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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9권 (17)

카지모도 2023. 8. 17.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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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편육 한 대접 한 목판을 안주로 놓고 술들을 먹는데, 이춘동이가 한입

에 고기를 두서너 점씩 넣고 몇 번 씹지도 않고 꿀떡꿀떡 삼키는 것을 김산이는

구경하듯 바라보다가 “인제 알구 보니 자네가 사람이 아니라 개호줄세그려.”

하고 웃으니 이춘동이가 입에 든 고기를 삼키고 나서 “어른더러 욕하면 오래

산단다. 어서 욕해라.” 대꾸하고 마주 웃었다. “자네가 전에두 개를 잘 먹었든

가?” “내가 전에는 개비린내가 싫어서 복날 개장국두 입에 대지 않았었는데

참말 개호주 한 분과 십여년 같이 지내는 동안에 식성이 변했네.” “박연중이

란 이가 개고기를 잘 먹나?” “잘 먹는다마다, 지금 환진갑 다 지난 늙은이건

만두 우리버덤 곱절 많이 먹네.” “그가 젊어서 장사 소리 들은이라데그려.”

“지금 늙은이라두 우리루는 못 당하네.” “기운 쓰는 걸 더러 봤나?” “보다

뿐이야.” “우리 대장은 천하장사라지만 장사 체두 하지 않네. 내가 같이 지낸

뒤루 칠팔 삭 동안에 기운 쓰는 걸 한번 두 보지 못했네.” “이야기는 많이 들

었겠지?”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는 더러 들었지.” “서울 남대문을 뛰어넘은

일이 있다든가?” “그런 이야긴 듣지 못했네.” “경상두 조령인가 어디서 모듬

발을 한번 굴러서 바위 위에 발자국이 났단 말이 있는데 그런 이야긴 들었나?”

“그런 이야기두 못 듣구.” “그래 세상놈들 떠드는 소릴 곧이듣는 사람이 실

없는 사람이야.” “말이란 갈수록 보태는 것이니까 세상에 떠도는 말은 에누리

속으루 들어야겠지.” “보태는 건 밑절마다 있지만 멀쩡한 터무니두 없는 말은

어떡허구.”

이춘동이 말끝에 김산이는 노밤이의 터무니없는 거짓말 잘하는것이 생각나고

노밤이가 본래 운달산 사람이란 것이 생각나서 “자네 노뱀이를 아나?” 하고

물었다. “노뱀이가 무어야?” “사람이지 무어야. 그 애꾸가 운달산에 오래 있

었다네그려.” “그놈을 자네가 어디서 봤나?” “지금 우리게 와 있네.” “그

놈이 천하 흉물일세.” “거짓말이 난당이데.” “거짓말뿐이 아니야.” 이때 일

꾼들이 대장간에서 들어와서 연장을 아랫방에 들여놓았다. 이춘동이가 일꾼들을

보고 “애꾸눈이 뱀이란 놈이 지금 청석골 가서 있단다.” 하고 말하니 일꾼 중

의 하나가 웃으면서 “그럼 청석골 대장이 삼씨 오쟁이를 지겠구먼요.” 하고

대답하였다. 김산이는 일꾼의 말이 귀에 거치나 잠자코 있다가 일꾼들이 바깥방

으로 나간 뒤에 이춘동이를 보고 “청석골 대장이 삼씨 오쟁이를 지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하고 탄하였다. “그게 까닭이 있는 말일세. 뱀이란 놈이 운달산

에 있을때 박대장의 셋째 첩이 여름밤에 문 열어놓구 자는데 뛰어들어간 일이

있었다네.” “그놈을 그래서 떨어 내쫓았나?” “일이 발각나기 전에 그놈이

핑계를 만들어 가지구 산 아래 내려가서 그대루 고만 뺑소니를 쳤네. 그렇지 않

았으면 그때 목 달아났지.” “그놈이 우리 대장의 성명을 가지구 철원, 영평 등

지를 돌아다니며 가진 더러운 직을 다하다가 우리 대장에게 잡혀서 항복하고 따

라왔다네.” “그놈이 임꺽정이루 행세했단 말이야? 임꺽정이 망신 많이 시켰겠

네.” “가짜 임장사가 한참은 성풍했구 지금두 더러 있다네. 내가 임 아무개다

하면 얼뜬 세상놈들이 고만 질겁을 하니까 그 맛에 그런놈이 자꾸 생기는가 보

데. 나를 청석골루 인도해 준 친구 황천왕동이가 올 칠월에 이천땅에서 서울을

올라오다가 양주 축석령 고개에서 좀도적 하나를 만났는데 그놈이 시뻘겋게 녹

슨 칼 한 자루를 들고 나서서 나는 양주 장사 임아무다 하구 호통을 하더라지.

그 친구가 자살궂은 장난을 곧잘 하는 사람이라 그놈을 놀리려구 임장사 성화는

높이 들었지만 처음 보입소 하구 인사를 걸었더니 갓, 망건, 웃옷을 벗어놓구 그

러구 주머니를 떼어놓구 가거라 하더라네. 양주 임장사는 당세의 호걸남자라더

니 보행 행인의 주머니를 발르러 드는 것이 다라운 좀도적 같구려 하니까 그놈

이 구변좋게 범이 배가 고프면 가재두 뒤지는 일이 있느니라 하구 말하더러네.

그 친구가 나중에 자기가 누구란 것을 말하구 그놈을 단단히 제독 주었다구 이

야기하데.”

“임꺽정이가 가짜는 많은 모양이야. 내가 들은 이야기 중에두 서울 구리개

약국하는 어떤 늙은이가 새벽 일어나서 문을 열어보니까 허위대 큰 사내 하나가

문앞에 쓰러져서 거의 다 죽개 되었더래. 그래 그 늙은이는 약국에서 자던 사람

들을 깨위 가자구 그 사내를 들어 들여다가 구호해 주었더니 그 사내는 대엿새

동안 곡기를 못해서 하마 죽을 뻔한 것을 구해 주었다구 백번 천번 치사하구 갔

는데, 나중 알구 보니 그 사내가 임꺽정이더라네. 그런 일이 참말 있었다면 그

임꺽정이두 정녕 가짜겠지.” “가짜구 여부가 있나. 우리 대장이 서울 가서 굶

을 리두 없구 대엿새 곡기 못해서 길가에 쓰러질 리두 없으니까.” “구리개 이

야기에 또 한가지 다른 이야기가 생각나네. 어느 해 겨울밤에 눈이 많이 와서

서울거리가 눈으루 덮였는데 파루 치기 전 거리에 사람 자취가 아직 없을 때 순

라 군사들이 종각 앞에서 눈 위에 큰 발자국 둘이 나란히 박힌 것을 보구 그

발자국의 오구간 곳을 살펴봐두 근처에는 다시 없어서 차츰차츰 멀리 나오며 찾

아본즉 광통교 위에 나란히 박히구 구리개 어귀에 또 나란히 박혔더라네. 그 발

자국을 가지구 보면 종각 앞에서 한번 뛰어서 광통교에를 오구, 광통교에서 또

한번 뛰어서 구리개 어귀에를 온 것이 분명하나 날개 돋친 사람이 아닌 담에야

그렇게 멀리 뛸 수가 없으니까 다들 도깨비 장난으루 알았더니 나중에 알구 본

즉 그것이 도깨비 장난이 아니구 임꺽정이 장난이더라네그려.” “그건 허풍선

이의 허풍일세.” “세상에 떠도는 임꺽정이 이야기란 대개 다 허풍이지. 그것만

허풍이 아닐거야.” 두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김산이가 이춘동이를

청석골로 끌어들여갈 생각이 나서 이춘동이의 의사를 떠보려고 “내가 자네에게

물어볼 말이 한마디 있는데 자네 진정을 기이지 말구 대답해 주게.” 하구 허두

를 놓고 “자네가 지금 지내는 것이 운달산에서 지내던 때와 어떤가. 나은가?”

하고 물으니 이춘동이는 이야기하느라고 잘 먹지 못한 오력을 내려는 것같이 부

지런히 고기를 집어먹다가 한참만에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운달사버덤 낫지

못하단 말인가?” 하고 다져 물어서 이춘동이가 고개 끄덕이는 것을 본뒤에 김

산이는 정중하게 말하려고 앉음까지 고쳐 앉고 "그럼 내가 자네를 우리 도중에

천거하겠네." 하고 말하니 이춘동이는 손을 홰홰 내저었다. "왜 싫은가?" "내가

싫은 것보다두 우리 어머니가 대기 실세. 자네가 지금 내게 권하는 말을 어머니

가 들으시면 자네를 당장 배송내러 드실 걸세." "그럼 운달산선 어떻게 지내셨

을까." 내게 끌려서 그럭저럭 그대루 지내셨지만 노상 끝탕이셨네. 그래서 여기

와서 살게 된 뒤루 비로소 밤에 발을 뻗구 주무신다구 하시네. 김산이는 다시

더 말을 못하고 무료하여졌다. "내가 임씨의 선성을 하두 높이 들어서 언제든지

한번 만나보구 싶던 차인데 자네가 같이 있다니 겸두겸두해서 한번 놀러감세." "

이번에 나하구 같이 가세." "우리 어머니 환갑 때 자네 안 올라나?" “오겠지. 그

때 와서 같이 가세." "이번이는 왜 못갈 일이 있나?" "환갑잔치 차릴 준비를 차

차 좀 해야겠네." "아직두 장근 한 달이나 남았는데 지금부터 준비 안 하기루 낭

패되겠나. 나두 이번에는 도중에 말을 안 하구 와서 한만히 오래 묵을 수가 없

으니 내일 곧 같이 가세." "우리 어머니 환갑 때 와서는 오래 묵어갈 텐가? 그런

다면 내가 내일 같이 가겠네." 김산이가 이춘동이 집에서 하룻밤 자고 이튿날 이

춘동이와 같이 떠나서 청석골로 돌아오는데 길에서 참참이 술집에 들어가서 늑

장을 부린 까닭에 이틀 만에도 다 저녁때 들어왔다. 김산이가 자기 거처하는 처

소에 이춘동이를 들여앉힌 뒤 꺽정이 사랑에를 와서 보니 꺽정이는 없고 박유복

이 ,배돌석이,서림이 세 사람이 어슥어슥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인사를 하였다.

“마산리서 며칠 되겠다더니 속히 왔구려.” 서림이의 말은 어물전 기별을 들은

말이고 “웬 사람 하나하구 같이 왔다지?” 배돌석이의 말은 파수꾼 보고를 받

은 말이고 “마산리가 대체 몇 린데 이렇게 일찍 들어왔나?” 박유복이의 말은

당일에 온 줄로 아는 말이었다. 김산이가 어제 떠나서 노량으로 이틀에 온 것을

말하고 같이 온 사람은 백부의 처조카요, 아이 적 동무요, 또 윤달산패의 버금두

령이었던 것을 이야기하니 “그 사람을 여긴 어째 데리구 왔소?” 하고 서림이

가 물어서 “우리 대장을 한번 만나보입구 싶어하기에 데리구 왔소.” 하고 대

답하였다. “대장께 말씀을 여쭤보구 이 다음에 왔더면 좋을 걸 그랬소.” “여

쭤보지 않구 데리구 왔다구 대장께서 꾸중하실까요?” “꾸중하실지 칭찬하실지

그야 내가 알 수 있소. 내 생각에 이 다음 데리구 왔더면 좋을 뻔했단 말이지.”

“그 사람을 입당을 시켜보려구 생각하는데 어떨까요?” “입당하라구 권해 봤소?”

“권하진 않았지만 말은 비쳐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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