이키면 목숨도 뺏는갑디다. 며칠 전에두 평산,

봉산 선비님네 여러분이 작반해서 탑고개를 지나오다가 꺽정이에게 붙들려가서

다섯 분인가 여섯 분이 죽구 겨우 세 분이 살아갔습니다." "죽은 사람은 어째 죽

구 산 사람은 어떻게 살았다던가?” "말을 잘못한 양반은 죽구 말을 잘한 양반

은 살았겠지요." "지금 이 해 가지구 용고개루 돌아서 송도를 갈 수 있을까?" "

탑고개루 바루 가셔두 저물 터인데 더구나 길을 돌아가시면 밤중에나 들어가시

게 될걸요." "요새 달이 좋으니까 홰 안 잡히구두 갈 수 있겠지." "용고개는 전

에 무사했었는데 근래 길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하두 많은 까닭으루 꺽정이패가

용고개까지 나와서 지킨단 말이 있습디다." "돌아가두 도적이요 바루 가두 도적

이면 돌아갈 까닭 있나. 바루 가는 게지." "어뜩새벽이나 어둔 밤중이면 탑고개

두 대개 무사합니다. 여기서 주무시구 첫닭울이에 떠나가시지요." "밤중두 좋으

면 오늘 밤에 밤길루 가겠네." "송두 가서 주무실 데가 없어서 고생하시지 않을

까요?" "새벽길 밤길 다 고만두구 지금 그대루 가겠네. 뺏길 만한 물건이 없는데

겁날 것 있나." "그건 처분대루 하십시오." 단천령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만 믿고 금교역말서 그대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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