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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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교역말 어물전 주인 부자는 청석골 도중과 거의 한속같이 지내는 터인데 젊
은 주인이 주색이 과하여 삼십 미만 젊은 나이에 요사하였다. 손자는 유치의 것
이 두엇 있으나 장남한 자식을 앞세운 늙은 주인의 정경이 가련하기 짝이 없었
다. 청석골 도중에서 통부를 받은 뒤 초종 부비의 한몫을 보태도록 부의를 후히
보내고 망인과 친구이던 황천왕동이가 꺽정이와 몇 여러 두령의 몸을 받아서
조상을 하러 나갔었다. 늙은 주인이 황천왕동이를 보고 일을 좀 보아달라고 간
청하여 황천왕동이가 인정에 차마 못한단 말을 못하고 들어와서 꺽정이에게 말
하고 다시 나가려고 하였더니, 서림이가 꺽정이보고 말하기를 일 보아주고 있는
것은 잠시 다녀오는 것과 달라서 자연히 안면 아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될 터
이라 재미없다고 하여 꺽정이가 서림이의 말을 옳게 듣고 나가지 못하게 하였
다. “그 늙은이는 올 줄루 믿구 기다릴 텐데 어떻게 합니까?” “어째 내말두
들어보지 않구 다시 오겠다구 말했느냐?” “여쭤보구 다시 오마구 말은 했지만
그래두 오기를 기다릴걸요.” “서종사같이 초종 치는 절차나 잘 알면 외려두
모르지만 네가 가서 무얼 하겠느냐? 두말 말구 고만둬라.” “그럼 제 대신 서
종사라두 보내주시지요.” “서종사는 네 대신 초상집에 다니는 사람이냐? 지각
없는 소리하지 마라.” 황천왕동이가 꺽정이에게 꾸지람을 듣고 다시 더 말을
못할때 꺽정이 옆에 앉아 있던 이봉학이가 꺽정이를 보고 “그 늙은이가 일을
봐달라지 않더라두 우리가 구애만 없으면 하나 가서 봐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요.” 하고 말하여 은근히 황천왕동이의 말을 거들어 주니 꺽정이가 이봉학이를
돌아보며 “가서 일 봐주는 게 좋지 않다구 누가 못 가게 하나?” 하고 증을 내
서 말하였다.
“서종사 말이 안면 짐작하는 사람을 만날까봐 재미가 적다구 그러니 금교
일판에서 통히 안면 모를 사람이 가면 상관없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이
누구야?” “탑고개에두 별루 나가 보지 않은 김두령 같은 사람이야 금교서
누가 알겠습니까?” “도중 회계는 누구더러 보라구?” “요새는 일용이
그리 많지두 않은데 한두령더러 혼자서 치부까지 다 하라시지요.” “죽은 사람
산 사람 다 친치 못한 산이더러 가랄 맛이 무언가?”“도중을 대표해서 가는데
친치 못하면 어떻습니까?” 꺽정이가 한참 동안 아무 말 않고 있다가 황천왕동
이더러 “네가 가서 산이를 데리구 오너라.” 하고 말하였다. 황천왕동이는 어물
전 늙은 주인에게 실신될 것을 속으로 짜게 여기는 중이라 꺽정이의 말이 떨어
지기가 무섭게 곧 나가서 김산이를 불러가지고 왔다. “향일 부의 보낸 금교 초
상집에서 천왕동이더러 와서 일을 보아 달라구 청하더란다. 천왕동이는 근방에
안면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사람 많이 모이는 상가게 보내는 게 부질없으니 네
가 가서 일을 좀 보아주구 오너라.” 꺽정이가 김산이더러 말을 이르니 김산이
는 선뜻 “녜.” 대답하고 나서 “입관 성복 다했을 텐데 가서 무슨 일을 봐줍
니까?” 하고 갈 것 없다는 의사를 비치었다. “장사를 순장으루 지내는데 장지
는 멀구 일은 뒤죽박죽 잘 안된다구 와서 봐달라데.” 하고 황천왕동이가 말한
뒤 “가서 봐줄 만한 일이 없거든 도루 들어오려무나.” 하고 꺽정이가 다시 일
러서 김산이는 금교 초상집에를 나가게 되었다. 황천왕동이가 금교 다녀온 이튿
날, 다시 김산이를 데리고 나와서 어물전 늙은 주인을 보고 “나는 도중에 다른
일이 있어서 단 하루라두 난데 나와 있을 수가 없소. 여기 같이 온 김두령이 우
리 도중을 대표해서 나왔으니 그리 아시우.” 하고 말하니 늙은이는 시원치 않
게 “녜.” 하고 대답하였다. 어물전 늙은 주인은 삼십 후에 아들을 낳아서 후사
를 잇게 되고 가세가 늘어서 불빈하게 된 것이 다 부모 산소의 발음이라고 믿는
사람이라 지가설에 반하여 지관들을 데리고 답산도 많이 하였었다. 어느 때 산
안이 높은 지관 하나를 만나서 같이 답산하러 나간 길에 평산 남면 마산리에 지
관의 말로 장군격고출동형이란 대지가 비어 있는 것을 찾아낸 뒤, 반계곡경으로
그 산을 사서 자기내외의 신후지지로 정하여 두었었다. 그 마누라가 먼저 죽어
서 갖다 묻을 그옆에 자기 묻힐 광중까지 작광을 하여 두었고 마누라 무덤에서
그리 멀지 아니한 조그만 날가지에 한 장 붙일 만한 자리가 있어서 유념성으로
치표를 하여 두었었는데, 그 치표한 자리에 이번에 죽은 아들을 갖다 묻으려고
작정하고 모든 준비를 차리는 중이었다. 그 늙은이가 이십 안팎 적에 어물을 가
지고 등짐장사를 다니다가 밑천을 모은 뒤에 금교서 장가를 들고 눌러앉아서 어
물로 전을 내기 시작하고 내처 한편으로 어물을 파는 까닭에 남들이 전부터 불
러내려온 대로 어물전이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곡식, 포목, 재목 여러 가지를 무
역하여 파는 금교 장터의 제일 큰 장사라 초상에 와서 일보아 주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 늙은이가 황천왕동이더러 와서 일을 보아달라고 청한 것은
장지까지 근백리 길에 사람이 한번 갔다오자면 적어도 이틀씩 걸리는 까닭에 황
천왕동이의 빠른 걸음을 빌려 써보려고 생각하였던 것인데, 김산이는 친치도 못
할뿐더러 기치도 않아서 여짓 고만두고 도로 가라고 말하고 싶으나 황해감사는
등지고 살아도 청석골패는 등지고 살 수 없는 처지에 그 패에서 무등호의로 내
보내 준 사람을 가거라 말아라 할 수가 없어서 늙은이는 김산이를 보고 “이런
사람의 집의 궂은일을 봐주러 나오셨다니 황송하기 이를 데 없소.” 하고 외면
치레로 인사하고 또 황천왕동이가 들어갈 때 “여러분께서 너무 근념들 해주셔
서 황감합니다구 면면이 말씀 좀 해주시우.” 하고 이면을 차려서 인사 부탁까
지 하였다. 일한다고 공연히 분주만 떠는 사람도 많고 일 시킨답시고 떠드는 것
으로 한몫 보는 사람도 많은데 김산이는 입을 봉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앉았
을 맛도 없고 또 나온 본의도 아니어서 주인 늙은이더러 물어보아서 보아줄 일
이 별로 없으면 도로 들어가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늙은이가 물으러 오는 사
람을 붙들고 신세 한탄하며 질금질금 울랴, 일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며 일 잘못
한다고 잔소리하야, 잠시도 가만히 안 있어서 김산이는 말할 틈을 타지 못하여
그대로 앉아 있는 중에 저녁이 되어서 두루거리 밥상이 안에서 나왔다. 밥상에
둘러앉는 여러 사람 중의 한 사람이 가만히 앉아 있는 김산이를 바라보고 “저
손님두 이리 오시지요.” 하고 청하여 김산이가 여러 사람 틈에 가서 끼여 앉았
을 때, 늙은이가 방 앞에 와서 들여다보더니 “왜 거기 가 앉으셨소? 이리 나오
시우.” 하고 불러내었다. “저녁 진지를 지관하구 겸상해 내온다니 지관 있는
방으루 가십시다.” 하고 늙은이가 앞서 가는데 김산이는 뒤따라가면서 “가만
히 보니 내가 봐드릴 만한 일이 없는 것 같구려.” 하고 말하였다. “무슨 일이
든지 봐주시겠소?” “일만 있으면 봐드리다뿐이오.” “모레가 참파토할 날인
까닭에 지관을 내일 산으루 보낼텐데 지관하구 같이 가서 산역을 시켜주셨으면
좋겠소” “아무리나 하라는 대루 하리다.” 김산이가 지관하고 같이 먹고 같이
자고 또 마산리 장지에를 같이 왔다. 오던 날은 산 맡아보는 사람 집에서 자고
이튿날 일꾼들을 데리고 산상에 올라와서 산역을 시키는데, 구경 온 동네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 하나가 앞으로 나와서 “자네 나를 모르겠나?” 하고 김산이
의 팔을 사람이 무안스럽도록 자지러지게 놀라고 너무 놀란데 창피한 마음이 들
어서 놀랄 때와는 딴판으로 곧 율기를 하고 그 사람을 노려보았다. 그 사람이
키는 구 척이요, 얼굴은 둥글넓적한데 눈은 부리부리하고 코는 얼굴의 주인이
내란 듯이 앉을 자리를 넓게 잡고 위로 우뚝 솟기까지 하였다. 그 유난히 큰 코
를 김산이가 물끄러미 보다가 “자네가 춘동히 아닌가?” 하고 물으니 김산이의
얼굴만 빤히 보고 섰던 그 사람은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나는 자네
가 죽은 줄 알았더니 죽지 않구 살아 있네그려.” 김산이의 말을 춘동이란 사
람은 입내내듯이 “나는 자네가 죽은 줄 알았네.” 하고 말하였다. “죽지 않으
면 서루 만나는 겔세. 우리가 대체 얼마 만에 만나나. 이십 년이나 거진 되지 않
았나?” “한 이십 년 되었을걸. 가만 있게. 내가 고모부 아저씨 돌아가시던 해
에 파주 자네집에를 갔었구 그 뒤루 못 갔으니까 올에 꼭 열아홉 해 만인가베.
” “자네 올에 서른 몇인가?” “여덟일세.” “나버덤 삼 년이나 위든가?”
“그럼, 자네가 콧물 흘릴 때 나는 어른이었었네.” “주제넘은 소리 하지 말게.
” “내가 열아홉에 첫장가 들구 고모부 아저씨 상청에를 다니러 갔었는데 그때
자네가 나를 이서방 어른이라구 부르지 않았나. 내가 거짓말인가?” “상투 꼬
부랑이니까 이서방이라군 불렀었겠지. 옳지, 참말 그때 자네 상투가 컸었지? 그
래 우리가 상투치레 코치레 당나귀 무엇치레 하구 놀려주었거니.” “예 이 사
람!” “우리 어디 가서 좀 앉아 이야기하세.” “어디 가서 앉을 게 아니라 우
리 집으루 내려가세.” “자네 집이 어딘가?”“이 아래 마산리여.” “내가 지
금 여기 산역을 봐주는 중인데 언제 마산리까지 갔다 오나. 저기 어디 잔디밭에
좀 가 앉아서 이야기하세.” 김산이가 이춘동이와 손을 맞잡고 금정 놓은 자리
에서 멀찍이 나와서 잔디밭에 다리들을 뻗고 앉았다. 두 사람이 의외에 만난 것
을 반갑다고 새삼스럽게 서로 말한 뒤에 이춘동이가 먼저 “금교역말 어물장사
가 부자라지?” 하고 물어서 김산이는 자세히 모르는 말로 “꽤 견디는 모양이
데.”하고 대답하였다. “청석골 턱밑에서 부자 소리 듣구 살자면 임꺽정이에게
공을 많이 바쳐야 할걸.” 이춘동이가 심사 꿰어진 어투로 말하는 것을 김산이는
듣고 한참 있다가 “더러 뜯기겠지.” 가볍게 흘려서 대답하고 말을 달리 돌리
려고 “자네 언제부터 여기 와서 사나?” 하고 이춘동이더러 물었다. “작년에
왔네.” “그 전에는 어디서 살다가?” “해주땅에서 살다가 이리 들어왔네.”
“농사하나?” “대장쟁이 노릇하네.” “자네가 대장일을 배웠어?” “늦깍이
루 배웠네.” “그래 벌이가 좋은가?” “건지가 많아야 국물이 나지. 이런 산골
동네의 대장간 일이 변변한가. 그저 낫자루 도끼자루나 벼려 주는 게지.” “자
네 집 식구는 몇인가?” “식구는 많지 않아. 어머니 우리 내외 딸자식 하나. 원
식구는 넷이구 그외에 일꾼이 서넛 있네.” “자네 어머니가 그저 살아 기신가?
”“그럼 아직두 사실랑이 멀었네.” “연세가 올에 어떻게 되셨나?” “올이
환갑인데 새달 스무엿샛날이 환갑날일세.” “일꾼을 서넛이나 두었을 젠 대장
간 일이 꽤 많은 모양일세그려.” “농사두 좀 시키네.” “그래 의식 걱정은 없
나?” “양식을 남의 집에 꾸러 다니진 않네.” “고마운 일일세.” “산역 마치
구 내려올 때 우리 집으루 와서 사는 꼴을 보게.” “오늘 저녁때는 상행이 올
테니까 자네 집에 가게 될는지 모르겠네.” “상행이 오더라두 자네가 상젠가?
못 나올 것 무어 있나. 저녁밥은 우리 집에 와서 먹게.” “내일 여기 장사 지내
는 것까지 보구 자네 집에 가서 일이일간 묵어가겠네.” “일이일이구 일이삭이
구 내가 놔보내구 싶을 때 놔보낼 테니까 아주 그리 알구 있게.” “내가 팔자
가 사나우니까 아주 자네에게 봉양을 받으러 올는지두 모르지.”“어른에게 욕
하지 않나. 버릇없는 놈이구나.” 하고 이춘동이가 김산이의 어깨를 치며 허허허
웃었다. 이 춘동이가 김산이더러 어물전에서 서사나 차인 노릇을 하느냐, 어디서
무얼 하고 사느냐 묻는 것을 김산이가 어물어물 대답하니, 이춘동이는 자기를
외대한다고 골을 펄쩍 내었다. “이 사람 골내지 말게. 내 일신상 일은 나중 조
용히 만나서 다이야기 함세.” “내가 자네 뒤를 다 알구 있네.” “다 알면 왜
묻나?” “자네 말을 들어보려구 물었네.” “이 사람이 뉘 등을 치는 셈인가?
” “자네가 적성 가서 아전 다니구 아전 내 놓은 뒤 마전 달골 가서 살지 않았
나?” “내 말을 자네가 뉘게서 들었나?” “듣지 않구두 아는 수가 있지그려.
” “이보하나?” “자네 짐작이 용해. 내게 이보해 주는 청의동자두 있구 내
분부를 거행하는 황건역사두 있네. 조심하게.” 이춘동이의 골은 바로 풀리고 김
산이의 마음은 조금 떨떠름 하여 졌다. 이춘동이가 김산이의 내색이 달라진 얼
굴을 들여다보면서 싱글싱글 웃었다. “왜 웃나?” “내가 신장을 부린다니까
겁이 나는 모양일세그려.” “자네가 신장을 부리기루 내가 겁날 까닭이 있나?
” “아까 내가 자네 팔을 잡을때 왜 그렇게 질겁을 했나?” “뜻밖에 팔을 붙
잡으니까 잠깐 놀랐지 질겁은 무슨 질겁이야.” “실없은 소린 고만두구 내가
올 여름에 십오륙 년 만에 서울을 갔었네. 서울서 내려오는 길에 자네가 그저
고향에서 사나 하구 자네 집 살던 동네를 찾아들어갔더니 아는 얼굴이 어디 하
나나 있든가. 그래서 한참 공연히 돌아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더러 물어보다가
도루 나오는데 동네 앞에 큰 오래나무 있지? 그 오래나무는 그저 있데. 그 나무
아래서 얼굴이 눈에 익어보이는 늙은이를 하나 만났네. 그 늙은이가 자네 집 이
웃에 살던 최생원이데. 최생원이 자네가 적성으로 이사간 것을 가르쳐 주어서
이왕 맘이 내킨김이기에 적성까지 갔었네. 적성가서......” 이춘동이가 한참 이야
기를 하는데 김산이는 누가 잡아 일으키는 것 같이 벌떡 일어섰다. “이야기 듣
다 말구 왜 일어나나?” “그런 이야기는 나중 둘이 조용히 만나서 하세.” “
그럼 나는 먼저 내려가겠네.” 하고 이춘동이도 따라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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